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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자리〉 VS 영화 〈소공녀〉: 현실과 상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의 ‘자리’

<지금, 만화> 14호 '만화 vs 영화' 에 실린 글입니다. <자리>/글, 그림 김소희

2023-04-23 김희경


현실과 상상의 간극은 크다. 아무리 좁히려 해도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창작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실제 있었던 경험을 담은 창작물, 현실을 기반으로 하더라도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은 현격한 차이가 난다.

그런데 김소희 작가의 만화 자리와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무색하게 만든다. 두 작품은 집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하지만 자리는 김 작가의 경험담을 그린 자전적 작품이며, 소공녀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가공된 세계 속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럼에도 집이라는 공간의 부재, 이로 인해 청춘들이 갖는 고민과 고통은 현실과 상상의 간극은 떠올리기 힘들 만큼 생생하게 다가온다.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내 몸 하나 뉠 곳 없는현실인 듯, 가상인 듯한 급박하고 처절한 상황에 내던져진 채 지난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세상에 의한 강요된 로드무비가 되어 버린 만화와 영화. 이 안에선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다. 상상 속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눈 앞의 현실처럼 펼쳐지고, 현실보다 더 실제 같은 일은 상상 속 이야기에서 구현된다. 기묘하고도 씁쓸하게.


<그림1>〈자리〉 Ⓒ 김소희


비현실적인 현실 앞에 놓인 청년

자리는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는 작품이다. 김소희 작가와 그의 친구이자 동 료인 고정순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각각 송이, 순이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자리는 첫 회부터 현실적이면서도 현실같지 않은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주인공은 길에 있는 단골 오뎅 가게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오뎅 가게 할머니로부터 저렴한 가격의 집을 소개받는다. 이후에도 이들은 오뎅 가게를 통해 집을 종종 구한다. 다른 곳보다 보증금과 월세가 낮은 집들로, 부동산 중개업자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중개비도 내지 않는다. 그렇게 도달하게 된 공간들은 다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 비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구한 집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을 기대하는 것도, 일반적인 법적 보호를 받는 것도 쉽지 않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7년간 10번에 걸쳐 이사를 가는 설정은 상상을 기반으로 한 소 공녀에 비해 오히려 더 비현실적이다. 이들은 목욕탕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집, 바닥이 뚫려 있어 아래층 소음이 고스란히 들리는 집 등에서 살아가게 된다. 보다 극단적인 사례도 나온다. 장롱 안에 변기가 있는 집, 지하 주차장에 있는 컨테이너 집 등을 소개하는 식이다.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하고 제대로 정착할 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 이 부재는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줄줄이 빼앗아 간다. 만화가와 그림 작가로 일하는 두 사람은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때론 꿈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젊은 나이에도 건강이 치명적으로 악화된다. 이는 마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하나의 고리처럼 연결돼, 불가피하고 연쇄적인 상실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이 악순환의 굴레는 상상 같던 현실을 더욱 현실답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결국 그 모든 과정이 두 인물을 비롯한 수많은 청년들의 오늘이자 내일일 수밖에 없음을 여실히 느끼게 하니까.


상상에서도 불가피하고 연쇄적인 상실

 

상상을 기반으로 한 소공녀는 시작은 현실과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카메라는 월세가 올라 살던 집에서 나오게 된 미소(이솜 분)의 여정을 따라간다. 미소는 고민 끝에 집을 나와, 친구들을 한 명씩 찾아간다. 자신과 추억을 나눈 친구들과 함께 공간을 나누며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낭만적인 생각은 스크린 밖 관람자의 시선으로 보기엔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림2>영화 〈소공녀〉


