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장 개화기
(22) 만화교재 출간시대
 |
 | 다양한 만화관련 교재들 독학으로 성공한 만화가들에게 만화교재는 큰 도움이 되었다. |
|
만화는 재미있다. 이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 이것 역시 만화의 매력에 사로잡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생각해 본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막연하게 만화의 재미로움에 이끌려 만화가를 동경하는 것과 실제로 만화가가 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갭이 있다. 만화가 천대받던 예전과는 달리 만화가가 독자들의 우상이 되는가 하면 선망의 직종이 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만화가를 꿈으로 갖고 있는 사람 중에는 놀아가면서 그리고 싶을 때 끄적거려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이 만화가란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또 그런 사람일수록 만화가로 클 수 있는 자질과 인내력, 그리고 역량이 부족한 것을 경험상 많이 봐 왔기에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보다 힘들고 어려운 습작 시기를 오랫동안 거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만화가란 직업이라는 사실부터 인지한 다음, 첫째 재질이 있고, 둘째 센스가 있으며, 셋째 끈질긴 인내력과 만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창작의욕이 있는 사람만이 자기와의 싸움에 승패를 걸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습작 기간 동안 만화 관련 서적들을 구입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해 나가도록 할 것이며, 자기류의 터치에만 얽매이지 말고 기성작가들의 작품을 참고해서 그려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어떤 방법을 통해 공부하든지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작품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혹독할만큼 꾸준히 노력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싫증이 나도 중단하지 말아야 하고, 남이 쉴 때도 일해야 한다.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때를 가리지 않는 습작과 자료수집과 아이디어 개발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화기법에 대한 교재는 여러 종류가 나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초보자에게는 참고가 되지만 좀더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연구생에게 도움이 될 책자는 많지 않으니 직접 발로 뛰면서 ‘시나리오 구성법’이나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성법’ 같은 다양한 참고서적을 찾아 보는 게 좋다.
요즘 대형서점에 들러보면 대부분 일본만화들이 서가를 독차지하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지난 날 정부 당국이 문화를 개방하여 세계화한다며 준비도 없던 우리 시장을 무대책하게 활짝 열어놓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에게 넘겨 준 것은 정말 분통이 터질 일이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원망을 하거나 후회를 해도 소용없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일본보다 더 좋은 만화를 만들기 위해 지금보다 몇 십 배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만화 분야에서 일본에 뒤진 이유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만화교재가 부족한 것도 한 가지 요인이요, 또 재질이 충분한 사람들도 만화를 얕잡아 보는 우리 사회의 냉대에 실망하여 다른 분야로 떠나는 일이 많은 점, 그리고 일본과 같은 큰 시장도 없거니와 여러 가지 제약에 묶여 제대로 성장할 수가 없었던 만화로는 경제성도 기대할 수 없었던 것도 문제였다. 그러나 최근 만화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면서 때로는 황금알을 낳을 수도 있는 숨은 직종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외국의 다양한 만화들이 수입되어 있어 서점에만 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고 관련 참고서적도 필요한 대로 갖추어져 있다. 또 창작법에 관한 교재도 많고 필요한 그림 참고자료도 번역본까지 구비되어 있어서 하려고만 들면 얼마든지 공부도 가능하게 되었다.
내가 이 만화계에 들어설 때만 해도 만화연구 교재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신인작가들은 인기 만화책을 여러 권 쌓아놓고 모두 닳고 뜯어져서 낱장이 되어버릴 때까지 뒤적이며 참고서를 삼았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 전 영국 유학 중이던 큰형을 통해 선진국들의 만화 연구교재들을 구입, 나도 배우면서 후진들에게 필요한 교재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해 1965년 한국 최초로 ‘만화작법’이란 교재를 펴냈으며 간소하게나마 출판기념회도 가졌다. 역량 있는 작가들이 좀더 많은 교재 만들기에 참여해서 후진들이 좋은 창작물을 내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 바란다. 우리 연예계가 전세계에 한류문화의 위력을 과시해 보인 것처럼, 만화의 세계 제패를 오를 수 있는 계단은 우리 스스로가 쌓아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