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장 개화기
(24) 만화를 학문으로 승격시킨 임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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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최초 만화예술과 설치의 주역 임청산 교수의 캐리커쳐 |
우리나라 최초로 만화예술학과가 개설된 것은 1990년 공주전문대학에서였다.
문교부에 의해 만화의 기본 분야인 일러스트레이션, 애니메이션, 캐리커처 부문에 걸쳐 정식 학과가 개설된 것이다. 이는 공주전문대학 임청산 교수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한 쾌거였다. 사실 그가 대학에 만화예술학과 설치를 승인해 달라는 다소 무모한 도전장을 들고 문광부를 찾았을 때, 그 자신도 처음에는 결과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한다. 서류를 담당자들의 책상 앞에 펼쳐놓고 만화학과가 있어야 할 타당성을 장시간 설명했지만, 전혀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맥이 빠져 포기하고 일어서려는 찰나, 자신의 눈을 피해 머리 위로 검지손가락을 빙빙 돌리면서 미쳤다는 시늉을 해 보이는 담당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때 그만 오기가 발동한 임교수는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고 그곳을 나왔다 한다. 때마침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있어 만화계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던 정원식 씨가 문교부장관으로 임명되었고, 이윽고 임교수는 승인을 따내기에 이른다.
후일담이지만 청강문화대학에서도 애니메이션 학과를 문교부에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만화영화학과로 바꾸어야 허가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각계 전문가들의 협조를 구해 늦게나마 승인이 나긴 했지만 담당자들이 애니메이션과 만화영화를 구별 못하고 있는 것 자체가 씁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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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대학졸업식을 앞두고.. 왼쪽으로부터 앞줄 박세형교수, 뒷줄에 임청산 학장, 김영배교수(1991) |
어쨌든 대중예술의 한 장르인 만화를 정식 학문으로 인정하여 국립대학에 전공과목으로 설치하였다는 소식은 만화계는 물론 학계에도 빅뉴스임은 틀림없었다. 아, 이제 만화도 학문으로 연구하며 배우는 시대가 왔구나, 하고 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뭐? 대학에 만화학교라고? 만화 따윌 대학에서 가르치다니 진짜 만화 같이 놀고 있네, 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신구세대간에 서로 다른 찬반양론이 있었지만 신설 만화예술학과는 10대 1이 넘는 지망자가 몰렸다고 하니 이만하면 대성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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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산 교수의 수업장면 |
그러나 학과는 개설되었어도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았다 한다.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가르치는 쪽이나 배우는 쪽이나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입장이 같았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탄력을 받으며 굳은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본 다른 대학에서도 속속 만화 계열학과를 설치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애니메이션학과, 캐릭터학과, 게임학과 등 관련학과들이 줄줄이 탄생, 근래에는 60여개 대학교로 확산되었을 정도다.
임청산 교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학장으로 승진되었으며, 대전에 국제만화 연구소를 설립, 매년 카툰전을 열고 있다. 나는 1986년부터 제일만화학원을 운영하며 대학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임청산 학장은 만화학과 개설 훨씬 이전에 내가 운영하는 만화학원을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공주전문대의 영어과 교수라는 명함을 내밀면서 딸이 만화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심부름 왔다면서 학원생들이 그림 그리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거나 도구와 교재를 구입하기도 했고, 수업과정과 커리큘럼에 이르기까지 꽤 자세하게 묻고 메모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그는 이미 공주대학의 만화예술학과 개설을 위해 준비 추진 중에 있었던 모양이다.
1996년 한국 만화애니메이션학회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임학장은 ‘만화의 학문화, 만화의 예술화, 만화의 산업화’를 목표로 꾸준히 활동해 왔다. 그리고 금년 명예롭게 정년을 맞아 은퇴한 그는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새 꿈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설만화학원으로 처음 문을 연 곳은 1958년 서울 을지로에 위치했던 ‘김기영 만화연구소’로 알려진다.
강사진으로 신동헌, 신동우, 김경언, 임수 등 당대 굴지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1960년 이후에 기성작가로 활동했던 이향원, 박문윤, 한희작, 엄희자, 김마정, 임웅순, 이정민, 이소풍, 삽화가 이우범 등이 이 연구소 출신이었다. 작가지망생을 공식 선발해 지도한 적이 있었으나, 소규모로 운영됐기 때문에 학원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1980년대 이후, 당국으로부터 정식 사설교육기관 인가를 받으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만화예술학원은, 기성작가들이 경영 및 지도에 직접 참여, 실제 실기 창작과정을 연마시키는, 이론 위주의 대학교육보다 실기 위주의 교육을 채택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1990년 이후에는 각 대학에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학과가 60여 개교 생겨나 입학시험에 실기 과목이 추가되자 만화예술학원들은 작가 지망생과 대입 수험생까지 겸하여 지도하기에 이르렀다. 이웃 일본의 경우 만화예술학원을 통해 배출된 작가가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십 수년간 운영되어온 만화학원이 있었지만, 대학들이 저마다 만화관련 학과를 설치, 학생들을 대량 모집했기 때문에 생존경쟁에서 버틸 수가 없어 문을 닫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상당수가 현재까지 계속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 규모의 만화 애니메이션 학원 연합회도 결성되어 있으니, 다음과 같은 학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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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박기준의 ‘제일만화 예술원’
1985년 심명섭의 ‘화림만화학원’
1989년 김기백 민애니의 ‘행진만화학원’
1991년 박상원의 ‘대구 르네상스 만화 캐릭터 전문학원’
1993년 길문섭의 ‘대전 만화미술학원’
1993년 조득필의 ‘광주 만화애니메이션학원’
1997년 장지연의 ‘울산 장지연만화미술학원’
2003년 정복필의 ‘서울 애니탑만화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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