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를 위시한 다양한 신기술의 접목은 미디어의 중요한 과제가 된 지 오래다. OTT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에서는 VR 기술을 이용한 작품이 스트리밍 되고 있으며, 유튜브 또한 360도 파노라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편, 웹툰에서도 이러한 시도들이 발견되는데 네이버에서 연재되었던 〈2018 재생금지〉는 VR과 AR을 작품에 적극 도입한 작품의 사례로 볼 수 있다. 특히 9화에서 완결인 13화에 그 활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현실과의 벽을 허무는 장치로서 두 기술이 차용되고 있다.
▲<그림1> 〈2018 재생금지〉 Ⓒ 네이버웹툰
웹툰이 활성화되기 이전, 출판만화에서는 지면의 특성상 정지된 페이지에 맞춰 연출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동세를 표현하기 위한 효과선이나 전면을 활용한 조감도, 컷의 섬세한 분할이 예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연출의 다양화는 지면이라는 공간적 한계가, 역으로 이를 활용하는 테크닉의 발전을 촉발시켰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웹툰의 등장으로 연출의 유동성이 확장되어 더욱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진다. 스크롤을 이용하여 긴장감을 높이는 컷의 구도나, 음악 재생 기능의 활용, 움직이는 이미지(gif)의 도입 등 독자의 오감에 더욱 생생하게 와 닿는 표현 방식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신기술에 대한 즉각적인 수용은 한편 현대미술의 생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현대미술계에서 인공지능이나 뇌파측정 기술, 인터랙션 프로그래밍 등이 빠르게 도입되는 것은 그만큼 작가들 이 작품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신기술에 촉각을 세우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최근 아르코 미술관에 전시되었던 김아영 작가의 <수리솔>은 VR 장치를 통 해 VR과 가상현실이라는 기술이 어떻게 서사를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연구하는 작품으로, 웹툰에서의 신기술 도입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2018 재생금지〉에서는 이 방법론이 장르적 특성과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공포 웹툰이라는 장르에 맞춰 VR/AR을 서사의 클라이맥스에 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즉 서사를 절정으로 진행시키는 장치로서 이 기술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특기할 것은 VR이 등장하는 모든 에피소드에서 이 기술이 공포의 대상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VR을 통해 화면을 이곳저곳 움직일 때 비로소 대상은 베일을 벗고 나머지 서사가 진행될 수 있다. VR은 ‘발견’의 역할을 독자에게 넘겨줌으로써 서사적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
AR은 9화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귀신이 깃든 인공지능 스피커 ‘누리’가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함이다. VR이 개입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AR은 독자들의 몰입을 주도한다. 이를 통해 본작에서 VR과 AR은 독자를 작품 안으로, 혹은 작품을 현실 밖으로 이동시키는 장치임을 알 수 있다. 서사의 유동성을 작품 내부뿐만 아니라 작품과 현실 간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이 장치들을 사용함으로써 독자가 작품에 참여하는 느낌을 주는 데 더해 작품이 독자 와 소통하고 있다는 감각을 전달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이러한 기술의 활용은 제한된 지면으로부터 시작된 만화가 장르적 한계로부터 도약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초기 만화는 출판을 염두에 두고 시작되었으므로 제약적인 부분이 많았다. 따라서 만화의 표현 문법은 언뜻 보수적으로 느껴질 만큼 정형적인 경향이 있다. 컷 분할의 정해진 양식들이나 정적인 지면에 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정적 연출기법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죠죠의 기 묘한 모험>에서 효과음이 하나의 일러스트처럼 그려지는 등 정형성을 비틀어 또 다른 문법으로 발전시키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장르의 매체와 섞여들수록 만화라는 영역의 수명이 연장되는 효과도 분명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트렌드에 민감하며 기술적 흐름을 적극 수용하는 독자들의 역동성과, 이에 따라 변화하는 소비 패턴을 고려해봤을 때 더욱 그러하다. 이미 메타버스 형식의 커뮤니티 ‘제페토’나 인공지능 비서 ‘지니’ 등, 다양한 신기술은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일상적으로 향유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기존의 제한을 적극 활용하는 작업에도 의의가 있지만, 이와 더불어 만화라는 장르를 확장하고 그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장르 내부에 없었던 요소들을 끌어들 이는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서사와 그림이라는 두 가지 조건은 만화를 정의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분할된 정적인 시각요소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구현하는 매체를 만화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만화는 작가들이 쌓아 올린 기예들을 통해 이 정적인 시각요소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킨 장르이다. 그렇다면 이 정의에 운동성을 추가해도 여전히 만화는 성립할 수 있을까? 신기술들이 만화에 개입하면서 주는 효과들은 바로 이 운동성에 관련되어 있다.
