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침묵기
(01) 만화 규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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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준의 ‘올림픽 소년’ 불량배의 단검을 대나무 칼로 고쳤다. |
1961년, 5.16혁명의 발생으로 모든 언론출판물은 검열과 제약의 대상이 되었으며, 신문만화는 물론 잡지 단행본의 만화원고에까지 검열의 칼날이 번득이게 되었다.
신문만화 ‘고바우영감’의 김성환 씨를 비롯, 많은 연재작가들이 군사정권의 탄압, 협박, 회유에 의해 창작의 자유를 통제 당했다. 출간 예정인 잡지며 출판물은 모두 사전 검열을 통과해야만 시중에서 판매해도 좋다는 검열마크를 받게 된다.
군 당국에서 파견 나온 정체 모를 심사관들은 작가들의 작품을 하찮게 여기면서 마구 칼질을 해댔다. 청소년만화에서 용감한 호동왕자가 산 속에서 달리는 사슴을 활로 쏴 잡는 장면이 지적을 받았는데, 잔인하니까 몸 속에 박힌 화살을 지우고 피도 삭제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빨간 색연필로 흉측할 만큼 심하게 체크하여 원고를 손상시켜 되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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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규제에 대한 기사 |
남북전투 장면에서 왜 북한군 장교를 미남으로 그렸냐, 늑대나 괴물처럼 무섭게 바꾸어 그리라는 지시가 내리는가 하면, 십대 남녀가 손잡고 해변을 뛰어가는 장면이 풍기 문란하니까 잡은 손을 놓게 할 것, 가난에 찌든 한 가족이 한 방에서 커다란 이불을 함께 덮고 자는 장면을 놓고도 남녀 유별하니 따로 재우라는 등 우습지도 않은 검열관의 지적은 작가들의 노여움을 사게 하기 충분했다.
이런 식이다 보니 검열을 거쳐 시중에 나온 만화가 재미있을 리 없다. 자연히 독자들의 불만은 컸다. 만화는 영화와 다름없이 실감나는 그림연출과 묘사가 생명력인데, 한껏 표현을 억제하니 무슨 재미로 읽느냐고 보던 만화를 집어던져 버리는 일도 허다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견디다 못해 만화계를 영영 떠나버린 작가들도 적지 않았다.
조항리 씨는 1962년 007영화를 연상케 하는 흥미진진한 혜성같은 소년 시리즈로 등장한 인기만화가였지만, 단행본 만화를 접고 애니메이션 회사의 애니메이터로 전업, 훗날 김청기 감독과 함께 ‘로봇태권V 시리즈를 탄생시켜 동료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라이파이’의 김산호 씨도 멀리 미국으로 이민 가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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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의 짱구 박사, 만화규제에 항변 만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