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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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11)시대극화의 지평을 연 이두호

그러고 보니 이두호 씨가 만화계에 첫 도전하였을 때의 일들이 생각난다.그 시절 시대만화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극본을 쓸 때부터 역사 사전을 끼고 살아야 했고 대사 또한 자유롭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림 또한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2008-11-13 박기준



                                              제6장 침묵기

                    (11) 시대극화의 지평을 연 이두호

대구 근교를 흐르는 낙동강변의 한 마을에 그림 수재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이두호, 그리고 그의 꿈은 오로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대구로 이사 온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나게 된 미술교사의 극진한 지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다. 틈만 생기면 파레트와 이젤을 챙겨들고 그릴 대상을 찾아 떠돌아 다니면서 어두워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그림에 심취했다. 지루할 때는 낚시를 하는 등 자연을 벗삼으면서 그 매력을 화폭에 담는 일에 빠져 지냈다. 그 시절의 경험들은 만화가로서의 기초를 다지는데 큰 힘이 되었다. 대구 오성중학 시절,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만화 출판인의 제의를 받고 그는 ‘피리를 불어라’라는 단행본을 펴내게 된다. 신라 진흥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극으로 내용 중에 마술피리를 등장시켜서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꼬박 2개월에 걸쳐 완성된 이 작품의 원고료로 수업료를 충당하고도 남아 저축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영남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길’ ‘등불’ ‘태양을 향하여’ 등의 만화를 펴내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하였으나 더 이상 만화에 대한 미련은 없었으므로 화가가 되기 위한 꿈에만 몰두했다. 1963년 그는 꿈에 그리던 홍익대학 서양학과에 합격했다. 그러나 화가가 되기 위한 길은 순탄치가 않았다. 학기마다 내야 하는 등록금은 물론이거니와 다달이 생활할 돈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의 가정 역시 그의 뒷바라지를 해 줄만큼 넉넉한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에 그는 결국 2년만에 휴학계를 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화가의 길을 보류해 두고 형편이 나아지는대로 다시 도전하리라 다짐하면서....
1965년 군에 입대하여 착실하게 복무기간을 마친 그는, 당시 대형 일간지에 캐리커처와 시사만평 등을 기고하는 한편 도전자 시리즈로 인기 정상에 있던 박기정 씨를 찾아갔다. 거기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데생맨으로 활약하기 시작, 만화 창작에 대해 더 많은 전문적인 기초를 다지게 되었던 것은 물론 경제적인 도움도 얻게 되었다.

머털도사
티비 애니메이션 포스터 이미지 [머털도사]

박기정 씨는 당시 빅톨 유고의 ‘레미제라블’을 각색한 대장편 극화 상중하편의 그림작업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 때 이두호 씨는 어시스던트로서 성실하게 책임감을 갖고 작업을 도왔다. 이 작품은 제일 앞쪽과 중간중간 칼라로 인쇄가 되었을만큼 고급으로 꾸며진 케이스들이 고급 장서본으로 소년한국에서 발행되었으며 성대한 출판기념회까지 가졌는데, 한국일보의 사주인 장기영 씨까지 참석하였을 정도였다.
그해 가을, 우리 화실 팀과 형의 화실팀은 함께 정릉 유원지로 야유회를 떠나 배구대회를 하는 등 우의를 다졌는데, 그 자리에서 보았을 때와 다름없이 이두호 씨 부부는 지금도 만화계의 잉꼬부부로 소문이 나 있다.
그는 박기정 문하에서 지냈던 길지 않은 사이에 많은 것들을 터득하였고, 1969년 새로 창간된 ‘소년중앙’에 공상과학만화 ‘투명인간’을 연재하면서 그는 정식으로 만화계에 데뷔하였다. 이어 ‘학생중앙’에 ‘뿌리’를, 그리고 ‘새소년’에 ‘벤허’를 연재하는 등 많은 명작을 각색하여 자신의 창작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일에 주력했다. 1985년에는 ‘소년경향’에 ‘머털도사’를 연재하며 명성을 높여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크게 인기를 얻게 되면서 MBC에서 애니메이션화하여 TV로 상영되었을 정도다. ‘소년중앙’에 ‘장독대’에 이어 매주 만화에 김주영 원작의 ‘객주’, 그리고 ‘주간만화’에 ‘덩더꿍’ 등 60여 제목의 연재물을 쉬지 않고 펴내 그를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라 할 정도가 되었다.

