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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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90년대 : (2) 각인효과

기존의 각인효과를 깨뜨리고 자신이 새 각인효과가 되려는 예술적 투쟁을 부추기는 바다 같은 텍스트가 <삼국지>다. 두려움과 야망 사이에서 고민하면서도 그 망망대해에 뛰어드는 것이 작가적 본능이다.

2013-09-24 장상용
특정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되면 그것을 깨기가 어려워진다. 20세기 오스트리아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야생 기러기 새끼를 키웠는데 기러기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로렌츠를 부모로 여기고 따랐다. 오히려 나중에 만난 진짜 어미에겐 낯설어했다. 바로 ‘각인효과’다.
 
각인효과가 예술이나 학문에 적용되면 그것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권위로 작용한다. 동아시아의 유학자들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공자를 ‘대성(大聖)’, 맹자를 ‘아성(亞聖)’이라 칭하며 신격화했다. 유학을 집대성한 송나라 시대의 주자도 숭배의 대상이었다. 당쟁이 격화된 조선 후기엔 주자의 학문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극단적 각인효과가 불러일으킨 비극이다. 하지만 예술은 기존의 권위에 도전해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예술로 거듭난다.
 
<삼국지>만큼 동아시아를 통틀어 보편적 권위를 가진 텍스트는 없다. <삼국지>는 웬만한 작가들에겐 시쳇말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면서도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 이 책에 주를 단 배송지의 <삼국지 주석본>을 바탕으로 원, 명교체기에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 청대에는 이를 더 세련된 소설 형태로 개작한 <모종강 판본>으로 발전했다. 하도 인기가 있다 보니 명대에만 30여 종의 판본이, 청대에는 70여 종이 간행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지>는 시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렸다. 일제 강점기에는 잡지 신시대에서 연재된 박태원의 소설 <삼국지>(1941~1943년)와 일제 기관지인 경성일보에 일본어로 연재된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삼국지>(1939~1941년)가 장안의 화제였다. 박태원을 비롯해 한용운, 박종화, 김동리, 정비석, 황석영, 이문열, 김홍신, 장정일 등 내로라하는 스타 작가들은 대부분 <삼국지>의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1988년 출간된 이문열의 <삼국지>는 1500만부 이상이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고, 황석영 역시 2003년 <삼국지>로 이문열의 명성에 맞불을 놓았다.
 
2004년엔 장정일이 뛰어들었다. 이 책이 특별히 놀라게 하는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삼국지>에 녹아 있는 중화의식을 걷어버리고 우리 식의 <삼국지>를 만들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민중과 변방인들에 비중을 둔 버전이다. 그가 만들어낸 민중의 노래는 아주 실감난다. "에헤헤 헤이 헤… 나는 겁이 나서 줄행랑을 쳤는데요 / 이제 내가 장군이 되어 돌아가더라도 / 장모님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오." 조조군이 하비성의 관우 병사들을 투항시키기 위해 부르는 노래다.
 
2010년 출간된 한 종류의 <삼국지> 표지 카피는 이렇게 주장한다. ‘100번 읽어도 100번 새롭다.’ 이런 논리라면 앞서 100만개의 버전이 존재해도 100만 1번째 <삼국지>를 만들 이유가 된다.
 
<삼국지>는 절대 깨질 수 없을 정도로 대중의 심장에 깊이 각인된 영웅들로 넘친다. 쌍고검을 양손에 쥔 유비, 신장(神將) 관우, 털복숭이 장비, 부채로 얼굴을 가린 제갈량, 적토마를 탄 여포 등은 수많은 이종 판본에서조차 정형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영웅들의 정형화된 이미지는 ‘순박한’ <삼국지> 팬들을 모으는 미끼가 되기도 한다. 2004년 중국 8개 성, 18개 박물관이 내놓은 위(魏).촉(蜀).오(吳) 삼국시대의 진품 유물 350여 점을 한 자리에 모은 ‘살아있는 전설-삼국지 체험전’이 롯데월드 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적이 있다. 그 전시에서 조조의 할아버지인 조등의 묘에서 출토된 옥의(玉衣), 조조의 딸 조헌이 직접 사용한 도장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은 건 <삼국지> 최고 무장인 관우가 가볍게 휘둘렀다는 ‘청룡언월도’였다. 체험 코너에서는 무게는 82근(약 19kg)로 청룡언월도를 실물과 똑같이 재현한 모델을 들어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들어봤더니 청룡언월도는 성인 남자가 양팔로 가슴까지 들어올리기도 버겁도록 무거웠다. 그 외에 영웅들의 분신처럼 일컬어지는 무기들도 만져 볼 수 있었다. 그 때는 여포의 분신인 ‘방천화극’, 몸 전체가 뱀처럼 보이는 장비의 ‘장팔사모’, 도끼의 달인인 서황의 ‘백염부’ 등을 체험하며 나름 감동을 받았다. 청룡언월도나 장팔사모 등이 유비 의형제가 활약한 후한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안 것은 후의 일이었다.
 
