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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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70년대 : (12) 대통령은 살아있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을 살펴보면 시대정신이 뽀얗게 드러난다. 대통령의 통치 철학이 곧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사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잘 해도 좋은 말 듣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재임 기간 중이나 퇴임 후 비자금, 친인척 비리로 시달리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권력의 정점인 만큼 견제는 필수적이다.

2013-01-08 장상용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을 살펴보면 시대정신이 뽀얗게 드러난다. 대통령의 통치 철학이 곧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사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잘 해도 좋은 말 듣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재임 기간 중이나 퇴임 후 비자금, 친인척 비리로 시달리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권력의 정점인 만큼 견제는 필수적이다.
 
2012년 12월은 대단히 흥미로운 사회학적 지점이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51.6의 득표를 차지하며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최다 득표이며,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란 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19일 오후 6시 개표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의 당선이 낙관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투표율이 75.8로 치솟으면서 야당에게 유리하다는 예측이 나왔다. 출구조사도 오차 범위 내의 접전이었고, TV토론에서도 박근혜의 말솜씨를 칭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선거 전날 문재인이 박근혜를 역전했다는 비공식 여론조사 결과가 여기저기 돌았다. 실제로 의사와 약사, 한의사, 간호사 등 보건, 의료, 복지계 종사가 2만 4000명이 투표 하루 전날 문재인 지지 성명을 내기도 했다. 분위기 상으로는 역전되는 듯한 기류가 형성됐다.
 
막상 뚜껑을 열자 “지역 균형 발전과 대탕평 인사로 대통합을 이루겠다”며 ‘대통합’을 외친 박근혜가 앞서나갔다. 전국 개표 30대가 된 시점에서 공중파들은 박근혜의 얼굴 옆에 ‘(대통령 당선) 유력’이란 두 글자를 박아 넣기 시작했다. ‘대통합’이란 시대정신이 박근혜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원동력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아마도 박근혜의 재임 기간 동안도, 퇴임 후에도 그녀를 규정짓는 단어로 남을 것이다.
 
대선과 겹친 시기에 <레미제라블>이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담론을 형성한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빅토르 위고가 이 소설을 발표한 지 150주년 된 해라는 의미와 함께 소설, 뮤지컬, 영화, 연극 등이 모두 인기를 얻었다. <레미제라블>만큼 시대정신을 강력하게 울리는 작품은 드물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으로 남게 된 이유다.
 
첫째 혁명의 정신이다. 왕과 귀족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고, 장발장 같은 이는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에서 19년을 복역한다. 귀족의 아이를 임신하고 공장에서 쫓겨나 창녀가 된 코제트의 엄마 팡틴은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하층민들을 대표한다. 그 울분이 쌓이고 쌓여 프랑스 혁명이 촉발됐다. 자유, 평등, 박애를 목숨과 맞바꾼 다수의 시민에 의해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졌다.
 
둘째 자베르 경감이 추구하는 법치의 정신이다. 그는 동료들로부터 “법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법의 수호자로서 ‘한 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란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장발장에 대한 추격을 멈추지 않는다. 자베르란 인물은 당시 프랑스가 계급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법치에 의존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법치의 정신은 장발장을 만남으로써 산산조각 난다. 법치의 틀로 해석할 수 없는 장발장과 만난 그는 스스로 모순에 빠지며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셋째 빅토르 위고는 사랑과 관용의 정신을 부르짖는다. <레미제라블>의 등장인물들은 어느 지점까지 선 혹은 악의 한 편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변화 이전의 장발장은 “나는 천사보다 더 선하거나 악마보다 더 악한 인간 중 하나가 되겠다. 중간은 없다”고 외친다. 변화 이후의 장발장은 선과 악을 뛰어넘는 인간이 된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며 휴머니즘이다. 
   
