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동양에선 곡선의 미학을 으뜸으로 쳐왔다. 곡선은 자연에 가장 가까운 선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거제, 통영, 남해, 여수 등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의 해안선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2013년 8월 푸른 바다를 끼고 말발굽 모양으로 돌아들어가는 남해 가천다랭이마을의 드라이브 코스 한 쪽 언덕 귀퉁이에 차를 멈추고 서 남해 바다의 무한여백과 맞닿은 해안선의 묘미에 한껏 취했다. 하얀 포말에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그 선이 본질적으로 부석사 무량수전 배홀림기둥의 곡선을 빚어낸 태초의 원전(原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 : 남해 가천다랭이마을 풍경. 땅과 바다, 하늘이 곡선의 묘미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법정은 저서 <일기일회(一期一會)>에서 직선과 곡선을 직접 비교한다.
사람의 손으로 빚어 놓은 문명은 직선입니다. 그러나 본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곡선입니다. 나뭇가지, 흐르는 강물, 산맥, 해와 달을 보십시오. 다 곡선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든 집이나 그 밖의 구조물들은 거의 직선입니다. 직선은 조급하고 냉혹하고 비정합니다. 곡선은 여유와 인정과 운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곡선의 묘미’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억압이 극도에 달할 때 직선은 반란의 선이 되어 뻗쳐나간다. 그런 상황에서 곡선은 일견 유약해 보인다. 억눌림의 반동으로 약자가 강자와 맞서게 되면 분노와 권력의 의지를 담은 직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진다. 직선은 수직, 수평으로 확장되는 속도와 무엇에도 타협하지 않는 순수의 에너지로 승리를 쟁취하고자 하나 부러져 꺾이기도 한다.
직선과 곡선을 동시에 비교할 수 있는 예는 <초한지>의 유방과 항우다. 진(秦)시황 사후 진승과 오광의 농민 봉기로 진나라의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 혼란스러운 상황. 진나라 수도도 함양은 권력 다툼으로 끔찍한 살육의 장소로 변모했다. 진시황의 아들 12명과 딸 10명은 거열형을 받고 찢겨져 죽거나 도끼와 칼에 온몸이 난자됐다. 이 때 진나라 반군 연합의 총수격인 회왕(懷王)이 여러 장수를 모아 놓고 ‘맨 먼저 관중에 들어가 그곳을 평정하는 자를 관중의 왕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도전자로 나선 유방과 항우는 함양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적으로 진군을 펼쳐야 했다. 누구든 먼저 들어가는 자가 승자가 되는 레이스에서 직선 코스야말로 절대 선이었다.
바둑 대국을 복기하듯 진군 코스를 놓고 보면 항우는 직선, 유방은 곡선이다. 하북성 거록에서 조나라를 정벌하고 함양으로 군대를 돌린 항우는 낙양에서 함양으로 가는 최단 코스를 잡았다. 거의 직선에 가까운 진군 코스의 중간에는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인 함곡관이 버티고 있었다. 직선을 수직으로 가로막는 거대한 벽. 유방에 비해 압도적 병력을 가진 항우는 진나라 주력군인 장함과 힘겹게 싸우면서 시간을 소모하고 함곡관에서 막힌 후 겨우 함락시켰다. 직선으로 뻗어나가며 가는 곳마다 충돌한 결과다.
유방은 정서군(征西軍)에 임명됐지만 남쪽 지역에서 지그재그 형태로 함양으로 올라갔다. 유방의 경우 상대가 항복하지 않으면 돌아가고 항복을 권유해 말을 들으면 싸우지 않고 성을 접수했다. 그래도 유방이 항우보다 빨랐다. 결국 함양을 선점한 유방이 민심을 수습하는 등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며 <초한지>의 최종 승자가 됐다.
