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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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습지생태보고서」는 「공룡둘리에 대한 오마주」를 통해 많은 만화 팬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했던 최규석의 첫 번째 장기 연재작이다. 『경향신문』의 오프라인 만화섹션 「펀」에서 시작하여 연재 도중 온라인으로 매체를 옮겼지만 형식과 내용에서 아무런 변화가...

2006-04-30 김미진
「습지생태보고서」는 「공룡둘리에 대한 오마주」를 통해 많은 만화 팬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했던 최규석의 첫 번째 장기 연재작이다. 『경향신문』의 오프라인 만화섹션 「펀」에서 시작하여 연재 도중 온라인으로 매체를 옮겼지만 형식과 내용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은 그만큼 작품이 재미를 보증했던 것. 자, 그럼 그 누추한 습지들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습지 : “시련은 부자에겐 가지 않아” 때에 절은 이불과 빈틈없이 들어찬 짐들... 습지인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열악하다. ‘비참’까지는 아니래도 재활용수거함에서 걷어온 온갖 잡동사니들이 생활용품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들의 자취방은 확실히 긍정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그 곳엔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냄새가 물씬하다. 거리에서 헤매던 녹용이 이곳에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이유도 어쩌면 그 점에 있지 않을까? 이곳이라면 내 (비싼)녹용을 맡겨도 괜찮을 것이라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믿음. 가난하기에, 그래서 삶의 비루함도 아는 이들이기에 자신의 자존심과 희망을 부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습지에는 누추하지만 그런 편안함이 존재한다. 습지생태 : “네 꿈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어” 그래서, 생활의 누추함을 알고 있기에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오늘도 달린다. 지금은 좁디좁은 자취방에서 부대끼며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지평선이 생성되는 방에서 매일매일 천 바퀴씩” 구를 수 있는 미래를 바라보며 살고 있다. 남들 다하는 연애라고 부르짖으면서도 아버지 한 달 용돈 4만원을 하루 저녁에 쓴 죄로 울어야만 하는 현실을 부둥켜안고 있는 습지인이기에 방으로 돌아오면 다시 앞으로의 날들을 위해 엑셀을 밟는다. 습지에는 부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 습지생태보고서 : “진실은 통한다고 믿는 거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동물캐릭터, 녹용이. 이 캐릭터를 보고 있노라면 영악한 것이 꼭 현실 속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 같다. 도움을 청할 때는 한없이 자신을 낮게, 그리고 동정심이 생기도록 만들면서 정작 그 도움을 받고 나면 마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능청스럽게 빠져나가는 모습. 하지만, 습지에 빌붙어 살면서도 다른 습지인들 보다 높은 지능지수를 선보이는 그의 처세술이 밉지 않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녹용이를 인정하는 습지인들. 진실이 통하든 통하지 않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습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정직하다. 언제나 희망은 있는 법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라는 노래가 어울릴만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습지의 주인공들. 그런 이유로 독자들은 더 이상 습지에 살던 각각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볼 수 없다. 하지만 분명 그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생활했던 습지에는 오늘 또 다른 습지인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며, 진화해나갈 앞으로의 자신들의 삶을 위해 구석구석 기름칠도 하고 나사를 조이고 있을 것이다. (만화규장각 매거진 / 2006년 4월 vol.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