대선 직후 <레미제라블>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이 작품에선 왕정 세력과 나폴레옹을 추앙하는 시민 세력의 대립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야권 지지자 일부는 패배한 문재인 후보를 정부군의 총에 맞아죽은 시민군 대장 앙졸라에 대입시켜 보며 이 작품에 빠져들었다. 반면 여권 지지자 일부는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를 괴롭히는 자베르’라고 해석했다. 양측 모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레미제라블>에 대입한 후 측은지심의 감정에 도취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과 관용의 정신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게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보는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정치 논리에 빠져 작품을 작품 그대로 즐기지 못하게 된다면 불행이 아니고 무엇일까. ‘대통합’이 절실한 시대. 그런 현상을 보면서 나는 시대정신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만화는 온갖 잡풀과 넝쿨에 가려진 시대정신을 말끔하게 깎아 형상화하는 조각칼 같은 존재다. 조각칼을 든 만화가의 개성이 그 형상을 특징지어준다. 특히 시사만화는 권력을 풍자하고, 그것의 실체와 모순을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역할을 해왔다. 김종필 전 총리하면 이젠 모두들, 앞 이빨 두 개를 드러낸 ‘토끼아범’을 떠올린다. 이 ‘토끼아범’ 캐리커처는 당사자인 JP가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외면과 내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즐겁고 유쾌한 느낌을 갖는다. 이 역시 만화의 공이다.
 
이미지 소개 : 대통령, 만화와 만나다전에서 자신의 캐리커처화를 둘러보고 있는 만화가 박기정. 일간스포츠 장상용기자 제공
 
여기서 잠시 만화적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대통령들을 등장시켜 <박물관은 살아있다>같은 영화를 찍는다고 하자. <박물관은 살아있다>에선 유명 인물들의 모형이 입장객의 출입이 금지되는 밤만 되면 살아 움직인다. 그 정도가 아니라, 치고 박고 난리가 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대통령, 만화와 만나다’전(2012.12.21~2012.3.31)의 전시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건 무리일까? 이 전시는 만화 혹은 만화 인접 분야의 작가들이 박근혜를 포함한 대통령 10명을 캐리커처 및 조형물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1대부터 18대 대통까지 횡으로 줄세운 공간이다. 각 대통령의 모형은 전임자와 후임자를 옆에 두고 있다. 대통령 10명의 캐리커처와 작품들이 살아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시대와 대통령, 만화가 뼈와 살, 핏줄처럼 한 몸을 이룬다. 우선 각 대통령의 프로필을 한번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이승만(1~3대, 1875~1965)
윤보선(4대, 1897~1990)
박정희(5~9대, 1917~1979)
최규하(10대, 1919~2006)
전두환(11, 12대, 1931~ )
노태우(13대, 1932~ )
김영삼(14대, 1927~ )
김대중(15대, 1924~2009)
노무현(16대, 1946~2009)
이명박(17대, 1941~ )
박근혜(18대, 1952~ )
 

  
  
  
  
  
  
  
  
  
  
    
  
 * 칼럼에서 소개한 이미지는 글 사이에 배치된 석고상 형태의 캐리돌 이미지이다. 글 옆부분에 소개된 이미지는 박기정 작가가 그린 역대 대통령 및 대통령 당선자의 캐리커처로서 박기정 작가의 작품이나 글에서 소개한 이미지와는 다르다.     
 
시사 만화가들은 이들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국내 시사 캐리커처의 최고봉인 박기정은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근혜 당선인까지의 모습을 석고상으로 제작해 출품했다. 중앙일보에서 33년 3개월 재직하는 동안 제1, 2 공화국의 정치인들을 인터뷰하며 캐리커처로 그린 박기정의 작품은 간단하면서도 핵심을 짚어낸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작품에선 언론인 출신의 균형감각과 고수의 노련함이 묻어난다. 이승만은 한 손에 ‘건국’이라는 작은 가방을, 다른 한 손에 ‘망명’이라는 큰 가방을 가지고 있다. 이 전시의 개막식에 참석한 박기정은 “건국의 대통령이지만 망명으로 쫓겨났다”고 말했다.
 
