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를 물병에 든 생수 마시듯 소비하는 세상.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판타지에서 자유로움과 편함을 느낀다.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에 걸쳐 인기를 누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은 외계인 도민준이다. 그는 400년을 지구에서 살아왔으며, 3개월 후면 자신의 별로 돌아가도록 예정돼 있다. 그 드라마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설정이 황당하다며 항의의 머리띠를 두르는 사람은 없다.
불륜이든, 이혼이든, 불치병이든, 교통사고든 간엔 ‘현실’만을 다뤄온 대한민국 드라마의 리얼리즘 문법은 붕괴됐다. 사람이라기엔 애매한 존재가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은 것은 이런 현상의 전조였다. 2005년 첫 등장한 <안녕 프란체스카>의 주인공들은 흡혈귀 가족이다. <해를 품은 달>같은 드라마는 현실적으로 보이려고 신경도 쓰지 않고 사극에서 대놓고 판타지를 추구한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만화적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이미지 :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중 한장면
그렇다면 판타지가 대중문화로서 은밀하면서 광범위하게 퍼진 출발점은 언제였을까? 전두환의 5공화국이 출범과 함께 3S(Screen, Sports, Sex) 정책으로 대중의 숨통을 살짝 트여준 1980년대 초였다. 그 효과는 담배를 전혀 피워보지 안았던 사람의 폐에 들어간 한 모금의 담배연기처럼 대중을 핑 돌게 하기에 충분했다. 각각 서양과 동양에서 촉발된 전혀 다른 두 가지 판타지가 그 시대에 방점을 찍었다.
1982년 2월 6일 서울극장(종로3가)에서 개봉한 에로영화 <애마부인>은 문화적으로 척박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남자들의 은밀한 판타지를 폭발시켰다. 지금이야 포르노를 남녀노소가 ‘야동’이라며 귀엽게 부르는 것이 센스로 통하는 시대가 됐지만 당시 <애마부인>은 다이너마이트 같은 위력으로 남자들의 참을성을 무너트렸다.
정부가 통금해제, 그에 따른 유흥업소 심야영업금지 해제, 영화 검열 완화, 심야극장 상영 허용 등을 발표하자, <애마부인>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왔다. 이 영화가 검열과 해방을 병행하는 모순적 정책 속에서 탄생한 사실은 제목에서 드러난다. 공윤(공연윤리위원회) 검열 들어간 한문 제목은 ‘愛馬婦人’이었지만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영화 포스터에 ‘愛麻夫人’으로 인쇄됐다. 슬립 하나만 입은 것으로 보이는 ‘애마’ 안소영이 관능적으로 몸을 비틀고 있는 영화 포스터는 노골적이었다. 개봉 당시 지금처럼 좌석제가 아닌 극장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유리창이 깨질 뻔했다는 ‘전설’까지 만들어졌다. 심지어 5공화국의 과외금지 조치로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한 대학생들도 심야상영 혹은 동시상영 극장에서 안소영의 가슴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밖에선 분노한 대학생 시위대와 5공화국 전경들이 연일 전쟁에 가까운 몸싸움을 벌였지만, <애마부인> 상영관만은 별세계였다. 대낮에 적이 되어 격렬하게 멱살잡이를 하던 대학생과 전경도 밤엔 옆 좌석에 나란히 앉아 함께 숨을 헐떡거렸다. 정인엽 감독이 제작한 <애마부인>은 관객 31만 5000명을 동원하며 그 해 한국 영화 흥행순위 1위를 차지했고, 이후 12편의 장기 시리즈물이 됐다.
