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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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만화웹툰으로 본 사회적 다양성 만화 변천사

<지금, 만화> 15호에 커버스토리로 실린 글입니다.

2023-05-01 백건우


한국 만화는 이제 ‘K-웹툰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웹툰으로 벌어들이는 돈 이 1조 원을 넘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웹툰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가 천만 관객 을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웹툰 원작 영화의 경우, 2006아파트한 편이었 는데, 이후 해마다 서너 편 이상 제작되었고, 2015년에 6, 2017년에 8편이 제 작되는 등 웹툰 원작 영화 비중이 크게 늘었다.

드라마의 경우는 영화보다 훨씬 편 수와 종류가 다양하다. 이미 2010년부터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드라마 제작을 했으며, 지상파, 종편 등에서 웹툰 원작은 드라마 제작의 원천 가운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웹툰이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될 수 있는 이유는, 참신한 아이디어, 대중적 정 서와 일치, 교감하는 비중이 높은 점,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영상물 제작의 기본 이 되는 콘티와 매우 비슷한 결과물을 갖는 등의 장점이 있어서다.

무엇보다, 웹툰 작가들은 웹툰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인정받아야 하 는 상황에서, 다른 작가와 다른 신선한 아이디어와 서사, 구성, 연출을 통해 돋 보여야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의 결과물로 웹툰은 다른 장르의 창작 물(문학, 소설, , 희곡 등)이 따라오지 못하는 빠른 속도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대 중을 사로잡았다.

한국 웹툰이 K-웹툰으로 세계로 확산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 람들의 보편적 감성과 흥미를 건드리는 서사와 디테일한 묘사는 외국의 독자 들에게도 공감을 일으키고, 넓은 의미에서 한국 문화인 K-, K-드라마, K-음 식, K-패션과 함께 한국 문화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한국 웹툰이 국내외로 확산하고, 시장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고, 만 화웹툰 작가들이, 양적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현실은 반갑다. 한편 만화계에 서는 주류 만화의 성장과 활성화를 반기면서도, 만화의 다양성을 고민하기 시 작했다.

만화 다양성에 고민을 공식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되지 않 았다. 2015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어린이 만화 활성화 지원사업공 공 브랜드 만화 창작 지원사업을 시작한 것을 두고 만화 다양성 지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만화계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어도 이미 소수 의 작가들은 다양성 만화의 창작을 시도하고 있었다.

독립만화, 언더그라운드 만화, 작가주의 만화로도 불리는 대안만화들이 2000년 이후 활발하게 등장한다. 성상민은 지금, 독립만화에서 독립만화의 등장을 1988년 홍익대학교 만화동아리 네모라미의 결성으로 꼽고 있다. 이후 1995, 언더그라운드 만화를 앞세운 만화실험 봄이 등장하고, 1996년 창간한 화끈에서 처음 독립만화를 자칭하게 된다. 1997년 창간한 히스테리에 서 처음으로 대안만화를 자칭했고, 이 만화들은 모두 기존의 대중 만화와는 결이 다른, 실험적이며 작가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고, 상업성에 물들지 않은 만화를 그린다는 점에서 이후 나타나는 다양성 만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2002, ‘새만화책이라는 독립만화 전문 출판사가 등장하면서, 이전에 존재 했던 수많은 실험적, 대안적 성격의 만화 출판물과 창작자들은 어느 정도 정리 되는 한편, ‘새만화책으로 결집했다. ‘새만화책은 독립만화를 출판하는 한편, 계간지 새만화책도 발행했다.


<그림1>《살북》 표지


이후 2007년에는 독립만화, 언더그 라운드 만화, 대안만화를 그리는 작가 들 중심으로 살북을 비정기 간행물 로 출간했다. 살북2014년까지 일 곱 권을 출간했으며, ‘새만화책살 북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은 이후 다양 성 만화에서도 크게 활약한다.

이 시기부터 부천만화정보센터즉 지금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독립 만화, 만화동인지를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고, 2015년부터 본격 다 양성 만화를 지원하는 사업이 체계를 갖추게 된다.