 
   
   

  
  
  
  
  
  
  
  
  
  
  
  
  
  
  
  
  
  
  
  
   
 
롱코트를 입은 멋쟁이 윤보선은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쓰인 깃발을 오른손에 들고 있다. 윤보선이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이다. 4대 대통령인 그는 1961년 5.16이 일어나자 1962년 3월 23일 국가재건 노력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하야했다.  
   
1963년 10월 15일 5대 대선에 민정당 후보로 출마한 윤보선은 민주공화당 후보로 나선 박정희에게 15만 6026표차, 대선 사상 최소표 차로 아슬아슬하게 패배한 뒤 "부정선거와 관권선거가 자행됐기 때문에 졌다. 내가 사실상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외쳤다. 이후 정치혼란이 이어졌고, 윤보선과 박정희는 정치적 라이벌로 지냈다. 윤보선은 불운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행했다고 해야 할까. 박기정이 제작한 윤보선의 얼굴에선 ‘내가 대통령’이라는 자존심과 울분이 엿보인다.
 
 
 
박기정 버전의 박정희는 아주 강단 있는 인물이다. 박정희가 왼손에 든 삽이 그의 키보다 훨씬 커서 웃음을 자아낸다. 그의 굳은 얼굴만 보면 아주 심각하기 짝이 없는 작품인데도 관람객의 미소를 끌어낸다.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다. 왼손의 삽은 경제건설을, 오른손의 권총은 쿠데타를 상징한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 작품을 본 박재동은 “박기정의 출품작 중 박정희가 가장 마음에 든다. 박정희는 공포정치와 경제건설 두 가지를 다했다. 18대 대선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딸에게 (정권을) 물려주었다. 그 때 상황이 정확하게 표현됐다. 명확하게 드러나서 좋다”고 말했다.   
       
   
   
   
 

 
  
  
  
  
  
  
  
  
  
  
  
  
  
  
  
  
  
  
  
  
  
    
최규하는 우울한 얼굴로 입에 지퍼를 물고 있다. 그는 1995년 전두환의 내란죄 등을 조사하던 검찰이 출석증언을 요구하자 대 국민담화를 발표한 후 <주역>에 등장하는 ‘항룡(亢龍)’이란 표현을 써서 검찰요구에 불응했다. ‘항룡’은 권력의 정점에 이른 인물도 언젠가 회한을 갖고 물러난다는 뜻을 가진 ‘항룡유회(亢龍有悔)’에서 따온 말이다.  
   
최규하는 자신을 줄곧 고귀한 인물을 뜻하는 항룡에 비유하곤 했다. 박기정 버전의 최규하 가슴에 쓰인 항룡(亢龍)이란 글귀는 전직 대통령의 위치는 항룡의 위치와 같아 검찰의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뜻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한 검사는 이에 대해 ‘일선에서 물러난 힘없는 사람으로 전직 대통령을 전직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의 일을 가지고 재판에 회부하려고 하는 것은 정치행위의 일종이고 증언한다는 것 자체도 정치에 간여하는 것으로 되니 나는 그러한 정치행위에 가담할 수 없소’라는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박기정은 “최규하는 전두환에게 공격당했고 (그 일에 대해)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박기정은 전두환을 스님으로 만들어버렸다. 전두환의 목엔 염주가, 손엔 ‘5.18’이라고 적힌 목탁이 들려있다. 대머리와 목탁이 그럴싸하게 어울린다. 박기정은 “전두환은 광주사태로 학살을 불러온 장본인이다. 평생 목탁 두드리며 참회하란 뜻”이라고 밝혔다. 요즘 말로 참 간지나지 않는가. 
 

 
   
   
   
   
   
   
   
   
   
노태우가 들고 있는 건 ‘물’이라고 적힌 깡통뿐이다. 노태우는 재임 기간 ‘보통 사람’을 부르짖으며 ‘물태우’란 별명을 얻었다. 박기정 버전의 노태우는 그 자체로 ‘물태우’다. 노태우는 군사정부에서 민간정부로 권력이 이양되는 중간에 있던 인물로 숱한 풍자의 대상이 됐다.
   
