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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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드래기의 〈거울아 거울아〉: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주요한 사실이다

<지금, 만화> 15호 Critique 에 실린 글입니다.

2023-05-03 이선인


게이에 대한 한 가지 주요한 사실은 그것이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A major fact about being gay is that it doesn’t show.

바바라 해머 외 1999, 호모, 이반, 펑크, 큰사람


리처드 다이어는 자신의 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게이를 재현 하는 데 따르는 몇 가지 문제(Seen to Be Believed: Some Problems in the Representation of Gay People as Typical)를 이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리처드 다이어의 이 급진적인 에세이는 호모섹슈얼리티를 포함한 성적 지향이 근본적으로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의도적 전형화의 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가진다. 이러한 의도적 전형화가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을 형성할 것을 경계하는 이들에게는 다 소 충격적인 견해일 수 있다. 다이어는 전형성이라는 기호화된 맥락을 통해 호모섹슈얼이 사회의 곳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전면적 가시화할 필요성을 주장하는데, 이는 이 글이 쓰인 1983년의 시대정신을 통한 현상적 주장일 것이다.

컨데 재현은 철저하게 시대의 맥락과 호소부터 극단적으로 멀어질 수는 없다. 다이어의 주장이 전 세대의 주요한 맥락이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그가 던진 전제인 섹슈얼리티의 비가시성은 충분히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섹슈얼 리티의 재현이란 그런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몇년 사이 몇 비디오 게임 제작사들이 자신들의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이 호모섹슈 얼임을 천명한 사실이 있다. 이때 이러한 움직임에 반하는 이들이 구사한 문구 중 하나는 제작사들이 해당 캐릭터를 호모섹슈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섹슈얼리티가 가진 특성을 고려하자면 이는 매우 놀라운 주장이 된다. 비록 그 캐릭터들이 실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규정되지 않은 섹슈얼리티가 태생적으로 헤테로섹슈얼이었을 리는 없다. 이 인물들의 섹슈얼리티는 발표되지 않은 것뿐이지 자연스럽게 헤테로섹슈얼로 태어나 규정의 순간에 호모섹슈얼로 변모된 것은 아니다. 이렇듯 재현된 몸이란 섹슈얼리티의 정치적 투쟁의 장이 며 이는 섹슈얼리티의 비가시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정치적 다수는 비가시된 부분을 멋대로 공란으로 인지한 뒤, 그 부분을 자신의 정치성으로 쉽게 채우고 마 는 것이다. 다이어의 전형적 가시에 대한 요구는 이러한 정치적 투쟁에 대한 무장의 요청과도 같다.

하지만 과장된 재현의 방법론은 그러한 재현 결과를 납작하게 만들기도 하기에 위험하다. 결국 인정해야 하는 현실은 그것이 결국 비가시적이라는 사실 이다. 그렇다면 당면된 과제는 비가시된 속성을 어떻게 가시화하느냐 보다는, 비가시라는 전제를 껴안은 상태로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재현하느냐에 달려 있을 수도 있다.



가시성을 이탈하는 거울

다드래기의 거울아 거울아3부인 장주원 편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하반신마비 장애를 가진 해운과 주원이 처음 마주했을 때, 자신의 휠체어를 쳐다보는 주원을 향해 해운은 음성입니다. 제 다리는 선천적으로라는 도치된 대사를 던진다. 이 대사는 어떤 방식으로도 정확히 읽히지 않는다. 마침 이 장면은 HIV 보균자와 섹스를 한 주원이 자신의 HIV 보균 여부를 알기 위해 해운의 클리닉에 방문한 참이다. 때문에 여기서 음성입니다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한번 에 읽히지 않는다. 4개의 칸과 이어지는 다른 칸들을 훑어본 뒤에야 이 대사가 정확히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해운의 위트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1>〈거울아 거울아〉 Ⓒ 다드래기


물론 이런 장면 뿐만이 아니다. 거울아 거울아는 때때로 해석을 요하는 암호같은 장면들을 사용한다. 2정시안 편치약 청소에서는, 치약으로 낙서를 닦는 호수를 향해 시안은 치약 쓰면 되는 거 어떻게 알았어?”라는 질문을 건낸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뒤로 한참 유보되지만, 군대라는 공통 경험을 가진 이들은 이 대사를 통해 호수가 거쳐온 삶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그 외에도 이 만화의 정보는 끝없이 부정확함을 전면화하거나, 맥락을 뒤로 유보하여 독자들을 일시적 혼란에 빠트린다. 때문에 거울아 거울아는 가시화라는 조건으로부터 끝없이 이탈해 모호한 해석의 세계로 독자를 밀어 넣는다.

다만 이는 어떠한 작품들처럼 내적 의미를 발굴해내거나, 모호함의 공백을 통해 해석을 도출하는 방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거울아 거울아의 공백들을 통해 발견되는 것은 대부분 인물의 사고, 현상, 감정, 과거같은 개인화된 맥락의 결정들이다. 즉 다드래기의 수사는 개인의 역사에 대한 의도된 연막이며, 거울아 거울아는 필사적으로 가시화라는 현상으로부터 도주한다.

