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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1권 표지 |
선생님과 제자의 사랑’은 대단히 고전적인 테마다. 특히 남자 교사와 여고생이라는 설정은 소설이나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주 마주치는 리얼한 레퍼토리. 그래서 가끔 우리는 주변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선생님과 결혼한 여고동창생의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그러니 선생님과 제자의 사랑이 만화소재로 채택된다고 하여 유난스러울 것은 없다. 는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에 현대 과학 문명의 최고봉, 핸드폰을 주요한 소통매개로 삼아 새로운 로맨스를 창조한다.
핸드폰, 현대인의 필수품
아마도 제목 는 핸드폰(handphone)의 이니셜이 아닐까. 그만큼 작품 속에서 핸드폰은 주요 인물들의 감정을 소통시키는 중요한 오브제로 등장한다. 작품 초반 전학생 시노부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고민들을 담임인 타이치에게 보여줄 때 이용되는 것도, 타이치가 투잡족으로서 타인을 만날 때 사용하는 매개물도 핸드폰이다.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이 전달될 때마다 언제나처럼 핸드폰이 등장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인물들의 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무게만큼 현실에서도 핸드폰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현대문명의 총아로서 핸드폰은 단순히 의사소통만을 위한 기계가 아니라 취미와 기호를 다스리고 사람의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 요즘이다.
하지만, 이처럼 인간의 생활을 지배하다시피 하는 핸드폰이 과연 제대로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한탄 기계덩어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작품은 이에 대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이라고 대답하기 보다는 전달되는 과정 그 자체를 담담히 보여준다. 제대로 전달하고 혹은 전달받고의 문제는 기계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의 주체에 선 인간들의 몫인 것이다.
영어선생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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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한장면 |
학생인 시노부와 교사인 타이치. 사실, 이건 금기다. 더욱이 ‘스승에 대해서는 그 그림자도 밟아서 안 된다.’는 유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감히 사제지간의 거룩한 관계를 깨뜨려버리고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설정은 용납불가다. 대개 이 금기에 도전하는 것은 스승이 아니라 학생인데, 이는 나이 어린 학생들의 서툰 감정으로 치부해버리기 용이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춘기 소녀들의 성장기 통과의례로서 선생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쉽게 묵인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거 어떡하나! 에서는 학생과 교사가 서로 좋아하는 것으로 판명이 나버렸다. 그렇다면 이거 새로운 관점을 마련해야 하지 않나. 그렇다. 사회적인 함수로 따져본다면 이는 명백한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스승은 스승일 뿐이고, 학생은 학생일 뿐인데 어찌 남녀의 관계로 진화될 수 있단 말인가.
아~! 하지만, 모르는 것이 남녀의 관계요, 국경도 허무는 것이 사랑이라 했다. 요컨대, 스승과 제자의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개인적 로맨스로 따져본다면 시노부와 타이치의 감정교환은 숭고한 인간미의 결정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구구절절이 묻고 답하는 것 대신 몇 마디 집약된 단어로써 이들 사이에는 모든 소통이 이루어진다. 서로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서로 간절히 다가서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의 소통에서 사회적 관계는 짐일 뿐이다.
결국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소통의 문제다. 그 매개물이 핸드폰 같은 기계덩어리라고 해서 인간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사회적 관계가 애절한 감정의 흐름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는 얼마만큼 진실 되게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 나와 당신 사이를 묶을 수 있는 희망은 거기에 있다.
top 2006년 6월 vol. 40호
글 : 김미진
[기본 정보]
책 제목 : H(에이치) (원제 :H-エイチ-)
작 가 : 글, 그림 사쿠라이 마치코(Sakurai Machiko)
출 판 사: 대원원씨아이(주) , 총 6 권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