직선의 양가적 의미와 원형의 궤도를 철학적으로 고찰한 작품이 만화로 출발했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2013년 여름 봉준호 감독의 영화로 각색돼 개봉한 <설국열차>다. 프랑스 만화가 장마르크 로셰트(그림)와 뱅자맹 르그랑(글)이 합작한 이 SF만화는 사회적 억압과 계층화가 실현된 모습, 그에 대한 반란을 동시에 직선으로 형상화한다. 제16회 부천국제만화축제를 찾은 로세트가 "만화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콘텐츠다. 만화는 이야기의 원천으로서의 장점을 갖고 있다. 어떠한 자본이나 다른 투자의 제안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한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한 대로, <설국열차>는 만화가 작가의 모든 상상을 표현하고 담아낼 수 있는 장르적 탄력성을 지녔음을 입증한다.
인류가 기후무기로 전쟁을 벌여 전 세계가 백색의 눈과 빙하로 덮인 영하 85도의 설국 시대. 그 정점에 1001량의 설국열차가 있다. 유일하게 문명과 인류 최후의 생존자들을 보존하고 있는 직선의 기계덩어리는 단 한 순간도 멈추지 못하고 무조건 궤도 위를 달려야 하는 숙명에 갇혀 있다.
설국열차 엔진칸 쪽에 붙은 앞쪽 열차들에는 여전히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살아가는 부자와 권력층이, 그 반대편 꼬리칸 쪽에는 극빈자와 하층계급이 타고 있다. 앞쪽 칸은 ‘황금칸’이라 불린다. 꼬리칸 쪽은 완전히 격리돼 방치된 상태다. 꼬리칸 쪽은 기아와 추위로 뒤덮인 공간이지만 그 곳 탑승자들이 죽든 말든, 아무도 관심 없다. 지금의 남한 주민들이 삼팔선 때문에 북한의 실상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과 대략 비슷하다. 탑승자들이 칸을 옮기지 못하도록 무장 병사들이 칸막이 문을 삼엄하게 지키고 있다. 꼬리칸에 있던 주인공 프롤로프가 앞쪽 열차로 탈출했다 체포되자 병사들이 꼬리칸 상황에 대해 흥미진지하게 묻는다. 이 장면은 설국열차의 권력층, 황금칸 탑승자, 군인들이 꼬리칸과 완전히 단절돼 있으며, 그 곳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롤로프는 한 마디로 짧게 답한다. “거기서 하루만 지내보시죠? 차라리 하얗게 얼어 죽는 편이 낫다 싶을 거요!”
봉두난발에 남루한 복장을 한 프롤로프는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은 탈북자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지구 종말의 상황에서 꼬리칸이라도 타고 있는 것을 마냥 행운으로만 여기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엔진칸 주민들에겐 매일 호화 파티가 일상이니까. 인간은 원래 춥고 배고픈 가운데선 행복을 느낄 수 있어도 불평등 앞에선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문제는 1001량의 열차가 궤도를 돌수록 점점 느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무거운 열차를 몽땅 끌고나갈 동력이 부족하다. 황금칸 탑승자들과 열차 운영자들은 꼬리칸을 떼어내기로 결정한다. 수많은 꼬리칸 탑승자는 버려짐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에게 꼬리칸 떼어내기를 막아야하는 임무가 부여된다.
사실 1980년대 초에 탄생한 <설국열차>는 물리적 시점만 놓고 봤을 땐 꽤나 오래된 작품이다. 1970년대부터 자크 로브(스토리)와 알렉시스(그림)의 구상으로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알렉시스가 1977년 세상을 떠났고, 이후 장마르크 로셰트가 이 프로젝트에 합류해 1984년 1권을 출간했다. 자크 로브는 <설국열차>로 1986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으나 1990년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로셰트는 뱅자맹 르그랑과 함께 시리즈를 재개해 1999년 2권, 2000년 3권을 펴내며 완결을 지었다.
그럼에도 <설국열차>는 21세기 초인 지금도 전혀 올드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21세기 말에도, 22세기에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양극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001량의 열차라는 형태로 이루어진 직선은 양극단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상징이다. 아무리 지구 종말의 상황에서도 부자와 권력자는 향락과 사치를 즐기고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는 죽음조차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백색의 묵시록은 21세기가 흘러갈수록 더욱 뼈아픈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 거대한 강철 직선은 작품 속에서 신(神)으로 추앙되며 신성을 부여받는다. 천주교 복장의 사제들은 탑승자들을 모아놓고 “오, 거룩한 열차여. 에너지를 불어넣는 그 운동이 영원히 느려지지 않고 오늘도 내일도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한다. 탑승자들은 무릎을 꿇고 “거룩한 열차여, 생의 근원이여. 우리를 위하여 달려주소서”라고 화답한다. 백색의 세계에선 원형 궤도를 무한히 도는 거대한 강철 직선이 성경 속의 야훼를 축출하는 쿠데타를 일으킨 셈이다.