다양성 만화의 정의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공고에 따르면 상업적이 고 대중적인 인기를 위한 만화보다는 대안적 성격, 예술성 및 사회적 이슈를 포 함한 다양한 비활성 장르를 말한다. , 작가들이 일부러 찾지 않는 소재를 발 굴하거나, 대중성은 떨어져도 예술성 높은 작품,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작품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여서 다양성 만화의 기획은 이전까지 언더그라운드 만화, 대안만화, 독립만화 영역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이었다.

 

2015공공 브랜드 만화 창작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은 모두 10편으로 광복 70주년’, ‘아리랑’, ‘태권도’, ‘한류 문화등 네 가지 지정 소재로 창작한 작품들이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작품은 박건웅 작가의 <경성을 쏘다>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한 매우 드문 독립운동가의 삶을 그리고 있 다. 김상옥 열사는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으니 그의 독립운 동 공적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인정받았다. 하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 은 듯한데, 그를 다룬 책은 2014년에 출간한 김상옥 평전경성을 쏘다두 권에 불과하다. 김상옥 평전을 바탕으로 박건웅 작가가 재창작한 경성을 쏘 다는 강렬한 비주얼과 탁월한 연출로, 한국 그래픽노블의 역량을 보여주는 뛰 어난 작품이다.

2017년에 모두 10편의 작품이 선정되면서 여기서 다시 박건웅 작가의 그 해 봄을 눈여겨 보게 된다. 이 작품은 197549, 사형선고 18시간만에 사형집행을 한 인혁당 사건을 그리고 있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꾸준히 그리 는 박건웅 작가의 일관한 작품이 다양성 만화에 선정된 것은 의미 있는 결과 라고 할 수 있다.

2018다양성 만화로 선정된 작품에서 김금숙 작가의 준이 오빠, 정이 용, 이동은 작가의 요요, 이은홍 작가의 평등은 개뿔, 이종철 작가의 까대 기, 마영신 작가의 아티스트등이 돋보인다. 까대기아티스트2019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받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났고, 준이 오빠는 우수만 화도서로 선정되었다.

까대기는 택배 물건을 상하차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는 주인공 이 바다의 노동 일기다. 직접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작품이라 생생한 현장 감이 있고, 택배를 둘러싼 문제를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다양성 만화의 목적 에 잘 맞는다.

준이 오빠는 발달장애가 있는 청년이 판소리와 피아노로 세상과 소통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를 비판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이 작품의 의도가 잘 전달되고 있다.

평등은 개뿔은 부부평등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만화는 한국 현실 에 맞는 페미니즘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적어도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나 라에 사는 부부들과는 다른 인식을 갖고 있을 것이고, 그것이 한국적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주의적이며, 민주주의적이고, 집단주의 와 유교의 찌꺼기가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물론, 남성까지도 자유롭지 못하게 옭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티스트는 예술가의 허위의식과 욕망의 발현을 권력이라는 배경에 투 사해 해부한다. 중년 남성, 지식인, 예술가인 주인공들의 모습이 욕망과 권력이 주어지면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냉소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들 가운데 2019오늘의 우리만화상을 받은 작품으로 까대기아티스트가 있어서 다양성 만화를 통해 발굴, 발견한 작품들이 기대 이상으 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림2>〈까대기〉 Ⓒ 이종철


<그림3>〈아티스트〉 Ⓒ 마영신


2019다양성 만화는 모두 34 편의 작품이 선정되었는데, 이 가운 데 정재훈 작가의 네 번째 별-난곡 이야기, 안순현 작가의 까막별, 보삭, 예찬, 적도 작가의 공동주택 28-16, 김용길 작가의 금강산선 이 야기, 홍지흔 작가의 건너온 사람 들같은 작품들이 돋보인다.

네 번째 별-난곡 이야기는 작 가가 1976년부터 살아온 난곡에 관 한 이야기다. 작가의 어머니는 지금 도 난곡에서 식당을 하고 있으며, 1970년대 이후 서울의 대표적 변두리로 손꼽히는 관악구 신림3동을 말한다. 신 림동 바로 옆에 있는 금천구 시흥2동 또한 난곡처럼 도시 빈민이 모여 사는 산 동네였다. 이 작품은 작가의 어린 시절과 상상력을 결합한 작품이다.

