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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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19)캐릭터의 심리 묘사로 성공한 임창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성장한 임창은오사카의오미나도공업학교를졸업하였으며그림과독서에취미가깊은청년으로성장하였다. 만화에 있어서는 선진국이라 할 일본에서 만화에 길들여진 채 자라왔던 그는 만화의 매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던 모양이다..

2008-08-21 박기준



                                      제5장 해빙기

       (19) 캐릭터의 심리 묘사로 성공한 임창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성장한 임창은오사카의오미나도공업학교를졸업하였으며그림과독서에취미가깊은청년으로성장하였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귀국한 그는 부산에 정착하여 부산공고와 경남중학교, 경남여고에서 미술교사 생활을 한다.
그러나 너무 일찍부터 일본생활을 하였던 그는 한국말이 서툴렀기 때문에 교사로서의 역할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결국 교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그는 만화가로 전업을 꾀한다. 만화에 있어서는 선진국이라 할 일본에서 만화에 길들여진 채 자라왔던 그는 만화의 매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당시 ‘아리랑’을 비롯 ‘야담’ ‘여원’ ‘만화춘추’ 등 잡지 붐이 일고 있었는데, 만화는 약방의 감초처럼 잡지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로 신인작가들의 데뷔코스로 정례화되고 있었다. 그는 원고를 만들어 ‘신태양’ ‘명랑’ 등의 대중지에 투고하였는데 편집부의 반응이 좋았으므로 작가로서의 출발은 어렵지 않게 시작되었다.
1957년 교사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상경, ‘신태양’ 지의 전속 삽화가로 활동하면서 신문에도시사만화와 어린이만화로 지면을 누볐으며, 소년한국일보에 ‘마티스 테라’ 철인만화 1960년 평화신문에 ‘멍구리군’을 연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너무나도 경쟁이 치열한 때로서 인기만화가가 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므로 오직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땡이의 사냥기
다양한 사냥 전문 서적등을 참고로 연구해 성공한 ‘땡이의 사냥기’

그리고 마침내 때가 왔다. 1964년에 출간된 단행본 ‘땡이의 사냥기’ 시리즈가 큰 반응을 보이면서 출세작이 되었으니 이 때가 그의 나이 이미 50대에 접어들어 있었다. 캐릭터 ‘땡이’는 모자챙을 위로 꺾어 써 한눈에 개구쟁이임을 알게 하는 둥근 얼굴에 둥근 눈을 가진 소년이지만, 똑똑하고 야무진 성격으로 하여금 만화계의 스타로 부상한다. 결국 씨는 땡이를 통해서 어릴 적에 하고 싶었던 꿈을 하나씩 이뤄 나가게 된 것이다.

땡이와 영화감독(왼쪽) / 땡이 내가 최고(오른쪽)
땡이와 영화감독(왼쪽) / 땡이 내가 최고(오른쪽)

그에게는 두 늦둥이 아들이 있었는데, 이 형제들의 성격을 평소부터 유심히 관찰해서 첫째는 모범생 땡이의 모습으로, 둘째는 개구쟁이 방개로 형상화시켜 이 둘을 명콤비로 등장시켰던 것이 성공의 요인이 되었다. 기타 등장인물로는 딱구리, 땡코, 올챙이 등 이름과 성격과 개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으며, 예쁜 여학생 미라와 소라 같은 이름도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살려 주었다. 소재 또한 사냥, 영화감독, 여행 등 동물의 습성이나 카메라 배치까지 전문성을 띠고 있어 관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가족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씬이 자주 등장하는데, 잔잔한 감동을 준 작품도 있었다. 특히 할아버지와 이불 속에서 푸근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묘사되었는데, 이 또한 독자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무성영화 시대 최고 인기배우 겸 감독 판토마임그그이 선구자 채플린
무성영화 시대 최고 인기배우 겸 감독 판토마임그그이 선구자 채플린(1895-1918)

임창씨는 1965년 ‘땡이와 영화감독’ ‘스크린 꿈나라’ ‘채플린의 일생’ 등을 연속 발표, 1980년대에 접어들 때까지 최고 인기작가의 자리를 굳혔다. 채플린 같은 명배우의 일생을 선택해서 소개할 때는 어디까지나 신중함과 철저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즉 당시 발행되었던 그 어떤 만화들과도 차별화될만큼 전문성을 중요시하였던 사람이다.

1968년도 합동출판사가 독점하고 있던 침묵기에 땡이문고 출판사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합동의 횡포에 과감하게 반기를 들고 일어섰던 것이나, 결국 출판사를 접고 중과부족의 한계에 부닥쳐서 합동의 전속작가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인기캐릭터 모형을 입체 모형으로 제작
인기캐릭터 모형을 입체 모형으로 제작(애니메이션센터 박물관)
위왼쪽부터> 약동이, 코주부, 땡이, 라이파이, 심술통, 독고탁, 두통이, 훈이, 꺼벙이, 혁이

이렇게 500여 편이라는 적지 않은 작품을 창작하였던 임창씨는 1977년 후반에 절필, 1982년에 환갑을 얼마쯤 앞둔 채 타계하고 만다. 그 뒤로는 그의 제자이자 협력자였던 ‘불나비’의 김민, ‘우리학교 멋쟁이’의 황재 등이 그의 명맥을 유지해 나가게 된다. 땡이시리즈의 성공요인을 살펴 보자면 우선 캐릭터의 성공을 먼저 꼽아야 할 것이다. 스토리만화는 인물의 의지와 갈등을 묘사하게 되므로, 자기가 창조한 인물이 어떤 이름을 갖고 어떤 모습인지, 어떤 행동과 제스처, 그리고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그 인물의 이력서를 상세하게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캐릭터의 이름에 따라서 그 인물이 코믹하다든가 리얼한 인상을 풍기게 된다. 외형에 의한 이름을 붙일 것인가, 신분에 따른 이름을 붙일 것인가, 아니면 성격에 따른 이름을 붙일 것인지 선택해서, 어쨌든 특이한 캐릭터명을 갖게끔 단어를 합성해 보고 기억에 남는 이름을 지어야 한다.

또한 캐릭터의 성격 묘사 또한 중요하다. 흔히 말하길, 캐릭터에 성격을 불어넣은 최초의 인물은 성격묘사를 희곡에 도입한 ‘인형의 집’의 작가 입센이라고 말들 한다. 이처럼 아무리 테마가 훌륭하고 스토리가 재미 있다 하더라도, 등장 인물의 성격이 뚜렷하게 소개되어 있지 않으면 성공한 만화라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씨는, 땡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킴으로써 만화사에 남을
성공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