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제7장 (09) 홍일점 신문만화가 김을호

신문만화를 연재하게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압도적으로 그 수가 많은 남성만화가들을 제치고 여성이 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거의 하늘의 별따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홍모래 씨에 이어 신문만화를 무대로 두번째 등단한 작가가 있으니 ‘미주알씨’의 김을호 씨다. 그녀는 1959년 경남 함양 출생으로 주니어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그녀가 만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여대 2학년 때 대학 학보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2009-02-12 박기준




                                                 제7장 개화기

         (09) 홍일점 신문만화가 김을호

신문만화를 연재하게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압도적으로 그 수가 많은 남성만화가들을 제치고 여성이 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거의 하늘의 별따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홍모래 씨에 이어 신문만화를 무대로 두번째 등단한 작가가 있으니 ‘미주알씨’의 김을호 씨다.
그녀는 1959년 경남 함양 출생으로 주니어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그녀가 만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여대 2학년 때 대학 학보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만화에 대한 전문지식은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던 김을호씨는 어느날 서점에서 만화 교재 ‘만화기법 강좌’를 보게 되었고, 그 교재를 통해 많은 정보와 기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한다. 그 후로 만화 그리는 일에 부쩍 취미가 깊어지게 되었고, 덩달아 사회를 보는 냉철한 시각을 기르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카톨릭대 및 동대학원 불문학과졸업때까지 학보만화를 담당했다.

한겨레 신문에 연재했던 김을호 작가의 카툰
한겨레 신문에 연재했던 김을호 작가의 카툰

1988년 때마침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어서 공채에 응시하게 되었는데 합격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이 예상치 못한 합격 소식에 그녀는 꿈인지 현실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만화 경력이라야 대학 학보에 실렸던 경험이 전부였던 아마추어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길로 신문에 동참하게 되었고 ‘미주알씨’는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만화는 만화다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일부러 캐릭터명을 가볍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류작가 특유의 온화함과도 함께 구비하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문만화를 한다는 것은 날마다 한편씩 그려내야 하는 매우 고된 작업이다. 그만큼 인고와 땀이 요구되면서 동시에 보람과 실망이 수없이 교차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직업 중에서도 이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드물 것이다. 그 직업적인 스트레스를 새벽 산책으로 풀어 온지도 어언 10년 세월이 흘러 연재가 3천회를 넘기게 되었을 즈음에 그녀는 휴직계를 내었다.
김을호씨와 나는 임청산 공주대학 학장의 출판 기념식장에서 마주한 적이 있었다. 임학장이 내빈에게 내 소개를 하였을 때 반색을 하면서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만화기법강좌’의 저자가 바로 나였음을 기억해 주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자리는 저자와 독자의 만남의 자리처럼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 후 다시 한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상명대학원 만화영상과 특별강의를 맡게 되어 출강한 자리에 김을호씨가 대학원생으로 출석해 있었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만화 전문 지도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감행하였다니 만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보통은 아닌 사람이었다. 그것도 홀몸이 아닌 주부의 몸으로…
최근에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강사의 신분으로 이따금 대하게 되니, 학식과 능력을 겸비한 바람직한 여류만화 지도자의 탄생이 임박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