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든 네이버가 ‘웹툰’을 통해 만화 독자를 ‘유저’로 편입시키기 시작한 것은 2005년이다. 한국만화의 미래가 불투명하던 그 시절, 그래서 웹툰이라는 용어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생소했던 그 시기에 단 두 편의 타이틀로 출발했던 네이버웹툰은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양적 확대와 질적 성장을 이뤄냈다. 웹툰 유저들의 주요 디바이스가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하던 즈음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러 네이버웹툰은 웹툰 창작자와 수요자들을 위한 독보적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작은 미약
출판으로부터 온라인으로 그리고 종이에서 웹으로, 그야말로 만화에서 보자면 세기적(世紀的)인 변화를 선도했던 포털사이트는 비단 네이버뿐만이 아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러한 거대 포털사이트들 가운데 몇몇은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이다. 부침(浮沈)이 거셌던 웹툰 무대에서 이제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 네이버웹툰의 행보는 그래서 더욱 눈여겨볼 만하다. 그리고 그 행보 속에서 우리는 변화의 흐름에 주저하지 않는 모 습을 읽어낼 수 있는데, 그에 관한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로 AI 기술을 접목시킨 웹툰을 선보였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하일권의 〈마주쳤다〉가 그것이다.
▲<그림1>〈마주쳤다〉 PC 서비스 화면
이 작품은 2017년 12월에 첫 연재가 시작되어 이듬해 1월, 그러니까 딱 두 달 동안 단 8회(이긴 하지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본문은 6회)의 분량으로 완 결된 작품이다. 헌데, 작품을 보기 위해 PC를 켰던 유저라면 프롤로그를 열면서 당황하게 될 것이다. 작품 대신 ‘웹툰 앱 업데이트 필수’라는 문구를 만나게 되 기 때문이다. 즉, 웹툰이지만, PC가 아닌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작품이라는 사실 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왜 앱이 필수여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점 이 바로 AI(인공지능) 기술과 직결된다. 가령, 카메라를 통해 유저의 얼굴을 촬영 해 작품 속 이미지로 구현시키거나 등장인물의 머리 위에 얹힌 먼지를 유저로 하여금 화면을 터치하여 털어내게 만드는 등과 같은 연출이 등장한다.
사실, 이야기로만 보자면 〈마주쳤다〉가 보여주는 내용은 크게 매력적이지는 못하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남녀의 ‘썸’을 다루는 것처럼 시작되었다가 작품 속 엑스트라로 설정된 영희와 갑작스레 작품 속에 뛰어든 ‘나’의 ‘썸’을 다루는 과정이 전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360 도로 회전하는 배경이나 유저가 직접 바람을 불어 등장인물의 머리카락을 날리 게 하는 장면 등 다른 작품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기술적 요소들은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구성할 때만큼 작가의 노고가 상당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작품을 본 독자들의 반응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가령, “독자가 웹툰에 들어온다는 건 진짜 신박하다”(닉네임 ‘차흐이’)라거나 “이번의 개척으로 전개도 내용도 좋은 걸로 나올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닉네임 ‘모스’)라는 댓글이 그러한 점을 대표해 보인다. 아울러, ‘나’가 남성으로 설정된 것에 대해 “주인공을 독자로 설정했다면 성별도 선택할 수 있게 했으면 좋았을 것(닉네임 aias****)”이라며 아쉬움을 남긴 유저도 있다.
…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그러니, 이 작품은 스토리 자체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접목된 여러 기술 들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이미 여러 건의 언론 기사는 물론 학술논문을 통해서도 회자된 바 있다. 가령, 작품이 발표되었던 2017년 12월 당시, 〈마주쳤다〉에 적용된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 기술에 대해 네이버랩스(naverlabs)는 “딥러닝을 이용한 컴퓨터 비전 기술은 이미지를 단순히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와 비슷한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마주쳤다〉에서 GAN 알고리즘을 이용해 인물 사진을 웹툰화 하는 시도는, 주로 연구 과제에 머물러 있던 GAN 알고리즘이 수많은 유저가 경험할 수 있는 실제 서비스에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유찬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요컨대, 〈마주쳤다〉에 등장한 실험들은 ‘완성형’이 아니라 출발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언론에서 내린 평가는 더 욱 미래지향적이다. 즉, “이제 스크롤을 내 려가며 눈으로만 웹툰을 감상하는 시대는 지났다. 첨단기술이 접목된 웹툰을 ‘경험’ 하는 시대가 열렸다.”(박소정)면서 작품의 획기적인 측면을 설명한 바 있다. 즉, 작품 속 등장인물이 마치 나에게 대사를 건넨다 거나, 등장인물이 눈을 감고 입술은 내밀 면, ‘나’는 휴대폰 화면에 입을 맞추는 등 과 같은 이야기의 전개는 우리가 이전까지 알고 있는 웹툰에 대한 고정관념, 스크롤 에 지배되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림2>〈마주쳤다〉 서비스 중에 등장한 촬영 선택지
〈마주쳤다〉로부터 4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웹툰과 AI 기술의 접목에 관한 네이버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실사 자동웹툰화(웹툰미), 피사체 외곽 자동선택(자동배경분리), 불법복제물 감시(툰레이더), 웹툰채색 자동화(AI 페인터) 등의 기술을 개발해왔으며, 웹툰을 분석해 최적의 BGM을 선택 및 재생시키는 기술은 최근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개발된 기술 가운데 일부는 올해 개최된 세계적 권위의 인공지능 학회의 학술대회에서까지 발표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앞으로 등장할 웹툰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웹툰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지금 이 시점에서 네이버웹툰이 보여준 AI 기술들에 관한 보다 중요한 점은, 네이버웹툰 초기에서 비롯된 도전정신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명실공히 국내 원탑 플랫폼이라는 위치에 만족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과 기술을 접목시키는 네이버의 모습에서 우리는 2005년 그 시 절, 단 두 편으로 시작된 네이버웹툰의 초심을 떠올리게 된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AI를 접목시킨 웹툰’이라는 현상 속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가치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네이버웹툰만의 미래가 아니라, 한국웹툰의 미래라는 점과도 이어지는 것임을, 그리하여 K-웹툰 이 글로벌 웹툰의 표준이 될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를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