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느티나무의 선물

“하라다씨 부부는 그 때 처음으로 텅 빈 정원 한쪽에 느티나무가 있음을 알았다. 그 느티나무는 초가을의 햇볕을 받으며 잎이 무성한 가지들을 바람에 맡기고 있었다.” 『1994년, 그가 아사히 신문에서 ‘창조력은 (만화보다는) 활자를 통해 길러질 수 있다’고 말했던...

2009-09-14 김현우
“하라다씨 부부는 그 때 처음으로 텅 빈 정원 한쪽에 느티나무가 있음을 알았다. 그 느티나무는 초가을의 햇볕을 받으며 잎이 무성한 가지들을 바람에 맡기고 있었다.” 『1994년, 그가 아사히 신문에서 ‘창조력은 (만화보다는) 활자를 통해 길러질 수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실제로 그의 만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거나, 스토리 작가가 공동 작업한 작품들인 경우가 많다. 시튼의 동물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도련님의 시대”, “신들의 산령” 등은 모두 원작 소설이 있거나, 대본 작가가 따로 있는 작품들이다. 이 책 “느티나무의 선물” 역시 우쓰미 류이치로가 쓴 여덟 편의 단편을 만화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원래 이 작품은 1993년에 일본 쇼각칸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발행했던 만화잡지 “빅코믹”에 게재되었던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추천의 말 中에서- “느티나무가 먼저 여기 살고 있었던 거예요, 거기에 우리가 살기 시작했고 훨씬 후에 다른 사람들이 이사를 왔죠, 그런데 낙엽이 떨어진다고 해서 귀찮게 여기는 것은 나중에 정착한 사람들이 이기적인 거 아닙니까.” 다니구치 지로의 “느티나무의 선물”이 한국어 판으로 출간되었다. 출판사는 샘터, “아버지”, “열 네 살”, “개를 기르다” 등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은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일본 작가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구미권에서도 인정받은 색깔 있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작품 세계의 키 포인트는 “자연과 인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의 대표작들에서 항상 강조되고 있는 것은 ‘자연과 싸우며 환경을 개척하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공존할 줄 아는 인간’이다. 흔히들 학계에서 얘기하는 ‘개발과 환경’은 영원히 대치될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소위 말하는 서구식 개척주의는 수많은 삼림과 바다를 훼손하면서 자신들의 편의를 위한 문명을 건설해 왔고 유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라는 말로 서구식 개척주의를 정의했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부터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알았던 동양의 사고방식은 환경을 파괴하며 자신들의 터전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먹을 거리와 입을 거리를 마련했다. 21세기에 이르러 이젠 동서양의 구분 없이 모든 인류가 앞다투어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환경파괴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다니구치 지로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순응의 지혜, 공존의 지혜는 결코 인류가 잊어선 안될 절대 명제이다. 그의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구도가 금을 찾아, 부를 찾아 자연 속으로 들어온 백인들과 원래부터 그 곳에서 살아가며 공존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는 인디언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대립구도에서 독자들이 발견하는 것은 과연 자연이 인간의 것인가? 하는 궁극적인 의문점이며 이 상태로 나간다면 언젠가는 도래할 파국을 잘 버무려진 서정성을 통해 강력히 경고하고 있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