프롤로프는 꼬리칸에 살고 있는 하층민의 대변자다. 그는 제3열차 원조 기구 소속으로 꼬리칸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인권운동가 아들린 벨로를 만나 앞으로 전진을 거듭한다. 베일에 싸여있던 황금칸과 ‘거룩한 기관차’로 불리는 엔진칸의 세계가 그에게 열린다. 그의 직진은 사회적으로 억압받던 자들의 반란을 상징한다. 프롤로프는 마지막 객차에서 그에게 장애물인 무장 군인들을 총으로 쏘아죽이고 엔진칸으로 진격한다.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의 직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직선의 힘”을 <설국열차>의 매력으로 꼽는다. 직선은 기차의 구조이자 인간의 상승 욕구를 상징하며, 이 구조로 인해 차별과 멸시, 저항과 항거가 일어나며 영화 속 세상은 현실에서처럼 격동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다듬으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기차 칸의 구조다. 칸의 구조가 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 구조다. 꼬리칸으로 대변되는 하층민은 옆이나 뒤로는 갈 수 없고 오직 전진만 할 수 있다. 단선적인 칸의 구조가 최고의 장점이다.”
거대한 강철 직선이 1년에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순환선으로 원형 궤도를 달리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봉 감독은 직선이 만들어내는 인위적 원을 “영원에 대한 동경, 순수, 그리움이 아니라 영원히 뺑뺑 도는 답답함, 숨 막히는 공포”로 해석한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원형은 직선이 이룬 계급 구조의 질서를 고착화하는 완성체, 결정판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봉 감독은 영화 <설국열차>를 아예 억압받는 자들이 투장하는 반란의 드라마로 선명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원작 만화에선 보여지지 않던 꼬리칸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다. 꼬리칸의 반란 세력들은 활활 타오르는 분노로 자신을 가로막는 자들의 생명을 빼앗으며 거침없이 직진한다. 칸과 칸의 차단막이 열렸다 닫히는 시간은 4초. 화살처럼 직선으로 돌파하지 않으면 뚫을 수 없는 짧은 틈새다. 커티스가 이끄는 반란군이 한 호흡으로 여러 개의 객차를 통과하고 식수칸까지 점거해버린다.
직선의 힘은 억압이 가져온 분노의 강도에 비례한다. 꼬리칸 반란군은 식량칸을 점거한 후 구역질나는 비밀을 알게 된다. 자신들에게 제공되는 가공 식량이 바퀴벌레를 갈아 만든 것이며, 윌포드에게 잡혀간 꼬마 아이들이 엔진을 유지하는 일에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직선은 더 강해진다. 직선의 힘은 열차 밖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설국열차는 예카테리나 다리 부근에서 직선의 힘과 가공할 속도로 레일 위를 덮고 있는 빙벽을 돌파한다. 직선의 투쟁은 이 쇄빙열차의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그 결과 열차 내부에선 피와 살점이 튀고, 열차 외부에선 눈과 얼음이 조각나 흩날린다. 여기에 속도와 파괴의 미학이 숨어있다.
속도가 떨어지면 반란은 힘을 잃는다. 설국열차가 느려지면 객차 안 온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만화의 2, 3부에서 설국열차가 시속을 40km로 떨어뜨리고 새 가능성을 찾기 위해 결빙된 대양을 건너지만 아무 소득도 없다. 모든 것은 아래를 향해 곤두박질친다. [이미지 : 영화 ‘설국열차’에서 권력층을 대변하는 메이슨 총리가 꼬리칸 탑승객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직선이 멈추면 어떻게 될까. 영화 <설국열차>의 마지막처럼 떼죽음이다. 멈추지 않으면 어떤가.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다. 만화 <설국열차> 1부의 나레이터는 이렇게 말한다. ‘어김없이 떠나야 할 여행. 모두의 목적지는 한 곳.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미 도착했으니 그 종착역의 이름은 영원이로다.’ 나레이터가 암시하는 영원은 결국 죽음이다.