거울아 거울아의 형식적 특이점은 또한, 이러한 비가시된 정보를 4칸 만화를 기반으로 한 특징적인 형식으로 꼼꼼히 담아 넣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만화를 단순히 4칸 만화로 정리하는 것은 조금 곤란한다. 거울아 거울아는 담지하는 에피소드에 따라 사용하는 칸을 5칸 이상으로 늘리거나 칸의 배치를 변형시킨다. 또한 4개의 칸으로 하나의 정확한 기승전결을 만들기보다는 4개를 기준으로 설정된 에피소드들을 연속화하여 긴 호흡의 드라마를 형성한다. 결국 거울아 거울아는 전형적인 4칸 꽁 트라기보다는 고정된 프레임과 호흡을 통해 매우 균일한 호흡으로 작성된 드라마에 가깝다.

이러한 프레임의 배치는 통상적인 만화적 호흡과 시간성을 근본적으로 배제한다. 칸의 크기, 형태, 칸 사이의 조정 같은 보편적 언어의 상실을 통해 거울아 거울아는 만화적 시간성으로부터 이탈해 표준적인 시간성을 요청하게 된다. 물론 개별 칸이 가지는 시간의 차이가 있는 한, 만화는 결코 표준적인 시간을 가질 수는 없다. 때문에 이는 실제 시간성의 획득보다는 작가적 요청이 된다. 하지만 이 요청은 어떤 면에서 충분히 기능한다. 이를테면, 이러한 칸의 연쇄는 어떤 방식으로든 스펙터클의 발생을 최대한 억제한다.

<그림2>〈거울아 거울아〉 Ⓒ 다드래기

만화적 스펙터클이란 결코 실재에서는 획득할 수 없는 어떠한 시공간적 과장의 현상이다. 필요에 의해 그 외적 규모를 팽창시키는 만화적 방법은 시공간적 스펙터클을 즉시적으로 획득하는데, 이러한 감각은 현실에서는 오직 관념적으로만 획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실과 궤를 달리한다. 다드래기의 고정 프레임 수사가 발생시키고 있는 시간성의 요청은 만화적 스펙터클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현상적으로 유효하게 작동한다. 이를 통해 거울아 거울아는 배제된 스펙터클이라는 표준성을 담지한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전면화를 비껴 비추는 거울

 

이를 통해 거울아 거울아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그렇다면 왜, 거울아 거울아는 스펙터클로부터 멀어 져야 하는가. 좀 더 정확히 말해, 표준적인 시간의 요청과 동시에 비가시적 세계를 구축한 이유는 무엇인가. 때문에 다시금 다이어의 명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게이에 대한 한 가지 주요한 사실은 그것이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재현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보이지 않 는다는 사실을 전제하며 재현에 도달해야 한다. 이 배경은 우리 가 기존의 성정치 담론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한 끝없이 유효할 것이다. 다이어를 경유해 미리 전제한 조건, 비가시를 담지한 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 우리는 몇번이고 재고를 거듭해야 한다.

거울아 거울아의 스펙터클 배제는 비가시성의 명징한 표출로 이해해야 한다. 만화적 스펙터클은 대부분 가장 중요한 비가시적 사실을 정확히 만드는 데 에 쓰인다. 그것은 주로 감정, 때때로 분위기, 그리고 감추어진 사실을 노출하는 데에 경향적으로 이용된다. 만화에 스펙터클이 있는 한 만화는 결과적으로 무언가를 전면화해야 한다. 거울아 거울아는 서사적 도치와 전복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표준성을 요청하며 그러한 전면화를 끝없이 거절한다. 이것이 거울아 거울아가 비가시적 만화라는 결과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는 방법론이다.

다시금 말하자면 재현된 몸이란 결코 성정치 담론으로부터 비껴나갈 수 없다. 이성애 중심주의는 섹슈얼리티의 비가시성이라는 조건을 빌미삼아 끝없이 이 육체들로 틈입한다. 다드래기는 (다이어의 논제와 달리) 이를 비가시적 조건이라는 방법을 이용해 정면에서 부딪힌다. 모든 조건은 감추어진다.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알 방법이 없다. 알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 유보된 정보, 도치된 언어로부터 결과를 꺼내어 내기 전까지 누구도 답을 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거울아 거울아는 오직 이러한 조건으로만 만들어진 만화다. 때문에 이 만화는 퀴어에 대한 서사를 가진 만화이며 동시에 퀴어적인 만화로 특징화된다.

<그림3>〈거울아 거울아〉 Ⓒ 다드래기


거울아 거울아는 오장수 편, 정시안 편, 장주원 편의 3권으로 나뉘어져 있다. 재미있게도 오장수 편에는 장주원 편의 수종이, 정시안 편에는 오장수 편의 장수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마저도 결코 전면화되지 않는다. 그들을 스펙터클로 이끌어 특징화하는 순간, 그들의 아이덴티티는 즉시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등장 여부는 세 권을 모두 보고, 각자의 모습들을 기억해 다시 다른 권을 펼쳐 봐야 확신할 수 있다. 결국 거울아 거울아는 독자를 향해 묻는다. 당신은 우리를 얼마나 섬세하게 지켜보고 있습니까? 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까? 보이지 않는 사실을 단정한 적이 있습니까? 정녕 알고 싶다면, 그 거울이 수놓아진 책을 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장 주요한 사실은 그것이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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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인

2017년 신인만화평론 공모로 만화평론가로 등단, 2022년 GG 게임 비평 공모로 게임평론가로 등단하였다. 영화를 전공했으며 평소에는 만화, 게임, 영화에 관한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