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도심 사진
“어디 사세요?”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면 하는 질문이다. ‘사는 곳’은 그들의 부와 신분을 드러내는 요소로 다른 사람이 나를 재단하고 판단하기 좋다. 서울은 많은 사람들 이 살기 바라는 곳으로 이곳에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자부한다. 2022년 4월부터 5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서울은 노른자 땅으로 경기도는 흰자 땅으로 표현된다. 근래 서울에 집값이 급등하면서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2030세대는 외곽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이 현상을 ‘탈서울’이라 표현한다. 씁쓸한 현실을 대변하는 단어인 셈이다.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현대의 발전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도심중심주의 사고가 만연하게 도왔다.
그러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의 장기화는 인류에게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한다. 아무런 예측을 할 수 없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는 팬데믹으로 인해 빠르게 다가왔다. 이제는 개인의 생존 문제가 되어버린 팬데믹의 경험은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야기시켰으며, 개인의 건강에 투자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몸을 챙기는 형태로 변화했다. 또 그들은 도시 생활의 각박함을 벗어나 시골 생활의 여유와 정취를 누리며 힐링하려는 라이프 스타일을 선호하게 되었다. 특히, 장기화된 팬데믹에 지친 MZ(밀레니얼+Z세대) 세 대는 전원생활을 동경하게 되었으며, 항공권 가격 급등으로 인해 국내 여행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유명 관광지를 벗어나 조용한 시골의 여행 명소를 찾는다. MZ 세대는 취향을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국내 여행지를 찾아내고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한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와 세대의 등장은 도심중심주의를 벗어나 색다른 지역의 문화를 찾아 받아들이는 형태가 되었으며, 이 지점이 삐약삐약북스의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의 관점과 맞닿아 있다. 노른자 흰자 땅에도 속할 수 없는 그 외 다른 지역의 조명과 각 지역에 어울리는 만화 구성은 새로운 지역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게 한다.
삐약삐약북스의 〈지역의 사생활 99〉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는 ‘시즌 1’ 9권, ‘시즌 2’ 9권씩 구성되어 있다. 이 만화는 시즌별로 지역의 9곳을 9명의 만화가가 9개의 만화책으로 만들었고 비수 도권 탐방기를 그린다. 다양한 지역을 배경으로 그린 이 시리즈는 여러 만화가 들의 지역에 대한 관점과 창의적 소재들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대체로 우리가 보는 웹툰과 영화, 드라마에서의 배경이 대체로 서울이라는 것을 지적하며 지역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림1>삐약삐약북스의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
〈지역의 사생활 99〉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한국만화가협회에서 선정한 ‘2021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이 되기도 하였으며, 이 만화의 목표는 시즌 별로 ‘비수도권 도시 9곳을 소재로 9권의 이야기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로 10년 간 99개 도시를 소개하는 것이다. 현재 9개로 구성된 만화 시리즈가 두 개의 시즌이 나왔으며, 현재 ‘시즌 3’을 준비하고 있다. 제작된 시즌들은 텀블벅 펀딩을 통해 출판되었으며, 시즌 1은 792명, 시즌 2는 910명에게 펀딩을 받 아 출판되었다. 이처럼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는 도시가 아닌 지역 무대를 바탕으로 다양한 주인공들의 삶을 그려내면서 이를 보는 독자들의 시각을 확장시켰다.
‘시즌 1’은 9개의 지역을 바탕으로 비수도권 탐방기를 구성하였다. 이 시즌 의 지역은 ‘강원도 고성, 충청남도 공주, 광주, 전라북도 군산, 충북 단양, 전남 담양, 대구광역시, 부산광역시, 충청북도 충주’ 9개 지역이다. 이 만화는 각 지역 9곳을 배경으로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 4명의 중학생들의 하룻밤 대화, 배송업을 하는 용과의 휴가, 졸업을 앞둔 주인공이 다시 고향에 내려오며 느끼는 것, 밀레니얼 세대 이야기, 인어와 인간의 우정, 우정과 사는 지역의 거리감’을 잘 전개하였다.
‘시즌 2’도 9개의 지역을 바탕으로 비수도권 탐방기를 그렸으며, ‘시즌 1’과 는 다른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두 번째 시즌에서 배경이 된 지역들은 ‘경남 양산, 강원 강릉, 경북 경주, 경북 구미, 대전광역시, 강원 동해, 충북 옥천, 울산광역시, 전북 정읍’이다. 이번 시즌에서도 다양한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표현되었다. 그 이야기는 ‘양산 통도사 주변의 음식점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비관론자 주인공과 낙관론자 친구와이 강릉 여행, 보고 싶은 외가댁의 추억, 고향인 구미에서 조카와 함께 고향에 오기 싫었던 이유를 풀어가는 이야기, 대전에서 과거의 회상, 집안에 6대째 내려오는 도자기를 깬 주인공, 현대로 시간이동, 일탈을 꿈꾸는 울산 중학생의 성장기, 서울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전라북도 정읍을 두 번째 고향으로 가지게 되며 알게 되는 이야기’들 이었다.
이 두 개의 시즌들은 각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또 지역에 여행을 가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일지라도 도시 사람의 시각에서 보는 그 지역의 삶의 모습을 잘 전개하였다. 즉, 삐약삐약북스의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는 ‘만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독자에게 다양한 지역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일깨워주는 만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지역소외 극복과 공동체 회복의 지향
서울이라는 도심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는 지역을 소외하고, 도시의 산물이 우월하다는 사고를 하게 했다. 지역 서사의 무지는 다양성을 잃어버린 채 도심의 배경만이 세련된 형태인 것 마냥 여긴다. 〈지역의 사생활 99〉는 이러한 우리의 무지를 일깨우며, 여행지로서만 여기던 지역의 이름들을 누군가의 삶의 터전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특히나 새로운 시대의 변화는 지역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이 만화의 취지와 맥락이 비슷하다. 디지털 기술과 SNS 등의 발달은 먼 거리에서도 서로 간의 연결과 활동을 할 수 있게 하였고, 코로나 19로 인해 이러한 행태는 더 빠르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 흐름들은 젊은 세 대와 예술가들이 도심 밖으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 다양한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데 한몫하기도 하였다.
▲<그림2>〈지역의 사생활 99〉 ‘부산편’, 비와 유영 Ⓒ 산호
2018년, BBC 글로벌 서베이(Global Survey)에서 진행한 ‘다양성에 대해 관용적인지’에 대한 질문에 한국은 전 세계 국가 중 뒤에서 두 번째 순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단일민족이라는 상징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우리의 다 양성을 확대시킬 수 없었다. 도심을 중시했으며, 지역을 소외시켰다. 많은 콘텐츠들이 도시를 배경으로 제작되었고 그것이 익숙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가 열 리며 MZ 세대들의 트랜디한 문화를 배경으로 ‘자신의 개성과 특색’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문화들이 생성되었다. 이러한 트랜드의 흐름은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에 잘 묻어나 있다. 텀블벅에서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가 시즌이 거듭되며 성장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의 변화를 대변하는 지표인 것이다. 오로지 도시만 사람들이 살고 있는 터전이 아니다. 다양한 지역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만의 문화를 영유하고 있다.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여행지로만 여기던 각 지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이 만화는 지역 소외의 관점을 새로운 시각으로 전환시키며 우리에게 소외가 아닌 하나의 공동체로서 새로운 삶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역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투영시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편견을 깨트리고 문화 다양성을 회복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디사세요’가 아닌 다른 질문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