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7일을 기준으로 네이버웹툰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은 주 2회 연재 등 중복 집계를 포함해도 500작품이 넘고,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되는 독점 작품은 웹툰 1,040작품, 웹소설 1,755작품에 달한다. 카카오웹툰에서 연재중인 ‘웹툰 원작’ 작품은 234작품, ‘소설 원작’ 작품은 347작품으로 총 581작품이 연재중이다. 모든 플랫폼에 연재되는 웹툰은 비독점으로 여러 플랫폼에 연재되는 작품을 포함해 대략 4~5천여 작품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림1>네이버웹툰 메인 화면 ▲<그림2>카카오웹툰 메인 화면
독자의 입장에선 이렇게 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웹툰 한 편을 보는 데 시간을 3분으로 잡고, 연재되는 작품 추산 중 가장 적은 4,000편을 본다고 가정해보자. 3분을 4천 번 반복하면 12,000분이다. 12,000분은 시간으로 계산하면 200시간인데, 모든 웹툰을 한 사람이 다 보려면 1주일에 200시간을 웹툰을 보는데 써야 한다. 심지어 쉬지 않고 눈도 떼지 않고 3분만에 모든 웹툰을 기계처럼 읽었을 때 200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일주일은 24시간씩 7일이니까 168시간이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현재 연재되는 모든 웹툰을 다 본다는 말은 이제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됐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13년 7월만 해도 네이버웹툰과 당시 다음웹툰에 서 연재되는 모든 작품을 다 합쳐도 200작품이 채 되지 않았다. 주 2회 이상 연재하는 작품들을 포함해도 196작품이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한 회차 당 분량 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때문에 196작품을 일주일 동안 모두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틈틈이 통학길에, 이동하면서, 자기 전에, 여가시간에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연재되는 거의 모든 작품을 다 볼 수 있었던 셈이다. 정말로 다 볼 수 있었냐고? 그렇게 웹툰을 보던 사람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작품을 고를까? : 취향의 문제
이렇게 즐길 작품이 늘어나는 건 독자 입장에서는 축복이지만, 그게 너무 많아지면 작품을 고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된다. 196작품이 연재되던 9년 전에는 웹툰을 깊게 즐기는 독자는 모든 작품을 다 볼 수 있었지만, 분량이 두 배가 넘는데다 연재되는 작품이 4,000작품이 존재하는 2022년에는 모든 작품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심지어 일부 작품을 보는 것도 아주 힘든 일이다. 10%만 봐도 400작품을 보는 거고, 앞선 계산과 비교해보면 일주일에 최소한 20시간, 하루를 꼬박 투자하는 셈이니까.
그래서 최근 웹툰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가장 많이 듣는 불만이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너무 많은 작품이 있다 보니 오히려 무엇을 보아야 할지 모르게 된다. 작품은 이렇게 많은데 왜 우리는 내가 볼 작품을 찾기 어려운 걸까? 그냥 작품에 들어가서 ‘보면’ 되는 건데.
여기엔 취향의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단순히 시간만 많이 필요하다면, 이제 막 시작한 신작을 따라가면서 볼 수도 있고, 완결된 작품을 느긋하게 따라가면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웹툰은 기본적으로 재미를 위해 보는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을 가지는데, 재미는 철저히 취향의 문제로 결정된다. 또 취향은 내가 여태까지 보아 온, 겪어 온, 느껴 본 것들의 총합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각자의 취향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에 ‘추천해 달라’고 묻는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웹툰을 정말 많이 보았을 법한, 또는 문화콘텐츠에 조예가 깊은 주변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추천’을 부탁하곤 한다. 바로 큐레이션의 시작이다.