사실 <애마부인>의 모델은 1974년 프랑스에서 제작돼 1994년 한국에서 첫 개봉한 <엠마누엘 부인>(‘애마’와 ‘엠마누엘’의 발음이 비슷한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이었다. 비행기 안이든, 고풍스런 저택이든, 박물관이든, 야자수 우거진 태국의 수영장에서든, 어디서든 남자를 받아들이고, 반대로 남자를 덮치기도 하는 실비아 크리스텔의 풍만한 몸매와 푸른 눈빛을 거부할 수 있는 남자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엠마누엘 부인> 시리즈는 나름 영상미가 뛰어나 단순히 B급 애로물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부류였다. 우아하고, 원초적이고, 야릇한 이국적 이미지. 촉촉하고, 부드럽고, 도발적인 눈빛. <엠마누엘 부인>을 본 남자들은 끈적거리는 실비아 크리스텔의 잔상에서 허우적거렸다. 안소영이 야한 슈미트를 걸치고 노브라, 노팬티로 말을 탄 채 해변을 달리는 <애마부인>에선 <엠마누엘 부인>의 감각적 연출을 벤치마킹한 흔적이 역력하다.
1980년대 초에는 여자가 대담한 성적 욕구를 갖고 있는 모습 자체가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온갖 ‘부인’ 시리즈를 만들어낸 원조는 1981년 개봉한 셀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외화 <차타레 부인의 사랑>이었다. 그 때 심어진 서양 판타지가 <애마부인>을 포함한 후발 ‘명작’들의 출현에 힘입어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브룩 실즈의 <블루 라군>, 피비 케이츠의 <파라다이스> 등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부터 황홀한 판타지였다. 국내에서 정상적인 경로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누구든 보지 않은 사람은 없는. 그래서 1980년대 초, 중, 고등학교 남학생 교실에선 브룩 실즈나 피비 케이츠의 사진이 흔하게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실비아 크리스텔에 비견할 섹스 심벌은 없었다(후에 마돈나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녀를 그 세계의 지존으로 만든 작품은 1982년 7월 서울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개인교수>였다. 국내 개봉 제목은 다른 설명 없이 오직 한문으로만 ‘個人敎授’라고 달았다. 엄마 없이 부유한 아빠와 저택에 사는 외로운 15살 소년에게 젊은 가정부가 이렇게 말한다.
“내 알몸이 보고 싶어? 그럼 오늘밤 내 방으로 와!”
소년은 ‘베테랑 교수님’의 품 안에서 어른이 된다. 영화 전반부에서 주인공이 공항에서 아버지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흐르는 곡이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Fantasy라는 점은 중요한 포인트다.
재미있는 건 국내 수입업자가 이 영화를 대학생 과외금지 및 해금 조치와 연결시켜 마케팅 했다는 점이다. 개봉 62일 만에 30만 관객을 동원한 전작의 흥행에 힘입은 <속 개인교수> 포스터는 ‘실비아 크리스텔의 사랑학! 과외해금 물결 타고 장안에 개업’이라는 문구를 달고 있다. ‘스승’, ‘교수’, ‘공부’ 등에 약한 한국 사람들의 심리를 공략한 전략은 기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2014년 1월 20일 세계적 명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타계하자 트위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내게는 클라우디오 아바도하면 실비아 크리스텔 같은 한 시대의 상징같은 존재였다는….’
누군가에겐 실비아 크리스텔이 카랴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 지휘봉을 잡았던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동급인 것이다. 거기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심정만큼은 이해해줘야 하지 않는가. 그에겐 정직한 표현일 것이므로.
동양 판타지인 무협도 비슷한 시기에 남자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재학, 천제황, 황재, 황성, 하승남 등이 판타지성 강한 무협만화로 진화한 시점도 그 무렵이고,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가 1986년 한국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무협(武俠)’이란 장르를 따지자면 그 기원을 중국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전란이 끊이지 않던 중국에선 ‘협객’이란 존재가 나름 대접을 받았다. 시대가 어지러울수록 사람이란 강자를 벌하고, 약자를 도우며, 정의를 실행하는 협객에 의존하고 싶기 마련이다. 중국인들은 의리를 숭상해 협객의 살인까지도 관대하게 보아주었다.
