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개화기
(06) 학습만화로 돌풍을 이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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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 작가 |
이원복은유년시절부터만화방의문턱이닳도록드나들만큼무척이나만화를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감명 깊게 읽었던 만화책으로는 김종래의‘엄마 찾아 3만리’ 로써, 읽고 있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던 기억이 있고, 또 박기당 씨의 만화도 꽤나 즐겨 읽었다 한다.
이처럼 만화를 즐겨보며 미술적 감각이 길러졌던 탓인지 그는 학창시절 미술부원으로 활동을 하였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미술 도구들을 제대로 갖추기가 어려웠고,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고궁에서 풍경이나 정물화만 그리는 일에도 싫증을 느꼈다. 그저 만화에만 흠뻑 빠져 지냈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명문 경기중학교에 당당하게 합격하였으므로 가족은 물론 온 동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시도 때도 없이 만화방에 눌러 살다시피 하였는데도 최고 명문교에 들어갔으니 천재라는 소문이 날만도 하였던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는 여전히 미술반 활동을 계속하였지만 그에게 있어서의 작품활동이란 만화를 떼어놓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중학교 2학년 때 그의 첫 번째 만화 작품이 학교 신문에 실리게 된다.
이처럼 만화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였으나, 전국에서 내로라 하는 수재들과 경쟁해야 하는 경기고등학교에도 어렵지 않게 합격을 하여 다시금 주위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1학년 때 마침내 고대하였던 기회가 찾아 왔다. 친구의 아버지가 소년한국일보사 편집부에서 근무한다는 걸 알고 그를 졸라, 편집실 및 인쇄물의 제작과정 등을 견학하게 된 것이다. 당시 문단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조풍연 씨가 소년한국의 주간으로 있었는데, 이원복은그동안그려온작품들을그앞에꺼내보였다. 결국 그에게 범상치 않은 소질이 있음을 알아본 편집자들은 그를 크게 격려해 주었고, 선뜻 일거리를 내 주었다.
1963년, 미국만화 ‘아이반호’ 위에 드레싱페이퍼를 씌우고 펜으로 베껴내는 작업이었는데, 학생 이원복에게있어훌륭한아르바이트였다. 만화인생의 첫걸음이 이렇게 빨리 찾아 올 줄은 그 자신으로서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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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이 중학교때 솜씨를 보인 ‘수나’(1964년 소년한국일보) |
이것이 신문에 발표된 그의 첫 작품이 된 셈이다. 이어서 ‘마르코 폴로의 모험’ ‘엉클 톰스 캐빈’ 그리고 1964년 일본만화 지바 데츠야의 장편만화 ‘사랑의 선물’과 ‘수나’에 이르러서는 종이에 스케치한 다음 펜터치로 상세 묘사에 들어갔을 정도로 실력이 발전하였다. 그로부터 1986년까지 대본만화 등 그의 본격적인 만화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한창 공부해야 할 이른 시기부터 아르바이트에 편중하였던 탓인지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지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1년의 재수 끝에 1966년 서울공대 건축학과에 진학하게 되는데, 이때도 만화 작업은 쉴 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1975년 그는 본격적으로 만화를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자기 그림이 너무 일본 풍으로 굳어지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도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하여 독일 뮌스터대학 디자인학부에 적을 두고 신중하게 유럽만화에 근접하기 위한 첫발자국을 내디뎠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곳의 만화가 갖고 있는 다양한 기능에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만화의 미디어로서의 기능, 메시지 전달자로서의 기능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재미만을 생각하는 만화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있으니, 자기는 메시지가 있는 색다른 만화, 정보를 전달하는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교양만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기 위해선 남보다 많은 참신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했으므로 그는 방학 때면 카메라와 지도책, 역사책, 수첩을 지니고 유럽각지를 떠돌다시피 하면서 만나는 사람과 다양한 문화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흡수해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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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재작 |
때마침 ‘새소년’ 잡지에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의 만화 추세는 기존 만화에 대한 인식을 서서히 바꿔가고 있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고급화되고 흑백에서 컬러화하는 등 만화는 빠르게 모든 주변 매체 모든 예술 영역을 잠식해 갈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씨는 역사학습만화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을 통해 국내 어린이들에게 신기한 유럽여행 시리즈를 소개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으로 그의 유학 비용도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한편 그의 형들은 일찍부터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형들의 권유로 1984년 귀국, 덕성여대의 산업미술과 교수로 영입되었다. 그리고 학교와는 별개로 만화를 역사, 경제, 철학과도 접목시키는 등 질적 변화를 거듭하며 최고의 학습만화가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그 당시 우리 출판계는 대부분 일본 학습만화들을 번역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런 것들 중에는 시대와 동떨어지게 현실과의 갭이 큰 것들이 많았다. 한데 이원복씨는 현장 취재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으니 이 현장감 있는 학습만화가 독자들의 기호에 딱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1987년 ‘먼나라 이웃나라’ 전 8권이 발행되었는데, 학생 3명 중 한명은 구입했을 정도로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이어 ‘현대문명의 진단’ 전 5권, 학습만화 세계사 전 21권, 만화 한국사 전 20권, ‘자본주의 공산주의’, ‘한국경제’, 그리고 이론 평론 부분 ‘세계의 만화’ 등 출간되는 족족 히트작이 되었다.