엄청난 각인효과 때문에 <삼국지>에선 허구가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 머릿속에 박힌 <삼국지>는 <삼국지연의>인데, 대체로 ‘사실 7, 허구 3’의 비율이 학자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몇 가지만 따져보자.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는 문인이고, 덕장이고, 한나라의 충성된 신하이고, 효자처럼 묘사돼 있지만 사실 불한당의 두목 출신이다. 관리가 되고 싶은데 될 수 없고, 농사는 짓기 싫어 남의 것을 강탈하는 후한말의 전형적 지역구 건달이다. 그는 탁현에서 북방 말을 사서 정부에 납품하는 사업을 소쌍과 장세평에게 몰아주고 관리비를 받아 조직을 유지시켰다. 유비의 롤 모델은 한량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한 고조)이었다. 유방이 도망다닐 때마다 처자식을 버렸듯, 유비도 처자식을 4번이나 버렸다. 대단한 야심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비야말로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이고 무모한 남자다. 유비 정도의 군벌은 많았지만 웬만하면 조조에게 무릎을 꿇었다. 유비는 끝까지 무릎을 꿇지 않아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원흉일 수도 있다. <삼국지> 연구가 중 한 명으로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등을 비판적으로 보는 김경한 마포구 부구청장과 만난 사건은 <삼국지>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됐다. 수십 년간 내가 알고 사랑하던 <삼국지>가 생각보다 더 많이 왜곡됐다는 사실 때문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일간스포츠 지면에 <불편한 삼국지>란 타이틀로 연재할 것을 제안했고, 그는 수많은 영웅의 가려진 이면을 조명했다. 그와 나누었던 문답의 일부다.
 
- <삼국지연의>에서 관우와 조조는 얼마나 왜곡됐나?   
"관우는 지나치게 미화된 인물이다. 조조가 관우를 거두기 위해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관우가 유비를 배신하지 않은 건 의리 때문이 아니라, 여자 때문이다. 하비성을 공격하던 어느날 밤, 관우가 조조를 은밀히 찾아와 하비성이 함락하면 진의록의 부인을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했다. 조조는 그러마 했다. 관우는 하비성 함락 직전 다시 조조를 찾아 그 다짐을 받았다. 막상 실물을 본 조조는 반한 나머지 진의록의 부인을 취해버렸다. 자존심의 화신인 관우는 그 사건으로 인해 조조와 갈등관계에 놓였다. 조조는 끝까지 그녀를 관우에게 주지 않았다.
 
- 오관육참에서 관우의 무훈도 가짜인가. 
"관우의 오관육참도 허무맹랑하다. 조조는 관우가 그냥 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조조와 관우는 미인을 좋아한 한 인간에 불과했다. 관우가 진의록의 부인을 돌려받았다면 조조의 부하가 되고도 남았다. 조조의 경우 한나라 틀 안에서 출려하려 했지, 한나라를 뒤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왜 <삼국지연의>는 왜곡됐나? 
"<삼국지연의>를 쓴 사람들(저자로 알려진 나관중은 당시 최고 인기작가로 <삼국지연의>의 대표 작가로 이름이 붙여진 것일 뿐이다)은 출세할 수 없는 시골 유학자였다. 촉한정통론에 입각해 충의라는 흑백논리로 세상을 바라본 자들이다. <삼국지연의>는 권력중심적 사고, 과도한 도덕주의, 반민중적 사고를 심어주고, 권모술수형 인간을 양성하기 쉽다."
 
사실만을 따지는 학자에게 <삼국지>는 벗겨내야 할 허구가 많은 텍스트이지만 애독자들에겐 평생 가슴 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판타지로서 존재한다. <삼국지연의>가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그 텍스트는 이미 그 자체로 ‘사실’이다. 말장인 관우가 반동탁 연합군 진영에서 “술잔이 식기 전에 화웅(동탁의 장수)의 목을 가져오지 못하면 내 목을 바치겠다”며 튀어나가 약속을 지키는 대목은 모두가 기억하는 <삼국지연의>의 명장면 중 하나다. 유비, 관우, 장비가 그 전투에 참전하지 않은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도 말이다.
 