굳이 따지자면 <삼국지>의 ‘오호장군’ 관우가 협객 출신이다. 관우는 젊은 시절 고향인 산서성 하동군 해현에서 친구의 원수를 갚아준다는 명목으로 세력가 한 사람을 살해했다. 그의 고향인 산서성은 내륙 지역이었지만 하동군 해현에는 염도가 높은 소금 호수가 자리했다. 따라서 소금이 귀한 하동군에서 해현의 소금 산업은 매우 큰 이권이었다. 이권다툼 속에서 관우는 청탁을 받고 한밤중에 담을 넘어가 상대방의 실력자를 암살했다. 그런 과거는 관우가 사후 ‘관성제군(關聖帝君)’으로 격상되는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지금도 가장 중국인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협객상은 당나라 시대 작가 두광정의 무협전기 <규염객전>에 등장하는 협객 규염객이다. 군웅이 할거하던 수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규염객은 훗날 당나라 태종이 되는 이세민에 반해 그와 다투기를 멈추고 국경을 벗어나 부여국을 연다. 무술 대결 장면이 묘사되고 있지는 않지만 <규염객전>은 무협소설의 길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다른 당나라 시대 무협전기로 배형이 쓴 <곤륜노>도 살펴봐야 할 작품이다. 여기엔 오늘날의 무협지 주인공 같은 늙은 노비 곤륜마륵(崑崙磨勒)이 등장한다. 마륵은 선비와 권세가 기생의 사랑을 돕는데, 후에 권세가의 재상이 병사를 보내 그를 체포하려 하자 비수를 몸에 지니고 높은 담을 뛰어넘었다. 화살이 빗발치는 가운데 날개가 달린 듯 신출귀몰 사라진 그는 신기에 가까운 무공을 지닌 늙은 협객이다.
관우나 곤륜마륵에서 볼 수 있듯, 담을 넘어 도망가거나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협객의 전형이었다. 협객을 협객답게 만드는 요소는 높은 담이다. 전란이 빈번한 중국에서는 궁궐은 물론 개인의 사택도 담장을 높게 쌓았다. 중국에서 담은 나와 타인을 가르는 경계다. 중국의 왕조들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키면서 만리장성을 쌓은 것도 이민족과 자신을 구분하려는 심리로 볼 수밖에 없다.
나는 중국을 다니면서 담을 관찰해보았다. 한 번은 명과 청 시대 황제들의 제사를 지내던 북경 천단(天壇)공원을 가게 됐다. 담장 길이는 수백m 이상 계속됐다. 천단공원 담장과 나란히 난 도로의 차 안에서 눈짐작으로 가늠해보니, 담장 높이가 5~6m는 족히 됐다. 우리나라 담벼락은 이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담장이 낮은 곳에선 협객의 권위가 떨어진다. 아무나 담을 넘을 수 있다면 협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미지 : 북경 천단공원의 한 벽면. 중국의 담은 대부분 5m 이상이다. 남자 높이뛰기 세계신기록은 2m 40cm대이고, 남자 장대높이뛰기 세계신기록은 세르게이 부브카가 세운 6m 14cm다. 중국의 담장은 대략 남자 장애높이뛰기 세계신기록자 정도만 넘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 대목이 살짝 판타지다. 나는 천단공원의 담장을 보면서 협객이라면 뛰어넘을 수도 있을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거기서 1~2m만 높아도 현실적으론 불가능이 된다. 하지만 천단공원 담장이라면 협객이 어떤 도움을 입으면 넘을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중국의 역대 협객들은 어떤 수로든 그 담장을 넘었을 테니까. 그런 협객들을 보면서 중국 민중들은 약간의 상상과 과장을 보태 그들을 미화하고 영웅시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협객과 그 무공은 판타지 수준의 이야기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중국 무협은 후대에 김용, 양우생 같은 글쟁이들에 의해 문학, 역사, 철학적 요소를 갖춘 신파 무협(1950년대 홍콩에서 등장한 새로운 스타일의 무협. 구상과 수법이 새롭고, 스토리가 변화무쌍하고, 언어 구사가 참신하고, 단순히 죽고 죽이는 살벌한 이야기가 아니라 남녀 간 애정으로 수많은 갈등이 빚어진다)으로 발전했다. 대만에서는 1960년대 고룡이 신파 무협 작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중국 대륙에서 무협소설 재발행의 테이프를 끊은 것은 홍콩 신파 무협소설이었다. 