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우리 만화의 오늘, 그리고 내일
(4) 성인만화 시대, 주목받기 시작하는 캐릭터 산업
피난시절 김용환의 도움을 얻어서 대구에서 데뷔한 정운경은 신문 연재만화 ‘왈순 아지매’를 통해 최고 인기작가로 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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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정운경, [왈순아지매] / (오른쪽) L공업, [왈순마] |
1968년 국내 최초로 대기업에 의해 캐릭터를 도용 당했던 사건이 생긴 것만 보더라도 그 인기 정도는 익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L공업에서 그의 왈순아지매 그림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왈순마라는 캐릭터로 바꾸어 라면 이름으로 사용하였던 것인데, 이에 정운경은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게 되었고, 사건은 양측이 화해하는 방향으로 무난하게 끝이 났다. 1968년 사단법인 한국만화가 협회가 결성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가입, 부당한 만화 사전심사에 대항하는 투쟁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70년대 만화계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사전심사가 미치지 못했던 분야인 정통 성인만화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고우영의 ‘임꺽정’으로 시작한 극화 붐이었다. 그의 ‘수호지’와 ‘삼국지’, 강철수의 ‘사랑의 낙서’, 박수동의 ‘고인돌’, 한희작의 ‘서울 손자병법’,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 이두호의 ‘객주’ 등과 같은 성인만화는 스포츠신문의 판매부수를 좌우하는 중대요소가 되었으며, 주간지의 인기도에도 막강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한편 청소년 단행본에 있어서는 이상무의 ‘독고탁’, 허영만의 ‘각시탈’, 고행석의 ‘불청객’ 등이 주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특히 1975년에 대본용 만화로 발간되어서 폭발적인 판매실적을 올렸던 이현세의 극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서점용으로 재발간되었을 만큼 그의 출세작이었다 할 수 있다.
1980년에는 월간만화지 ‘보물섬’이 등장,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김동화의 ‘요정 핑크’,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 이희재의 ‘간판스타’ 같은 걸작들을 잇달아 다룸으로써 그 주가를 올렸다. 그리고 1985년에는 주간만화‘가 창간되어서 본격적인 성인만화 시대의 도래를 예고해 주었다.
사전검열의 고삐는 아직 늦추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만화의 인기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아이큐 점프’ ‘소년챔프’ 그리고 순정만화지 ‘댕기’ ‘윙크’ 등 만화전문지가 앞다투어 창간되었고 이는 재능 있는 순정만화 작가들의 좋은 등용문이 되기도 했다. 황미나의 ‘우리는 길잃은 작은새를 보았다’, 김혜린의 ‘북해의 별’, 김진의 ‘바람의 나라’,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딸들’이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그 후 지금까지는 거의 불모지에 가까웠던 캐릭터 시장에도 서서히 불이 붙기 시작하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수정의 ‘둘리’를 들 수 있으며, 이는 외국의 인기 캐릭터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오랫동안 확고부동한 인기를 지켜 왔다. 그리고 배금택의 ‘영심이’ 이현세의 ‘까치’ 박수동의 ‘고인돌’ 이진주의 ‘하니’ 등도 우열을 가리기 힘든 인기 캐릭터들이었다.
결국 하나의 작품으로서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어 히트를 쳐야만 캐릭터로서도 상품 가치가 높아질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어쨌든 많이 뒤진 감이 있지만 이렇듯 만화산업이 숨은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게 된 셈이다.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저만큼 앞서 나가고 있는 일본의 뒤를 힘겹게 따라가는 데에만 만족하고 있을 것인가!
예를 들어서 지금 신일숙의 ‘리니지’에 이어 양재현의 ‘열혈강호’가 게임으로 만들어져 동남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캐릭터 시장에서는 여전히 일본에게 그 수위를 빼앗기고 있어야 하는가. 대외적으로 좋은 상품이란 인식을 심어주기까지에는 아직 우리가 넘어야 할 문제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