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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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70년대 : (11) 꺼벙이와 포스트모더니즘

팝아트의 효시로 꼽히는 작품은 영국 작가인 리처드 해밀턴의 1956년작 콜라주 “오늘날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2012-12-18 장상용
팝아트의 효시로 꼽히는 작품은 영국 작가인 리처드 해밀턴의 1956년작 콜라주 “오늘날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팝아트가 ‘대중예술(popular art)’의 줄임말인가에 대해선 아직도 논란이 있지만 해밀턴은 1957년 자신의 편지에서 이렇게 정의했다.
 
팝아트는
통속적이고
일시적이고
소비적이고
저렴하고
대량생산적이고
젊고
재치 있고
관능적이고
술수에 능하고
매혹적이고
대기업적이다.
 
그는 ‘저렴하다’는 것만 빼고는 대체로 오늘날 팝아트의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지적했다. “오늘날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는 팝아트와 기존 미술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팝아트가 뮤지컬이라면 기존 미술은 오페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살펴보자. 영화배우 같은 누드의 여자가 머리 건조기를 쓴 채 소파에 삐딱하게 앉아 있고, 보디빌더가 ‘팝(POP)이라는 글씨가 박힌 거대한 막대사탕을 한 손에 들고 있다. 마루와 수평을 이루는 그 막대사탕은 남자의 중요한 부위를 절묘하게 가린다. 이 그림의 공간은 현대인이 거주하는 실내다. 계단 위에서는 가정부처럼 보이는 여자가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하고 있다. 기다란 청소기의 호스 중간을 가르고, 검은 화살표가 ’보통 청소기 호스는 여기까지만 닿는다‘는 광고문구를 동반하고 있다. 가정집까지 광고가 깊숙이 침투해있음이 드러난다.
 
다음은 소품이다. 대량소비시대의 생산품들이 이 작품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탁자 위에는 햄 통조림이 놓여있고, 전기스탠드 갓에는 포드 자동차회사의 로고가 붙어있다. 방바닥의 녹음기는 중류층의 부를 상징한다. 벽에는 근엄한 명화나 풍경화, 정물화 대신 ‘Young Romance라는 만화 포스터가 붙어있다. 만화책의 한 장면이다. 그 옆에 걸린 19세기 영국 비평가 존 러스킨의 초상화는 벽 중앙의 만화 포스터에 비해 크기가 작을 뿐 아니라, 구석에 밀려있어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느낌을 준다. 창밖으로 보이는 극장 간판에는 인기 배우이자 재즈 가수인 앨 존슨의 모습이 노출돼 있다. 집 안 뿐만 아니라 밖의 공간도 대중문화가 지배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여배우의 얼굴이 TV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데 머리 건조기를 쓴 누드의 여자에게 약간 가려졌다. TV 속 여배우도 아래쪽은 누드가 아닐까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구도다. 집 안에 장식용으로 꽂아둘 법한 책 한 권 없는 것도 특징이다. 이미 이 시대의 신세대는 독서에 별로 취미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림 하단 구석의 소파에 신문이 겨우 한 장 놓여있을 뿐이다.
 
해밀턴은 1950년대 중반,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물적 조건들로 그림을 채웠다. 이 그림에선 소비적이고 쾌락적인 성격이 강한 대중문화와 소비상품에 대한 작가의 저항감이 엿보인다. ‘오늘날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은 다분히 반어적이다. 영국의 팝아트는 이처럼 사회비판적이었다.
 
반면 미국의 팝아트는 영국 ‘형님’과는 다른 맥락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더불어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식 추상미술이 전개됐다. 이 분야를 대표하는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모더니즘 회화를 지향했다. 자연의 재현을 거부하고 회화 자체로 돌아가려는 모더니즘의 강령을 따르는 그린버그의 시각에서 보자면 1960년대 초 미국에서 번지기 시작한 팝아트는 못마땅하기만 했다. 대중문화는 키치, 즉 하위문화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대중에게 친숙한 스타와 상품들의 이미지가 미술의 소재로 자연스럽게 수용됐다. 모더니스트들이 아무리 저항해도 막을 수 없는 일이 됐다.
 