직선의 이미지로 디자인된 이 작품은 자원이 한정된 세상이라면 인류와 문명을 보존하는 것이 절대선이며 절대가치이기 때문에 그깟 모순쯤은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거기엔 안타깝지만 생존자 모두가 똑같이 자원을 분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전제로 깔려있다.
엔진칸을 돌보고 있는 늙은 엔지니어는 프롤로프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진정하시구려. 그 심정을 알겠소만 개인과 감정보다 소중한 것이 인류와 문명의 존속이요! 적어도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지켜야 하오. 그게 우리의 사명이오. 다시 말해, 이 열차를 지켜야 한단 말이오. 아무튼 당신은 선택의 여지가 없소”라고 말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영화 <설국열차>의 독재자 윌포드는 눈 깜짝 하지 않고 꼬리칸 주민의 74퍼센트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맬서스의 <인구론>이 지적하듯, 식량곡선은 인구증가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설국열차의 엔지니어인 윌포드에겐 식량과 인구수의 균형, 열차 안의 질서 이외의 다른 정의는 없다.
커티스는 엔진칸에서 윌포드를 만나며 혼란에 빠진다. 반란도 질서의 일부라니. 윌포드는 반란으로 열차 안 인구를 줄여준 커티스를 격려하며 설국열차를 맡아달라고 한다. 윌포드와 함께 선 자리에서 내려다본 열차 안 군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윌포드를 대신해 그들을 다스리고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꼬마 아이가 엔진 유지를 위해 희생되는 걸 본 순간, 커티스는 또 다시 직선의 길을 선택한다. 그가 원형의 궤도에 편입되기엔 꼬리칸에서 산 세월이 너무 길었다. 엔진칸 파괴를 도운 그의 결정으로 마지막 인류와 문명이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간다. 직선은 끊길지언정, 곡선으로 변하기 쉽지 않다.
이제 본론인 대한민국의 1980년으로 들어갈 때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권력의 공백기가 생겼지만 당시 박 대통령 암살 사건을 조사하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그 해 12.12 사태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면서 권력을 움켜잡았다. 1980년 3월 들어 10.26 사태 이후 이어져오던 계엄령 철폐 요구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나가자,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은 5월 17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18일 광주사태를 일으켰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 대학생 10만 명이 시위를 했을 정도로 민주화 열망은 뜨거웠다. 지난 20년 동안 박정희 정권 아래서 정치적 자유를 빼앗겼던 국민들이었다. 그런데 ‘신군부’란 날강도 같은 집단이 갑자기 나타나 내심 때를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일순간에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훔쳐갔다. 신군부는 박정희 정권보다 더 악랄하게 민주화 요구를 탄압했다. 전국적으로 3만 9742명이 ‘범죄자, 불량배 소탕’이라는 명목으로 영장 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삼청교육대 제소자 중 54명은 구타로 숨지기까지 했다. 시위를 벌이던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가 보낸 특전사의 총칼 앞에 무참하게 쓰러져갔다. ‘반란’은 진압됐고, 진압군은 승리했다.
신군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강제로 빼앗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프로레슬링을 무척 좋아해서 김일체육관을 지어주고 후원도 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프로레슬링을 싫어했다. 1970년대 중반 박 대통령이 TV로 프로레슬링을 시청하고 있을 때 당시 경호실에 근무하던 전두환이 “각하, 저건 쇼인데 왜 그렇게 열심히 보십니까”라고 말했다가 핀잔을 들었다.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김일체육관을 국고로 환수하고 TV중계에서 프로레슬링을 배제했다. 1960, 70년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프로레슬링은 급격히 몰락하고 말았다.