▲<그림2> <블랙미러: 벤더스내치> 작품 소개 페이지
호랑 작가는 VR 기술이 웹툰에 도입되기 이전부터 효과음이나 움직이는 컷들을 십분 활용하면서 웹툰계에 새로운 이슈를 가져다주었다. 지면을 ‘읽기’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듯 새로운 방식으로 만화를 즐길 기회가 생긴 것이다. 비록 일부에 서는 만화의 완성도를 기술에 의존하여 끌어올리고 지면상의 재현이라는 만화의 본질을 해친다는 의견도 생겨났지만, 지면에 동세를 생생하게 구현하는 시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충분히 유효하다. 만화에서의 핵심은 각 컷을 통한 연출기법이다. 그리고 이 컷이라는 일종의 시퀀스에 운동성을 더하는 일 이 또 표현의 방법론에 다른 방향을 개방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제시된다. 신기술을 통해 운동성을 부과함으로써 만화에 새로운 형식이 추가되고 나아가 경계를 넓히게 될 것이다.
시각적 기술의 또 다른 기대효과는 바로 개방성에 위치한다. 앞서 밝혔듯 VR과 AR은 관객을 서사에 참여시키는 역할을 부과받는다. 개 입과 몰입은 독자가 작품과 소통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며, 바로 이러한 점에서 기술의 활용이 만화계에서 촉망받을 만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흔히 알려진 ‘저자의 죽음’은 원작자로부터 한 번 산출된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 온전히 독자의 것이 된다는 개념이다. 즉 독자의 해석에 저자가 개입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이 결국 독자에게 영구히 열려 있다는 함의이며, 다른 관점에서는 개방성을 활용하는 작품이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VR/AR의 활용은 만화가 현대적인 작품관에 부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것이다. 유사한 시도가 드라마에서도 발견되는데,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인터랙션 드라마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엔딩이 분기한다. 이를 통해 시청자는 마치 게임처럼 드라마의 스토리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시청자가 작품과 소통한다는 기분을 유발함으로써 시청자를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는 〈2018 재생금지〉에서 AR에 의한 표현과도 일맥상통한다. 독자가 직접 화면을 움직이고 화면과 상호작용하면서 독자들은 작품의 일부로서 빨려 들어간다. 저자의 죽음은 언뜻 저자가 작품에 대해 무력하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지만, 반대로 독자를 자신의 작품 속으로 포섭한다는 의미 또한 갖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상의 인터랙션은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느끼도록 유발하고 작품의 개방성을 높여준다. 만화가 지면 안의 서사에 머무르는 데서 나아가 독자의 선택에 따라 무한하게 펼쳐지게 된다. 즉 VR/AR을 통한 개방성이란 서사의 주체에 개방성을 확보하여 작품색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만화가 갖는 지면의 한계를 또 다른 방향에서 보완하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
매체 표현에 있어 신기술의 도입은 만화가 갖는 폐쇄적인 면모를 타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나 이는 오직 장르적 특색에 신기술이 조화롭게 녹아들었을 때만 가능하다. 기술의 색채에 작품이 매몰된다면 앞서 언급한 비판처럼 만화가 기술에 의존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만화 고유의 색채와 매력, 지면 안에 머무르는 기예와 예술성을 보존하면서 기술은 보완책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균형을 고려하는 것 또한 만화의 방법론에서 주된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