1962년 미술계에서 이미 유명한 광고 디자이너였던 앤디 워홀이 당시 어느 슈퍼마켓에서나 쉽게 살 수 있는 스프 깡통 32장을 그려 팝아트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빨간색 상단이 인상적인 캠벨사의 수프 깡통은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의 상표 부문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상품이다. 수프 깡통이나 마린릴 몬로 등을 그린 그림이 예술적 가치를 획득하면서 작품의 저급, 고급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팝아트는 곧 긍정적 코드로 자리매김했다.
 
현대 미술은 ‘참조, 참조, 참조의 예술’로 불린다. 복제를 근간으로 하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의 작품을 또다시 미니 사이즈로 베껴 그리는 리처드 페티본 같은 미국 팝아트 작가까지 있을 정도다. 페티본의 경우 앤디 워홀의 <플라워>를 딱 한 점만 축소 복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오리지낼러티’를 획득하고자 한다.     
 
미국 주류사회에선 키치로 여겨졌지만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화가 팝아트의 참조 대상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미술교사이자 무명의 화가였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1961년 뉴욕의 한 갤리리에서 미키마우스, 뽀빠이 등 인기 만화 캐릭터들을 차용한 ‘과감한’ 미술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아들이 학교 친구들에게 아빠의 직업이 추상표현주의 화가라고 했는데, 친구들이 추상표현주의 화가는 데생을 못한다고 놀렸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는 즉석에서 미키마우스를 그렸고, 미키마우스와 도널드 덕이 낚시를 즐기는 <봐, 미키(Look Mickey)>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만화의 한 장면을 확대한 후 망점 기법을 이용해 회화로 바꾸어낸 리히텐슈타인은 1960년대~70년대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미국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작가로 올라섰다.
 
만화의 표현에 있어서도 유럽보다는 미국이 자유로웠다. 오늘날 만화에서 보편화된 말풍선은 미국에서 비롯됐다. 말풍선을 사용하면 시각적 효과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유럽 만화는 1920년대까지만 해도 만화 칸 아래에 설명글을 넣는 방식을 고집했다. 1930년대 프랑스에 첫 상륙한 미키 마우스 만화뿐만 아니라, 에르제의 만화 <땡땡의 모험> 시리즈가 벨기에에서 프랑스로 처음 수입됐을 때도 출판업자들은 말풍선을 지워버렸다. 미국은 팝아트가 싹트기 좋은 토양이었다.
 
팝아트의 부흥은 곧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담론의 형성과도 맥을 같이 한다. 각 문화예술의 도식성, 가치, 질서가 이 시기에 깨어져나가고 있었다. 미디어 아티스트인 백남준은 1969년 작인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래지어>를 통해 실험적이고 우연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이 무대에서 첼로를 연주하다가 갑자기 옷을 벗고 나체가 된 채 연주를 이어나갔다. 그 때 백남준이 넋 나간 객석에 뛰어들어 가위로 관객 한 명의 넥타이를 삭둑 잘라버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더 이상 새로운 소재는 없다’는 신념에서 패러디란 장치를 중시했다. 18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상상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 과거의 소재를 재활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패러디의 적극적 사용은 예술 작품을 유희적으로 만든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문학과 예술이 진리와 인간적 가치를 전하는데 집착할 필요가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대량 복제가 일상화된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시뮬라시옹 이론을 주장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설명하고자 했다. 빅토르 쉬클롭스키나 아이헨바움 같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일찍이 주장한 ‘낯설게 하기’, ‘탈자동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 같은 개념들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성에 영향을 주었다.
 