하나의 세력이 정국을 완전하게 장악하면 곧 일상이 온다. 1910년 한일합방 때도 그랬고, 1980년 5공 출범 때도 마찬가지였다.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국민들은 순응한다. 반체제적인 행동을 할 때 돌아오는 대가는 개인이 감당하기엔 어마어마하게 크다. 신군부를 제외한 모든 국민이 약자였으며 가슴 속에 울분을 품은 수동적인 곡선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983년 한국 만화사에 획을 그은 한 작품이 등장했다. 이현세(그림), 김민기(글)의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이 만화가 눈길을 끄는 건 초대형 히트작이서가 아니라 직선이 허용되지 않던 사회에서 철저하게 직선을 추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전면엔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자들이 등장했다.
[이미지 : 만화가 이현세(왼쪽)가 2013년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에게 외인구단의 포스가 풍긴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그 시대로 보아선 예외적 작품이었다. 주로 아동만화만 존재하던 시기에 이현세는 프로로서 세상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꿈꿨다. 20대 중반의 젊은 만화가 이현세에겐 남들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억압 이외에도 남다른 울분이 있었다. 연좌제로 어깨를 펴고 살기 힘든 가정환경, 만화가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괄시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신군부는 만화가들을 남산에 모아놓고 ‘불량만화 그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복창을 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신군부는 프로야구를 출범시켰다. 이현세는 세상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프로야구로 포장해 남녀노소가 다 읽는 만화로 기획했다. 이현세의 울분은 고스란히 까치머리 오혜성이 떠안았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세 가지의 주요한 코드로 구성됐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사랑의 코드,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사나이 코드,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샐러리맨의 소망 코드다.
손병호는 서부구단이 비화구를 뿌려대는 황금구단의 에이스 방사형을 무너뜨리고 승리하자 마음 속으로 외친다. ‘무엇보다 강자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엔 너희들 멋대로 산다. 누구도 너희들을 막을 자는 없다.’ 혼혈아 출신의 외야수 하국상은 재래시장에 자동차를 몰고 들어가 출세했다고 폼을 잡는다. 내야수 최경도는 결혼하는 날 경기에 빠진다. 독자들 중엔 오혜성이나 마동탁 이외에 하국상이나 최경도 팬도 꽤 많았다. 외인구단 전원이 주인공이 됐다.
외인구단의 모델은 삼미 슈퍼스타즈였다. 삼미가 리그에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선수들을 나머지 구단에서 구걸하다시피 해서 받았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팔려온 선수들의 구단이 됐다. 그래서 ‘도깨비 구단’ ‘외인부대’라는 별명을 가진 팀이었다. 이현세는 김민기와 이 부분에 대해 철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까치는 이현세가 이야기 이전에 평소 그리고 싶은 캐릭터였다. 바위에 부딪혀 산화하는 강렬한 캐릭터이면서 이전에 한 번도 볼 수 없는 디테일을 가진. 이현세는 까치가 자신의 분신임을 감추지 않는다.
“바위에 부딪혀 산화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난 이불 속에서 만세 부르지만. 내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라면, 까치에겐 행동하는 양심을 준 거다.”
엄지는 ‘이런 여자를 갖고 싶다’는 남자들의 로망을 충족시키는 캐릭터였다. 당시 청년들의 이성관이 투여된 요조숙녀이기도 했다. 이름 그대로 엄지는 엄지손가락만한 아이가 세상을 모험하면서 목적지까지 간다는 동화 <엄지공주>의 영향을 받았다. 엄지는 수동적 여자가 아니라 세상과 부딪혀 자기를 찾아가는 여자이면서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메시아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대다수 만화가는 사회적으로 처한 입장 때문에 주눅 들어있었다. 그림이나 표현에서 위축감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어딘가 주눅 든 곡선이 선호되던 시대였다. 그런 분위기는 이현세가 <천국의 신화>로 재판을 받던 1990년대 후반까지도 계속된다. [이미지 :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오혜성이 질주하는 장면. 오혜성의 상체와 하체가 직선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현세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직선을 많이 사용했다. 특히 야구 장면에서 선수들이 질주할 때 발끝부터 허리를 거쳐 상체로 이어지는 라인은 휘어짐이 없다. 강하고, 거침이 없고, 꺾이지 않는 질주를 표현하는데 어울리는 선은 직선이다. “생판 보지도, 듣지도 못한 작가가 직선을 쓰니까 독자는 더 강하게 느꼈을 거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철저하게 시각을 파고드는 연출을 구사했다”는 이현세의 전략은 독자의 심리를 꿰뚫었다.
