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새벽배송, 당일배송을 주문했다. 저녁에는 먹고 싶은 음식을 배달해 먹었다. 빠른 배송 뒤에는 수많은 비닐과 상자와 드라이아이스가, 맛있는 음식을 먹은 뒤에는 엄청난 양의 봉지와 플라스틱 용기가 남았다. 모두 나의 편의를 위한 일이었다. 사실 북극곰이 얼음이 녹아 위태롭게 살아남는 모습, 새끼 코끼리가 물을 구하지 못해 쓰러지는 모습을 볼 때, 자연재해로 인해 최소한의 삶의 조건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먼 나라의 아이들의 모습 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지 만 당장의 나를 위해 죄책감을 보류한다. 환경 오염이 실시간으로 이루 어지고 있다고 해도, 화면으로만 접하기에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금 더 편하고 쉽게 살아가기 위해 눈을 감게 되는 것이다. 〈물위의 우리〉는 이런 우리의 끝을 가늠하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그림1>〈물위의 우리〉 Ⓒ 뱁새, 왈패
〈물위의 우리〉는 온 세상이 물에 잠긴 후의 이야기다. 8화에서 별이가 읽는 동명의 그림책을 통해 왜 이런 일들이 발생했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짧은 컷들에 단순한 그림을 통해 설명한 세계의 ‘끝’은 현실과 너무도 닮아있다. 지구의 환경이 오염되면서 위기를 마주하고, 자원 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면서 세계는 위험에 빠진다. 웹툰에서 언급하듯 “모두가 고통받는 슬픈 세상”, “반성과 화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였지만” 이는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금기시되던 영역으로 향하며 ‘벌’을 받는다. 세상에 물이 차오르며 살아남은 ‘우리’들은 물 위의 ‘우리’에 갇혀서 살게 된 것이다.
▲<그림2>〈물위의 우리〉 Ⓒ 뱁새, 왈패
종말에 대한 감각을 〈물위의 우리〉는 교묘한 방식으로 이끌어 낸다. 반대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 소제목, 작화까지 전략적으로 대치를 이루는 방식으로 극적인 요소를 발생시킨다. 특히 작화는 아기자기한 그림체에서 갑자기 잔인하고 사실적인 그림체로의 변환이 빠르게 이루어지는데, 이질적이기보다 현실의 잔혹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효과로 작용한다.
주인공 별이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얗고 말랑말랑한 존재.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별이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예쁘고 귀한 것들을 누구보다도 충분히 누리고 살아왔다. 보통의 마을에 거주하는 양지의 아이들과의 차이를 고려해본다면 별이의 존재는 특수성을 지닌다. 현실에서보다 더 잔인한 계급과 계층의 격차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가 위험에 빠지면서 인간의 가치는 유동성을 지닌다. 한정된 자원, 척박한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어나는 위치에 따라 누군가는 공주님처럼, 누군 가는 사고 팔리는 존재가 된다.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조건들은 전혀 없다. 특히나 월악산 거리의 사람들의 삶은 참혹함 그 자체다. 그들은 잠실과 같은 좋은 도시에서 태어나지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가게 된 것이다.
현실은 현상을 만든다. 기후 변화로 인해 척박해진 환경은 세상을 위험에 빠뜨린다. 자원의 고갈, 이를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나라 간의 다툼은 점차 빠르게 진행 중이다. 지금도 우리는 먼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전쟁을 목격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거나 영화나 책, 게임에서 보던 전쟁은 지금,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다.
가뭄, 홍수, 혹서, 혹한은 올해도 여전하다. 아니 어제보다 조금 더 심각해지고 있다. 〈물위의 우리〉는 우리의 내일일지도 모른다. 종말을 제대로 감각할 때 우리는 지금과 내일을 명확히 볼 수 있다. 빠른 만족을 위해 쉽게 여기고 버려지는 것들로 가속되는 환경의 변화를 단순히 기후변화라는 단어로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기후의 변화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전제조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의 끝은 결국 사람의 끝이라는 위험을 〈물위의 우리〉는 일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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