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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우리 만화의 오늘, 그리고 내일
(2) 한국 근대만화의 약사
한국 근대만화의 역사는 대략 100년이라 말하고 있지만, 이미 1745년 조선시대부터 풍자만화가 그려져 활용되었던 예가 있다. 근래 발견된 조귀삼의 ‘의열도’에서 볼 수 있는 의구도(義狗圖) 등의 작품은 서구의 근대만화보다 앞선 스토리만화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4컷 만화였다.
여행 중인 선비가 산불이 난 것도 모르고 만취상태로 잠들자, 주인 곁을 지키던 개가 온몸에 물을 적셔서 주인을 살리고 대신 불에 타 죽은 충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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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삼, <의구도(義拘圖)> |
그리고 조선시대 후기 김홍도의 추수(秋收) 등은 그 시대 양반계급의 오만함과 착취성을 대담하게 풍자한 만화인데, 오늘의 스토리만화 형식(COMIC)과 1컷만화(CARTOON)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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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추수(秋收)>, 1781년 |
그러나 근대 형식의 본격적인 만화가 등장한 것은 1909년 구한말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의 1컷만화가 최초였고, 1924년에 이르러 ‘야담’지에 김규선의 ‘봉이와 김별장이’가 등장했으며, 그 후 ‘조선일보’에 연재된 노심선의 ‘멍텅구리 헛물켜기’등은 8컷 구성 형식의 근대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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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심선, <멍텅구리 헛물켜기>, 1924년 |
전형적인 기생 A에 홀려서 못난 짓을 하는 B, 그 두 인물 사이에서 꾀를 짜내어 골탕을 먹이는 똑똑한 C 등이 펼쳐나가는 이야기는 당시 대중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1926년 안석주는 ‘개벽’지에 처음으로 캐리커처를 발표하며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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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디즈니, <미키마우스>, 1982년 |
1932년 김규택은 ‘제일선’지에 ‘모던 춘향전’을 만문 만화형식으로 연재하였고, ‘어린이’에 ‘씨동이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최초의 아동만화를 연재하였다.
1935년 안석주가 ‘신동아’에 ‘을해년’ ‘집안일’ 등 컷 만화를 최영수, 이주홍과 번갈아 가며 그렸다. 이들은 ‘동아일보’에 ‘신년삼태’를 연작 발표한 정현웅과 함께 다양한 형식의 만화를 개척하였다.
1928년 미국의 월트디즈니가 출판만화의 성공을 애니메이션으로 연결시키면서 ‘증기선 윌리’를 제작, 미키마우스가 어린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됨에 따라 마침내 캐릭터 산업의 시대를 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45년 해방이 되자 을유문화사와 정음사 등에서 ‘진달래’ ‘어린이나라’ ‘소학생’등에 만화가 게재되기 시작, 아동들에게 대환영을 받았다. 이때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해방을 맞은 국민들의 기쁨으로 인해 반일만화가 독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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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코주부> |
김용환이 펴낸 ‘임진왜란과 이순신’의 인기도 대단했다. 물론 ‘안중근’ ‘유관순’ ‘나석주’ 등도 인기가 있었지만 ‘이순신’에서 거북선을 신비롭게 그려낸 능숙한 펜터치와 붓화의 묘미는 많은 독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김용환은 일본 출판계에서 최고의 삽화가로 활약하다가 동생 김의환과 함께 귀국했다. 이 두 형제는 ‘코리아타임즈’에 ‘코주부’를, ‘어린이신문’에는 ‘복남이의 모험 세계일주’를 연재하는 한편 삽화를 그려 교과서에도 실리곤 하여 만화계는 물론 출판계에 그 이름을 떨쳤다.
특히 김용환은 1948년에 십여 명으로 구성된 한국만화가 동인회를 결성하여 리더역을 하면서 후배들을 지도하기도 함으로써 만화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이 때 회원의 일원이자 그의 제자였기도 한 신동헌은 훗날 우리나라 최초의 애니메이션 ‘홍길동’을 감독한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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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고바우영감> |
그밖에도 김의환의 ‘플란다스의 개’ ‘백가면’, 임동은의 ‘콩쥐,팥쥐’, 최상권의 ‘삼남매’. 정현웅의 ‘악성 베토벤’과 같은 동인회 멤버들의 작품은 종이와 인쇄, 제본 기술을 제외하고는 일본 만화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 우수한 작품들로 평가된다.
1948년은 대중전문지 ‘만화행진’ ‘만화뉴스’ ‘만화신문’까지 등장하면서 성인만화 시대의 막을 열게 된 해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당시 고교생의 신분으로 연합신문에 15회에 걸쳐 ‘멍텅구리’를 연재하여 화제가 되었던 김성환이 ‘만화뉴스’ ‘화랑’ 등에 입사하면서 만화가로서 본격적인 활약을 시작하였다. 훗날 신문만화의 대명사처럼 된 ‘고바우 영감’을 탄생시킨 것도 바로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