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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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에서 PC(Political Correctness)가 가능한가?

<지금, 만화> 15호에 커버스토리로 실린 글입니다.

2023-05-05 김종옥


도대체 PC가 뭐지? 퍼스널컴퓨터 말고…

최근 몇 년 간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주제는 정치적 올바름이었다. 웹툰,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 예술 영역에서 PC 지지자들과 PC 반대자들의 논쟁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먼저 도대체 정치적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은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신념, 또는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회적 운동이다.

인간은 가지고 있는 어떠한 요소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각각이 가진 다름에 대한 인정을 기반으로 모든 인간은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는 주장이다. 정치적 올바름에서 주장하는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요소에는 출신, 인종, 성별, 성적 지향성, 신체적 특징, 장애, 종교, 직업, 나이 등이 있다. 정치적 올바름은 인간이 갖는 인권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으며, 1980년대부터 다민족, 다인종 국가인 미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백인 남성 위주의 세계관에 저항하고 차별받는 소수집단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여타의 인권 운동과 함께 추진되었다.

그간 인어공주, 백설공주, 토르 : 러브 앤 썬더등 디즈니 영화의 캐릭 터 선정과 관련한 논쟁, 복학왕, 틴맘, 프리드로우, 참교육등의 웹툰을 둘러싼 정치적 올바름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쟁 등이 치열했다.

PC를 다루기 위해 너무 과하게 소수자의 요소를 드러낸다는 이야기가 있는 가 하면 이렇게라도 유색인종과 성소수자, 장애 등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이 드러나야만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양성을 배려하기 위해 시작했던 운동이 안타깝게도 문화 상업주의나 문화 전체주의로 변질하고 있다는 우려속에 프로불 편러’ ‘PC PC 지지자를 비하하는 표현도 나오지만, 공허한 표어가 아닌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공동체 형성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적극 시행해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주장도 확산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현재 복잡하게 논쟁으로 제기되는 쟁점들에 대해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현실에서 PC의 역할이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해도 성별연령인종장애종교성적 지향학력 등 에 의한 차별과 혐오가 상존하는 게 현실이고, 이들을 위한 정치적도덕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표현에서 인종, 성차별, 약자에 관한 편견을 배제하자는 것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다. ‘정치적 올바름은 불현듯 나타난 용어가 아니다. 우리는 PC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간 공동체 안에 다양한 타인이 존재하고, 그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편견이 아닌 차이로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해 환기해 왔었다.


PC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

대중예술로서 만화는 끊임없이 다양성에 근거한 현실 반영에 목소리를 내어왔고, 다수의 작품들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혐오에 저항해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성과 인기몰이에 편승해 소수자를 향한 조롱과 비하 표현을 무분별하게 서사화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지난해 복학왕의 여성 혐오 표현을 계기로 차별과 혐오 표현을 담은 웹툰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첨예했다. 복학왕은 이번 문제 제기 이전에도 동남 아 출신 이주노동자와 청각장애인 여성에 대한 조롱과 비하 표현으로 비판받았다. 논란이 된 복학왕이외에도 프리드로우에서는 성소수자인 캐릭터를 희화화하고 변태성욕자처럼 묘사한 장면이 장봉남의 꿍꿍이이라는 소제목으로 몇회에 걸쳐 연재되었고, 참교육은 최근 촉법소년 문제 등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삼아 청소년들을 교권 침해의 원흉이자 체벌이 정당화되 는 존재로 묘사하는 등 혐오 표현으로 청소년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 논쟁은 ‘PC’표현의 자유가 맞서며 더욱 치열했다. 웹툰 플랫폼 회사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리고, 청와대 게시판에 연재 중단, 작가 퇴출등의 청원이 올라가는 등 정치적 올바름(PC)’을 강조하는 입장과 이들이 과도한 반응으로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며 사회적 이슈로 확장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혐오 표현사이의 딜레마는 만화계를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계속 드러나고 있는 논쟁점이다.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창작자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풍자였다는 사과도 문제가 된다. 문화평론가 위근우는 현실 반영이 반성적 전유를 거치지 못할 때

텍스트의 핍진성은 자칫 사회적 통념에 대한 재생산 및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창작물에서 소수자 설정이 나온 것만으로는 PC가 될 수 없다. 사회적 편견을 기반으로 형성된 소수자들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지 않는 소수자 캐릭터는 비하와 왜곡을 증폭시킬 뿐이다.

그래서 모든 창작물에서 여성혐오, 성소수자와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하와 조롱에 대한 비판은 타당하고, 전폭적으로 지지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내용에 대한 평가가 오랜 세월 투쟁의 과정 속에서 얻어낸 민주주의의 산물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사상 때문에 탄압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서 싸울 것이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 딜레마는 한쪽의 승리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차별과 편견에 대한 문제제기에 피로감을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된 차별 의식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한 걸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성장 중심주의 사회에서 그간 소수자에게 부당했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해 우린 모두 걸음마 수준이다. 모두에게 열린 마음과 배움이 필요하다.


