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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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주인공이 외모지상주의에서 ‘주인공’으로 바로 서는 방법

<지금, 만화> 15호에 커버스토리로 실린 글입니다.

2023-05-09 홍난지


외모지상주의 비판과 변신 모티프의 결합

독자는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대리만족을 원한다. 현실 속 나와 비슷한 문제에 빠진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그가 보란 듯이 문제를 해결할 때 현실이 주지 못하는 통쾌함을 느낀다.

독자에게 공감과 대리만족의 쾌감을 주기 위한 웹툰의 전략 중 하나는 변신이다. 마법같이 외모가 변화됨으로써 다른 삶을 살며 원하는 것을 손쉽게 얻는 모티프는 외모지상주의에서부터 웹툰의 소재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외모지상주의와 같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외양이 변화하는 사례(나를 바꿔줘, 존잘주의)나 화장과 다이어트, 성형수술로 외모가 변화하는 사례(마스크걸,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여신강림), 그리고 전형적인 로맨스 판타지의 설정(이세계에 진입하여 다른 인물로 빙의나 환생)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되는 마법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볼 수 있다.

변신은 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모티브에 속하는 것으로 신화나 전설, 동 화 속에서 자주 접하던 것이다. 변신이 오랫동안 이야기에서 나타난 이유는 정체성 확인과 관계가 있다. 변신을 통해 전과 후의 변화가 극명하게 대비 되어 본래의 존재가 무엇을 욕망하고 결핍으로 느끼는지를 보일 수 있다. 나 아가 개인적사회적 삶 속에서 자신의 역할’, ‘삶의 목표, 타자와의 관계’2와 같은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옛이야기뿐 아니라 웹툰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웹툰에서 변신은 옛이야기에서 전하는 의미와 같이 주인공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외모 변화 자체에 더욱 초점이 맞춰진다. 본래의 외모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발생한 것이므로 외모가 변하면 해결된다는 전 제, 외모지상주의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나를 소거하자 되고 싶은 나를 발견한 존잘주의속 진다미

진다미는 행복은 외모가 아름다운 순서로 결정된다고 믿는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 사고로 얼굴에 큰 흉터가 생긴 진다미는 외모만으로 무차별적인 혐오와 괴롭힘의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현실의 도피처는 게임이었다. 여아들을 타깃으로 한 게임에서 진다미는 원하는 것은 뭐든지 이룰 수 있었다. 가상의 세 계에서 이상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그럴수록 현실 속 자신과의 대비는 두드러 져 불행했다. 자신의 외모 탓에 세상이 바라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인식한 진다미는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죽기로 결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속에서 자신을 지워버리기로 하자 재생의 기회가 찾아오고 다미는 새로운 삶의 게임을 시작한다.

<그림1>〈존잘주의〉 Ⓒ 령

재생한 다미의 삶은 마치 게임같다. 1년 안에 진실한 사람을 할 남성을 찾아야 하는 퀘스트가 열리고, 퀘스트를 실행하기 위한 보상으로 다미의 외모는 세상의 기준에 맞게 아름다워진다. 얼굴의 흉터가 사라진 것은 물론 날씬한 몸매 를 갖춘 매력적인 외모로 변신한 것이다.

다미는 현실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마법 같은 변신 퀘스트가 열린 순간 이미 현실 속 진다미는 소거되었다. 진짜 세계의 나는 사라지고 되고픈 나의 모습만 남아서 정해진 게임을 수행할 뿐이다. 진다미는 어떤 모습을 진짜 나라고 생각할까?


문제 해결의 시작은 외모 변신에서부터, 나를 바꿔줘

나를 바꿔줘는 다른 사람의 외모로 변신하여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옴니버스 형식의 웹툰이다. 주인공에게 생긴 문제를 타인의 외모로 바꾼 다음 해결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외모지상주의 전제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본래의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로 살펴보 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한 점에서 다른 사람으로의 변신은 해결의 도구로서 유용할 수 있다.

그런데 나를 바꿔줘에서의 외모 변화는 주인공의 성별과 부()의 여부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여성이면서 경제적으로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최보윤이나 정현주’, ‘심채원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문제를 모두 외모의 탓으 로 돌리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연봉이 더 높고 사회적으로 더욱 인정을 받는 현실을 꼬집으며 매력도 자본이라고 말하는 연구들도 있으니 이 주인공들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림2>〈나를 바꿔줘〉 Ⓒ 이지호, 호띠

