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유머와 위트로 연결된 사람과 세상을 꿈꾸다: 벨기에 《르깟》의 만화가 필립 그뤽 인터뷰

<지금, 만화> 15호 인터뷰에 실린 글입니다.

2023-04-25 지금, 만화


필립 그뤽


한국의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전 필립 그뤽입니다. 저는 1954년 브뤼셀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한 번도 그림이나 색칠, 조각을 배운 적은 없고 연극 학교에서 코미디를 공부했죠. 17살에 처음 만화를 출판했고, 21살에는 전문 배우가 되었습니다. 이후 10년간 여러 연극 무대에 서고 영화에도 출연하며 연기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또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다양한 유머러스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면서도 저는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며, 조각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갤러리와 박람회에서 제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83년에 르 수아르(Le Soir)신문사를 위해 르깟(Le Cat)의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르깟은 유럽 만화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총 23권의 단행본이 출판되고, 거의 1,500만 부가 팔렸습니다.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로 이름을 알리다

 

다재다능한 활동을 하시는데 어린 시절에는 어떤 분야에 가장 관심이 많으셨고 무엇이 되고 싶으셨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남을 웃기는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광대가 되고 싶었어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연극의 각본을 쓰고 이웃집 여자아이와 같이 연기를 했죠. 그리고 아우구스투스의 모험(The Adventures of Augustus)라는 제목의 단편 만화도 그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2살이 되었을 때는 유머가 담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제가 어릴 때 하던 놀이 들은 제 여러 직업들로 이어졌습니다.

 

만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부모님에게 어떤 영향을 받으셨나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저희 아버지는 연재만화가로 일하다가 영화 배급일을 하셨습니다. 저 와 제 형 장 크리스토프에게 고전 예술의 아름다움과, 영국, 미국, 프랑스의 만화의 매력을 알려주신 것도 바로 저희 아버지셨습니다.

 

여러 분야의 관심과 활동이 만화 창작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제 다양한 활동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릴 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땐 정말 글만 써요. 그리고 라디오나 텔레비전 진행을 할 때 만화가로서의 모습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으로서 있는 거죠. 많은 노력이 요구되지만, 하나의 활동에 집중할 때는 다른 활동들로부터 쉬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마법 같죠.

 

1987년에 인기 라디오 쇼의 멤버로 활동했는데 어떻게 방송계에 활동하게 됐고 공연도 하게 됐나요?

이런 일은 전부 우연히 시작되더라고요. 연극 무대에서 눈여겨본 감독이 텔레비전 쇼의 진

행자 자리를 제안하고, 그 쇼가 장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어서 벨기에 전 국민을 웃기게 되는데, 이후 다른 라디오 프로듀서가 텔레비전에서 봤다면서 라디오 프로그 램에 합류해달라고 제안하고, 마침 또 그 팀도 실력이 좋은 팀이라서 라디오 프로그램도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된 거죠. 프랑스에서도 이런 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웃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잇는다

 

<르깟>의 탄생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당시 르 수아르신문사가 만화작가 4명에게 주간 부록에 실을 수 있는 새 유머 만화의 캐릭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코트를 두르고 안경을 쓴 고양이를 그렸죠. <르깟>의 대사가 편집진을 웃게 했기 때문에 선택받게 됐습니다. 몇 년 후 <르깟>르 수아르의 마스코트로 자리잡아 신문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페이지가 되었죠.

 

<르깟>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시다시피 성공의 요인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정이나 사랑도 마찬가지죠. 정해진 레시피나 방정식이 있는 게 아닙니다. <르깟>은 긴 시간에 걸쳐 나이나 사회계층과 상관없이 사람들의 인생과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다정하면서 독특하고, 동시에 잔인하고 냉소적입니다.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제 독자들은 두 겹이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제게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웃음은 사람들을 나누는 게 아니라 연결시켜줘야 합니다.

 


<르깟>은 왜 3칸으로만 그리시나요?

저는 가능한 모든 형태를 사용합니다. 단일 그림, 대사가 있는 그림, 대사가 없는 그림, 페이 지 전체를 차지하는 그림, 역으로 새긴 판화, 그리고 3컷 만화까지 전부요. 3컷 만화를 쓰면 제안- 전개-결말로 구성되는 독특한 리듬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르깟>은 독특하고 복합적인 점이 많은 만화인데 어떤 의도인가요?

처음에는 별다른 의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제 인생에 자리 잡게 되었고, 그제야 제가 만든 고양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르깟>은 흑백 만화와 컬러 만화가 섞여있는데 어떤 의도인가요?

대부분의 이야기 속에서는 르깟 혼자 나오다 보니, 독자들이 책을 읽을 때 지루해하지 않도록 다양한 시각적 요소를 반드시 넣어야 합니다. 컬러에서 흑백으로 전화되는 과정은 그 리듬의 일부입니다. 만화체 그림과 그렇지 않는 그림이 섞여 있는 것도 정확히 같은 이유입니다. 리듬을 만들고, 꺼진 관심에 다시 불을 붙이고, 르깟을 독자로부터 빼앗아서 다시 봤을 때 반갑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죠.

 

1983년에 처음 <르깟>을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오랫동안 발표할 수 있었나요?

작업을 하면서 저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개그를 만들고 나서 혼자서 웃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저에게 제 그림들로 인해 기분이 좋아졌으며, 행복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이걸 멈출 수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덕분에 저도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르깟>을 그리는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아마 2021년 봄 샹젤리제에서 전시를 열어 20점의 르깟 청동 조각품을 선보였을 때 일 겁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감명 깊은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가장 감명받은 만화가는 누구이며, 친하게 지내는 동료 만화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제 어린 시절에 봤던 만화가들을 굉장히 존경합니다. 체이스 애덤스, 스타인버그, 웅게러, 상 페, 시네, 보스크, 샤발그리고 나중에 저를 깜짝 놀라게 만든 만화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개리 라슨입니다. 가깝게 지내는 동료 만화가들도 물론 많습니다. 제 직업의 좋은 점이 있다면 스포츠와 달리 경쟁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하는 서로를 존경할 뿐입니다.



<르깟>을 그리실 때 펜과 화판으로만 그리시는지, 디지털 도구를 쓰시나요?

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종이에만 그립니다. 디지털 도구도 사용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종이와 연필, 먹물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리고 디지털로 작업을 하게 되면 종이나 캔버스 위에 남은 원본의 그림이 없으니까요.

 

<르깟>을 디지털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독자들이 무엇을 느끼 길 바라시나요?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 La minute du Chat를 만들었는데, 혹시 한국에서 방영할 생각이 있다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만약 만화가 아니면 엔터테이너 둘 중 하나만 택해야한다면 어느 걸 택하실 건가요?

어느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아서 모든 직업을 동시에 유지하려고 해왔 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이 세 가지 활동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칠하고, 조각하는 일이요. 그리고 약간의 라디오 활동을 합니다.

 

필립 그뤽에게 <르깟>과 만화란 무엇인가요?

제 인생의 56년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덧붙이고 말씀이 있으신가요?

2025년 브뤼셀에서 개최 예정인 고양이와 유머러스한 그림 박물관(Le Musée du Chat et du dessin d’humour)’의 오프닝을 가볍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르깟, 걷 다(Le Chat déambule)’ 전시를 위한 청동 조각품을 세계 여러 도시에 제작하고 설치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언제 서울에서도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필진이미지

지금, 만화

만화 전문 비평지 <지금, 만화> 의 편집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