까막별은 단편집으로 우리 사회의 현실을 풍자와 유머로 풀어내고 있다.

공동주택 28-16은 마포구 상수역 근처에 있는 빌라 열두 세대에 사는 청년 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면서 한 공간에 거주한다 는 공통점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청년 세대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 을 수 있는 작품이다.

금강산선 이야기는 작가의 가족사이면서, 1924년부터 1944년까지 운행했 던 금강산 철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의 아버지 증언을 통해 재구성 한 작품으로, 현대사의 한 부분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를 갖는다.

건너온 사람들은 한국전쟁 당시 흥남항에서 마지막으로 피란민을 태우고 거제도로 온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그 배에 타려고 애쓰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역사의 한 장면을 개인의 구술을 바탕으로 만화를 통 해 재현했다는 점에서 한국현대사의 한 장면을 충실하게 채우고 있다.


2020년이 되면서 다양성 만화 지원사업은 단편과 중편으로 나눠 공모하고, 선정 작품을 늘렸다. 2020년에는 단편 15 , 중편 33 편이 선정되었는데, 단편 에서는 류승희 작가의 검정마녀 미루, 중편에서는 김금숙 작가의 기다림, 박 건웅 작가의 악마의 일기등이 눈에 띈다.

검정마녀 미루는 마녀, 마법, 할머니 등 지금까지 많은 책에서 고정된 이 미지로 이어오는 관념을 깨뜨리는 작품이다. 마녀는 왜 할머니(여성)이며, 마녀 는 나쁜 일만 하는가. 소년 미루는 마녀가 되고 싶고, 누구도 다른 사람을 편견 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기다림은 이산가족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작가가 어머니와 대화하면서 알게 된 집안의 내력을 바탕으로, 한국전쟁의 비극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가 족의 비극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미국 워싱턴포스트에서 올해 의 책으로 선정했고, 영국 가디언에서 ‘11, 이달의 그래픽노블로 선정했다.

악마의 일기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0, ‘보도 연맹원을 집단으로 경찰과 군인이 학살한 국가범죄 사건이다. 보도 연맹 학살 사건은 아직도 전체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이승만 정권의 최대 학살 사건이자 한국 현대사에게 가장 비극적인 학살 사건이다.


<그림4>〈악마의 일기〉 Ⓒ 박건웅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승 만 정부는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 상하고 있었고, 남한에서 좌익 활 동을 했던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관 리할 목적으로 보도 연맹을 조직 한다. 보도 연맹을 기획, 관리한 자 들은 한때 좌익 활동을 하다 전향 한 배신자들과 극우, 친일 매국노, 북한에서 내려온 개신교도 단체인 서북청년단등이 주도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은 보도 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예비 검속이라는 명목으로 불법 체포해 감옥이나 큰 건물에 몰아넣었고, 그렇게 잡아온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학살했다. 악마의 일기는 보도 연맹 학살 사건을 그린 그래픽노블이다.

2021년과 2022년의 다양성 만화선정 작품들은 단편 스무 편, 중편 마흔다 섯 편이 선정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출판되어 서점에서 판매하는 작품이 많지 않아 소개는 생략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다양성 만화들은 주류 상업 만화의 범주에서 보면 대중성이 부족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대중성과 작품성, 예술성은 늘 함께 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다양성 만화는 정책 지원을 하기 이전부터 작가들의 창작을 통해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다. 과거 언더그라운드 만화’, ‘독립만화’, ‘대안만화등 으로 불리던 작가주의 만화들이 정책 지원을 받으며 보다 활발하게 성장할 수 있었고, 그 결과는 만화계의 다양성은 물론, 세계 만화계에서도 두각을 드러내 는 성과를 이뤘다.

한국 만화계의 강줄기에서 하나의 줄기를 이루면서 다양성 만화는 작지만 강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고, K-웹툰과 함께 작가주의 만화로 정체성을 또렷이 해나가는 또 하나의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필진이미지

백건우

만화평론가
만화규장각 지식총서 「만화, 영화 상상력의 원형」 저자
2019 만화평론 공모전 가작 당선
1997 〈문학사상〉 신인상
1988 제1회 전태일문학상 중편소설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