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날, 왜 굳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봐야 할까? 넷플릭스를 위시로 각종 OTT 사업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고 극장들은 하나둘씩 폐업을 했으며 살아남은 극장은 자구책으로 티켓 가격을 올렸다. 꼭 그 영화가 아니어도 쉽게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고 조금만 기다리면 보고 싶은 영화를 극장이 아닌 곳에 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할 거 없을 때 극장’은 어불성설이 되었다.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하 〈무한열차편〉)은 당시 평일 오후 연차까지 쓰며 본 영화였다. 줄거리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워낙 유명하고 텍스트 담론도 어느 정도 나온 작품이지만 각색이라는 시선에서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그림1>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포스터 ▲<그림2>〈귀멸의 칼날〉 Ⓒ 고토게 코요하루
보통 각색이라 함은 원작을 다른 매체에 맞춰 고쳐 쓰는 것을 말한다. 원작을 다 른 매체로 다시 소비하고 싶어 하는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작업이다. 그 작업이 가장 활발했던 곳 중 하나는 영화였다. 문자로 된 소설을 하나의 시나리오라 보고 이를 수 정하여 최신 매체로 영상화하는 작업은 정말 매력적인 작업이었다. 그런데 여기엔 엄청난 딜레마가 있다. 원작을 그대로 다른 매체에 이식하면 원작의 명성에 먹칠하는 괴작이 탄생하고, 매체에 맞춰 변화를 주면 원작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팬덤에 평가받는다. 각색은 언제나 원작의 복제품 취급을 받았고 분갈이 정도였다. 물론 이 딜 레마의 해결책은 ‘재미’있기만 하면 된다. 재미만 있으면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이고 성공을 하면 딜레마는 실패요인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그래서 지난날 OSMU라는 출처가 불분명한 유행에 휩쓸려 성공한 작품을 각색하면 2차 상품도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던 건 아닐까?
원작 만화인 〈귀멸의 칼날〉은 애니메이션 반영 전까지 대박 난 작품은 아니었다. 흥행에 실패했다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의 위상만큼 잘 팔린 작품도 아니었다. 애니메이션 1기 방영 직전까지 누계 판매량은 350만 부였고 심지어 1권의 첫 판매량은 1만 부도 넘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완성도 면에서도 애니메이션을 보고 만화책을 보면 다들 실망한다고 할 정도로 미흡한 부분이 두드러진다. 특히 액션 만화임에도 움직임의 연속성이 전혀 매끄럽지 않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애니플렉스의 타카하 시 유우마가 어떻게 애니메이션 기획안을 낼 생각을 했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렇게 기획안이 통과된 후 소위 타입문 전문 애니메이션 회사라 평가받던 유포터블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되었다. 유포터블도 뛰어난 연출실력에 비해 타입문 작품 외에는 별다른 흥행을 누리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TVA이 성공하고 극장판 〈무한열차 편〉 제작이 확정되었다. 〈무한열차 편〉은 2021년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고 글로벌 흥행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종전 기록인 3억 9,500만 달러를 넘어 5억 달러를 기록했다. 무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말이다.
다시 서두로 돌아와 영화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란 암막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영상을 스크린에 투사하는 시네마토그 래프 형태라 정의한다. 영화라는 정의는 콘텐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매체에서 온다고 입장이다. 비약해서 극장 개봉을 목표로 했으나 OTT 플랫폼으로 선회한 작품은 영화라고 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영화는 극장에 걸려야 영화다.
관객은 하나의 영화를 보기 위해 굳이 극장이라는 곳에 찾아가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앞서 〈무한열차 편〉을 보기위해 연차까지 쓰며 극장에 갔던 나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왜 기다렸다가 나중에 편하게 집에서 봐도 되는 작품을 굳이 극장에 가서 보려 했던 걸까?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스크린과 상영관을 꽉 채우는 사운드,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게 하는 암막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런 극장의 특성에 맞춰 영화는 더 고화질로 촬영을 했고 관객들이 더 몰입할 수 있는 화면비율을 연구했으며, 더 생생한 음향을 담아내려 신경 썼고, 3D나 4D 촬영에 맞는 작품을 제작해갔다. 가장 우리가 쉽게 체감할 수 있는 한 가지 사례는 대부분의 상업영화가 120분 내외라는 점이다. 감독 입장에서는 굳이 2시간에 맞춰 편집하는 것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고정 자세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그 정도가 되기 때문일 것이고 극장 시간표를 보았을 때 수익률이 좋은 회전 시간이기도 하다. 만약 극장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난다면 굳이 2시간이라는 틀에 맞춰 영화를 찍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영화의 정의를 극장에 둔 것이다.
〈무한열차 편〉은 상업영화로서 각색을 잘한 작품이다. 원작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던 빠르고 단순한 전개는 영화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단행본 7~8권의 내용은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에 모두 담아낼 정도로 서사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원작에서 작가가 개입해 설명하는 설정과 인물의 감정을 삭제하고 이를 장면을 추가하여 영상언어로 설명했다.
또한 ‘무한열차’ 에피소드는 작품의 주인공인 카마도 탄지로보다 조연인 렌고쿠 쿄쥬로가 주연으로 더 많이 활약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TVA를 보지 않는 관객이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내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하는 영웅 서사는 익숙하기 때문에 액션을 즐기는 데 무리가 없다. 그래서 진입 장벽이 TVA나 원작을 보아야 하는 다른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비해 낮은 편이다.
다음으로 장르적 유희를 충실히 재현한 액션연출을 꼽을 수 있다. 제작사 유포 터블은 〈Fate Stay Night〉 시리즈 제작 당시에도 호평 받았다시피 카메라워크와 광원, 이펙트 표현에서 강점을 보였다. 밤에 오니와 싸우는 〈귀멸의 칼날〉의 설정 상 유포터블의 장점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었고 영화의 절정에서 쿄쥬로가 제9형 연 옥을 사용할 때 연출은 그 장점들이 집대성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장면은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화는 지면의 제약과 작화의 부담 때문에 불가능하고 TVA는 제작비와 기간 때문에 그만큼 투자할 수가 없다. 또 시리즈이기 때문에 매 편마다 감정을 다시 쌓아야 하기 때문에 영화처럼 한 편에 감정을 응축해서 터뜨릴 수 없다. 〈귀멸의 칼날〉은 원작의 이름값보다 TVA의 액션 장면이 숏 클립으로 편집되어 SNS로 퍼져나가면서 ‘끝내주는’ 액션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각인 되었다. 그리고 TVA보다 ‘더’ 끝내주고 멋있는 액션을 영화로 볼 수 있다고 하니 그 정도 경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극장에 가는 투자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앞으로 관객들은 극장을 테마파크의 어트랙션처럼 이해할 것이다.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를 빨리 보고 싶은 동기가 아닌, 지금 당장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그 재미를 온전히 즐길 수 없다는 압박 때문에 극장에 가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무 한열차 편〉은 단순한 플롯과 절륜한 액션이라는 장점으로 오직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체감을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달했다.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은 각색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던진다. 처음 기획안을 낸 타카하시 유우마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성공한 원작을 다른 매체로 파생하면 더 성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 아니었다. “이 작품을 영상화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은 원작이 영상화에 맞는 요소를 갖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는 원작의 팬이었기에 원작의 장점과 단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점을 덮고 가능성을 발굴해 장점으로 발전시켜줄 각색가를 물색했다. 그리고 그 각색가는 매체에 맞는 최적의 각색을 완성해냈다. 원작을 뛰어넘는 작품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