1980년대~90년대는 각인효과를 살펴보는데 있어 가장 알맞은 시기다. 근 20년 동안 만화 <삼국지>가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화란 글자로 된 소설보다 훨씬 강렬한 각인효과를 남긴다. 만화 <삼국지>는 1950년대는 물론이고 60년대, 70년대에도 인기리에 출간됐고, 2000년 이후로도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왜 소설가 정비석(1985년)과 이문열(1988년)이 펜을 든 시기에 왜 만화가들은 그 매력적인 미끼를 덥석 물지 않았을까?
 
1978년 1월부터 1980년 7월까지 매일 일간스포츠의 지면을 세로로 길게 채워나간 고우영의 <삼국지>는 너무 재미있던 탓에 다른 만화가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유비를 쫀쫀하고 쪼다 같은 사나이로, 조조를 난세의 지략가로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누구도 써본 적이 없는 <삼국지>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유비의 얼굴이 곧 고우영 자신의 것이라니! 1978년 연재한 <삼국지> 첫 회 도입부부터 그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빛난다. 유비가 살고 있는 탁현의 유래를 소개하는 작가의 해석이 기가 막힌다. "여인의 엉덩이를 치면 나는 소리가 ‘탁’이다. 그래서 이 고을이 탁현이다."
 
<삼국지>는 작가 고우영의 정점이었다. 고우영이 <삼국지>로 나이 마흔에 대작가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고우영은 2005년 일간스포츠에 컬러 버전의 <삼국지>를 연재하다가 세상을 떴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고우영의 운명이었나 보다. 당시 고우영 담당인 나는 그에게 <삼국지>에 대한 추억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타고난 익살꾼인 그는 <삼국지>라는 대어와 사투를 벌였던 순간의 긴장감과 아쉬움을 들려주었다.
 
“일간스포츠에 연재 안 하려고 도망 다녔다. 일간지에 큰 지면으로 만화 연재라니. 어떤 만화가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물론 기회였지만 부담감이 컸다. 첫 작품인 <임꺽정>을 1년 2개월 연재할 때부터 지쳤다. 매일 매일 긴장감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임꺽정> 이후 쉬려고 여러 차례 도망 다녔지만 결국 붙잡혀 와서 하게 된 게 <수호지>였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 <삼국지> 때는 정말 마감에 헐떡였다. 데생만 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 그림이 소홀한 부분이 많았다.
   
조조의 시를 빼먹은 게 천추의 한이다. <임꺽정>, <수호지>, <일지매>, <삼국지>, <서유기 >, <열국지>, <초한지>, <가루지기> 등 8개가 작품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대중적으로 <삼국지>가 히트했지만 역시 아쉬움이 많았다. 조조는 적벽대전 직전 배를 이어서 바다 위에 육지를 만든 ‘연환계’를 사용했다. 군사 훈련을 하던 달밤, 당대의 문장가 조조가 시를 읊는데 만화에서 그 장면을 뺐다. 대단히 웅장하고 진취적인 시인데 독자들이 안 볼까라는 우려 때문이었지. 그래서 화룡점정을 못한 느낌이다.”
 
고우영의 <삼국지>는 대단한 파격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물론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만화 <삼국지>들도 존재했고, 시대별로 아성 역할을 했다.
 
1950년대 이미 각인효과를 형성한 작품은 한국 최초의 만화 삼국지인 김용환의 <코주부 삼국지>였다. 1952년 11월부터 1955년 3월까지 약 2년 반 동안 학생잡지인 학원에 연재된 이 작품은 한 순간에 기존의 모든 동명 소설들을 뛰어넘어버렸다. 한자 가득한 구닥다리 <삼국지>들을 보다가 만화로 접한 학생 독자들은 그 재미에 푹 빠졌다. 만화가 박현석은 “실질적인 6.25 전쟁은 1951년까지였다. 1952년은 전쟁 이후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글로 된 <삼국지>들은 어렵고 지루했다. 반면 김용환이 그린 만화는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재미있게 봤다”고 설명했다.
 
1950년대와 60년대 학원이 인기 잡지로 성장할 수 있던 발판은 <코주부 삼국지>였다. <코주부 삼국지> 하나를 보기 위해 잡지를 사는 사람들이 늘면서 학원의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코주부 삼국지>의 등장 자체가 시대적 충격이었다. 김용환이 1947년 신소년사를 통해 출간한 그림이야기 <신소년 삼국지>와 1952년의 <코주부 삼국지>를 보며 화가나 만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청소년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훗날 만화가가 된 최경, 신동우, 황정희 등도 그 중 하나였다. 소설가 조정래는 2005년 발간된 만화 <태백산맥> 서문에서 <코주부 삼국지>를 보고 만화가를 꿈꿨다는 과거를 밝혔다.
 