1980년대 초 중국 대륙에서 가장 먼저 복권된 작가는 양우생이었고, 얼마 후 김용이 그 뒤를 이었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인 1986년 출간된 김용의 <영웅문> 3부작(<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과 후속 시리즈에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그 때는 김용의 무협지를 읽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교과서 밑에는 항상 무협지가 놓여있었다. 한 번 읽으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도록 독자를 단단히 옭아매는 김용의 필력은 ‘神筆’로 불렸다. 나 역시 그의 노예 중 한 명이었다. <녹정기>까지 다 읽고 김용의 번역작을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됐을 때에야 비로소 국내 출간된 와룡생과 고룡의 작품으로 시선을 옮겼다. 꿩 대신 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와룡생이나 고룡의 작품은 김용만한 흡입력을 갖지 못했다. 그것들은 김용 작품에 비하면 어딘가 단순하고, 고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 무협소설은 어디에도 없는 판타지로 만족감을 주었다. 이소룡이나 성룡의 무술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예를 들면 남송 시절을 배경으로 한 <사조영웅전>에서 주인공 곽정은 몽고군이 남송의 성을 침공했을 때 경공을 발휘해 그 높은 성벽을 자유자재로 타고 오르내리며 싸운다. 초절정 무공의 고수다운 면모다. 역사적 디테일을 중시하는 김용은 한, 두 명 영웅의 분전으로 막강한 몽고군을 막아낼 수 없는 현실을 그린다. 독자는 곽정의 무력한 부하라도 된 듯,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싸움을 지켜보게 된다.
1980년대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동양 판타지는 그 실체를 드러냈다. 무협은 아니지만 무협과 괴기를 결합한 홍콩 판타지 영화 <천녀유혼>이 1987년 제작된 후 한국으로 건너왔다. 선녀 같은 복장에 슬픈 얼굴을 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미녀 유령 역을 맡은 왕조현은 이 영화 한 편으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배우가 됐다. 장국영 역시 유령을 사랑하는 순진한 부채수금원 역을 맡았지만 진짜 뜬 쪽은 왕조현이었다. 2001년 전지현이 <엽기적인 그녀>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미녀’의 동의어는 ‘왕조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 역시 친구 집에서 비디오로 <천녀유혼>을 보고 넋이 나갔다. 당시에 <천녀유혼>을 보지 않으면 학교에서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 <천녀유혼>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사랑을 그린 독특한 멜로에 그치지 않았다. 칼잡이 우마가 요괴들과 싸우는 장면은 1983년 서극 감독이 제작한 영화 <촉산>의 무협 판타지를 계승했다. 서양 판타지 <해리포터>나 <트와일라잇>이 21세기를 평정했다고 하지만 그 전에 대한민국에 판타지의 길을 낸 것은 동양 무협이었다.
한국의 만화계도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무협이란 동양 판타지에 뛰어들었다. 1996년 대동맥 질환으로 타계한 만화가 이재학(1939년생)을 보면 한국 무협만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 수 있다. 1965년 <휴전선의 왕꼬마>로 데뷔한 이재학은 예쁜 그림 스타일의 어린이 만화를 하던 작가였다. 그가 급작스러운 변신을 한 시점은 1974년 <히라소니>를 발표하면서부터다. 향수의 만화 <유지광의 혈서 : 주먹천하> 등 삽화체의 성인만화가 히트하던 시기에 이재학도 삽화체를 그릴 수 있는 작가들을 스카우트해 ‘주먹’을 다룬 만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 그는 성룡의 <취권> 류가 대세로 떠오르던 1977년 무렵 <동서권법>을 발표하면서 무협만화가로 다시 변신을 시도했다. 이재학은 삽화체 그림을 스스로 전혀 그리지 못하는 작가였다. 말년의 <용음봉명> 그림체는 이재학이 화실을 운영하며 집단 체제로 완성한 스타일이다. 만화가 이현세는 이재학을 두고 “작가 스스로 그림을 안 그리면서 자기 스타일의 만들어 낸 건 신의 경지”라고 평한다.
이재학과 이현세의 에피소드 한 가지. 무협스타일의 사극 <국경의 갈가마귀>를 발표한 이현세는 1980년대 초 한 다방에서 이재학을 만났다. 선배인 이재학은 뜻밖의 부탁을 했다.