 

 
   
   
   
   
   
   
   
   
   
   
   
   
   
   
   
   
   
   
   
   
파란 목도리를 두른 김영삼 역시 ‘IMF’라고 적힌 빈 깡통을 들고 있다. 한 마디로 비싼 목도리만 두른 거지꼴이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그가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김영삼에게 다른 공로가 있다는 표시는 어디에도 없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새 정부 출범은 처음부터 엉망이었다. 김영삼이 임명한 김상철 서울시장은 그린벨트 훼손범이라는 도덕적 결함이 드러나 7일 만에 물러났다. 소설가 김홍신은 <대통령, 정신차리소!>라는 책에서 ‘그해 세밑에 대통령직을 걸고 쌀시장 개방을 막겠다고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대통령(김영삼)의 죄값으로 무려 열네 명의 각료들이 경질당하는 참담한 정부가 되어버렸다’고 썼다. 
   
문민정부 시절에 부정부패도 많았고, 각종 사건, 사고도 헤아릴 수 없었다. 성수대교 참사와 삼풍백화점 참사, IMF 등 대형 참사가 왜 하필 문민정부에서 한꺼번에 일어났을까라는 의구심이 국민들의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였다. 조선시대 임금은 나라에 가뭄이 들면 자신의 부덕을 탓하며 하늘에 용서를 구했다고 하는데, 그 쯤 되면 일련의 사건들은 대통령에 대한 하늘의 책망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 사건들 상당수가 과거 정권들이 뿌려놓은 씨앗이긴 했지만. 박기정은 “YS는 가장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가장 비참하게 퇴장한 대통령”이라고 한 마디로 압축했다.  
   

 
   
   
   
   
   
   
   
   
   
   
   
   
   
   
   
   
   
   
   
   
 
박기정 버전의 김대중은 검은 표지에 ‘햇볕 전도사’라고 적힌 성경책을 들고 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청년 같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노벨평화상 수상. 그는 동족 간의 화합과 화해라는 민족의 숙원과 시대정신을 구현했다. 박기정은 “DJ는 햇볕 전도사로 세상을 돌아다녔다”고 평했다.  
   
   
   
   
   
   
   
   
   
   
   
 
 
김대중 정권을 계승한 노무현은 검은 폭탄을 든 호기로운 투사의 모습이다. 폭탄에는 ‘부자稅(세)’라는 글자가 붙어있고, 폭탄 심지는 이미 불이 붙어 타기 시작하고 있다. 부의 재분배,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한 노무현은 기득권층에겐 과격하다는 반감도 주었다. 그의 생은 63세로 부엉이바위에서 마감됐다. 박기정은 “노무현은 부자세를 때림으로써 공격도 많이 받았다”고 요약했다.  
   
   
   
   
 
 
 
   
   
   
   
   
 

  
 
 
   
   
   
   
   
   
   
   
   
   
   
   
   
   
   
   
   
   
   
   
      
이명박 석고상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꼼꼼한 지 알 수 있다. 이명박의 오른쪽 주머니에는 ‘747공약’이, 왼쪽 주머니에는 ‘내곡동?’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오른쪽 주머니는 아예 구멍이 나 있다. 왼쪽 주머니 둘레는 박음질 자국이 뚜렷하다. 아직 구멍이 나진 않았다. 이명박은 대선에서 ‘매년 7 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달성, 세계 7대 경제대국 진입’을 내걸어 대통령이 됐다.  
   
국민들은 경제발전을 기대하며 이명박을 선택했지만 5년이 지나고 보니 ‘747공약’은 공염불이 됐다. 박기정은 “MB는 ‘내곡동(?)’ 주머니에 속에서 손을 주물럭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곡동(?)’ 주머니는 고민스러운 MB의 심리를 은밀하게 표현한 방식이다.    
   

