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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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5)캐릭터 두통이의 첫등장

1958년에 만화세계에서 처음 빛을 보게 된 ‘두통이’는 작품으로서는 물론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그런 대로 낙제생은 면하였다고 생각된다. 미국의 저명한 만화가 행크 캐첨의 주인공 테니스처럼 말썽만 피우는 두통거리라고 하여...

2008-05-08 박기준



                                               제5장 해빙기

                             (5) 캐릭터 두통이의 첫등장

한편 1956년 봄은 이승만의 자유당 말기에 이르러서 선거전으로 한참 시끄러울 때였다. 그런 와중에 ‘만화세계’지에 이어서 ‘만화학생’사가 퇴계로 퍼시픽호텔 입구의 서울문화 인쇄소 2층에 자리 잡고 문을 열었다. 필자들은 주로 인기 일로에 있는 작가들과 백인수 씨 등 새로운 얼굴로 짜여져 있었다.
때마침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이곳에서 편집장의 보조로 아르바이트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편집 일을 하는 틈틈이 한편씩 내 작품도 만들어 잡지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만화세계’에도 출품하고 있었는데, ‘두통이’를 등장시킨 만화는 좋은 평을 받으며 심심치 않게 실리곤 했다.

1956년, 두통이 단행, 단행본 및 잡자에 등장
1956년, 두통이 단행, 단행본 및 잡자에 등장

1958년에 만화세계에서 처음 빛을 보게 된 ‘두통이’는 작품으로서는 물론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그런 대로 낙제생은 면하였다고 생각된다. 미국의 저명한 만화가 행크 캐첨의 주인공 테니스처럼 말썽만 피우는 두통거리라고 하여 주인공으로 삼아서, 명랑한 내용을 소재로 다루었다. 그러나 중편으로 다루기에는 마땅치가 않았으므로 캐릭터 성격을 바꾸었다. 가난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악에 굴하지 않으며 끝내 목적한 바를 이루는 모범생으로 변신시킨 것이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 모양이었다.
‘만화학생’지의 편집부에서 일하면서 타지에 원고도 만들어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내심 나로서는 흥분치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만화학생’지의 주인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잡지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던 사장은 운영이 어렵게 되자 다른 업자에게 넘겼다. 바로 ‘만화세계’의 주간으로 있던 최상권 씨가 인수한 것이었다.
회사는 충무로 옛 대원호텔 옆 건물 2층으로 자리를 옮겼고 데스크는 고일영 씨가 맡게 되었다. 고일영 씨는 ‘짱구박사’의 작가로 추동식이란 필명을 쓰고 있었다. 그는 한국전쟁 전에도 ‘춘향전’, ‘모험왕의 세계모험’ 등 몇 편을 선보인 적이 있으나 그 수는 적다.
순수미술에 꿈을 두었던 서울대 출신이었던 만큼 필명으로 등단한 것도 대학동기들을 의식한 까닭이 아닐까 싶게 다른 만화가들과 쉽게 어울려 지내지도 않았다.
‘만화학생’에는 ‘청용백호’ ‘칠천국’ 등 최상권 씨의 인기 작품이 2색도로 앞에 실리고, 그밖의 인기만화가들의 작품과 추동식 작품이 연재되고 있었다. 중간호로 칠천국‘을 별도로 발행하기도 했다.
나도 최상권 씨와는 전부터 안면이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도 좋은 원고를 만들어 보내면 언제라도 실어 주겠노라고 용기를 주곤 했다.
이 시기에 고우영 씨는 신인만화가로서 형의 편집실에 드나들고 있었다. 그는 복싱에 흥미를 갖고 있어 나와 첫대면을 하게 된 것도 유니폼 차림이었던 것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