기술 발달과 큐레이션 : 넷플릭스의 경우
전통적으로 큐레이션은 미술관에서 기획자, 즉 큐레이터(Curator)가 우수한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선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콘텐츠에 조 예가 깊고, 웹툰을 잘 아는 사람에게 추천을 부탁하는 행위를 ‘큐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엄선한 작품들을 골라서 ‘볼 만한 작품’으로 소개해준다는 점에서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테마에 맞는 작품을 선정해 전시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웹툰의 경우 작품 추천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일 뿐 아니라, 이미 작품이라는 매개를 통해 같은 취향의 독자들이 댓글 등을 통해 모여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면서 ‘전문가의 추천’보다 ‘나와 같은 취향인 사람’의 추천이 더 중요해졌다. 내가 시간을 들여서 세계에 깊이 빠져들기 위해선 시간뿐 아니라 감정적 동요도 함께 발생하는데, 취향에 맞지 않는 감정적 동요는 감동보단 피로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이 나에게 맞는 작품일까’를 고민하는 피로감을 독자들이 호소한다면, 플랫폼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독자들이 플랫폼에 들어와 있는 것이 플랫폼에겐 득이 되기 때문에 더 오랜 시간 플랫폼에 독자들이 체류하도록 하는 것, 곧 작품 감상 시간을 늘리는 것이 플랫폼의 지상 과제인 것도 같은 이유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것은 단연 넷플릭스다. 단순히 ‘장르’를 기반으로 비슷한 장르를 묶어 놓는 것을 넘어 작품이 가진 특징을 수백 가지 키워드로 분류하고, 그 키워드를 다시 묶어서 특징을 도출한다. 그렇게 만든 수많은 작품의 특징을 바탕으로 작품을 추천한다. 예를 들어, 마블의 〈데어데블〉 드라마 시리즈를 감상한 사람이라면 ‘도덕적 모호함을 가진 안티히어로’가 등장하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가정하고 〈하우스 오브 카드〉나 〈나르코스〉 같은 작품을 추천하고, 〈제시카 존스〉를 좋아했던 사람은 ‘날카로운 유머와 강한 여성 리더’가 등장하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마스터 오브 넌〉을 추천하는 식이다.
이런 추천 덕분에 한때 ‘넷플릭스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다. 내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을 추천해 주길래 봤더니 내 취향에 너무나 딱 맞아 떨어지는 지점을 찾아내게 되는 경험은, 콘텐츠 소비에 소극적이던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빈지워칭(Binge-Watching, 몰아보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넷플릭스는 다시 거기서 얻어낸 데이터로 큐레이션 인공지능을 고도화하고 있다.
기술을 이용해서 ‘나보 다 나를 더 잘 아는’ 인공 지능을 통해 작품을 분석하고, 또 독자가 그동안 감상한 작품을 통해서 ‘독자가 좋아할 만한 작품’을 전해 주는 것은 완전무결한, 우리가 선택을 포기할 정도로 완벽한 기술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 큐레이션의 한계
작품이 수없이 늘어나고, 감상자의 취향이 더 고도로 발달하면서 취향 기반 인 공지능은 한계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 넷플릭스가 큰 자본을 투자한, 이른바 ‘블 록버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등장하면서 취향 기반의 감상을 교란하게 된다. 대량의 자본을 투입한 자본이 새로운 감상자를 유혹하는 한편, 이미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감상자들에게 ‘감상의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취향만으로 작품을 보지 않는다. 특히 ‘대중적’ 작품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작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작품에 더 몰리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에게 큐레이션을 맡기듯이, 대중적 작품을 선택할 때 ‘다른 많은 사람들의 선택’은 일종의 보증수표 역할을 한다. 최소한 ‘실패하지 않을’ 작품이거나, 나아가 ‘안전한’ 선택이 되는 셈이다.
결국 단순히 취향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선택’이라는 보장을 믿고 작품을 선택하면, 인공지능 큐레이션의 혼란이 시작된다. ‘이 사람의 취향으론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을 것 같은데, 왜 선택했지?’ 취향을 기반으로 다음 작품을 추천하던 인공지능은 발전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보는’ 작품을 우선적으로 추천하게 되고, 작품을 받아보는 감상자는 ‘이제는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감상자가 더 많아지게 되면 ‘감상자’의 특징을 명확하게 구분해내기도 어려워진다. 키워드가 다양해지고, 거기에 적용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일반적’이거나 ‘평균적’인 감상자보다 ‘극단적’인 감상자가 먼저 눈에 띄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다양성보단 사람이 몰리는 특정 성향에 먼저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통적으로 겪는 혼란이다. 비단 넷플릭스만이 아니라 수많은 언론사와 포털이 겪고 있는 문제, 자극적인 콘텐츠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다수’를 형성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착각이 큐레이션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이건 감상자와 제작/창작자가 관계 형성을 통해 취향을 깊게 파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인공지능이 일방적으로 분석한 데이터를 통해 제 공하는 작품 리스트로서의 큐레이션은 맞을 때는 신뢰를 얻지만, ‘정확도’만이 유일한 판단 기준이기 때문에 추천이 맞지 않았을 때 신뢰도는 더 많이 깎여 나 가게 된다. 이 지점이 인공지능 큐레이션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이나 인간의 ‘선택의 이유’에 대해 아는 게 아니라, ‘인간의 선택’이라는 정보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취향, 그 복잡한 문제
인공지능마저 혼란스럽게 하는 감상자의 선택에는 우리가 가진 시간이라는 자원이 한정적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우선 작용한다. 다시 웹툰으로 돌아와 보자. 내가 작품을 ‘보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심지어 그건 ‘모르는 세계’를 새롭게 익혀야 하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모르는 주인공과 얼굴을 익혀야 하고, 새로운 세계의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 독자들이 ‘볼 것이 없다’고 말하는 데에는 이 공포가 꽤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재미’를 위해서 웹툰을 보기로 결정한 독자들은 시간을 들여서 세계를 이해 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이 이미 이 세계와 비슷한 세계들에 익숙 한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처음 발을 내딛는 독자에겐 너무 어려운 작품이 된 다. 예를 들어 회귀, 빙의, 환생을 주요 소재로 하는 판타지 장르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웹툰 속 세계에서 연재된 소설의 주인공에게 빙의한 주인공이 계속해 서 환생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만 하는’ 세계를 그려내는 작품이라면 일 단 웹툰 속 작품이라는 세계, 회귀라는 요소와 회귀자라는 개념, 그리고 환생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모두 알아야 한다.
