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기본서, 나의 비거니즘 만화
‘비거니즘은 무엇일까?’ 라는 기본적인 물음부터 ‘채소만으로 영양소를 채울 수 있을까?’ 라는 구체적인 질문까지, 2020년 ‘푸른숲’ 출판사에서 출간된 보선 작가의 〈나의 비거니즘 만화〉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비거니즘에 대한 질문의 답을 하나부터 열까지 쉽게 풀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귀여운 그림들 속 밝지만은 않은 동물들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림1>〈나의 비거니즘 만화〉 Ⓒ 보선
보선 작가는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 에밀리를 통해 〈나의 비거니즘 만화〉를 이끌어 간다. 삶에 대해 회의적인 에밀리는 동물을 특별히 사랑하지도, 그들의 사랑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반려동물에게 유대감 또한 느끼지 않는 에밀리가 비 건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바로, ‘동물이 느끼는 고통’ 때문이다. 즐거움을 포 기하는 것보다 슬픔과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더 힘든 에밀리는 자신이 겪고 싶 지 않은 고통을 남에게 주며 살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던 에밀리는 채식주의와 동물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통해 동물 과 인간,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채식주의자의 정의와 범주, 산란계 부화장과 도축업계의 현실, 채소의 영양분과 저렴한 채식주의 식단 등 〈나의 비거니즘 만화〉는 조금은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는 비거니즘에 대한 지식들을 간결하고 귀여운 그림체로 설명하고 있어,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다. 때문에 비거니즘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은 물론,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막막했던 사람들까지 남녀노소 모두 배워갈 점이 많은 훌륭한 작품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지만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가깝지만 먼 비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다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이 시대의 기본서, 〈나의 비거니즘 만화〉를 추천한다.
어두운 마음 안, 작은 빛
〈나의 비거니즘 만화〉를 호흡조절에 능한 작품이라 평해본다. 만화책이라고는 하지만, 이 작품의 페이지 수는 총 459페이지로, 그리 짧다고만 할 수 없는 작품이다. 더욱이 비건, 동물권, 나아가 환경 이야기까지. 자칫하면 지루하게 전개되 어 독자들이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는 소재들이다.
실제로 아직까지 사회엔 비건보단 논(non)비건이 많으며, 이 작품의 106페이지, ‘음식 이전의 삶, 젖소’ 라는 에피소드에서 나왔듯이 ‘동물복지 축산 농장 인증표시’에 대해 알고 있는 국민은 2018년 기준 단 24.5%일 정도로 아직 사람들은 동물권과 비거니즘에 대해 무관심하다. 때문에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게 들어 가면 독자들은 어려워 싫증을 낼 수 있는데, 이를 간단하게 풀어내 이해하기 평이하고 작품의 끝까지 흥미를 유지시킨다.
▲<그림2>〈나의 비거니즘 만화〉 Ⓒ 보선
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현실에 대한 암울한 이야기만 이어가는 것이 아닌, 에 밀리가 비건이 된 이유부터 비거니즘을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 그로 인해 삶의 어떤 점이 변화했는지 소소하고 즐거운 이야기들을 번갈아가며 풀어내어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고 암울한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우유 대신 두유를 이용하거나, 동물복지 축산 농장 인증표시가 있는 육류를 구입하는 등 누구든 실생활에서 쉽게 실천해볼 수 있는 방안도 함께 소개해주기 때문에 슬픈 현실에 우울해지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 게 된다. 이는 459페이지 동안 독자가 지치지 않고 완독을 할 수 있게 만들며, 동물권과 환경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하면서도 상황을 희망차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나의 비거니즘 만화〉는 독자가 이해하기 좋은 순차적 흐름을 가지고 있다. 에밀리는 왜 비거니즘이 되었는지, 어째서 비거니즘이 필요한지, 마지막으로 어 떻게 실천하면 좋을지 순차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다짜고짜 채식을 권유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다. 독자는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에밀리의 감정에 점차 동 화되어 권유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실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에밀리의 격려는 섣불리 다가가기 어렵고, 완벽해야만 할 것 같은 비거니즘의 진입장벽을 낮춰준다.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비건 음식을 추천해주거나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될 것을 우려해 보다 가성비 좋은 비건 식단을 짜는 법 등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럼으로써 비거니즘에 대한 유입을 증가시키고, 사람들에게 작은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나의 비거니즘 만화〉는 그야말로 작가 설명란에 적혀 있는 ‘어두운 마음 안에서 작은 빛을 찾아 그려내 길 좋아한다.’라는 소개에 걸맞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덴티티로서의 채식주의
이 작품은 채식주의를 권하면서도, 비건이 되면 좋은 점만을 편파적으로 다루고 있진 않다. 비건이 되면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불편한 상황들이 있다. 회식자리에 서 눈치를 보며 빠져 줘야할 때나, 환경을 위한다더니 왜 식물은 위하지 않느냐는 비아냥을 듣는 순간들이다. 에밀리를 상처 주던 사람들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누군가에게는 채식주의가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2번째 에피소드, ‘처음 연결되던 순간’에서 미식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소고기의 맛을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장면을 보고 에밀리가 ‘예술은 무슨’ 이라며 섬뜩하다고 느끼는 장면 등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소고기를 먹으며 행복감을 느껴본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육식을 하는 자신을 비윤리적이라며 질책하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채식주의자는 착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나쁜 걸까?
▲<그림3>〈나의 비거니즘 만화〉 Ⓒ 보선
보선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나의 비거니즘 만화〉는 작품의 머리말에 실린 “비거니즘은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기 위한 가치관이 아닙니다. 저는 채식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에게 도덕적인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로 작품을 시작할 만큼 작품이 자칫 흑백논리로 해석될 수 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채식주의는 단순히 육류 대신 채소 섭취를 지향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던 에밀리는 채식주의를 실천하고부터 스스로가 지구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채식을 하는 것이 뿌듯했으며 하루하루가 보람찼다. 작은 일 하나에도 의미가 생기기 시작하자, 에밀리는 침대를 벗어나 점차 활발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비거니즘은 누군가의 정체성이 될 수 있으며, 삶의 방향성 제시하기도 하고, 또는 삶에 의미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비거니즘은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닌, 그저 누군가의 신념이며 정체성일 뿐이다.
작품의 33번째 에피소드, ‘식물의 고통’에서 에밀리는 비거니즘이 사람의 생존권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비거니즘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동물 편인 것이 아니라, 배 속의 기생충,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야생 곰, 전염병을 옮기는 모기 앞에서 비건은 당연히 사람 편이라며, 비거니즘에 대한 논의가 비거니즘의 틀린 점을 지적하는 대신에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면 좋겠다 고 말한다.
비거니즘은 때론 우리에게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을 위해, 동물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진실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환경과 동물을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라는 이유는 어떠한가. 한층 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작은 노력 이라도 실천해보는 것은 어떤가. 누군가에게는 〈나의 비거니즘 만화〉가 그 용기의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