“현세, 현세는 뭐든 다 해도 괜찮으니까 무협만 건드리지 말아줘.”
판타지 자체를 썩 좋아하지 않던 이현세는 흔쾌히 답했다.
“알겠습니다. 전 무협에 소질 없어서요. 안 그리겠습니다.”
이현세는 이재학이 타계할 때까지 그 약속을 지켰다. 그가 무협만화를 가까이 하지 않았던 또 다른 계기가 있다. “우리나라 무협만화에서 주인공이 소림사를 통째로 들어서 옮기는 장면을 보고 나와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와호장룡> 정도는 여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1980년대 초반에는 무협만화가 틀이 잡힌 상태는 아니었고, 이재학도 마찬가지였다. 이재학이 1980년대 중반 반짝 히트를 친 작품은 환주루주의 <촉산검협전>을 각색한 무협만화 <촉산객>이었다.
이재학보다 약간 먼저 히트를 친 무협만화가는 황재였다. 1968년부터 임창에게 도제식으로 만화를 배운 황재는 스승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데뷔는 1974년 했지만 갑자기 군에 소집돼 생활비가 없던 관계로 임창 밑으로 다시 들어갔다. 현대물, 첩보물, 명랑만화 등을 틈틈이 그린 그는 1975년 봄 <흑나비> 시리즈(1부 3권, 2부 3권)를 별 기대 없이 발표했다. 어느 날 출판사 관계자가 뛰어와 그에게 외쳤다.
“3부를 그려줘!”
그는 작품이 히트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썩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독자들에게 실망했다. ‘내가 공들인 기존 작품들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이번 <흑나비>는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내가 자랑하고 싶은 작품은 아닌데….’
황재의 대표작이 된 <흑나비> 시리즈는 허영만의 <각시탈>에 영향 받은 작품이었다. 두 작품 전에는 일본 소설 <구라마뎅구>를 한국적으로 각색한 김종래의 <흑가면>이 있었다.
동대문에서 만화도소매를 하며 무협소설, 만화을 내던 대룡사가 그에게 무협만화 전문 작가로 나가보라고 권유했다. 황재는 당시 대룡사와 현대물을 거래하고 있었다. 대룡사의 제안으로 시작된 작품이 영화 <007>같은 추리, 미스터리 형식을 도입한 무협만화 <소림사 108인전> 시리즈였다. 무림에 사건이 생기면 소림사가 요원을 파견해 해결하는 형식이었다. <소림사 108인전> 시리즈는 꽤 인기를 모으며 1982년부터 약 6년부터 발간됐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작화 속도를 앞당기려 한 대룡사 측이 황재에게 만화스토리작가 박하를 붙여주었다. 그것이 황재와 박하의 첫 만남이었다. 박하는 원래 대룡사에서 또 다른 무협만화가 황원철의 만화를 쓰고 있었는데 황원철이 갑자기 다른 출판사로 옮기는 바람에 일이 없어졌다. <소림사 108인전> 4권 이후 분량은 박하의 스토리로 진행됐다.
황재와 박하가 합작한 <하늘과 땅>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본격 무협을 선언하고 <촉산객> 이후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던 이재학이 박하 스카우트에 나섰다. 이재학은 그런 면에서 순발력이 좋았다. 그는 박하의 스토리를 받아 1986, 87년에 걸쳐 ‘이재학’이란 이름에 명성을 준 <검신검귀> 3부작을 발표했다. <검신검귀>가 완료됐을 때, 독자들은 주인공 추공의 죽음을 한탄했다.
황재와 이재학은 화실 운영 방식이 매우 달랐다. 황재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한 번 일한 사람과 오래 갔다. 반면 이재학은 시장에서 안 통하면 사람을 바꾸는 스타일이었다.
무협만화가 천제황은 황재에 비해 약간 늦은 1980년대 중반 튀어나왔다. 이연결이 1982년 데뷔작 <소림사>를 통해 정통 액션 스타로 떠올랐고, 천제황은 영화 <소림사3>를 만화화 해 성공을 거두었다. 1986년 이후 20타이틀로 나온 천제황의 <소림사> 시리즈는 천제황을 대본소의 주요 무협만화가 중 한 명으로 각인시켰다.