나의 만화 사랑은 초등학교 4, 5학년 때부터 꽃피운 것이다. 그 시절에 나를 사로잡았던 만화는 <학원>이라는 학생 잡지에 연재되었던 김용환 선생의 <삼국지>였다. 나는 그 만화가 너무나 재미있어서 본 것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보고 보고 또 보았다. 첫 번째는 내용을, 두 번째는 그림을, 세 번째는 인물 인물의 생김을, 네 번째는 그림의 선을 따라가면서 눈으로 그리는 식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만화가가 되고 싶은 욕심에 만화를 손수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재주가 모자라는 것 같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초등학교 때 보았던 만화 <삼국지>의 감동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때의 장면 장면들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그 10년쯤 후에 글로 읽은 <삼국지>는 별 감동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였을 뿐이다.
 
한 페이지를 여덟 칸으로 잘게 나누어 그린 <코주부 삼국지>는 비주얼을 강조하는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답답하고 좀 심심할 수도 있다. 등장인물 대다수가 코주부여서 분간이 잘 안 되는데다 관우, 장비, 손견, 여포 같은 용장들의 신체적 우월성이 전혀 강조되어 있지 않다. 작은 칸 안에 인물만 크게 그려 넣고 배경은 간략화 됐다. 그러나 그림의 천재 김용환은 아무리 작은 칸 안에서라도 탁월한 연출을 해낸다. 특히 관우와 장비가 황건적을 상대로 마상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생동감과 긴장감을 자아낸다. 심의가 적용되지 않던 때라 그런지, 전투 중 목 자르는 연출도 이후의 작품들에 비해 상당히 과감한 편이다.
 
<코주부 삼국지>는 완결을 짓지 못하고 조조가 장수(張繡)에게 공격받아 구사일생으로 도망치는 곳에서 마무리된다.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가 집중력을 잃은 부분이 보여 아쉬움이 커진다. <코주부 삼국지>는 동탁의 잔당인 장수가 조조를 먼저 공격했다가 퇴각하면서 성에 아내 추씨를 남기고 간 것으로 그린다. <코주부 삼국지>에 따르면 성을 접수한 조조는 추씨가 대단한 미인인 걸 발견하고 ‘꿀꺽’해 버리고, 그 사실을 알고 불같이 화난 장수는 조조의 호위무사 전위가 술에 취하도록 간계를 부린 뒤 조조를 공격해 위험에 빠뜨린다. 조조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이 사건으로 전위가 죽는다.
 
조조가 여색을 밝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이 사건은 <삼국지연의>의 유일한 일화다. 김용환은 이 사건을 너무 간단하게 다룰 뿐 아니라 앞뒤가 맞지 않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장수는 동탁의 부하였던 장제의 조카로 완성을 근거지로 삼아 조조가 지배하고 있는 허도를 넘보고 있었다. 또 한 가지, 그는 형주자사 유표의 번장 중 하나였다. 조조가 장수를 평정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완성으로 향하자, 장수는 참모인 가후의 조언에 따라 조조에게 투항한다. 완성에는 죽은 장제의 아내로 과부가 된 추씨가 홀로 있다. 긴장을 푼 조조는 과부이지만 절세미인인 추씨를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 장막을 치고 그 안에서 깨소금 쏟아지는 밤을 보낸다. 장수는 숙모인 추씨를 조조가 능욕했다며 길길이 뛰며 조조를 급습한다. 전위가 죽고 조조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김용환이 이 대목에서 <삼국지>의 어떤 판본을 따른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조조가 아무리 여색을 탐한다 한들, 장수를 완전히 평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의 아내를 취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조조가 그 정도로 패륜적이지 않으며, 몰상식한 짓을 해 스스로를 사지에 빠뜨리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작가 자신도 잘 안다. 김용환은 앞서 대장군 하진의 어리석음을 조조가 비판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조조는 하진과 같은 소심한 인물도 아니고 원소와 같은 정직한 정열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보다 좀더 생각이 깊고 뱃속이 검은 큼직한 일꾼이었습니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묵묵히 하진의 경호군 속에 섞여 있으면서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김용환이 급하게 작품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원래 이야기가 쪼그라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코주부 삼국지>는 전위를 ‘악내’, 가후를 ‘고아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다른 판본의 <삼국지>들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는 명칭이다. 디테일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코주부 삼국지>의 각인효과는 1960년에 접어들면서 그 팬들에 의해 깨졌다. 최경이 1958년 김용환 그림체와 비슷한 <꼬마 삼국지>를, 이종진이 1965년 탱크와 총이 등장하는 현대식 전쟁으로 각색한 <20세기 삼국지>를, 차형이 1968년 <동물 삼국지>를, 신동우가 같은 해 <만화 삼국지>를 잇따라 발표했다. 신동우의 <만화 삼국지>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순식간에 각인됐다.
 