탈장르나 장르 간 혼합 현상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두드러졌다. 문학의 경우 엘리트주의를 지향하는 모더니스트들에게 소홀히 취급됐던 장르문학, 예를 들면 서부소설, SF소설, 탐정소설 등이 부활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제시한 서사(narrative)의 틀을 벗어나도록 부추겼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작가들은 텍스트의 유희를 추구하면서 독자를 읽기의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켰다. 도널드 바슬미 같은 작가는 1967년 소설 <백설공주>에서 이야기를 잠시 멈춘 채 독자들에게 모두 열다섯 항목에 달하는 앙케이트식 질문을 던졌다. 어느 지점에서 ‘지금까지의 스토리를 좋아하는가?’, ‘당신은 책을 읽을 때 서서 읽는가, 아니면 앉아서 읽는가?’라고 물었다. 서사를 해체함으로써 작가는 창조자보다는 유희자의 성격을 강화했다. 서사는 일탈하고, 텍스트의 의미도 계속 유보된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차이’에 시간의 개념을 더한 ‘차연’으로 진리란 지연되며 도달할 수 없음을 설명했다. 사실성보다는 허구성, 존재보다는 생성, 결과보다는 과정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태생적으로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만화는 그 자체로 포스트모더니즘과 공통분모를 가진다. 전 세계가 팝아트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에 휩싸여 있던 1960년대~70년대, 한국의 만화는 국내 다른 문화, 예술에 비해 훨씬 먼저 포스트모더니즘에 가까이 가있었다. 길창덕이 1970년 월간 만화왕국에서 연재한 <꺼벙이>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적 성격이 다분하다. 길창덕은 분명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만화를 그렸다. <꺼벙이>와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관 짓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시각도 있겠으나 논란에 부쳐볼 만큼 <꺼벙이>는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었다.
 
길창덕은 만화 텍스트를 떡 주무르듯 가지고 논 장인이었다. 길창덕 만화의 유희성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이다. 아이디어를 짜기 위해 매일 4~5갑의 담배를 피웠고, 그로 인해 폐암에 걸려 2010년 1월 타계한 길창덕의 창작 과정은 누구보다 치열했다. “죽기 살기로 만화 그렸어. 만화 때문에 이렇게(폐암)됐지만 후회는 안 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으니까”라고 그는 고백했다. 그러나 창작의 고통만 있었던 건 아니다. 길창덕 스스로가 1차 독자로서 자신의 작품을 낄낄거리며 즐겼다. 타계 전 그는 “지금도 옛날에 그린 만화들을 보면, 도대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나 스스로 의아할 때가 있다. 한창 만화를 그릴 때는, 혼자서 낄낄거리며 그렸다. 마치 신이 들린 사람처럼”이라고 말했다. 그 신들림은 <꺼벙이>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길창덕의 프로필은 팝아트,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와 절묘하게 겹친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1929년 평안북도 정부에서 출생한 그가 서울신문 독자 만화 투고로 데뷔한 1955년은 리처드 해밀턴이 <오늘날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발표한 시점보다 1년 앞선다. 특히 길창덕이 월간 만화왕국에 꺼벙이, 여성중앙에 순악질 여사, 소년중앙에 만복이를 동시 연재하며 전성기를 구가한 1970년은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이 무르익는 시기였다. <꺼벙이>를 비롯해 <고철이>, <삼삼이>, <딸딸이>, <재동이>, <만복이>, <필승이>, <복돌이>, <박달도사>같은 그의 작품은 박수동, 윤승운, 신문수, 이정문 등 후배 만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길창덕은 간단한 선으로 명확한 캐릭터를 잡아 일상생활에서 공감이 가고 재치 넘치는 만화들을 그려 큰 사랑을 받았다.
 
길창덕이 당시 해외의 추세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만화의 정신을 잘 이해했고, 상상력과 웃음을 전달하는 만화의 형식은 아주 다양하다는 사실을 잘 이용했다.
 
51개월간 연재한 <꺼벙이>의 서사는 대사와 이미지를 적절하게 결합하면서 지연, 일탈, 낯설게 하기 등의 수법을 버무린다. 따라서 <꺼벙이>의 이야기는 소소한 일상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고, 캐릭터는 팔딱거리며 살아 움직인다.
 
