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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O와 비가의 〈화산귀환〉: 돌이킬 수 없는 세계를 위한 위로

<지금, 만화> 14호 Essay 에 실린 글입니다. <화산귀환>/LICO/네이버웹툰

2023-04-07 한기호


세계는 일회적이다. 반복되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법칙이다. 불변의 진리이다. ‘후회(後悔), 회한(悔恨), 회오(悔悟)’ 등의 단어가 만 들어지는 연유이기도 하다. 돌이킬 수 없기에 후회하고 한탄하는 것이 인간이 다. 이것은 일회적이고 단선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인간은 돌이킬 수 없는 세계를 살아가며 끝없이 후회하는 미욱한 존재들이다.

웹툰은 후회와 회한 속을 살아가는 인간 독자들에게 위안의 길을 제시한다. 그 하나가 회빙환의 방식이다. ‘회귀, 빙의, 환생을 뜻한다. 돌이킬 수 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다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축복일 수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도 저런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때 그 시절을 다시 살 수 있다면등의 어쩔 수 없는 한탄을 해소하기에 가장 수월한 방식이 회귀, 빙의, 환생이다. 환생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 몸 자체가 다시 살아나거나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회귀는 원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젊은 시절의 나, 사건 발생 이 전의 나로 돌아간다. 빙의는 다른 사람의 몸에 영혼만 들어가 그 사람으로 대신 사는 방식이다. 이 방식들은 모두 과거의 오점을 회복할 기회, 지금의 난국을 타파할 기회, 돌이킬 수 없는 세계를 돌이킬 기회를 얻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치열한 삶의 현장을 일회적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일종의 위로를 준다.

무협 웹툰에 이런 소재가 많다. 하북팽가 막내아들, 천마육성, 광마회귀, 망나니 소교주로 환생했다, 일타강사 백사부, 학사재생, 화타가 된 외과의사, 무림세가 전생랭커, 검술명가 막내아들등 대략만 살펴보아도 다양한 웹툰들이 회귀, 빙의, 환생 등을 소재로 한다. 배경만 현대로 바뀌었을 뿐 무협 웹툰의 구조를 따라가는 드라마, 액션, 판타지 등의 웹툰까지 포함하면 이 소재를 빌린 작품들의 수를 헤아리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이다. 반복적인 수행과 공부 등으로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려 자신과 맞서는 세력을 물리치고 자신만의 비전을 실현하는 것을 기본 구조로 하는 무협류 웹툰에서 이러한 소재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화산귀환역시 환생을 주요 소재로 한다. 화산파 13대 제자이며 천하 삼대 검수인 매화검존 청명이 주인공이다. 그는 천하를 혼란에 빠뜨렸던 천마와 대결하여 가까스로 승리한다. 하지만 자신도 끔찍한 부상 후에 죽는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후 거지의 몸으로 환생한다. 다시 살아난 청명 앞에 주어진 현실은 잔혹하다. 그가 목숨을 바쳐 싸웠던 천마는 사라졌으나 그의 문파인 화산은 구파 일방에서 축출된 채 몰락해버렸다. 나이 어린 거지조차도 100년 전에 죽은 천마는 기억하지만 화산파는 잘 모르는 상황. 과거의 모든 기억과 무공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청명은 빠르게 자신의 능력을 회복하며 화산파의 재건과 부흥을 위해 노력한다.

대개의 무협 웹툰은 주인공이 최고 절정의 고수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고 그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으로 전개되는 셈이다.

<그림1>〈화산귀환〉 Ⓒ LICO, 비가


하지만 화산귀환은 개인의 무공 상승이나 욕망 실현보다는 공동체의 발전과 향상이라는 가치 실현에 집중한다. 청명의 욕망은 자신의 무공 수행보다 화산파 전체의 재건과 부흥에 집중된 다. 문파의 부흥을 위해 사형들을 훈련하고, 재정을 확보하고, 미래를 계획한다.

이 부분은 화산귀환이 주는 또 하나의 위로이다. 화산귀환은 절정 고수의 주인공 한 명이 혼란한 세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는 일반 무협 웹툰 구조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물론 고난과 극복, 음모와 계략, 모험과 전투 등이 온통 청명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무협과 비슷하다. 하지만 화산귀환이 지향하는 가치는 청명 개인의 욕망 실현에 국한되지 않는다. 화산이라는 문파의 재건과 부흥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지향한다. 그 공동의 가치 실현을 위해 사형들은 나이 어린 청명에게 매를 맞아가며 무공을 배우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제 웹툰은 청명에게 훈련받은 삼대 제자들이 종남과의 화종지회에서 모두 승리한 대목에 이르고 있거니와 앞으로 이 작품의 미래는 화산파 전체가 뭉쳐 일련의 과제들을 해결하고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것도 청명 혼자가 아닌 문파가 다 함께.

