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해빙기
(7) 고생 끝에 봄은 오는가
1957년은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해였다 할 수 있다.
때마침 큰형이 경희대학 영문과 교수로 오게 되었고, 대학 근처 회기동에 50평의 주택을 마련했으니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뻤다.
이듬해 봄 나는 경희대 국문과에 입학, 조심스레 나의 대학시대를 열었다. 당시 소설가로 유명한 황순원, 주요섭, 희곡작가 김진수, 시인 조병화 씨 등이 지도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나를 꿈에 부풀게 했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다시 또 하나의 낭보가 찾아 왔으니, 잡지에 실린 ‘두통이’를 유심히 관찰하던 광문당에서 내게 80쪽짜리 단행본 원고를 만들어 달라고 청탁해 왔던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만화는 극화가 주류였고, 약화체 그림은 어느 출판사에서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시대였다. 하지만 유행을 무시한 ‘두통이’는 출판사에서도 놀랄 만큼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것을 계기로 다른 출판사에서도 청탁이 쇄도하였기 때문에 기쁨의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나는 그리기 힘든 극화체를 벗어나, 그림을 간소화하면서도 장편 스토리를 연출할 수 있는 중간체 만화를 개척했다. 광문당에 이은 부엉이 문고의 ‘누나를 찾아서’가 히트작이 되어 판매에 성공하게 되니 이번에는 스스로 출판사를 만들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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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정 도전자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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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일영(추동식) 쿼바디스 / 고일영(추동식)의 짱구박사 |
그리하여 1958년 큰형과 형수님을 설득하여 크로바문고사로 출판 등록을 했다. 처음에는 청소년 만화잡지와 만화단행본과 유아용 그림책 전문 출판사로 시작했다. 서봉재 형을 초청 격월간지 ‘만화 집’, ‘만화왕국’, 편집장으로 앉히고 박기정 형과 내가 협력했다. 1958년은 청소년 만화잡지와 단행본 시대였다. ‘만화세계사’에서 발행한 4×6판 고급양장본 김종래의 ‘엄마찾아 3만리’가 대성공을 거두자 연이어 임수의 ‘거짓말 박사’를 발행하였다. 성문사에서도 고급 양장본 시리즈 열다섯권을 발행했는데, 박광현의 ‘암굴왕’, 임거정, 박기당의 ‘손오공’, 고일영의 ‘쿼바디스’, 신동우의 ‘삼총사’, 정파의 ‘아무정’ 등이였고 판매 성적도 좋았다. 그러던것이 값이 조금 저렴하면서 실용적인 국판 132쪽 반양장 하드카바로 변신한 만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소년 소녀사의 김경언의 ‘우락돌이 부락돌이’, 신동우의 ‘장고산의 반란’, 박현석의 ‘바람돌이’, 크로바 출판사는 박기정의 ‘별의 노래’, ‘무적 송사리군’, 박기준의 ‘어디로 가나’를 발간,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1960년대 접어들면서 만화 종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서점에 더 이상 많은 만화책들을 수용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종로 5가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부엉이 문고의 오사장과 이국전씨는 이동식 대본점을 전문 만화방으로 개척한 사람으로 전국 판매처를 조직하고 만화들을 공급하는 일에 전력을 쏟았다. 이때부터 만화는 점차 쪽수가 줄어들었고 서점에서 만화방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만화방은 서점용과 달리 여러작품을 제작하지 않으면 운영이 여려워 발빠르게 변신해야 했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박부성, 방영진 씨 등 능력 있는 작가들을 전속으로 계약했다. 동시에 그림에 소질이 있는 젊은 지망생들을 찾아 처음 1, 2편의 스토리를 써 주기도 하고, 스토리 쓰는 요령을 체계적으로 지도해 주기도 했다.
