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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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는 웹툰 향유 방식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 한진서, 진세하의 〈빈껍데기 공작부인〉

<지금, 만화> 14호 Critique 에 실린 글입니다.

2023-04-08 최윤주

NFT를 키워드로 웹툰 빈껍데기 공작부인을 비평해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인기 웹툰이 NFT로 상품화된다는 말을 왕왕 듣긴 했지만 ‘NFT’작품 비평이란 말이 나란히 적힌 원고의뢰서를 보니 어쩔 수 없이 아연한 마 음이 들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만화를 읽는다는 것은 NFT쯤은 익숙하게 다 룰 줄 안다는 의미일까. 그런데 왜 난 모를까. 나도 모르게 세상이 또 한 걸음 성 큼 이동한 것일까. 소외감이 들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NFT에 대한 평균 (이하) 수준의 이해도를 가졌기 때문에 투자자가 아닌 작품을 향유하는 독자 의 입장에서 웹툰과 NFT에 관해 이야기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20221, NFT를 몰라도 NFT가 화제라는 것은 알 수 있을 정도로 떠들썩한 와중에 인기 웹툰 빈껍데기 공작부인NFT로 판매되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신수 캐릭터나 주인공이 착용한 액세서리 등을 파츠로 만들고, 이를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랜덤으로 조합했다. 아이템이 조합되는 경우의 수를 따라 총 7,777개의 각기 다른 NFT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홍보 문구로 자꾸만 등장하는 국내 최초 제너러티브 웹툰1은 이 랜덤 조합의 창작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림1>〈빈껍데기 공작부인〉 Ⓒ 한진서, 진세하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면 지금도 상품을 열람할 수 있다. 일종의 마네킹 역할을 하는 인물들의 팔, , 얼굴 등에 장신구가 둘러 있다. 웹툰 장면에 고유 식별 번호를 부여해 소유권을 상품으로 내건 형태가 아니라 작품 속 아이템을 활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든 것에 가까워 보인다.

NFT 상품화 대상으로 하필 빈껍데기 공작부인이 선택된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중에 나오는 소재들을 꺼내와 디지털 굿즈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라면 해당 작품은 매력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토끼나 고양이 외형의 귀여운 신수 캐릭터는 게임 속 펫을 연상시켜 소유욕을 자극한다. 실제로 키우고 싶다거나 굿즈로 갖고 싶다는 댓글 반응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또한 주인공 이보나의 드레스와 장신구는 매회 공들인 작화에 담겨 카탈로그처럼 제시된다. 드레스숍을 방문하거나 보석 경매에 참여하는 에피소드는 스토리상으로도 중요한 대목이긴 했지만, 이야기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뤄진 것이 정교한 드레스와 장신구의 이미지다. 마치 PPL 상품을 카메라로 응시하듯 꼼꼼하고 비중 있게 다뤄진 드레스와 액세서리는, 주인공의 차림새를 보는 것 또한 독자들에게 중요한 재미 요소였음을 드러낸다. 이렇듯 아이템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작품이니 상품화하기 용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혹은 유감스럽게도 <빈껍데기 공작부인> NFT에 대한 반 응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던 것 같다. 출시 직전에는 시끌시끌했던 기사들이 출시 이후에는 잠잠했고, 독자 반응을 알고 싶어 찾아봤지만 그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커뮤니티나 블로그를 뒤져도 이 작품의 NFT에 관한 언급은 없었고, 웹툰이 연재되고 있는 카카오페이지 작품 댓글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NFT 발행이 기사화되고 출시됐던 20221월의 댓글을 전부 뒤졌지만 관련 댓글은 없었다. 딱 하나 후기를 발견했는데, 투자 관련 블로그 게시글이었다.

댓글, 코스튬, 커뮤니티 활동, 2차 창작, 굿즈 소장 등 작품을 즐기는 방식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NFT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생경함에 당황하긴 했지만 이 역시 작품 향유 방식의 일부로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거의 완벽에 가까운 무반응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NFT 이야기가 있기 전부터 빈껍데기 공작부인을 봐왔던 독자로서 이야기해보자면, 일단은 이 작품이 NFT로 나오는 줄도 몰랐다. 몇몇 유명 작품들이 NFT를 발행하며 순식간에 완판됐다는 소식을 시사 상식처럼 접했을 뿐, 좋아하던 작품이 드라마로 나온다거나 텀블벅이 열린다는 사실처럼 독자로서 반길만한 소식으로 들려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알았다 하더라도 그다지 매력 있는 소식으로 여겼을지는 모르겠다. 작품과 동떨어진 느낌이어서 좀처럼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콘셉트가 난해한 것에 비해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서 NFT를 살 의향이 있었더라도 뛰어들기 어려웠을 것 같다.

판매 페이지의, 말하자면 일종의 디지털 마네킹이라 할 수 있는 그림들은 모두 하나 혹은 두 팔을 사선으로 한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NFT 작업에 참여트레저스클럽의 상징적인 포즈라고 한다.

<그림2>트레저스 클럽 NFT 페이지


그런데 이 반복되는 독특한 포즈 보다도 눈에 띈 것은 그림체였다. 웹툰과 비교해 한 없이 투박한 이 그림체는, 예쁘고 아니고 이전에 웹툰 빈껍데기 공작부인을 전혀 떠올릴 수 없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초현실주의 미술로 이미지의 창조와 해체 작업, 과거-현대-미래의 시공간을 넘어서는 표현을 통해 판타지 장르 특유의 분 위기를 한층 강화하고, NFT 아트로서의 독창적인 가치도 배가시키겠다는 취지로 의도된 그림체라는데, 잘 모르겠다. 전시된 NFT 상품만 봐서는 유려한 웹툰 그림과의 연관성을 조금도 찾지 못하겠고, 그래서 빈껍데기 공작부인과 관련된 무언가를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복슬복슬 귀엽던 신수도, 영롱하게 빛나던 티아라도 변형을 준 그림체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이런 의문이 든다. 만화의 세계관이란 것은 그림체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법인데 이런 식의 재창작이 정말 효과적일까? 과연 빈껍데기 공작부인작품만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화와 색감이 (NFT 상품에) 이채로운 분위기를 더할 것이라던 제작사 측의 기대가 실제로 얼마나 충족되었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아무 제약 없이 무한복제가 가능하던 디지털 자료들에 고유번호를 매기고, 이렇게 확보된 고유성을 희소성으로 치환해 거래 가치가 있는 무엇으로 창출해 내는 것. 블록체인을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삐걱거리고 기술에 관한 섬세한 이야기는 따라가기 난감하지만, 웹툰을 비롯한 콘텐츠 NFT 거래 관련해서 내가 이해하고 정리한 것은 이 정도다. NFT를 구매해도 물리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가치를 부여했기에 가치가 생긴다. 저작권은 없는데 소유권은 있다. 특별히 뭘 할 수는 없는데 아무튼 뭔가 인정이 되긴 된다.


필진이미지

최윤주

만화평론가
2021 대한민국 만화평론공모전 대상
2019 만화평론공모전 신인부문 대상, 2020 만화평론공모전 기성부문 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