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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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1)독서로 위안을 삼았던 피난시절

서울의 을지로 거리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김일성의 구둣발에 채여 부산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을 그린 대평전시용 작품들이 여기저기 나붙어 있었다. 유명 만화가의 한 사람인 김용환 씨의 작품이었는데..

2008-03-11 박기준



                                             제4장 격동기

               (1) 독서로 위안을 삼았던 피난시절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모든 것이 순탄하고 행복하다 싶었는데 5학년 무렵에 1950년의 6.25 한국전이 발발한 것이다. 물론 그 때의 힘든 경험은 다시 하고 싶지 않지만, 그 경험은 나라는 인간을 크게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의 소양이 부쩍 길러진 것도 그때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해 겨울, 이승만 정부는 북한군에 밀려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면서 경남과 부산만을 가까스로 지키고 있는 정도였다. 큰형과 둘째형은 북측의 의용군 징집을 피해 시골 친척집을 전전하며 숨어 지내고 있었고, 그에 앞서 농업학교에 다니던 셋째형은 해병대에 자원, 남쪽 낙동강 인근의 전투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서울의 을지로 거리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김일성의 구둣발에 채여 부산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을 그린 대평전시용 작품들이 여기저기 나붙어 있었다. 유명 만화가의 한 사람인 김용환 씨의 작품이었는데, 나중에 듣자하니 북한 고위층에서 북한 미술동맹 위원장이었던 정현웅(해방 전후의 인기 만화가)씨에게 명령하여 강제로 시킨 것이었다고 한다.

서울 모처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면서 포스터부에는 웅초, 김용환, 임동은, 그리고 초상화부에는 청전 이상범 등이 동원되어 김일성 초상화, 스탈린의 얼굴, 그리고 북한군의 승리를 찬양하는 그림을 그릴 것을 강요 받았다고 한다. 한편 집안 어른들의 급작스런 도피로 우리 가족들은 부초처럼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1951년 9월 28일에 서울 수복은 이루어졌지만 중공군의 남침으로 또다시 국군과 유엔연합군은 일진일퇴, 서울 경기도 일원은 폭격과 전투로 풍지박산 상태였다. 1952년 여름에 내가 피난지 전주까지 내려가게 된 것은 큰형이 전북대학 교수로 옮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5학년에 편입, 그리고 이듬해 봄에 전북 명문중학인 전주북중에 합격하였는데 이것이 내게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절호의 찬스가 되었다. 작은형은 피난지인 부산 송도의 판잣집을 임시 교사로 사용하고 있는 경복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도 겸해 생활하고 있었으므로 우리 콤비도 이때부터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전시였기 때문에 각 학교마다 경쟁적으로 학도병 훈련을 실시하고 있어 파견된 군인들의 교련 지도까지 받고 있었다.

코주부 삼국지
(재)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복간한 김용환의 [코주부 삼국지] 표지

이렇듯 시국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힘들고 괴로운 생활 속에서도 잠시나마 꿈을 주고 행복감을 주는 만화와 잡지들을 멀리할 수는 없었다. 그 중에서도 1953년의 학원지는 단연 인기였다. 김용환 씨의 ‘코주부 삼국지’, 김성환 씨의 ‘꺼꾸리군 장다리군’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독자들은 다음 회를 기다리느라 애간장이 탈 정도였다.
신동헌 씨의 독특한 삽화가 곁들여진 조흔파 씨의 명랑소설 ‘얄개전’ 역시 흥미만점이었던 작품으로 학원지의 주가를 높였다.
뒤이어 학원의 라이벌지인 학생계가 등장했다. 김용환 씨의 ‘수호지’ 신동헌 씨의 ‘럭키 칠봉이’, 그리고 독특한 펜화를 사용한 극화 김용환 씨의 ‘왕’이 연재되었다. 이것은 소련의 동물문학을 각색하여 만든 최초의 펜 극화였는데, 주인공인 호랑이와 인간, 그리고 자연을 노래한 멋진 펜화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만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학원과 경쟁하던 학생계도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꺼꾸리군 장다리
김성환의 [꺼꾸리군 장다리]

당시 또 하나의 화젯거리는 ‘쿼바디스’라는 컬러영화였다. 미 팔군에서 제공된 필름을 학교 강당에서 스크린 옆에 앉은 변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전교생이 감상했는데, 어찌나 감명을 받았던지 나중에 생키에비치의 다른 소설까지도 구해 읽었을 만큼 문학작품의 매력은 상당한 것이었다. 내 기억 속에 있어서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각별했다. 초등학교 시절이 영화와 만화의 시대였다면 이 시기는 본격 소설과 문학에 몰입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도서관이 이렇게 멋진 장소가 될 줄은 정말 몰랐었다.
‘엉클 톰스 캐빈’ ‘삼총사’ ‘바다 밑 2만리’ ‘몬테 크리스토 백작’ ‘여자의 일생’ ‘장발장’ ‘폭풍의 언덕’ ‘오 헨리 단편선’ 등 많은 세계명작들을 연일 읽어나가는 동안에 나는 단골 고객이 되었다.
국내명작 중에서도 김내성의 ‘청춘극장’ 이광수의 ‘꿈’ ‘사랑’, 나도향의 ‘벙어리 삼용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정비석의 ‘성황당’ 등 눈에 띄는 대로 닥치듯 읽었던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추천하는 영화감상도 빼놓지 않으면서 이때의 3년간은 사춘기를 조용히 넘기면서 독서삼매경에 푹 빠져 지냈던 중대한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