출판사와 작업실로 쓰기 위해 백평의 대지 위에 두 동의 주택을 짓고 작은형과 내가 한동씩 나누어 사용했기 때문에 여러 모로 편리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리고 크로바 문고 마크가 표지에 붙여진 책들은 독자들의 대환영을 받았다. 독자들은 한번 선택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의 상표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으로, 발행하는 즉시 날개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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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진의 약동이와 병팔이 / 박기준의 풍운아 |
박기정의 ‘들장미’ ‘가고파’ ‘도전자 시리즈’, 방영진의 ‘명탐정 약동이’ ‘약동이와 영팔이 시리즈’, 박부성의 ‘유람선’ ‘요술지팡이 시리즈’, 심명섭의 ‘홍두깨 시리즈’, 권영섭의 ‘오손이와 도손이’, 박기준의 ‘두통이 풍운아 올림픽 소년 시리즈’. 이정민의 ‘해저왕’ ‘상어호 시리즈’, 이소풍의 ‘억세게 재수 좋은 소년’, 박정혜(박문윤)의 ‘봄의 노래’ 등 크로바 문고는 라이벌인 부엉이 문고, 제일문고와 3강을 이루며 본격적인 선두경쟁에 돌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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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석의 바람돌이 / 오명천의 싼디만 / 손의성의 동경4번지 |
제일문고는 김종래, 박기당, 오명천의 ‘싼디만 시리즈’, 유세종의 ‘P맨’, 신현성의 ‘유격편대’, 이범기의 ‘장희빈’ ‘강화도령 시리즈’ 등 극화작품이 주류였는데, 작가진은 최고였지만 극화라는 섬세한 원고작업 과정상 탈고기간이 길다는 약점이 있었다. 부엉이 문고는 김산호의 ‘라이파이 시리즈’, 정한기의 ‘조랑어사 시리즈’, 박현석의 ‘바람돌이 시리즈’등 간단한 그림체와 극화체 등 주력 작가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부엉이나 크로바 문고는 대부분 간단한 그림체여서 탈고가 빨랐기 때문에 기동력에서 큰 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매월 전국 판매 통계를 놓고 볼 때 적절한 시기에 독자들이 기다리지 않고 볼 수 있도록 공급하는 출판사가 앞서 나가게 된다는 것을 경험상 터득하게 되었다.
부엉이문고에서 ‘라이파이’ ‘칠성이시리즈’로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그 출판사의 다른 책들도 더불어 판매 덕을 보는 붐현상이 일기도 한다. 우리 크로바문고에서도 ‘도전자’ ‘약동이’ ‘유람선’ 등 중편으로 시작하다가 인기가 좋아지면 대장편 연속편으로 만들어 인기를 점령해 가는 작전이 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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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의 동물전쟁 |
그밖에 군소 출판사들도 이에 뒤지지 않고자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몸부림치고 있던 시대로, 최경의 ‘동물전쟁 시리즈’ 신동우의 ‘날쌘돌이 시리즈’ 같은 작품이 만들어졌는데, 이때가 단행본 만화의 황금시대요, 만화의 춘추전국시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디에서 최고의 히트작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출판사의 흥망이 좌우되기도 하였기 때문에 인기작가 영입작업에 열을 올리는 것이었고, 또 작가들의 화인플레이로 인해 질 높은 만화들이 속속 출현하였다.
그러나 작가 영입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작가 유인책 등 웃지 못할 사례까지 등장한다.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타사보다 더 많은 원고료를 제시하는가 하면 거금의 보증금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출판사 정문 입구에 스파이를 상주시켜서 작가를 미행하여 술집으로 유인하는가 하면 자금공세를 펼쳐 그야말로 007작전이 무색할 정도의 비법도 횡행하였다.
따라서 인기작가를 확보한 출판사에서도 방어작전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기작가에게는 계약금은 물론 자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불해 주는 제도로 바꾸었으므로 더 이상은 경쟁자에게 뺏기지 않게 되었다. 이 참에 전속 보증금과 선금을 받아서 주택을 구입한 작가도 있을 정도였다.
뒤 처진 출판사 중에는 인기작가를 확보하기가 어렵자 편법을 쓰는 곳도 생겼다. 만화기획에 능한 향수, 김동명 등을 확보하고 일본으로부터 단행본과 만화잡지 등을 대량 공수해 와서 우리 것으로 둔갑시켜 원고를 만드는 비상한 방법이었다. 앞서 일본만화를 구입해 와 재미를 본 ‘철인 28호’ ‘날쌘돌이’ 등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보면, 스토리의 기(起) 발단부분은 일본A잡지의 원작 그대로를 사용했으니 멋지게 잘 나갔다. 그러나 잡지 연재분인 본재료가 떨어지게 되자 다른 B나 C잡지에 연재되었던 것을 적당히 꿰어 맞추어서 승(承) 갈등, 위기로 연결시키니 앞뒤가 맞지 않는 스토리가 되고 만다.
예를 들어 처음 메인 캐릭터는 우유부단하고 결점도 많은 내성적인 소년이었는데, 장면이 바뀌면 무슨 일에나 도전하는 돌진형이 되어 있고, 성격 변화 과정이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놀라운 유도솜씨를 발휘하거나 복싱선수 같은 포즈를 취하면서 맹수처럼 매서운 눈빛을 빛내는 등 만능소년이 되기도 한다.
이런 식이니 모방한 그림만 가지고 보면 그럴듯해 보였지만 내용상으로는 유년생이 아닌 이상 재미있게 볼 리가 없어 한두 편으로 그 생명력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정석대로라면 잡지 연재물을 많이 확보한 다음 시간을 갖고 게재해야 하는데 경쟁자들한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선수를 치지 않을 수 없어 이런 아이러니가 생기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