작품은 정석대로 해석했지만 그때까지 짙고 긴 검은 수염을 휘날리는 관우를 신동우보다 더 멋지게 형상화해낸 만화가는 없었다. 고우영의 관우 캐릭터도 신동우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군데군데 컬러가 들어간 신동우의 <만화 삼국지>는 화려한 비주얼로 혁신한 대박 상품이었다. 1960년대에 소년,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만화 삼국지>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신동우의 <만화 삼국지>와 <홍길동>은 만화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던 1960년대에 이례적으로 학교에서 우량도서로 선정됐다.
 
1974년 정한기의 만화 <삼국지>가 극화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신동우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영원한 정상은 없는 법. ‘신필(神筆)’ 신동우의 각인효과가 깨지는데 꼭 10년이 걸렸다. 앞서 말한 대로 고우영은 기막힌 만화적 익살로 <삼국지>를 요리조리 비틀었다.
 
고우영의 작품은 <삼국지>를 짝사랑해온 모든 만화가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고우영의 <삼국지> 이후 20년 동안 다른 만화가들은 납작 엎드려 숨을 죽였다. 만화가 이현세는 “감히 고우영의 <삼국지>를 앞에 두고 그보다 더 나은 작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작고한 만화가 박봉성은 2000년 <박봉성 삼국지>를 펴내면서 고우영 콤플렉스를 공개했다. ‘오랜 전 만화 수련생활 때부터 언젠가는 내 손으로 삼국지를 만화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미성숙했을 때라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언젠가는...‘이라는 말만 반복적으로 되뇌이면서 능력부족을 한탄하며 세월만 죽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고우영 선생님이 삼국지를 펴내셨고 그 때 난 뭔가 크나 큰 꿈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는 허망함을 경험했다.’
 
고우영 <삼국지>의 각인효과는 엄청났다. 1980년대, 90년대에는 ‘삼국지’란 단어를 들으면 고우영이 만들어낸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의 얼굴 밖에 떠오르지 않게 됐다. 김용환, 신동우의 <삼국지>는 뒷방 늙은이가 됐다. 억죈 것은 언젠가 풀리는 법.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고우영 <삼국지>의 각인효과도 슬슬 약해지고 새로운 <삼국지>에 대한 갈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 틈새를 노려 1990년대 중반 두 종류의 일본 만화 <삼국지>가 한국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장편 사극만화의 대가인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 <전략 삼국지>가 1993년 60권 전집으로 한국 시장에 뛰어들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고우영의 <삼국지>는 성인 정서에 부합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성인 이하 대상에게 보여줄 마땅한 <삼국지>가 없던 상황에서 60권 전집은 큰 매력이었다. 요시카와 에이지 판본을 각색한 <전략 삼국지>는 그림에서 호쾌한 맛은 없지만 구성이 뛰어나 어린이에게든, 청소년에게든, 부모에게든 재미있게 읽혔다. 유비가 어머니에게 선물할 귀중한 차(茶)를 사오다가 황건적에게 끌려가고, 부용 아씨와 장비를 만나고, 가보인 칼을 장비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알자 어머니가 차 단지를 강물에 던져버렸다는 도입부 구성은 요시카와 에이지가 자신의 판본에서 독자적으로 삽입한 에피소드다. 고우영의 <삼국지>도 요시카와 에이지 판본을 따르고 있다. 일단 한 번 페이지를 넘기면 끝장을 보게 만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재일교포 이학인(스토리), 킨곤타(그림)가 합작한 고단샤판 <창천항로(蒼天航路)>도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빨간딱지’(19세 미만 구독불가)를 달고 나온 이 작품은 조조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멋진 인물로 새롭게 창조해냈다. 고우영이 조조를 난세의 지략가로 해석했지만 <창천항로>의 조조는 살아서 펄떡거리는 물고기 같았다. ‘간웅’ ‘역적’ 대신 호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열혈남아 조조가 이 작품을 지배했다. 유비보다 현실적 감각이 탁월했던 조조를 더 높게 쳤던 요시카와 에이지의 해석을 넘어 <창천항로> 작가들은 ‘역사상 최고의 악인으로 평가받은 조조. 해석하는 자의 뜻에 따라 선과 악이 나뉘는 것일 뿐. 역사는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는 선언과 함께 달렸다. 지나치게 충의의 흑백논리를 강요당해온 우리나라 독자들은 이 만화를 보며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재일교포 이학인(스토리), 킨곤타(그림)가 합작한 고단샤판 <창천항로(蒼天航路)>도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빨간딱지’(19세 미만 구독불가)를 달고 나온 이 작품은 조조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멋진 인물로 새롭게 창조해냈다. 고우영이 조조를 난세의 지략가로 해석했지만 <창천항로>의 조조는 살아서 펄떡거리는 물고기 같았다. ‘간웅’ ‘역적’ 대신 호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열혈남아 조조가 이 작품을 지배했다. 유비보다 현실적 감각이 탁월했던 조조를 더 높게 쳤던 요시카와 에이지의 해석을 넘어 <창천항로> 작가들은 ‘역사상 최고의 악인으로 평가받은 조조. 해석하는 자의 뜻에 따라 선과 악이 나뉘는 것일 뿐. 역사는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는 선언과 함께 달렸다. 지나치게 충의의 흑백논리를 강요당해온 우리나라 독자들은 이 만화를 보며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야말로 사실에 가장 가까울 수 있다. 조조야말로 서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버금가는 동양의 르네상스적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조는 전쟁터를 덮은 시체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전략 삼국지>와 <창천항로>는 국내 작가들의 자존심에 불을 질렀다. 일본 만화들의 선전으로 인해 만화, 출판계에선 <삼국지> 시장이 나름 크다는 것도 확인했다. 21세기가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도전장을 내민 만화가는 박봉성이었다. 원숙기에 접어든 그는 2000년 엄청난 스케일의 <박봉성 삼국지>를 발표했다. <박봉성 삼국지>가 2006년까지 총 68권( 1부 7권, 2부 13권, 3부 31권, 4부 17권)으로 끝마쳤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 68권은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60권을 넘는 숫자다. 스케일 면에서도, 내용 면에서도 압도하겠다는 박봉성의 자존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쉽게도 박봉성은 <박봉성 삼국지>가 완결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2005년 10월 눈을 감았다.
   
