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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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2)살길을 찾아 남으로, 남으로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날이 왔다. 우리 가족은 그동안 조금은 정들었던 만주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할 것을 결심했다. 칠흑 같은 밤..나도 작은 봇짐을 어깨에 메고 형들의 뒤를 따라 가슴까지 차는 임진강을 건넜다.

2008-02-28 박기준



                                       제2장 암흑기

                 (2) 살길을 찾아 남으로, 남으로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하여서 가업도 돌보지 않고 술로 일관하며 슬픔을 가누지 못하셨다.
1945년, 일본 군국주의 세력은 미국의 태평양전쟁 참전으로 크나큰 위기에 봉착하면서 막바지에 몰리고 있었다. 그들은 장기전에 의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게 되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놋그릇이란 놋그릇은 닥치는 대로 거둬 가는 한편 개도 몰수해 갔다. 탄피와 군인들의 모자와 외투를 만드는데 쓰기 위해서였다. 어느 마을이고 할 것 없이 미국의 공습에 대비한 훈련도 전개되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공습경보(규슈게이호)를 외치는 마이크 소리가 들리면, 방한모와 발목에 고무줄을 넣어서 활동하기 편한 개량바지, 소위 몸뻬이를 입은 아낙네들과 할아버지들이 동원되어 물통과 밧줄, 사다리 등의 도구들을 이용해서 지시자의 구령에 따라 불끄기 훈련을 하곤 했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형님 한 분은 학도병으로, 태평양 연안 방어임무를 위해 서해안 센다이 마쓰시마에 투입되었다고 했다.
1944년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아시아를 호령했던 일본군도 연합군에 패퇴하여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집 앞 큰길에 나가보면 전선에서 후퇴하는 일본군 트럭들이 줄지어 남행하는 광경이 보이곤 했다. 종전이 임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날이 왔다. 우리 가족은 그동안 조금은 정들었던 만주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할 것을 결심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둘째형의 안내에 의해 하얼빈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남행,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회령과 청진을 지나 수 주일만에 임진강 부근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남쪽으로 갈 수가 없다. 일본군이 후퇴한 지역에는 소련군이 진주해 있었으므로 38도선은 엄중한 경비를 받고 있었다. 이를 무시하고 남하하다 체포될 경우에는 구금되는 것은 물론 전 재산을 몰수당한다고 했다. 부녀자들은 겁탈 당하기도 한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고심 끝에 우리는 돈을 주고 전문 안내인을 고용, 달이 없는 칠흑 같은 밤을 택해서 그나마 경비가 소홀한 계곡 사이를 지나 임진강을 건너기로 했다. 나도 작은 봇짐을 어깨에 메고 형들의 뒤를 따라 가슴까지 차는 임진강을 건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운 좋게도 소련군에게 들키지 않고 38선을 넘어올 수 있었다.
지금도 임진강에서 가까운 연천에는 처가 쪽 친척들이 살고 있어서 이따금 채소도 가꾸고 약수도 길어오곤 하는데, 임진강을 지날 때마다 공포심과 극도의 긴장감으로 얼어붙는 심정이 되어 강을 건넜던 그때 일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