여기서 등장하는 또 다른 작가는 무협스토리작가 사마달이다. 이재학은 박하 이외에도 무협소설계에서 검증을 마친 히트작가 사마달과도 손잡았다. 사마달은 1980년 대학에 다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아르바이트로 무협소설 <절대무존>을 썼는데 출판사 네 군데서 퇴짜를 당했다. 결국 다섯 번째 출판사에서 새로운 스타일로 쓴 데뷔작 <절대무존>을 받아들였고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대박을 냈다.
이재학과 사마달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사이의 어느날, 잠실에서 만났다. 이재학은 사마달의 필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재학이 파트너를 삼은 스토리작가 박하와 사마달은 같은 무협을 써도 극과 극이었다. 박하는 강한 캐릭터를 앞세운 사실주의 스타일의 무협을 썼다. 반면 사마달은 무협소설과 같은 판타지적 요소를 무협만화에서도 추구했다. 그 때까지도 무협소설과 만화는 경계지어 있었다. 삽화체 만화가들은 장풍과 강기가 나오고, 검이 등 뒤에서 수십 개가 날아가는 무협소설의 황당한 판타지에 익숙하지 않았다. 서극의 영화 <촉산>같은 판타지를 좋아한 사마달은 이재학에게 새로운 스타일을 요구했다. 사마달이 쓴 스토리의 일부다. 거대한 륜이 날아오는데 주변의 나무들이 모두 부서지는 장면이었다. 이재학은 반발했다.
“지금 <스타워즈> 그리자는 겁니까? 누가 빈 공간에서 나무 부수면서 공격합니까?”
사마달도 이를 반박했다.
“나무를 부수는 것은 시각적 효과입니다. 이를 통해 공격하는 사람의 파워를 보여주려는 겁니다.”
이재학의 데생맨들은 이런 스타일의 만화를 그려본 적이 없었다. 사마달은 직접 일본 판타지 만화를 복사해 이재학의 데생맨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마달이 요구하는 스타일의 무협만화가 되기까지 약 1년이 걸렸다. 그 무렵 박하가 이재학을 떠났다. 그리고 사마달의 스토리를 쓴 이재학 프로덕션의 무협만화 <흑명당>이 탄생했다. 이 작품은 블랙리스트에 있는 인물들이 하나씩 제거돼 가는 이야기였다. <흑명당>이 실패했더라면 사마달은 후에 주요 무협만화가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지 모른다. <흑명당>은 반응이 좋았고, 사마달과 이재학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전반기까지 <백사풍> <흑사풍> <광사풍> 등 ‘사풍’ 시리즈를 히트시켰다. 이재학은 사마달에게 “출간 부수로 4대 작가에 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말하곤 했다. ‘사풍’ 시리즈는 이재학의 소망을 이루어주었다.
1994년 출간된 이재학, 사마달의 <광사풍>은 판타지적 요소가 다분하다. 정파와 사파의 무공을 모두 흡수한 추공이 인간의 마성을 극대화하는 지옥혈화를 얻어 400년 만에 부활을 꿈꾸는 지옥마교를 막아내는 이야기다. 지옥혈화의 마성을 빌은 지옥마교의 고수는 완전히 늑대인간으로 변해 천부의 고수들을 몰살시킨다. 사천당가 가주는 내공으로 움직이는 불꽃 암기를 자유자재로 쓴다. 사실적 무협을 추구하는 작가라면 그릴 수 없는 장면들이다. 어쩌면 일본 만화 <드래곤볼>과도 큰 차이가 없을 지도 모른다. 사마달은 2004년 원숭이의 해를 맞아 판타지 소설 <신서유기>를 일간스포츠에 연재하기도 했다. <서유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하겠다는 그의 제안이 내겐 매혹적으로 들렸다. 이미지 : 만화 <광사풍> 중
‘그들(천계 신장)의 무기는 푸르스름한 광채가 번뜩이는 육중한 언월도였는데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벼락줄기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아니 뭐, 이 따위 경우가 다 있어! 극진하게 모신다며 초청해 놓고선 문전박대도 모자라 이젠 떼거리로 덤벼서 날 죽이려고 해?” “그놈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하는구나!”’