시장통에서 벌이는 관우와 장비의 용쟁호투로 서막을 연 <박봉성 삼국지>는 호쾌한 액션과 코믹한 감각으로 기존의 삼국지들과 차별화를 선언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레이션을 빌어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비교해가며 철저히 연구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박봉성 삼국지>는 정사도 <삼국지>도, <삼국지연의>도 아닌 중간 형태였다. 박봉성은 더 어려운 길을 선택했지만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박봉성의 텃밭인 대본소 독자들에게 눈에 익은 그림체이긴 했지만 대본소 독자들은 <삼국지> 연구서 같은 형태를 반기지 않았다. 정사와 소설의 비교 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면서 <삼국지>에 대한 재해석은 두드러지지 못했다. 예술에 조예가 있지만 머리는 나쁜 듯 보이는 장비가 작품 시종일관 재해석의 중심에 있긴 어려웠다.
 
박봉성이 길을 열자 다른 만화가들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이문열 원작+이희재 그림’, ‘황석영 원작+이충호 그림’의 재미난 조합으로 출판사 기획형 컬러판 학습만화 <삼국지>가 태어났다. ‘이문열’, ‘황석영’이란 타이틀은 고우영의 각인효과에 주눅 들지 않기 위해 출판사들이 구입한 고가의 부적 같은 것이었다.
 
고우영 <삼국지>의 각인효과를 깨는 대신 자기 스타일로 즐긴 작품도 나왔다. 고우영 <삼국지>의 열혈마니아를 자부하는 만화가 최훈은 <삼국전투기>를 모든 캐릭터를 패러디한 인물열전으로 만들었다. 유비는 개구리 중사 케로로, 조조는 <기동전사 건담>의 샤아 아즈나블, 손견은 타이거 마스크, 하후돈과 하후연은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과 레골라스, 저수는 <미래소년 코난>의 코비, 안량과 문추는 <자이언트 로보>의 로봇 시리즈, 유표는 <빨강머리 앤>의 매튜 아저씨, 감녕은 <캐리비언 해적>의 잭 스패로, 원술은 울트라맨의 모습이 됐다. <삼국전투기>는 만화팬들에게 ‘쿨’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워낙 ‘무허가 다국적 캐릭터’를 남발하는 바람에 드러내놓고 자랑할 수는 없는 작품이었다.
 
최훈이 개인적으로 <삼국지>에서 최고로 치는 인물은 작가의 표현을 빌면 ‘A급 모사의 지력, A급 무장의 무력. 성격마저 훌륭하니 가히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장료다. 그래서일까? 장료의 상관인 여포에 대한 평가도 ‘배신자’라는 딱지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작가들에 비해 꽤나 후하다. ‘여포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훗날, 알아서 찾아오는 모사 진궁은 둘째 치고라도 그의 부장들인 장료, 고순, 장패가 모두 뛰어난 무장들이었다는 점을 들어 말이다... 이 세 명의 장수 플러스 여포라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덜덜덜!’
 