당시에 만화는 주로 대본소에서 소화됐다. 대본소 독자는 완결되지 않는 작품은 잘 보지 않았다. 한꺼번에 나온 걸 좋아했다. 대본소 주인들도 빨리 끝나는 만화를 갖다놓을 수밖에 없었다. 만화는 대부분 3권 이내에서 끝났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연재 없이 대본소에서 전작 30권으로 나왔다는 점은 대단한 파격이었다. 작가진과 출판사는 처음엔 4권만 내보고 반응을 보기로 했다. 오혜성이 유성 구단을 상대로 노히트 노런의 역투를 펼친 후 구단버스에서 어깨가 망가진 것을 확인하는 장면이 4권의 마지막 페이지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대본소를 휩쓸고 질주하고, 또 질주했다. 5, 6, 7권으로 이어지고 11권으로 1부를 끝마쳤다. 책을 빨리 내라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출판사 사장은 통사정하고, 협박편지도 날아들었다. 결국 작가들은 쉬지 못하고 3부 30권까지 펜을 움직여야 했다. 100m 달리기로 시작한 출간은 800m 달리기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마지막권 데생은 하루만에 끝났다. 독자들이 너무 기대하니까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이현세는 고백한다. “만화책 한 권이 하루 만에 데생이 될까? 나로선 도전이었다. 감성과 감각으로 몰아붙인 연출이었다. 드로잉에 신경이 쓰인다. 좀 더 디테일하게 했어야 하는데... 손병호 감독이 죽고 외인구단이 해체하는 결말도 약간 거슬린다. 그보다 훨씬 더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는 결말도 가능했었는데.”
<공포의 외인구단>의 질주도 그렇지만, 이현세의 만화 인생 자체도 직선이었다. 이현세는 <공포의 외인구단>의 여세를 몰아 1990년대 중반까지도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남벌> 등 매번 새로운 소재의 작품을 찾아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질주하는 직선의 운명은 언젠가 꺾이는 것이다. 곡선이 되거나 멈추지 않는다면. 외인구단의 반란은 성공했지만 손병호는 죽고 오혜성은 날개가 꺾였다. 1997년 음란물 시비에 걸려든 <천국의 신화>로 이현세의 질주에 제동이 걸렸다. 무려 6년 간의 법정투쟁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는 40대를 잃게 됐다. 이현세는 그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너무 힘을 주면 사고가 생긴다고, <공포의 외인구단> 이후 무리한 연출, 소재를 선택한 의욕과잉의 결과다. 하지만 <천국의 신화> 사건은 관점의 차이다. 나는 인간이 동물과 다름 없었을 때, 인간이 신을 알고 서서히 문명으로 이동하는 야생시절을 스케치했다. 검찰은 그것이 과도하게 야하고 폭력적인 연출이라고 본 거다. 팔기 위한 목적의. 그리는 사람의 연출을 인정해준다면 성적, 말초적 연출이라고 볼 순 없다. 들판에서 노루가 새끼 낳고, 그걸 하이에나가 뜯어먹는 것을 그대로 그린 것이다. 옷을 벗는다고 선정적이고, 목이 날아간다고 폭력적인가. 개인적으로 큰 피해이지만 내가 그걸 거쳐주었기 때문에 후배들이 표현의 자유를 얻게 됐다. 표현의 자유는 쟁취로 얻은 것이지, 시대가 공짜로 준 건 아니다.“
직선이 부러지고 나면 그 뒤엔 반드시 그 대가가 반영된 새로운 질서가 나타난다. 기존의 질서를 변혁하는데 있어 산화할지언정, 직선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1980년대 초 우리사회에 침잠해있던 울분을 대신 날려주었고, 직선의 미학을 전파했다.
반면 곡선은 다소 무력해보이다가도 원이란 순환의 이치로 세상을 움직인다. <공포의 외인구단> 시대에 국민들의 울분을 자아냈고,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납 추징금을 내야 할 처지에 몰렸다. 곡선은 단순한 이치를 일깨운다. 강제로 빼앗은 건 언젠가 토해내게 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