‘키크기 작전’이란 에피소드를 보자. 독특한 화술의 달인인 주인공 꺼벙이는 거금 용돈 1만원을 타내기 위해 아빠를 모셔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용돈의 핑계는 잘 먹고 군것질을 많이 해 키가 크면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빠가 단박에 동의해주지 않자, 꺼벙이는 “설명이 길어지겠는데...”라며 냉장고로 가 별안간 콜라를 따라 마신다. 이야기는 엉뚱하게 지연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하! 시원해”라는 탄성을 터뜨린 꺼벙이는 컵과 빈 콜라병을 설득의 도구로 활용한다. 컵은 단신인 우리나라 선수의 키, 콜라병은 장신인 외국 선수의 키를 상징하며 나란히 놓인다. 우리나라 선수가 외국 선수의 키와 같아지는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꺼벙이는 이야기를 끊고 콜라 한 병을 더 꺼내 마신다. 아빠가 마시고 싶어 아껴둔 콜라 2병이 순식간에 꺼벙이의 뱃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꺼벙이의 화법은 아빠를 혼란에 빠뜨리며 계속될 기회를 얻지만 아빠는 많이 먹으면 몸이 옆으로 퍼진다며 더 듣기를 거부한다. 꺼벙이는 1만원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능청스럽게 아빠의 콜라 2병을 꿀꺽했다. 꺼벙해 보이지만 실은 영악한 꺼벙이의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부각된다.
 
<꺼벙이> 서사의 매력은 이야기가 삼천포로 간다는 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꽉 짜여진 구조가 아니라 불완전성, 비확정성, 열린 결말 등을 지향하는 부분과도 맥이 통한다. <꺼벙이>의 서사에서 일탈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순식간에 발생한다. 길창덕은 견지낚시처럼 흐르는 물에 낚싯줄을 계속 풀다가 휙 잡아당긴다. 물론 기승전결의 틀은 갖추고 있지만 틈만 엿보이면 그 틀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 길창덕의 속성이다.
 
‘사람 찾기 경주’ 편에서 꺼벙이는 학교 운동회에서 1등을 해 학용품을 모두 휩쓸어버리겠다는 의지에 불탄다. 사람찾기 경주에서 꺼벙이가 가장 먼저 명령지를 집어든 바람에 ‘아버지’를 모셔오라는 가장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꺼벙이는 아빠의 회사로 찾아간다. 거리를 꽉 매운 자동차들의 지붕을 밟고 헉헉 대며 계단을 올라 도착. 그러나 아빠는 인천으로 출장을 떠나 있다. 꺼벙이는 산 넘고 물 건넌다. 10여 개의 각 칸마다 꺼벙이는 다른 지점을 통과한다. 운동장에서 간단하게 끝날 에피소드가 거의 <엄마찾아 삼만리> 수준으로 변한다. 마라톤에서 승전을 전한 그리스 병사처럼 쓰러진 꺼벙이를 본 아빠는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가자고 한다. 그러나 꺼벙이는 “사람은 정직해야죠. 지금 사람찾기 경주를 하고 있는 중인데 버스를 타고 경주를 하면 되겠어요?”라며 거부한다. 아빠의 등에 업혀 꺼벙이가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으로 운동회는 이미 끝나있다. 학용품을 기대한 꺼벙이 엄마에게 도착한 건 지게꾼의 지게에 얹혀 자고 있는 꺼벙이 부자다. 서사의 일탈이 극단으로 치달아 황당하고 허무한 결말을 이끌어낸다. 회사원인 꺼벙이 아빠 역시 보통 때는 매우 이성적이지만 뭔가 획득물이 눈앞에 들어오면 꺼벙이와 비슷한 사고를 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과연 꺼벙이의 활약은 가족의 도움 없이 가능한 것일까. 결국 부전자전임이 드러난다. ‘곤충채집’ 편은 꺼벙이가 잠자리 한 마리 잡으려다 홍콩까지 가는 기막힌 이야기다.
 

 
 
 
 
 
 
 
 
 
 
 
 
 
 
 
 
 
 
 
 
‘즐거운 생일’ 편에서도 서사가 삼천포로 빠지면서 독특한 장면이 연출된다. 꺼벙이의 생일에 엄마가 명이 길어있다는 속설에 따라 면발이 긴 국수를 삶아 꺼벙이에게 내놓는다. 아빠와 엄마가 생일 축하곡을 부르고 있는 사이, 꺼벙이가 국수 끝을 잡고 당긴다. 국수는 잘라지지 않고 계속 늘어난다. 꺼벙이는 뒤로 물러나며 창틀에 올라서고, 밖으로 나가고, 급기야 전봇대 꼭대기까지 매달려서 국수 면발을 입에 물고 있다. 그 사이 엄마는 국수면발이 땅에 닿을까 싶어 장대로 중간을 받혀 준다. 
 
