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해빙기
(3) 본격 청소년 만화잡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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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세계 / 만화소년소녀 |
1956년 출판활동이 왕성했던 서울은 만화가들과 만화지망생들을 들뜨게 했다.
한국 최초의 청소년 만화월간지 ‘만화세계’사가 종로 3가의 악기점 2층에 자리하고서 판타지 극화로 명성을 날리던 최상권 씨를 주간으로 영입하여 좋은 원고 구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창간호가 출간되자마자 품절되는 바람에 재판할 지경이었으니 보통 인기가 좋았던 게 아니다. 목차를 넘기면 다음 페이지부터 2색도로 소개되는 최상권 씨의 ‘만리장성’은 단연 인기 선두주자였다.
단행본 쪽에서는 피난지 대구의 군 정훈국에서 홍보만화를 그리다가 상경한 김종래 씨가 극화 ‘어사 박문수’ ‘이 길 저 길’ 등 고급 단행본을 발간하여 한참 주가를 높이고 있었다. 그는 재일 교포 출신으로 일본 재학 시절에 심취해 있던 일본의 고전과 역사소설을 우리 것으로 개편 윤색해 내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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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래 ‘ 엄마찾아 삼만리’ |
‘만화세계’사에서 발행된 그의 ‘엄마 찾아 삼만리’는 225쪽 짜리 국판 양장본으로서 거듭 품절되는 바람에 5판까지 발간될 만큼 인기가 폭주했다.
이렇게 되자 출판사들의 원고 청탁 경쟁도 치열해져서 청탁시 원고료의 반을 계약금으로 주고, 그러고 나서도 10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차례가 올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의 작업일정으로서는 잡지 연재물을 먼저 탈고해야 단행본 청탁 원고 작업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잡지와 단행본에서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며 그의 인기는 상승세를 거듭했다.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문장력이야말로 그의 작품 최고의 무기였던 것으로, 현재 인기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현세와 황미나도 ‘엄마 찾아 삼만리’에 감명을 받고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고 할 만큼 영향력 있는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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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현 ‘최후의 밀사’ / 박기당 ‘만리종’ / 박기당(글), 박광현(그림) ‘엽전 열닷냥’ |
부산에서 간판 일을 하였던 박기당 씨도 새로운 극화 붐을 조성하면서 ‘만화세계’사에서 인기 반열에 올랐다. 그 역시 재일교포 출신으로 주로 신비, 설화, 괴담, SF 등 공포물들을 즐겨 읽었던 것이 창작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잡지에 연재했던 공포 극화 ‘어사와 성성이’는 비록 인기는 끌었을지라도 청소년들에게 큰 해를 준다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 ‘만리종 상하편’ ‘눈물의 호궁 상하편’ ‘백발귀’ ‘눈물의 절벽’ 등은 인기에 있어 김종래 씨 작품과 쌍벽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 역시 말년에 지병으로 사망한다.
‘만화세계’에는 극화 외에도 다양한 만화들이 실려 있었는데, 명랑만화로 김경언의 ‘칠성이’ 신동우의 ‘빵점이’ 박현석의 ‘바람돌이’ 김근배의 ‘멍청이’ 임수의 ‘천하통일’ 그리고 김정파의 순정 그림이야기 ‘흰 구름 가는 곳’ 등 인기작이 많다.
‘양녕대군 만유기’의 이병주 씨는 만화보다 잡지 연재소설의 삽화 쪽에 더 열중하고 있었다.
이 외에 신인들의 작품을 한두 편씩 선택해 싣고 있었는데, 이 좁은 문을 뚫기 위한 신인들의 경쟁이야말로 지금의 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보다 더 치열했던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