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부터 26년 전, 1980년 5월 전라남도 광주의 금남로는 무고한 시민들의 핏물로 더럽혀졌다. 그 때로부터 26년이 흘렀고, 깨끗한 금남로에는 햇살이 쏟아지지만 누가 감히 그 거리가 핏자국을 씻었다 할 수 있을까. 돌아가신 분들의 넋에 부끄럽게도, 역사의 재청산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화가 강풀이 포탈 <다음>에 연재 중인 「26년」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5·18 광주민중항쟁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역시 제목에서 암시하듯 5·18 당시가 아닌 26년이 흐른 현재를 배경으로 해서 사건을 전개한다. 길다면 긴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의 상흔은 아직도 피를 흘리며 남아있기 때문이다. 5·18의 악몽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80년 5월, 신군부는 계엄령 철폐를 외치던 광주 시민들을 간첩이라 밀어붙여 고립시킨 후 총검으로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그 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시대가 바뀐 듯이 보였지만, 광주대학살의 주범들은 처벌받지 않고 현재까지도 편하게 잘 살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우리의 현실. 결국, 5월 광주가 낳은, 당시 가족을 잃고 상처받은 아이들이 단죄를 결의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26년의 에피소드 중 한장면
국민의 군대가 국민을 학살했다는 점에서, 그걸 모른 척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직까지도 학살자들을 처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그 어느 근대사보다 아프고 부끄러운 우리의 치부이다. 하지만 치부를 드러내는 걸 반기는 사람은 없기에, 5·18은 자신의 명예를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길거리의 갤러리 정도로만 남겨지고 있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 현대사회에서 자꾸만 뒷전으로 밀리는 5·18을 이렇듯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내어, 사회에 숨어든 부정함이 어떤 이름으로 둔갑하는지 새로이 각인시키려는 만화가 강풀의 용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아직 끝이 나지 않은 작품에 대해 말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현재 마지막 3부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적어도 이 만화가 팩션 속에서 공적을 처단하는 것으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류의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은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냐 하면 영화 「살인의 추억」과 같은 노선이다. 무능력한 사회에 대한 분노와, 무관심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억울함 그리고 상처를 헤집는 이야기. 「살인의 추억」 같은 경우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뇌까릴 수나 있었지, 광주의 학살자는 대한민국의 전 국민이 얼굴과 이름을 아는데도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26년」은 당신에게 카타르시스보다는 분노를, 후련함보다는 아픔을, 통쾌함보다는 슬픔을 전할 작품이다.
물론 「26년」에서 진행되는 ‘사냥계획’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강풀의 작품이 이제껏 그랬듯이, 작가는 등장인물 개개인이 입은 상처를 조심스레 비춰내는 것에 온힘을 쏟는다. 시민들을 쏴 죽였던 계엄군, 아들을 계엄군으로 착각하고 칼로 찌른 어머니, 평생 실어증에 걸려 살아야 했던 아버지, 그런 부모님을 지켜보며 상처를 곱씹으며 자란 아들과 딸들.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날의 광주에서 인생이 틀어져서 그 상처 그대로 26년을 흘러와버리고 만 사람들이다. 그들이 틀어져버린 길을 되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날의 한은 깊다. 너무 깊다.
2년간 휴식을 가지겠다고 공언했던 작가는 ‘더 이상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휴식기를 깨고 이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광주의 참변을 잊지 않도록, 다시는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각성하기 위해서. 「26년」은 너무도 쉽게 잊으려 하는 현대 한국 사회에 죽은 자와 산 자가 애끓는 한을 담아 보내는 유실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