그러나 미소가 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돌게 되는 과정에서 점점 자리와 같고, 현실과 유사한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미소는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면 만날수록, 그 들과의 추억과 우정과 멀어지게 된다. 친구들은 미소를 한심하게 여기고 밀쳐내거나, 자신들의 여유롭지 못한 현실에 미소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소는 우정뿐 아니라 사랑도 잃게 된다. 공교롭게도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의 직업은 자리와 비슷한 웹툰 작가 지망생으로 나온다. 한솔도 자리의 주 인공들과 하는 일이 비슷한 만큼 처지도 유사하게 나온다. 한솔은 자신만의 공간을 찾지 못하고 공장 기숙사에 살며 일과 작업을 힘겹게 병행한다. 자리에서도 주인공들이 작업을 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다 한솔은 결국 해외로 위험한 일을 하러 떠나며, 꿈도 사랑도 포기한다. 미소와 한 솔은 훗날을 기약하지만, 당장 내일 있을 곳이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이들에게 사랑은 연기되다 못해 단념된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미소의 건강 역시도 좋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미소는 백발의 머리가 나는 병을 앓고 있어 한약을 먹는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엔 백발로 나타나 그가 더 이상 한약을 먹을 수 없게 됐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청춘의 가장 큰 재산이자 무기인 건강은 자리소공녀모두에서 지켜지지 않는다. 이를 통해 현실에서도, 상상 속에서도 공간의 부재는 곧 가장 큰 존재 가치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섬뜩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공존과 고립, 더 현실적인 것은

다르면서도 닮은 두 작품은 결론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관계에 대 해 각자의 결말에 다다르며 끝을 맺는다.

자리소공녀모두 결말 이전엔 관계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느낌을 준다.

자리에선 가깝게 지내던 이웃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되거나, 말과 행동이 따로였던 이기적인 이웃의 모습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험난한 세상에서 서로 신뢰하고 의지 할 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공녀역시 미소 친구들의 모습은 지나치게 현실적이거나 세속적으로 비춰진다. 이들은 미소와 달리 집은 있다. 하지만 미소보다 더 계산적이며, 어떤 부분에선 극단적인 결핍을 느끼거나 불안에 휩싸여 있다.


<그림3>〈자리〉 Ⓒ 김소희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선 두 작품은 관계에 있어 전혀 다른 결론을 낸다. 자리는 관계를 통해 서로를 지탱하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송 이가 순이를 위한 작은 기회를 만들고, 이를 통해 두 주인공이 힘든 상황에서도 조 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화의 색도 결말에 이르러선 더욱 밝아진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 다. 주황, 파랑, 노랑 등 일부 밝은 색이 들어가긴 하지만 그 비중은 높지 않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선 보다 많은 색깔이 사용된다. 작품의 마지막, 송이가 이사 간 옥탑방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에선 새파란 하늘이 펼쳐지며 다시 희망을 품게 한다.


<그림4>영화 〈소공녀〉


반면 소공녀는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난 철저한 고립되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미소는 친구들과 더 이상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 친구들도 미소와 연락 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미소를 궁금해한다. 미소가 휴대폰을 쓰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미소가 휴대폰을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동시에 미소가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중 최종적으로 관계를 포기했음을 짐작할 수도 있다. 미소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사랑하던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있으니 말이다.

소공녀는 결말까지도 대체로 어둡게 그려진다. 미소가 마지막으로 있는 공간 엔 어둠이 잔뜩 내려 있다. 오직 미소의 마음이 잠시나마 위로받을 수 있는 위스키 가게의 조명만이 밝게 빛날 뿐이다.

자리소공녀를 함께 경유하고 나면 종국엔 이런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과 연 어느 것이 더 현실적인 결말인가. 집이란 인생의 거대한 숙제이자 무게가 되어 버린 공간, 그리고 꿈과 열정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힘이 없는 청춘들. 앞으로 청춘 들은 공간의 부재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가게 될까.

그리고 이들은 그 상실의 연속에도 함께 더불어 사는 관계 속에 있게 될까, 아니 면 더욱 사람들과 멀어지고 고립되게 될까. 어떤 것이 더 현실적인지, 더 판타지에 가까운 것인지 쉽게 결론 내릴 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 비현실적인 현실이 더욱 아프고 무겁게 다가온다.


필진이미지

김희경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