이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마련된 몇 개의 컷은 독자의 시선에 따라 좌측에서 우측으로 아주 강하게 연결된다. 실제로 끊어지지 않은 국수 면발이 컷들을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수는 독립된 컷과 컷을 꿰맨 실처럼 보인다. 좌측에서 아빠가 그릇을 잡고, 중간에서 엄마가 장대로 받히고, 우측 상반에서 꺼벙이가 국수를 입에 무는 바람에 국수 면발은 알파벳 W 모양을 이룬다. 한 페이지에 9~10컷 정도로 나누는 오밀조밀한 연출 속에서 공간 확장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것이 <꺼벙이>가 갖고 있는 유희성 중 하나다. 꺼벙이가 생일 국수를 입으로 끊어서 먹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해프닝이다.
 
길창덕은 공간이나 시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데도 능숙하다. 말하자면 서사의 전복성이다. ‘참새쫓기 당번’이란 에피소드에서 방학 동안 아빠는 TV 서부극을 못 보게 하기 위해, 꺼벙이는 TV를 지키기 위해 실랑이를 벌인다. 그 사이 TV가 넘어진다. 아마 다른 작가 같았으면 TV가 깨져서 꺼벙이와 아빠, 둘 모두 손실을 입었다는 식의 시퀀스를 이어나갔을 것이다. <꺼벙이>에선 뒤로 넘어진 TV 화면에서 서부극의 카우보이가 만화 속 현실로 나와서 “헤잇! 유, 꺼벙이. 무법자를 추격하는데 말이 드러누워서... 지장이 있잖아? 어서 일으켜 세워놔!”라고 질책하면서 꺼벙이와 아빠에게 알밤을 준다. TV가 세워지자, 화면 속으로 들어간 카우보이는 “어디로 갔는지 안보이잖아...”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말을 달린다. TV의 서부극이 TV 바깥의 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꺼벙이>에선 TV의 서부극이 녹화된 영상의 재현이 아니라 독자적인 서사와 주인공을 갖는 라이브 무비다. 카우보이가 사라진 다음에 등장한 파리약 광고의 주인공은 꺼벙이를 혼내고 있는 아빠의 얼굴에 파리약을 뿌린 후 도망친다. 아빠는 더 이상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TV를 눕혀놓는다. 꺼벙이가 속한 서사와 TV 화면 속 서사가 서로를 구속한다. 이보다 더 재미있고 기발한 상황이 있을까. 오늘날 다른 만화, 영화, 드라마에서도 타임슬립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으나, 타임슬립이 끼어듦으로 해서 서사가 부담스러워지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꺼벙이>에선 바깥쪽 서사와 안쪽 서사가 서로를 구속하는 장면이 아주 자연스럽다. 이런 기법이 서사의 구조를 심층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엮이게 한다. 이 사건은 <꺼벙이>의 텍스트를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준다. <꺼벙이>에선 지나가는 개가 사람의 말로 중얼거려도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닌 게 된다.
 

 
 
 
 
 
 
 
 
 
 
 
 
 
 
 
 
 
 
 
 
