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하나뿐인 몸과 맘을 사랑하기로 했다면: 〈나는 100kg이다〉의 만화가 작은비버

<지금, 만화> 15호 인터뷰에 실린 글입니다.

2023-05-12 지금, 만화


▲작은비버 작가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일상툰 작가가 되어버린 작은 비버입니다.

 

만화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만화가로 어떻게 활동하시게 됐나요?

아주 어릴 적 유치원 선생님께서 해 주신 비버는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라는 한 마디로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처음에는 화가를 꿈꿨다가 만화를 보고 이게 더 재미있는데?’하고 만화가로 꿈을 잡게 되었어요. 이것저것 알아보고 만화 대학에 가서 3년간 배운 결론은 만화는 너무 어려워 못 하겠다.”이었지만요. 4년간 일러스트를 그리다 보니 그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 만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SNS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리고 SNS로 작 품 활동하시는 데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SNS는 대학생 때 교수님께서 과제 공지를 SNS로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만들었어요. SNS 공지는 금방 그만 두셨지만 그 후 그림을 그리면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는 것이 재미있어서 쭉 이어가고 있습니다. SNS의 장점과 단점은 즉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SNS를 활용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홍보 효과를 낸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그냥 재미있어서가 제일 큰 이유인 것 같아요.

일러스트나 만화를 그릴 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이 뭔지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내가 만족스러운지, 그리고 재미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요. 그런데 SNS에 그림을 올리다 보면 좋아요마음’, ‘리트윗같은 것들이 즉각적으로, 그리고 구 체적인 수치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수치들을 신경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기는 정말 어려워요. 반응을 늘리기 위해서 요즘 유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집착하게 되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서 늘 조심하려고 합니다.


예민한 내면의 반영으로 빵요정 탄생

 

작은비버 작가님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빵요정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다들 이 이야기를 하면 배신당한 표정으로 보시지만 저는 빵보다는 밥파였습니다. 대학 시절에 어느 식빵 집을 들렀었는데 하얀 벽이 너무 예쁘고 이 빈 자리에 내 그림을 걸고 싶다.’라는 생각을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사장님께 평소 그림을 보여드리고 전시 생각은 혹시 없으시냐고 여쭤보니 이 가게에 걸릴 그림의 초안을 가져오면 생각해보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식빵 전문점이라서 식빵 요정과 식빵 종류들을 몇 개 그려 가져갔던 것 같았는데 결과는 거절이었습니다. 동화풍 보다는 좀 더 디자인적인 느낌을 원한다고 하셨고 그렇게 그려 오면 걸어주겠다 하셨지만 그 쪽은 제가 지향하는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기서 이야기를 마무리했어요. 그러다 2년쯤 창작을 하고 싶다!’는 충동에 그간 그렸던 그림들을 검토하다가 빵요정을 골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의 호응이 좋아서 신나게 그렸던 것 같아요.(웃음)


이 빵요정으로 어떤 작업을 준비 중이신가요?

지금 빵요정이 나오는 동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제 동화는 빵을 예쁘게 그리는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2~3년간 그린 그림을 모아보니 거의 모든 캐릭터가 자고 있더라구요. 늘 쉬고 싶고 자고 싶었던 마음이 잔뜩 녹아 있었던 거였어요. 겉으로는 빵이었지만 결국은 나는 100kg이다처럼 이 동화도 제 이야기였던 거죠. 이걸 확신하게 된 건 빵요정 도감을 제작하면서 였습니다. 그림들을 그리며 점점 캐릭터, 빵요정의 숫자가 늘어나다보니 한번 싹 모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왕 만드는 거 독자님들도 볼 수 있게 해볼까?’ 싶어서 50명의 빵요정이 수록된 빵요정 도감을 그려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었어요. 작업을 완료하고 훑어보며 느꼈던 것은 이 빵요정들은 저를 50개로 나눈 모습이구나.’였답니다. 충동성이 강하고 남을 놀리는 걸 좋아하면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하고, 푹 쉬고 싶어하고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하면서 또 만나고 싶어 하는 그런 모습들이요. 도감에는 빵요정의 그림과 함께 희귀도, 빵의 설명, 그 빵요정에 대한 이야기가 간략하게 적혀 있는데요. 그러려던 것은 아니지만 이 도감 자체가 제 50개의 이야기 레퍼런스북이 되었어요. 살아가며 하나씩 하나씩 동화로 완성할 예정입니다. 제일 처음으로 나올 것은 둔한 줄 알았던 당신에게 : 꽈배기 요정 이야기에요. 저는 살면서 만난 의사들이 모두 당신은 예민하다, 지금 굉장히 자극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니다. 나는 둔한 사람이다.”라고 대답을 했었어요. 왜 그런 대답을 하게 되었을까? 예민한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이 꽈배기 요정은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동화입니다.