그는 현재 중앙일보에도 ‘세계사 산책’을 연재 중이며, 지식인들도 이원복의만화는인정한다고할만큼정평이나있다. 외국의 최신정보를 얻기 위해 독일의 시사지 ‘슈피겔’과 프랑스의 ‘렉스프레스’ 그리고 일본의 ‘주간 아사히’를 정기 구독할 만큼 그는 자료 수집에 열심이다.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접목시킨다면… 여기에 학습만화로 우리보다 앞선 일본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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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재팬단체 소속 회원으로 만화가는 아니지만 교육 관련 연구에 몰두하는 다니가와 교수(왼쪽)와 그의 저서 ‘만화는 교사에게 보이지 않았던 세계’(오른쪽) |
1996년 9월 제1회 아시아만화 심포지움에 만화가들과 잡지 출판사 편집자들이 함께 참가한 적이 있다. 도쿄에서 북쪽으로 2시간 정도 걸리는 아름다운 해변도시 이와끼시의 명성(明星)대학 강당에서 개최된 국제 심포지움이 있었는데, 치바대학(千葉大學) 다니가와 아키히데 교수의 강연이 인상 깊었다.
어린이가 가장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꼽아보니 공부와 만화였다. 이 싫어하는 공부를 만화에 접목시킨다면 얼마나 큰 학습효과를 얻을 것인가 생각하고 흥분하였다고 한다. 쓰디쓴 약도 달콤한 캡슐에 넣어 아이한테 먹이면 잘 먹게 된다는 당의정 이론이다.
다니가와 씨는 문부성에 건의하여 교과서에 만화를 많이 싣도록 강력하게 권유하였고 문부성은 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었다. 다니가와 씨는 전국 각 학교에 만화가를 한 사람씩 미술교사처럼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담당하는 수업은 만화로 진행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흥미를 갖고 공부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 이론이었다. 이 만화가 교사는 지도를 받는 학생 중에서 만화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어 조기에 그 능력을 개발시켜 주는 역할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새로운 발상이었다. 일본은 근래에도 만화의 활용도를 점점 높여 가고 있다. 잡지, 소설의 표지는 물론, 수필집 등의 표지나 삽화에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표지만을 놓고 보면 아예 만화책이거나 애니메이션 전문지로 착각할 정도이다. 영상문화에 밀려 청소년들에게서 외면당하고 있는 활자문화를 어떻게든 살려 보고자 하는 자구책의 일환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 교육계의 책임자들은 이를 이해하려 노력해 보기는커녕, 예부터 만화를 불량시해 오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교과서나 학습지 담당자들 중에는 만화 냄새를 풍기는 삽화나 과장이 심한 그림은 좀처럼 채용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 역시 전근대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학습만화 전성시대라 할만큼 다니가와 교수의 주장은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서로는 “만화, 교사에게도 보이지 않는 세계” 등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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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학습만화로 대박을 터트린 홍은영 작가의 ‘그리스로마신화’ |
이제라도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좋은 것은 적극 받아들여서 교육에 이용하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것이다. 만화를 많이 보는 학생은 공부도 못한다는 기존 선입관을 불식시켜준 산증인 이원복 교수는‘한국만화 학습사’ 전집으로 한국 만화 윤리상 금상을 수상했으며, 언론학회 회원이자 (사)한국만화 애니메이션 학회 회장도 역임한 최초의 만화가 교수이다. 또한 TV 공개강의 프로에도 단골인사로 출연하면서, 오늘도 청소년들의 학습효과를 높이는 데 있어 만화의 기여도가 얼마나 큰지를 대변하는 산 증인으로 확고한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학습만화로 주가를 올린 작가로는 오원석의 ‘따개비 한문숙어’, 김우영의 ‘뚱딴지’,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신화’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