그러나 모든 직종에서 이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많이 상 대해야 하는 서비스업에서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최보윤, 정현주, 심채원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어떠한 역량을 개발해야 할지 애쓰는 대신 외모만을 탓한다. 세상이 여성의 외모에 갖는 지나친 관심과 엄격 한 잣대, 그리고 그것을 쉽게 탈피할 수 없는 가난한 환경은 그들이 모든 원인을 외모에만 돌리게 만든다.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여민서, 배선주, 에이든은 최보윤, 정현주, 심채원이 겪은 사건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여민서배선주는 외모에 대한 불만족이 아니라 복수를 위해 변신한다. 여민서는 여성이지만 외모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우며, 배선주의 관심은 복수하기 위해 필요한 힘에 치중된다. 두 주인공의 조건은 가난과 거리가 멀고, 외모에 강박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남성이라는 점에서 앞의 세 주인공과 다르다. ‘에이든(남성)’은 물질만능주의자로 사랑도 친구도 권력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여러 개의 회사를 거느리는 에이든은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며 다른 사람으로 변신을 하지 않은 대신 건강을 위 해 다이어트를 하고 행복한 삶을 얻는다. 에이든은 매력이 자본이 아니라 자본 이 매력으로 작용한 사례다.

나를 바꿔줘는 우리 사회가 무엇을 힘의 도구로 인식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름다운 외모와 돈이 권력이 된 세상에서 무엇이 진정한 가치 인지를 재고해볼 만하지만,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몰아가는 한계가 있다. 그들이 왜 외모 변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지를 비판하기 위해 나타나야 할 사 회의 인식, 구조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는 이미지와 보이지 않는 의미

이미 웹툰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진전되어 왔다.

내면의 진실은 제쳐두고 외모에만 신경 쓰던 김모미(마스크 걸)의 몰락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깨달은 강미래(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원작에서 특정 캐릭터의 외모에 대한 비난을 최대한 언급하지 않는 선에서 덤덤하게 표현한 노블코믹스 황제와 여기사가 그 사례다.

그러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웹툰은 그 의도대로 소비되기가 어렵다. 황제와 여기사를 제외하면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긴 하나 비판을 위해 그려야 할 아름다운 외모와 그렇지 못한 외모, 사회적 편견 등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오히려 아름다운 외모를 강조 하게 된다.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외모에 대한 언급과 관심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반복적으로 외모에 대한 비판이 서려 있는 작품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아 현실에서 외모,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비판을 위한 표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지의 여부다. 정지된 이미지, 글자가 상호적으로 결합되어 표현되는 웹툰에서 시각은 웹툰을 해독하는 유일한 감각이다.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비판을 위해 표현한 아름다움과 그렇지 않은 이미지는 볼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릴 수 있단 것이다.

외모지상주의 웹툰에서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부정의 영역에 가둬버리는 표현이 직접적이든 암시적이든, 자주 등장한다. 물론 그런 행동 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없다 해도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추()가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히는 시각적 이미지들이다. 또한 추함을 표현하는 특정한 외형은 비슷하게 반복적으로 그려지고 아름다운 외형의 기준은 너무 한정적으로 틀에 박힌 듯 그려진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닿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눈에 익은 아름다운 모습을 갈망한다.

되고 싶은 나와 현실 속 나 사이에서 오는 참을 수 없는 격차. 되고 싶지만 이루지 못했을 때 느끼는 억울함과 배반감, 수치심은 타인에게 전가된다. 타 인을 비난하는 순간 자신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혐오는 타인에 대한 혐오로 투사되기 십상이다. 이렇게 사회의 외모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강박을 비판하려다 외모에 대한 관심과 편향된 기준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외모지상주의와 사이다 서사의 결합으로 강화되는 ()에 대한 징벌

외모지상주의를 담은 이야기가 빠르고 통쾌한 만족감을 주는 사이다 서사와 결

합하면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의 면모를 보이기가 더욱 어렵다. 회차별로 사건이 시작되고 해결되어 만족감을 주는 빠른 이야기 흐름, 공정하고 정당한 처벌에 대한 요구는 대중은 더 이상 고루한 미덕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고 사이다 서사에 힘이 실린다. 작품의 수가 늘어날수록 웹툰 연재는 과도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다.

결국 독자가 요구하는 바를 예측하며 충실히 응답하는 것이 치열한 연재 경 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래서 문제해결을 지연시키는 방해물들은 금방 사라지게 만든다. 빠른 호흡에서 캐릭터들의 성격은 단순해지고 기능적으로 소비된다. 캐릭터별로 있는 그대로의 주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뻔하게 소비되는 것이다.

추하다고 손가락질을 받던 주인공이 외모 변화로 인해 아름다워지고 누구 에게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과정은 아름다움=’, ‘추함=의 구도를 반복할 뿐이다.