그 틈바구니 속에서 중국 작가 진유동의 <진유동 삼국지>도 선전했다. 이 작품은 영웅들의 마스크가 가장 중국인처럼 보인다는 것이 강점이었다. 호남아 여포와 미녀 초선을 가장 멋지게 그린 <삼국지>로 꼽고 싶다.
 
2013년 8월 고우영 <삼국지>의 각인효과가 완전히 깨졌다. 오혜성의 마스크는 조자룡에게, 마동탁은 사마의에게 바친 이현세가 <이현세 만화 삼국지>를 통해 기존의 흑백만화나 웹툰보다 비주얼이나 완성도 면에서 크게 진보한 동양적 그래픽노블을 구현했다. 동양적 소재인 <삼국지>로 연재도 없이, 10권 전작의 그래픽노블을 완성하겠다는 발상은 대가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이현세는 <이현세의 만화 삼국지>를 통해 사나이들이 간직한 야성의 DNA와 의리를 이야기한다. 오혜성의 마스크를 입은 조자룡은 그것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작가는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조자룡을 야생에서 태어날 확률 1퍼센트 이하의 백호로 비유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백호처럼 사라지도록 연출한다.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철학은 조자룡에서 방점이 찍힌다. 기존의 <삼국지>에는 없는 새로운 해석이다. "이런 연출은 배반을 모르는 야성의 사나이이자 순수한 무장인 조자룡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조자룡의 최후는 인생의 마지막에서 향유고래가 되어 태평양 밑바닥으로 조용히 가라앉고 싶은 작가 이현세의 바람과 정확히 일치한다.
 
마동탁의 마스크가 사마의에게로 간 건 작가의 절묘한 선택이다. "삼국지 최후의 승리자는 사마의다. 마동탁의 차가운 이미지가 자기의 분수를 알고 천명을 기다리는 사마의와 잘 어울린다고 봤다. 수많은 영웅들이 후계자를 잘못 세워 멸망하는데 사마의만은 후계자를 주눅든 호랑이 새끼가 아니라 야성의 늑대 새끼로 키워냈다.“
 
<삼국지>란 작품은 작가에게 고도의 전략을 요구한다. 어떤 방식으로 선배들의 각인효과를 깰 것인가에 대한 수 싸움을 미리 하고 작품에 들어가야 한다. 이현세는 연륜이 응축된 감칠맛 나는 문장력과 시적 감수성으로 상황 설명과 내면 독백을 합한 나레이션을 구사해 거대한 배나 전투장면 등을 올 컬러로 스펙터클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연출 공간을 확보했다. 특히 이현세가 1,000부 한정으로 제작한 큰 판형의 특별판은 가로 22cm, 세로 30cm의 지면 전체를 비주얼로 꽉 채운 도전적 판형으로 독자의 탄성을 자아낸다. 적벽대전·관도대전·합비대전 등 전투장면이나 여포의 적토마, 유비의 적로마 등 동물 묘사도 뛰어나지만 십상시들이 금은보화를 쌓아놓고 기뻐하거나, 황건적 두목 장보가 주문을 외우자 해골 무사들이 말을 타고 날아오거나, 궁에 홀로 입궁한 대장군 하진에게 궁사들이 활을 겨누는 장면 등에서 이현세의 연출은 교과서에 채택돼도 좋을 정도로 뛰어나다.
 
이현세 만화 삼국지는 제갈량 사후 약 30년 간 지속된 촉의 운명까지 더듬는다. 그 30년까지 짚어야 삼국지 100년이 완성된다는 것이 작가의 지론이다. "제갈량이 죽은 후 긴장감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했다. 사마의를 절대적 존재로 그리고, 촉의 강유와 대립구도를 이루도록 했다.“
 
이현세가 조자룡 이외에 가장 멋지게 표현한 인물은 손권이다. 어느 무장보다 사나이의 포스가 살아있다. 또한 작가는 처세의 달인이라며 손권에게 점수를 준다. 반면 조조에 대해선 냉정한 야심가로 바라보는 작가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진다.
 
2010년부터 노원구 상계동 화실 한 구석의 네모진 책상에 자폐아처럼 틀어박혀 백만대군까지 일일이 그리고 있는 만화가 하승남은 고우영의 각인효과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싸우고 있다. 말 없는 그의 뒷모습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일본과의 합작 프로젝트로 ‘모든 삼국지를 종결할 단 하나의 삼국지!’란 출사표를 달고 일 년에 평균 두 권 그리기 빠듯한 속도로 전진하는 <삼국지>다. 2016년까지 30권 분량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갈 길이 한참 멀어 보인다. <삼국지>의 초반을 끌어가는 동탁과 여포에게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무협만화의 대가인 하승남에게도 고우영 <삼국지>는 평생 숙제였다.
 