소수자는 무해해야만 유익한가?

웹툰 적절한 교환일기는 작가가 오스트리아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의 독일인 친구는 서울은 어딜 가나 사람 많고, 가게 많고, ! 와이파이 잘 터지고. 근데 서울엔 왜 장애인이 없어?”라고 묻는다. 작가는 오스트리아의 길에 장애인이 많다"고 말하고, “온갖 사람이 길에 나올 수 있는 나라가 선진국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청각장애가 있는 라일라 작가는 자전적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에서 한 나라의 복지수준은 길거리를 다니는 지체 장애인의 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차별이 심해지면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구조가 사회적 차별이 이들의 존재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인은 주류 서사에서 쉽게 배제된다. 그들의 다름민폐라고 생각하는 폭력적 시선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림1>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림2>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페이스북


전 세계가 우영우 앓이중이다. 그래서 반갑다. 우리가 몰랐던 채널인 ENA는 한 편의 드라마로 핫한 채널이 되었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시청률은 첫 방송 0.9%에서 평균 17.5%를 기록하면서 마무리했다.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장애인에 대한 일방적인 인간 승리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을 통 해 함께 발전해 나가는 주체로서의 우영우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 늘 배제되었던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문제 제기하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신선한 작품이다.

그러나 시선을 살짝만 돌려보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차별이 무의식적으로 만연해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사회적으로 남긴 울림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주장하며 지하철 시위를 전개한 장애인들에게 민폐라며 비난과 조롱을 담은 시선을 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을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차별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미디어는 가끔은 엉뚱하지만 대부분 사랑스럽고 귀여운 우영우는 공공의 영역에 들어와도 되지만, 대다수 자폐 장애인의 모습을 한 김정훈은 함께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 주 독자층이 청소년인 웹툰은 이러한 문제에 더 민감하다. 어서오세요. 305호에, 내 자식의 사생활, 모두에게 완자가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이다. 어서오세요. 305호에의 와 난 작가는 성적다수자와 성적소수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세상을 위해 이 만화를 기획했다고 밝힌다. 2008년에 연재된 웹툰 어서오세요. 305호에는 성소수 자의 존재를 인지시키고, 인간적 관계를 맺어가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민감한 소재를 다루며 호평을 받았다. 대다수의 작품은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편견을 드러내고, 이성애자에게 성소수자도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애쓴다.

사회는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극심하다. 이성애 이외의 다른 성적 지향성에 대해 폭력적인 반응을 자연스럽게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웹툰은 조심스럽고 안전하게그리고 조금은 교육을 하는 것처럼 설명을 녹여낸다. 마치 우리도 이 세상에 살고 있어요.’라고 소심하게 속삭이는 것 같다. 이성애 자나 호모포비아들이 불쾌해하지 않을’, ‘안전한 캐릭터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웹툰이 담아내는 PC의 한계다. 대중매체에 이런 소재의 작품들이 연재되는 것만도 진일보한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사회는 서서히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는다면 변화는 없다. 웹툰이 표현과 창작 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유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대중예술로서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림3>〈어서오세요. 305호에〉 Ⓒ 와난 



때로는 웃자고 한말에 죽자고 덤벼야 한다.

웹툰에서 편견과 혐오의 문제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주제는 성 차이직업(계급/계층)’을 중심으로 한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였다. 시대가 변화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구조적 불평등 은 세분화되고, 다양한 차별과 편견 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비중이 늘어나면 서 다문화 사회의 삶, 그간 공동체 안에서 유령처럼 무의식적으로 배제했던 성소수자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도 담긴다. 하루에 수백 편의 웹툰이 연재되고 있고, 세상의 모든 감정은 웹툰 속에 반영된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무의식적이고 비의도적인 습관, 농담, 왜곡된 용어 사용 등으로 쉽게 차별과 억압 이 이루어진다. ‘웃자고 한 이야기였어’,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몰랐어라고 쉽게 말하고, 때로는 불편해 하는 사람들에게 너 너무 예민하다

는 반응을 보인다. 다수자와 소수자 관계에서 권력관계는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PC로 무장한 프로 불편러여야 한다. 그래야 부당함에 움 츠리고 있던 나의 이웃이, 가족이, 친구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림4>〈내 자식의 사생활〉 Ⓒ 보름 


No matter who you are, where you’re from, you skin color, you gender identity, just speak yourself.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든, 어디 출신이든,

어떤 피부색을 가졌든, 성 정체성이 무엇 이든, 당신에 대해 이야기 하세요.

Find your name and find your voice by speaking yourself. 당신의 이름과 목소리를 담아 이야기 하 세요.

BTS 2018 UN총회연설 중


정치적 올바름이 굳이 언급되지 않아도 인류가 다름과 어울림에 대해 더 많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 웹툰이 담아내야 할 목소리가 너무 많다. 다양성 만화 창작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필진이미지

김종옥

한국만화웹툰학회 부회장
한림대학교 융합문화콘텐츠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