   
   
   
 
   
   
   
   
   
   
   
   
   
   
참고 이미지 : 박기정 작가가 그린 제 18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캐리커처와 캐리돌    
   

 
   
   
   
   
   
   
   
   
   
   
   
   
   
   
   
   
   
   
   
         
   
 
 
캐리돌 작가 양한모의 스펙트럼은 박기정에 비해 좀 더 좌편향적이고 풍자의 강도도 높다. 그는 친절하게도 캐릭돌 위에 대통령의 명대사를 한 마디씩 첨부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승만이 귀국 후 독립국가를 세우자며 국민들에게 촉구한 구호다. 여행가방을 들고 망명길에 나선 듯 보이는 이승만이 그 구호 아래에 있는 모습이 역설적이다.
 

 
 
 
 
 
 
 
 
‘나는 정신적 대통령이다!’라는 말풍선과 함께 역동적인 동작으로 성냥불을 불이고 있는 윤보선의 캐리돌은 박기정의 석고상에 비해 도전적이다. 같은 대사를 인용했지만 양한모는 윤보선의 행위를 더 적극적인 저항으로 해석해내고 있다. 마치 박기정 버전의 노무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는 박정희의 잘살기 운동 구호였다. 양한모 버전의 박정희 캐리돌은 권총을 찬 군인의 모습이다. 문제는 이 캐리돌 전체가 은색으로 덮여 있어 영화 <터미네이터2>에 등장하는 은색의 매끈한 액체로봇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은색의 액체로봇은 치가 떨리도록 끈질기게 주인공 일당을 쫓아다닌다. 그것은 제거 불가능할 정도로 무서운 살상 무기다. 나는 작가에게 은색 박정희의 정체를 물어보진 않았다. 제3자로서 해석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다.
 

 
전체 인형 중 2개만 온몸이 은색이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말풍선과 함께 골프를 치고 있는 전두환이 또 다른 하나다. 그런데 전두환은 골프채 대신 총을 들고 있다. 작가는 전두환의 의식 속에 아직도 반성의 싹이 자라고 있지 않음을 끄집어낸다. 무지막지하게 국민들을 일터로 몰아붙인 박정희나 총을 휘두르며 권력을 농단한 전두환은 터미네이터로 비춰지고 있다.
 
 
 
 
 
 
 
 
최규하는 여기서도 불쌍하다. 그의 말풍선은 ‘...’으로 채워져 있다. 애매한 표정으로 검은 코피를 주르르 흘리고 있는 최규하는 바보스럽게 보인다. 얻어맞고 아무 항변도 못하는 약자의 이미지. 그것이 대통령의 모습이었다니, 또한 역설적이다.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는 말풍선과 함께 서 있는 노태우는 사람이 아니라 아예 허수아비다. 소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한 주인공들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는 허수아비를 멋진 남자로 만들어놓았지만 이 전시회의 노태우 캐리돌은 허수아비의 가치를 더욱 떨어트린다. 노태우 허수아비는 이중적으로 해석된다. 하나는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는 허수아비, 다른 하나는 전두환의 허수아비. 그래서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는 말은 미안하지만, 전혀 믿을 수 없게 된다.
 

 
 
 
 
김영삼은 상당히 젊게 보인다. 그렇다고 김영삼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김영삼의 캐리돌은 ‘닭모가지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치며 ‘IMF’라고 적힌 튜브를 타고 해변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다. 이 ‘닭모가지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김영삼이 야당 총재 시절 군사정권의 탄압에 맞서 꿀리지 않고 내지른 유명한 일갈이다. 정치인 김영삼은 다른 건 몰라도 젊은 시절 대단히 당당하고 뚝심 있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신념이나 주장만을 고집하다가 IMF를 불러왔다는 의미로 이 캐리돌을 바라본다면 김영삼은 철없거나 독선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허영만은 김영삼의 재임 기간 동안 그의 명대사를 비틀어 <닭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온다>라는 정치 만화를 발표했다. 허영만이 김영삼을 겨냥해 그런 만화를 제작한 것이었을까. 그는 서문에서 ‘정치인들은 욕심이 많다. 권력 잡기가 지상목표이고 권력 주위에 기생하길 좋아한다. 항상 배신과 음모를 꿈구고 국민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기만하려 한다. 닭목을 비틀면 새벽이 안 올지도 모른다는 위험천만한 당착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정치인에게 혐오를 주자!’라고 썼다. 김영삼이 젊은 시절 호기롭게 내지른 외침은 대통령이 된 그를 향한 부메랑이 된 듯하다.
 