주인공 미후왕 손오공이 천계에 벼슬을 받으러 올라갔다가 수문장들과 싸우는 장면에선 고루한 원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력한 에너지와 박진감, 유머가 넘쳤다. 미후왕이 천계에서 마구간지기인 필마온을 벼슬로 받고 부임하는 대목을 보자. 아무리 마구간지기라도 천계의 존재는 모두 옥골선풍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말 똥 치우는 너희들도 선인이냐"고 묻자 멍청하게 생긴 마구간지기들은 "우린 영원불멸하는 존재"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손오공은 "그럼, 영원히 똥이나 치워라"고 비꼬며 자신을 푸대접한 천계를 골탕먹일 작전을 짠다.
사마달은 이 작품에서 원전의 스토리를 약간 비틀었다. 손오공의 장난 때문에 저팔계와 사오정이 하계로 추방되고 500년 후 그 악연으로 셋이 다시 만난다는 인과율을 부여했고, 용궁에서 만난 선녀와의 애정관계, 동주 6마왕과의 대립 등 새로운 이야기를 삽입했다. 그것이 사마달의 진짜 스타일이다.
이후 이재학과 사마달은 <귀문세가> 등 ‘세가’ 시리즈로 다시 선풍을 일으켰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두 사람의 마지막 작품은 1995년 일본 고단샤 만화잡지 애프터눈에 연재한 <용음봉명>이었다. 사마달은 <용음봉명> 4권까지 쓴 후 손을 뗐다. 원고료 문제가 있었다. 이재학과 사마달의 성공은 무협만화에서 판타지적 요소를 더욱 강화시켰다. 사실 이재학은 굵직한 타이틀로 무협만화의 붐을 일으켰지만 양으로 경쟁하는 대본소 체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작가였다. 그만큼 이재학의 타이틀 중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황재와 사마달은 무협만화를 두어 편 합작했다. 스토리 고갈에 골치가 아픈 황재는 1990년대 초 이름이 나지 않은 무협소설가 한 명을 발탁했다. 그가 바로 야설록이었다. 야록설의 무협소설 <구대문파>를 본 황재는 야설록에게 무협만화 스토리를 주문했다. 황재는 당시 한 달에 몇 권씩 밖에 소화를 못했는데, 야설록은 8권씩 스토리를 써서 들어왔다. 곤란하진 그는 야설록을 이현세에게 소개시켜주었다. 야설록이 이현세에게 들고 간 첫 원고가 <아마게돈>이었다. 이어 이현세는 1994년 야설의 스토리로 <남벌>을 그려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사마달과 야설록은 각각 ‘사마달 프로덕션’과 ‘야설록 프로덕션’을 설립해 무협만화를 본격적으로 생산했다.
1990년대 무협만화계에서 주목할 세 개의 젊은 작가 축이 등장했다. <열혈강호>의 전극진(글), 양재현(그림) 콤비, <용비불패>의 문정후, <해와 달> <남자이야기>의 권가야(임광묵, 임석남 포함)다. 이들의 작품은 대본소 일일만화 스타일의 무협이 아니라 코믹스 버전으로 한 작가가 일관성 있게 그림을 그린 공통점을 가졌다. 1990년대 작가들 중에서도 그림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실력자들인 양재현, 문정후, 권가야 등이 개그와 판타지 강한 무협을 새로운 감각으로 연출하자 독자들은 열광했다.
이미지 : 만화 <열혈강호> 캐릭터들
무협만화는 모든 것이 가능한 동양 판타지다. 남자의 로망은 최고의 무공, 여자, 권력을 갖는 것이다. 그런 요소가 무협 안에 녹아있다. 무협을 읽는 순간 만큼은 독자가 곧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무협물이 멋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무공, 여자, 권력을 모두 가진 주인공은 그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홀연히 강호를 떠난다. 협객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기에 멋있는 것이다. 이 역시 판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