그런데 취향이 생겨나려면 그 세계를 깊게 감상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앞서 말한 대로, 취향은 감상자가 겪은 거의 모든 사건을 토대로 생겨난다. 이렇게 다양한 취향이 존재한다면 그걸 모두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많이 보는’ 작품만이 만들어진다면, 결과적으로 작품의 다양성은 낮아지게 되고, 작품에 새롭게 빠져드는 독자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게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실패할 위험이 있는 도전보단 보장된 이득을 선호한다. 이건 작품 선택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하는데, ‘안전한’ 작품이 새로운 독자와 취향 개발을 위해 작품을 볼 시간이 필요한 독자에겐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 큐레이션 역시 ‘안전한 작품’만을 제공한다면, 작품의 다양성과 더불어 독자의 다양성마저 해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취향 기반으로 선택하고, 애정 기반으로 함께하는 웹툰
독자와 독자의 취향이 다양한 만큼, 웹툰 작품 역시 다양하다. 매주 연재되는 4 천여 종의 작품은 모두 다른 취향의 독자를 향해 ‘나를 봐 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 중에서 ‘선택받는’ 작품은 운이 좋은 작품이다. ‘좋은 그림체’에서 ‘좋은’이라 는 말은 객관적이지 않다. 누군가는 흑백의 거친 선을 ‘좋은 그림’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깔끔한 선으로 화려하게 조형한 그림을 아름답다고 하기도 한다. 결국 이건 개인의 취향 문제고, 작품을 보는 사람의 숫자가 작품의 위대함을 말하지 는 않는다. 취향에 따라 평가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이버웹툰에서는 자체적인 인공지능 추천 서비스를 활용해 ‘인공 지능 추천’과 ‘AiRS 추천’ 기능을 활용하고 있고, 카카오페이지 역시 마이셀럽 스의 ‘AI키토크’ 기능을 활용하고는 있지만 독자들의 ‘무엇을 봐야할 지 모르겠 다’는 불만은 여전하다. 웹툰은 다른 콘텐츠와 비교하면 보다 취향 기반으로 선 택하고 애정 기반으로 읽어 나가기 때문에 인공지능 기반의 추천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취향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취향을 반영한 다면인공지능 역시 인간의 취향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런 배경 에서 또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순위에 집중해 등급을 매기는 방식의 변화다. 취향에 우월함이 없듯, 웹툰 감상에도 우열이 없다는 인식이 독자 사이 에 자리 잡는다면, 인공지능 큐레이션은 정말로 다시 ‘완전 취향 기반’이라는 조건에 집중해서 작품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화와 웹툰이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으로서 각광받는 만큼, 우리나라 문화의 근간을 형성하는 콘텐츠의 하나로서 뿌리를 단단히 하려면, ‘읽는’ 경험뿐 아니라 독자들의 취향을 보다 넓고 포용력있게 만들기 위한 ‘독자 문화’도 함께 존재해야 한다. 웹툰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또 자신의 독자 경험과 취향을 나누는 과정에서 보다 다양하고 넓은 취향을 찾아낼 수 있다면 인공지능 큐레이션과 더불어 독자들 간의 의사소통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찾아내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수없이 많은 작품에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닌, 취향의 문제임을 깨닫고 타인의 취향에 보다 포용력 있는, 순위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작품 감상 자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웹툰 읽기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