개인의 욕망 실현이 최고의 가치인 세계에서 화산귀환이 던져주는 주제는 진부하지만, 오히려 새롭다. 우리가 적절히 잊으며 살아가던 그것이다.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고 함께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의 아름다움. 추구하는 가치 실현을 위해 공동체가 함께 땀을 흘리고 함께 성취 감을 맛보는 것. 이것은 경쟁을 통한 개인의 차 등적 성과급이 당연시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 정한 현실에서 낡은 도덕 교과서의 모범 답안처 럼 고풍스럽다.

 

<그림2>〈화산귀환〉 Ⓒ LICO, 비가


화산귀환의 이러한 위안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환생이라는 소재이다. 환생의 의미나 개념이 불명확하므로 청명의 상황을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환생이라고 한다면, 청명은 천마와의 대결로 죽은 후 곧바로 다시 현실 세계로 생환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청명은 다른 누구도 아닌 청명 그 자신으로 환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죽은 지 100년이 지난 뒤 초삼이라는 어린 거지의 몸에서 깨어난다. 거지의 가문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환생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어린 거지 초삼의 몸으로 깨어 나는 것이다. 이것을 환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만일 그 초삼이라는 거지의 몸에 서 깨어난 존재가 100년 전의 청명이라면 그것을 깨닫기 전까지의 몸이었던 초 삼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 존재는 어디로 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사실은 청명으로 환생하였으나 초삼으로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청명의 기 억이 되살아난 채 깨어난 것이라 해석하기에도 난감한 문제가 남는다. 그렇게 보아도 여전히 거지 초삼의 정체성 문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100년 전 청명의 기억을 가지고 어느 날 낮에 갑자기 깨어난 거지는 청명인가 초삼인가? 그가 청명이라면 그 이전까지 초삼의 존재와 삶은 어떻게 되는가? 그가 초삼이라면 청명의 기억 이전의 초삼의 기억은 어디로 갔는가? 죽기 전 청명이 남긴 회한은 후회로 요약할 수 있다. ‘가르침을 조금만 더 중히 여겼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강해질 수 있었다면 이 끔찍한 결말을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죽기 전 청명이 남긴 마지막 기억이다. 만약 주인공 청명이 100년 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다시 태어난 그 자신이라면 그가 가진 가장 큰 욕망은 더 잘 배워서 더 강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전생의 그가 남긴 최 후의 후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보다 더 강한 존재가 죽고 없는 세계의 고수 청명으로 외롭게 환생한다. 욕망으로 인해 환생한 청명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아무런 회의감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부흥을 욕망한다. 철저히 고독한 절정의 고수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그 어떤 회의감도 없이 공동체의 부활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작품이 가진 고상한 가치 지 향이 그 방법적 측면에서 철저히 개인의 욕망을 무시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근래에 많은 웹툰이 회귀, 빙의, 환생 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것이 주인공의 욕망을 풀어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세계를 일회적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가장 편안하고 만화 같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창궐하는 회귀와 환생과 빙의 속에서 어느 하나라 도 그 소재의 본질적인 고민을 다루는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회귀든 빙의든 환생이든 그것은 존재의 궁극적 변화를 뜻한다. 인간은 보편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과 존재 의의에 대해 고민하는 존재이다. 그런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채 다른 욕망을 추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회귀, 빙의, 환생 한 주인공 중 그런 본질적 고민을 하는 인물은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물론 독자의 관심이나 고민이 그에 미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웹툰이 그렇게 진지한 고민을 다루면 성공하지 못하기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웹툰이기에 가능하지도 않을까? 화산귀환의 청명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궁극적으로 고뇌하는 장면은 기대해볼 수 없을까?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므로 언젠가는 천마도 환생해야 할 것이다. 그의 욕망 역시 청명의 그것처럼 강하기에. 그 두 욕망의 대결을 위해 굳이 환생의 방법을 써야만 했을까? 존재의 본질에 대한 회의와 고뇌가 빠진 주인공의 고상한 가치 지향은 어색하다. 그 어색함은 돌이킬 수 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 욕망의 노골적인 민낯처럼 보여 민망하다. 하기야 그것이 이 세계와 인간의 특성인 것을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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