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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치 21권 표지 이미지 ▲ ⓒ 쿠보 타이토, 서울문화사 |
세상은 선과 악의 대결장이고,
주인공은 선을 대표해 악을 무찌른다!
- 영웅은 언제나 그랬다. 20세기 초에 탄생한 <슈퍼맨>을 보더라도 ‘나쁜 악당을 물리치고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한다.’는 명제를 21세기에 도달한 지금까지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영웅이 있는 곳에는 드라마가 있고, 드라마가 있는 곳에 관객은 모여든다. 단순하지만 명확한 이 영웅과 관객간의 함수관계는 쉽게 변할 수 없는 듯하다.
왜 <블리치>에 환호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해 보인다.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절대법칙. 선과 악이 있고 영웅이 등장한다.
그런데 말이다…하지만,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이 언제부터인가 진부한 테마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주인공의 모습에 대한 반응에서도 마찬가지. 인간의 복잡다양한 감정이 제거된 전지전능한 영웅의 모습이 이젠 식상해진 것이다. 대신 선과 악이 뒤엉킨 무대에서 고뇌하고 슬퍼할 줄도 아는 지극히 인간적인 주인공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슈퍼맨’보다 ‘스파이더맨’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완벽한 영웅이란 도리어 비인간적이다.
<블리치>에서도 마찬가지. 주인공 이치고는 유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건 결코 유쾌한 능력이 아니다. 죽어서도 편안히 잠들지 못한 이들의 슬픔과 한을 들여다보며 그들을 제거해야 하는 과정을 통해 괴로워하고 힘겨워한다. ‘너는 악당, 이제 그만 사라져!’가 아니라 ‘왜 그대는 죽어서도 이다지 힘들어해야 하는가’하는 것이 이치고의 마음. 악당이라고 해서 내쳐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지 들어줄 수 있는 마음. 우리 시대의 영웅은 이처럼 강함 뿐만 아니라 부드러움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신이 된 이치고의 신분은 세상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절대반지를 얻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슬픔도 함께 짊어져야 함을 뜻한다.
강(强)함이 아니라 선(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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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치 2006년 캘린더 표지 이미지 ▲ ⓒ 쿠보 타이토, 서울문화사 |
현세의 사건들을 넘어 소울 소사이어티로 사라진 단짝 루키아를 찾기 위해 시혼계까지 들어간 이치고. 그곳은 악령(호로)들을 막으려는 사신들이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사신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호로보다 더 악한 존재, 소스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스케의 목적은 스스로 ‘하늘에 서겠다.’는 것. 정의보다는 강함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선과 악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그러나 소스케가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는 것은 이치고나 루키아처럼 타인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힘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내 주먹이 큰 건 상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라는 차도의 말처럼 정의는 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함에 있다는 사실. 진정한 영웅은 행동의 동기유발이 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함에 있는 법이다.
주인공 이치고를 비롯해 <블리치>의 인물들은 모두 지켜야 할 대상이 있다. 가족을 지켜야 하고, 친구를 지켜야 하며, 비록 알지는 못하지만 자신과 동일한 타인들을 지켜야 한다. 영웅의 길이 고통스럽지만 정의로울 수 있는 근원에는 이처럼 지켜야 할 누군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6년 6월 vol. 41호
글.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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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책 제목 : 블리치 (BLEACH)
작 가 : 글그림 쿠보 타이토
출 판 사: ㈜서울문화사, 총 21권(미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