사이다 서사는 빠른 흐름과 통쾌한 문제해결이 핵심이다. 문제의 해결은 상대방의 정체를 간파하여 죄를 발견하고 벌을 내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스템과 사회적 안전망이 해주지 못하는 응징을 이야기에서 대신 해소해 준다. 그러나 사이다 서사도 반복될수록 본래의 사회 비판 의도는 사라지고 죄의 발견과 징벌만 남는다. 여기에 외모지상주의 키워드가 결합하면 추한 것은 죄악으로 발견되어 처절한 응징을 당한다. 이야기의 도입에선 추한 외모로 인해 혐오의 대상이 되는 존재에게 혐오를 쏟아내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내 면의 추함이 발견된 캐릭터에게 총구를 겨눈다.

사이다 서사에 용서란 없다우리의 삶은 이분법적인 세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모든 추는 발견되는 즉시 징벌의 대상이 된다그렇기에 추는 철저하게 배제되고 은폐되는 것이다더 무서운 것은 아름다움이란 상대적이어서 엄격한 아름다움의 기준에 부적합한 것은 모두 추에 속해 버린다누구라도 징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림3>〈오늘의 비너스〉 Ⓒ 엄세윤, 도달


그 모습 그대로 미의 기준이 되길 바라는 오늘의 비너스

오늘의 비너스는 외모지상주의를 다루고 있지만 다른 변신 양상을 보인다. 배 우를 꿈꾸며 연기실력을 키우는 강하나는 아름다운 외모와는 거리가 있어서 오디션을 봐도 원하는 배역에 캐스팅되기 힘들다. 강하나의 세계에서 아름다움의 기준은 S그룹이 정해왔다. 그들은 아름다움의 희소가치에 주목하고 높은 기준을 제시하여 그룹의 안위를 지켜왔다.

그런데 갑자기 강하나에게 S그룹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모델로서 “‘그 모 습 그대로세상의 미의 기준’”이 되어 달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여느 외모지상 주의 웹툰의 전형적인 이야기처럼 전개된다면, S그룹은 강하나를 아름답게 변신시키려 할 것이다. 외모 때문에 원하던 배역을 맡기 힘들었으니 자존감이 떨어진 강하나는 자신의 외모를 혐오했을 것이기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의 비너스는 편견을 과감히 깨부순다. 강하 나가 변하는 대신 세상이 변하게 만드는 것이다.

강하나를 발탁한 레오는 세상엔 다양한 아름다움이 존재하는데 왜 인간의 아름다움은 이토록 획일적일까?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라며 의문을 표하는 인물이다. 레오는 강하나를 통해 편한 아름다움이란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하고, 이 캐치프레이즈가 성공할 수 있는 전략으로 일단 유명해지라고 말 한다.

외모 강박에서는 아름다움은 스토리텔링이라서 단순노출효과(mere- exposure effect)라는 심리학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낯선 것보다는 친근한 것, 익숙한 것, 많이 보고 들은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레오가 강하나를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만들기 위해 일단 유명해지라고 내세운 전략은 유효하다. 레오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 그의 전략이 성공한다면 사람들은 강하나처럼 되려 할지도 모른다. 편한 것, 평범한 것이 아름다운 기준이 된다면 그것에 맞춰 추함의 기준이 세워질 테니까. 오늘의 비너스의 과제는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전파일 것이다. 세상을 이롭게 할 아름다움은 편한 것도 강하나도 아니다. “자기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새로운 아름다움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낼 주인공들을 기대하며 외모지상주의를 전제로 만들어지는 웹툰은 시각 이미지로 표현되는 특성상 표준화된 외모를 의도치 않게 양산함으로써 외모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지만 외모 변화라는 변신을 통해 되고 싶은 나와 현실의 나를 통합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면, 변신이란 마법 같은 사건을 겪은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닿으려면 주인공은 스스로의 내면에 접근하여 진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웹툰은 연재되는 긴 과정을 통해 캐릭터 가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갈등을 설명할 기회가 있다. 빠르게 통쾌함과 쾌감만을 주려는 목적을 조금 내려놓는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외모지상주의 웹툰 속 주인공은 진짜 나(정체성)’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며 무차별적인 혐오를 멈출 수 있을 것이 다. 이를 통해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혐오를 멈추는 방법을 독자들에게도 전달한다면 한계가 분명한 영역에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남들이 정해준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더 몰두하여 아름다움이란 다양한 것이라는 결과에 이르게끔 말이다.

삶의 주체가 된 주인공은 더는 외모지상주의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주인공이 우리에게 많이 제시되고 유명해져서 새로운 아름다움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필진이미지

홍난지

만화평론가, 정책연구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웹툰만화콘텐츠전공 교수
웹툰자율규제위원회 위원장, 前 한국만화가협회 만화문화연구소장
 『웹툰 퍼포먼스와 독자의 즐거움』, 『이말년』 등 도서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