“이 작품을 맡게 됐을 때도 고우영 <삼국지>에 필적할 만한 역량, 능가할 자신감이 없어 두려웠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본 줄거리를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하는 <삼국지>다. 아직도 재해석의 여지가 크다.”
 
이 작품의 성격은 ‘선과 악, 옳고 그림이 아닌, 자신만의 정의를 위해 생사를 걸고 싸워 온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라는 설명 속에 잘 나타난다. 하승남 <삼국지>의 핵심은 최강의 무장이자 최고의 배신자로 평가받는 여포다. 하승남의 상상 속에서 여포는 초선이 아닌, 평범한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다.
 
“여포를 무자비한 전투기계가 아니라, 속으로 연약하고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으로 그리고 싶었다. 중국 영화 명장 관우를 보라. 5개 관문을 깨며 조조를 떠나는 관우가 유비의 부인을 속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설정을 깔아놓았다. 내 만화에서 여포는 북방 하급 관리의 자제로서 과거 나이 많은 연상의 여인을 사랑한다. 여포는 성격적 결함으로 인해 악당이 분명하지만, 그에게 연민을 갖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럼 여포가 초선을 두고 동탁과 싸운 사건은 뭐냐고? 동탁이 여포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자신의 애첩 초선을 주었는데 여포는 관심이 없다. 여포의 집에 간 초선이 여포의 여자를 구박해 죽게 만들자 여포가 왕윤의 이간질에 넘어가 동탁을 죽여 버렸다는 해석이다. 사실 초선은 정사의 시각으로 보면 가공의 인물에 불과하다.
 
하승남은 동탁을 프랑스 대혁명기의 로베스 피에르처럼 공포정치를 펼치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하승남 <삼국지>에선 금방 잘린 목이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장면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로베스 피에르 통치시기에 기요틴에서 수많은 목이 떨어져 구른 것과 겹친다. 후한 말기와 프랑스 혁명기가 오버랩 되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여포는 군말 없이 동탁이 원하는 살인기계의 역할에 충실하다. 어묵의 재료가 되는 생선들처럼 무력한 인간들을 종횡으로 흩어놓는 분쇄기 같다. 부하가 동탁을 죽이지 않는 이유를 묻자 여포는 이렇게 답한다.
 
‘동탁을 죽이고 나면 내가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전투와 적토마,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와 같이 사는 것이야. 동탁이 제멋대로 이기는 하나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장해 주지. 그래서 죽이지 않는 거야.’
 
일본 출판사가 기획한 하승남 <삼국지>와 <창천항로>, 일본에서 유학한 최훈의 <삼국전투기> 등은 <삼국지연의>에 근거해 유비 삼형제를 절대 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한 한국에 비해 진수의 삼국지 정사와 삼국지연의를 오가면서 자유롭게 해석하는 일본의 시각이 반영돼 있다. 그래서 일본에선 조조의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승남이 <삼국지>를 거대한 무협지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평생 무협만화를 그린 그가 <삼국지>를 그리는 순간에도 무협을 잊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무협지 주인공들이란 전투, 적토마, 여자를 사랑하는 여포와 비슷하지 않은가? 하승남은 가슴 속에 감춰놓은 생각을 뚝 꺼냈다. “<삼국지>를 성공시켜 무협 바람을 다시 불게 해야 할 텐데....”
 
기존의 각인효과를 깨뜨리고 자신이 새 각인효과가 되려는 예술적 투쟁을 부추기는 바다 같은 텍스트가 <삼국지>다. 두려움과 야망 사이에서 고민하면서도 그 망망대해에 뛰어드는 것이 작가적 본능이다. <삼국지>에 도전하는 만화가는 누구보다 가슴이 뜨거운 남자가 아닐까. 원전이 있기 때문에 각색 작업이라는 식으로 의미를 축소하지 말자. 창작이란 기존에 있는 것들을 거부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들이 재해석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건 ‘나만의 <삼국지>’를 만드는 이상, 그것은 분명히 창작의 영역이다. 지금 이 순간도 어느 누군가는 고우영, 이현세, 하승남의 아성을 넘기 위해 ‘조용히’ 만화 <삼국지>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필진이미지

장상용

작가, 만화평론가
초이락컨텐츠컴퍼니 웹툰사업팀장, 前 부천국제만화축제 사무국장, 前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