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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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02) 카툰에 꿈을 심은 조관제

만화로 보여주는 시로 비유되는 카툰(CARTOON)은 각종 신문이나 잡지 등에 실리면서 대중예술의 한 장르로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줄거리 전개에 중점을 둔 웃음 중심의 개그만화나 장편만화와 달리 한 장의 화면 속에 주제를 살린 재미의 철학을 아름다운 메시지로 전달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높은 인기나 대단한 위력을 지닌 건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미소를 머금게 한다...

2008-12-26 박기준



                                            제7장 개화기

                 (02) 카툰에 꿈을 심은 조관제

조관제 작가
조관제 작가

만화로 보여주는 시로 비유되는 카툰(CARTOON)은 각종 신문이나 잡지 등에 실리면서 대중예술의 한 장르로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줄거리 전개에 중점을 둔 웃음 중심의 개그만화나 장편만화와 달리 한 장의 화면 속에 주제를 살린 재미의 철학을 아름다운 메시지로 전달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높은 인기나 대단한 위력을 지닌 건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미소를 머금게 한다.
영국에서 탄생한 카툰은 구미에선 미술의 일부로 오래 전부터 신문 잡지에 다양하게 선보여 왔으며, 전시회도 자주 열리는 등 생활화되어 있다. 줄거리 만화가 소설이라 할 수 있으면 카툰은 시라고 할 수 있으며 전시하기에도 가장 적합하다. 다만 스토리만화처럼 널리 보급되지는 못하고 있어서 아직 미개척분야이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이 분야에 남달리 애정을 쏟으며 선뜻 뛰어든 분이 바로 조관제 씨다. 카툰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생소한 장르이지만 그 활용 여하에 따라 문명사회에 찌든 현대인에게 정신적인 여유와 기쁨을 줄 수 있는 맑은 샘의 새로운 발견일 수도 있다고 카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작업시에 사물을 보는 남다른 시각과 이를 형상화하는 고도의 테크닉이 요구된다며 길을 가다가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해 두었다가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삶의 애환을 위트로 풀어낸 조관제 작가의 카툰
삶의 애환을 위트로 풀어낸 조관제 작가의 카툰

그런데 조관제씨는 처음부터 카툰 작가는 아니었다. 그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화가라고 자기 직업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인기 만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실력을 다진 그는 1967년 서울로 상경, 안의섭씨의 ‘소년두꺼비’ 잡지사에 취업하여 편집일을 하며 컷과 삽화도 그렸다. 카투니스트로서의 자질은 이때부터 길러졌다.
그리고 1973년 ‘학원’에 ‘만화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 데뷔, 그 후로부터는 각종 잡지에 작품을 연재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KBS TV유치원 하나 둘 셋’의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고 일본에서 카툰전시회도 열었다. 1980년 ‘빅점프’지에 ‘열려라 섹스피아’를 2년동안 연재하기도 했다.
조관제 씨는 1990년 사이로, 김마정 씨와 함께 서울 카툰회를 조직, 우리나라 최초의 카툰단체를 구성했으며, 카툰의 활성화 못지 않게 사업적으로도 발전시키기 위해 38년 동안 많은 노력을 했다.

조관제 개인전에 축하객으로 참가
조관제 개인전에 축하객으로 참가했던 (왼쪽으로부터) 한영섭학장, 필자, 이와미 일본작가, 조관제작가

그는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요, 부천정보센터의 이사장직도 맡고 있는 귀한 몸이지만 앞으로도 10년쯤은 카툰에 대한 공부를 계속할 작정이라고 말한다. 평소 겸손함이 배어 있어 내세우는 성격이 아닌 그는, 훌륭한 만화가는 못되더라도 카툰 단체나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자신의 바램이라고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