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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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14)캐릭터로 승부한 김수정

김수정 씨는 [오달자의 봄],[자투리반의 덧니들], 그리고 출세작 [아기공룡 둘리]등 개그만화로 우리들에게 진한 인상을 심어준 작가다. 1975년 [폭우]로 제3회 소년한국일보의 신인만화가 상을 받은 이래, 지금까지 오로지 만화 일변도로 살아오면서 인기를 끌었으며..

2008-12-04 박기준




                                           제6장 침묵기

                    (14) 캐릭터로 승부한 김수정

김수정 작가의 다양한 캐릭터들
김수정 작가의 다양한 캐릭터들

김수정 씨는 ‘오달자의 봄’ ‘자투리반의 덧니들’ 그리고 출세작 ‘아기공룡 둘리’ 등 개그만화로 우리들에게 진한 인상을 심어준 작가다.
1975년 ‘폭우’로 제3회 소년한국일보의 신인만화가 상을 받은 이래, 지금까지 오로지 만화 일변도로 살아오면서 인기를 끌었으며 길창덕, 정운경의 뒤를 이을 정통파 만화체 작가로서 자타의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만큼 인기작가로 성공하기까지는 다른 사람 못지 않게 고달픈 각고의 세월이 뒤따라야 했다.
그는 1950년 7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상업에 종사하던 가정의 10남매 중 일곱째였는데, 워낙 대가족인지라 장사하여 먹고살기엔 힘에 겨웠지만 중학교 2학년 무렵에 부친이 사망하면서 가세는 한층 더 기울어졌다. 그때부터 그의 고달픈 인생행로가 시작된다. 시장 잡일은 물론 아이스케키 장사, 신문팔이, 껌팔이 등 돈이 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여가라곤 전혀 없는 빠듯한 생활이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램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여섯 살 때 만화에 대한 묘한 호기심을 품고 틈나는 대로 습작을 해 온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축구를 소재로 한 51쪽짜리 만화를 손수 두 권이나 만들었을 정도였다.
이와 같은 만화가의 꿈을 실현시키고 싶은 마음에 고등학교 2학년 때 두 번이나 가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 유명했던 김기백 씨의 문하생이 되려는 꿈을 안고 떠났던 것이지만 서울이란 낯선 도시에서 그의 화실을 찾지 못한 채 마포 바닥만 헤매다가 귀가하고 만다. 그런 그가 꿈의 실현에 가까워진 계기는 군 제대 후 제3회 ‘소년한국일보’ 신인만화 응모전에서 입선하게 되면서였다. 무엇보다도 유명만화가 밑에서 체계적인 만화수업을 거치고 출품한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당당히 입선했으니 그의 기쁨은 컸다.
그러나 당선의 기쁨도 잠시, 그것은 낙심과 초조감으로 바뀌어 간다. 금방이라도 인기만화가가 될 줄 알았는데 그의 만화를 써 주겠노라고 나서는 출판사는 없었던 것이다. 기다리다 못해 그는 원고를 들고 생면부지의 편집자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하루아침에 인기작가가 된 행운아라고 말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마 세일즈를 그렇게 했더라면 분명히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겠지요.”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회상하던 씨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김수정 작가가 짱구의 작가 우스이씨와 캐릭커쳐를 교환하고 있다.
김수정 작가가 짱구의 작가 우스이씨와 캐릭커쳐를 교환하고 있다.

어쨌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다닌 것이 결실을 보게 되어 ‘주간중앙’과 ‘엘레강스’에서 지면을 할애해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를 계기로 그의 이름이 급속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81년 ‘여고시대’에 연재한 ‘짜투리반의 덧니들’ ‘오달자의 봄’이 영화화될 정도로 빅히트를 치면서, 그는 당당한 만화가로서의 인기대로에 들어서게 된다. 그로부터 학생지와 청소년지, 소녀지 등 아홉군데나 연재하느라 정신 없는 몇 년간을 보냈다.
한 TV대담에서 그는 밝히길, 아이디어를 찾는 비결은 다방, 시장, 포장마차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떠돌아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그 속에서 캐릭터가 발굴되고 그 사람들 속에서 소재와 이야기가 생겨나기 때문에 스케치북과 스토리북을 끼고 무작정 나서게 된다고.
1983년 ‘보물섬’지에 연재했던 ‘아기공룡 둘리’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이제 그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부상한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흥행에도 성공, 그것은 모두 그의 새로운 발상과 창의력 넘치는 캐릭터 덕분이었다. 이는 신동헌 씨의 ‘홍길동’ 이후 두 번째 쾌거로, 그 시절에는 캐릭터가 상품화되던 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달러 주머니로 금값이다.

김수정 씨는 캐릭터 살리기에 어느 누구보다 열성을 다했다. 자기 자식보다 더 관심을 갖고 연구한 것은 물론 매력적으로 하기 위해 성형수술, 포즈와 동작 실험, 의상실험 등 심혈을 기울여서 한국의 대표적인 캐릭터 상품으로 자리 매김해 놓았다.

‘어깨동’사 창간 기념회
‘어깨동’사 창간 기념회서 여기자들과(1987) / 앞줄 왼쪽부터 : 강인선, 배금택, 최신오, 필자 / 뒷줄왼쪽부터 : 김수정, 이진주, 신영식, 차서진

이웃 일본의 도리야마 아키라도 디자인 전문가로서 ‘드래곤 볼’ 만화를 그려 대성했는데, 그 역시 캐릭터 디자인에 힘쓴 덕분에 성공했다고 한다.
극장용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은 독일에 수출됐고 TV시리즈로 방영되어 큰 반응을 보였으며 현재 둘리 캐릭터는 1200여 품목에서 사용되고 있다니, ‘미키마우스’ ‘스누피’ ‘뽀빠이’ ‘슈퍼맨’ 등과 함께 둘리도 머지않아 세계적인 캐릭터 대열에 설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