‘수영장 소동’편에선 작가 길창덕 캐릭터가 서사에 직접 개입해 낯선 장면을 연출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와 같은 기법이라고 할까. 브레히트는 관객이 극에 몰입되는 서사를 여러 가지 수법을 써서 방해했다. 극의 흐름을 끊어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연극일 뿐’이란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다. 브레히트는 관객이 이성의 눈으로 현실과 무대를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친구들이 수영장에 간 사이, 꺼벙이는 혼자만 못 가는 신세를 한탄하며 운다. 그 때 아빠가 손수건을 꺼내어 꺼벙이의 눈물을 닦아준다. 눈물과 범벅이 됐던 꺼벙이 얼굴은 손수건으로 닦이자 지워진다. 눈코입이 없어진다. 아빠는 “너무 빡빡 문질렀더니 눈, 코, 입이 죄다 지웠어요”라면서 펜과 잉과를 든 길창덕을 데리고 온다. 길창덕은 “더워 죽겠는데 2번식 그리게 하고 있어!”라고 빈정거린다. 그러나 말을 하면서 그리는 바람에 꺼벙이 눈, 코, 입은 엉뚱한 위치에 가 있다. 길창덕이 “화이트(먹을 지우는데 쓰는 흰색 수정물감)!”라고 외치자 그의 문하생이 화이트를 가지고 온다. 길창덕은 화이트로 꺼벙이의 얼굴을 지운 후 제대로 눈, 코, 입을 그려 넣는다. 그 때서야 꺼벙이 부자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며 얼싸안고, 주인공이 정체성을 잃는 바람에 중단됐던 서사는 재개된다.
 

 
 
 
 
 
 
 
 
 
 
 
 
 
 
 
 
 
 
 
 
 
 
 
 
 
 
 
 
 
 
 
 
 
 
 
 
 
만화를 그려 캐릭터를 창조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작가가 순식간에 만화 속으로 뛰어드는 파격은 틀에 매달리지 않는 이야기꾼 길창덕의 자유분방함을 보여준다. 독자로선 몰입되다가 이것이 만화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길창덕의 수법은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보다 다각적 효과를 낸다.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서사를 파괴하고 현실을 환기시킬 뿐이지만 길창덕은 독자에게 일상적인 서사만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눈, 코, 입이 지워진 주인공 캐릭터를 복구해야 할 작가가 오히려 더 얼굴을 엉망으로 만든다. 눈, 코, 입이 지워짐으로써 위기를 맞은 캐릭터가 다른 조연들이 아니라,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독자는 꺼벙이의 운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아빠는 위기의 순간, 바로 다음 컷에서 길창덕을 데리고 와 버린다. 아빠나 꺼벙이나 작가 길창덕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일순간도 고민하지 않는다. 작가와 캐릭터들이 한 작품 안에서 서로 대화도 하고, 책임도 묻고, 도움도 주고받는 서사가 어찌 기발하지 않은가.
 
<꺼벙이>의 캐릭터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만화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다. ‘자나깨나 불조심’ 편에서 옆집 불이 옮겨 붙자, 아빠는 “물!”을 외친다. 한 컷 안에서 아빠는 정상적으로 서 있는데 물컵을 든 꺼벙이는 거꾸로 달려온다. 이런 절묘한 연출은 만화에서만 가능하다. 얼마나 급하면 캐릭터가 거꾸로 달려올까. 단순하지만 급박함과 꺼벙이의 캐릭터를 모두 포착한 연출이다. 다음 컷은 더 웃기다. 길창덕은 유희를 멈추지 않는다. “급한데 지금 그런 것 따지게 됐어요!”라면서 꺼벙이가 오른쪽 옆으로 누운 채 달려온다. 다른 만화에서 같은 방식을 써도, <꺼벙이>만한 효과를 낼 수는 없다. 그건 ‘꺼벙이 월드’에서만 어울리기 때문이다. 길창덕의 개그 감각은 탁월할 뿐 아니라, 시대를 앞서갔다. 개그우먼 김미화는 길창덕의 1970년대 만화 <순악질 여사>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와 1980년대 <쓰리랑부부>의 순악질 여사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길창덕은 순악질 여사 캐릭터를 사용하게 해달라는 김미화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꺼벙이>라는 만화 한 편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시각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예로 든 표현들이 <꺼벙이>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꺼벙이>는 ‘꺼벙이 월드’에서 그것들을 한꺼번에 가장 적절하게 사용했을 뿐 아니라, 재미와 상상력을 추구하는 만화 장르의 본질을 골수까지 파고들었다. 그 결과 당대 서구를 휩쓸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운이나 정신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됐다. <꺼벙이>는 작은 캐릭터들의 놀이터처럼 보이지만 실은 거대한 산이다.
 
필진이미지

장상용

작가, 만화평론가
초이락컨텐츠컴퍼니 웹툰사업팀장, 前 부천국제만화축제 사무국장, 前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