김대중은 ‘행동하는 양심!’이란 말풍선과 함께 한반도기를 손에 들고 있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를 표시하는 지팡이가 눈에 띄긴 하지만 얼굴만큼은 청년처럼 동안이다. 역시 ‘햇볕’에 대한 다른 긍정론이다.
 
노무현은 노란 풍선을 하나 공중에 날렸지만 터져버린 풍선을 발바닥에 잔뜩 깔고 있다. 그의 지지자들은 분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말풍선은 ‘운명이다!’ 한 마디다. 노무현은 이상론자였던 걸까. 그가 꿈꾸었던 수많은 이상과 혁신안은 터져버린 풍선이 된 셈이다. 일이란 대통령일지라도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슬퍼할 필요도, 기뻐할 필요도 없다. 모두 운명일 뿐이니!
 

 
 
 
 
 
 
 
 
 
이명박은 ‘흙’을 삽으로 떠서 4대강에 쏟아 붓고 있다. ‘녹색성장’이란 말풍선에 열심히 일하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은 얼핏 보면 대단히 긍정적이다. 그런데 조금만 눈을 크게 트고 보면 그게 아니다. 흙인 줄 알았던 물체는 신사임당이 새겨진 5만원권 지폐다. 반전이다. 4대강에 국민세금을 마구 쏟아 넣고 있는 대통령. 만약 이것이 전적으로 작가의 오해라면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측면에서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참고 이미지 : 강한모 작가가 만든 제 18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캐리돌       
   
마지막으로 그래픽 아티스트 김지윤의 인물 그래픽은 더욱 시니컬하다. 20대 작가의 시각은 앞의 중견 작가들과는 또 다르다. 자신을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주장한 윤보선은 안경만 있고 얼굴 나머지 부분은 있으나마나 한 선으로 표현됐다. 김지윤은 “윤보선은 존재감 없는 대통령이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공장과 총, 칼, 탱크 등은 하나도 없이 아파트만 갖고 박정희를 표현했을까? 작가가 어리다 보니 시대를 잘 이해하지 못한 탓일까? 김지윤은 “박정희 시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아파트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자신의 시각을 굽히지 않았다.
 


  
  
  
  
  
  
 
이명박은 머리 위에 얹어진 포크레인 두 대 덕분에 뿔이 난 ‘악마’가 되고 말았다. 대통령으로선 억울한 측면이 있겠지만 젊은 작가의 시각을 넓은 아량으로 포용해주길 바란다. 대통령이 이 그림을 직접 본다면 뭔가 느끼는 바가 있을 것 같다.  
 
전시를 둘러본 박재동은 “대통령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많아지고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측근들이 이런 전시를 감추는데 급급해선 안 된다. 대통령은 이런 전시를 보고 ‘나는 국민들에게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해보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자, 마지막으로 박근혜다. 박기정 버전의 박근혜 석고상은 미소와 함께 한 손을 흔들고 있다. 그의 발 옆엔 가방 하나가 놓여있는데 아무런 네임태그도 붙어있지 않다. 박근혜가 어떤 대통령인지 알고 싶다고? 역시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존재가 바로 만화가다. 박기정은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가 어떨 지는 (청와대를) 떠날 때 보아야 한다.”  
필진이미지

장상용

작가, 만화평론가
초이락컨텐츠컴퍼니 웹툰사업팀장, 前 부천국제만화축제 사무국장, 前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