임꺽정의 표지이미지
[임꺽정]의 표지이미지(좌)와 프랑스에 수출된 [임꺽정](우)

나아가서 그는 1991년 ‘스포츠조선’에 홍명희 원작 ‘임꺽정’ 극화를 연재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이 인기에 힘입어 ‘임꺽정’은 대장편 연재물로 전격 수정되면서 이후 5년 동안 지면에 고정 페이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로써 극화가 고우영 씨가 일간스포츠에 연재했던 ‘임꺽정’의 기록을 훨씬 뛰어넘는 국내 최장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고우영 씨의 작품은 원작을 윤색한 것으로서 1년 2개월로 마감하였으나, 이두호 씨의 작품은 각색한 것으로서 두 작품이 서로 다른 재미와 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같은 작품이지만 각각 성공작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특히 이두호 씨의 극화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주옥 같은 우리의 토속 언어가 넘쳐 흐르고 있다. 때문에 사극 만화의 신기원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 또한 간결한 터치지만 힘이 넘치면서 세밀한 묘사까지도 공존하고 있다. 여느 작품보다 잔손이 많이 가는 그림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작업을 거들어 줄 문하생도 스토리 작가도 없이, 오직 혼자서 감당하였다는 사실이다. 그의 밑에 문하생이 많지 않았던 것은 만화가 지망생 사이에서 시대물을 기피하는 경향이 심하였던 것도 이유로 들 수 있다.

영화식 표현기법으로 연출한 임꺽정의 화면구성
영화식 표현기법으로 연출한 임꺽정의 화면구성

그러고 보니 이두호 씨가 만화계에 첫 도전하였을 때의 일들이 생각난다.
그 시절 시대만화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극본을 쓸 때부터 역사 사전을 끼고 살아야 했고 대사 또한 자유롭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림 또한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현대물과는 전혀 다른 옷차림하며 장신구와 가마, 말 등 익숙지 않은 기물 묘사가 장면마다 이어져야 하는데, 이 모두가 참고 자료를 찾아보아야 하고 고증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찌 보면 안 팔리는 작가들의 탈출구로 울며 겨자 먹기처럼 시작되었던 장르가 시대극이었다 할 수 있다.

덩더쿵 중에서
절규하는 독대의 표정에서 서민의 얼굴을 찾을수 있다.
[덩더쿵]중에서

그러나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들 하지 않는가. 인기가 없어 고생하던 시절에 고우영을 비롯, 허영만, 방학기, 백성민 등이 사극 극화를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물급 작가로 대성하기에 이른다. 그때로부터 시대극은 유행에 관계없이 지금까지 꾸준하게 애독되고 있는 분야로서 생명력이 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에는 각 TV 에서 경쟁적으로 시대 연속 드라마가 방영되어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조선왕조시대가 그려지는가 하면 고려, 삼국시대, 고구려, 부여 등 여러 시대적 격동기가 다각도로 펼쳐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역사극을 다루기 위해서는 첫째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둘째, 역사를 보는 작가의 시각도 중요하고, 셋째 이차적으로 분석, 비판 이후에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제시력도 필요하다. 그저 사료를 나열해 놓았다 해서 역사극이 될 수는 없다.
역사적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전적(典籍)이야 수없이 많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두고 정사자료라 하고, 대동야승이나 연려실기술 등을 두고 야사자료라 한다. 이밖에도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면 개인 기록에 의한 숨은 사료는 많다. 시대극만을 놓고 말하자면, 명확한 주제가 있고 잘 설정된 시추에이션이 있으며 인물이 잘 묘사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이상과 같은 사료에서 크게 벗어나는 설정만 아니라면 좋은 시대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두호 씨는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순수회화를 공부했던 작가이니만큼, 그동안 만화라는 장르가 정통회화가 아니라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많이 갈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의 혼이 스며 있는 만화 작품에 승부수를 두겠다고 마음먹으면서 그는 정통 화가에 뒤지지 않는 명망 있는 만화가로 거듭나고 있다.
1989년 YWCA 선정 우수작가상을 수상한 그는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직을 역임하였고 한국만화문화상과 고바우만화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만화작가로서는 최초로 대학 정교수로 발령 받는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아직도 그칠 줄 모르고 분출하는 그의 창작의욕 속에서 또 어떤 히트작이 터질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