▲빵요정 캐릭터


만화 지역의 사생활 99시리즈 작업을 하셨는데, 내용은 독특하게도 판타지인데 어떤 의도이며 어떻게 이 시리즈 작업을 하시게 됐나요?

지역의 사생활 99작업은 전적으로 작가에게 맡겨 주시는 일이었어요. ‘어떻게 그려야 제가 제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다 보니 평소 좋아하던 비현실적인 소재가 현실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이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불운에서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어느 날엔가 전주에서 열린 문구 행사를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손님이 너무 없어서, 정말 두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고 결국 큰 적자가 날 상황이었어요. 이럴 때 푹 쳐져 있기 보다는 작가님들과 여러 이야기를 하러 모임을 왔다.’라고 마음먹고 작가님 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옆 자리에 한 작가님이 혼자 지친 기색으로 앉아 계셨어요. 마침 어머니가 싸 주신 샌드위치가 있어서 함께 하나 권해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고향이 광주라는 말에 눈빛이 반짝이시더니 지역의 사생활 99작업을 제안해주셨었어요. 그 작가님이 바로 불키드 작가님이셨답니다. 지역의 사생활99는 저의 코로나 기간 중 반년에서 1년 정도를 먹여 살렸었기 때문에 정말 기억에 남는 작업이에요.

 

지역의 사생활 99를 작업하실 때 어려운 점이나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점은 제가 만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일러스트와 만화의 차이를 확실히 느끼게 되었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컷 한 컷을 일러스트마냥 온 힘을 다해 그리려 했었는데 그렇게 해보니 오히려 가독성이 떨어지더라구요. 결국 고민하다 거의 완성한 작업을 싹 갈아엎고 다시 처음부터 작업했었어요. 좋았던 건 삐약삐약 출판사의 두 분 이 정말 전적으로 믿어주시고 확실한 페이와 아무런 후려침 없는 피드백을 주셨다는 점이에요.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정말 어떻게든 페이를 깎아 보고자 후려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왔기 때문에 정말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내 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감, 그리고 씁쓸함

 

나는 100kg이다를 그리시게 된 계기와 어떤 반응이 있을 거란 예상을 하셨나요?

지역의 사생활 99를 작업한 후에도 코로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일러스트 작업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회사 생활도 재미있었지만 한 번 만화를 그려봤더니 뭐든지 간에 만화가 정말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저에게는 확실하게 그려낼 수 있는 어떤 정리된 것이 아직 없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것을 억지로 그려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러던 중에 친구가 , 비만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그려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한번 그려보는 건 어때?”라고 말을 해줬어요. 비만여성인 저의 이야기는 적어도 10년은 넘게 겪은 일이고 10년간 하지 못하고 쌓인 것들이 잔뜩 뭉쳐져 있었기 때문에 한 화씩 나눠 담기만 하면 될 정도였습니다. 그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당장 회사에서 점심시간마다 한 화, 한 화씩 그려 올리기 시작했어요. 이런 말을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만화가 반응이 이렇게나 클 줄 몰랐습니다. 제 만화의 타깃층은 저 와 같은 고도 비만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도 비만뿐만 아니라 저체중 여성까지 공감하고 많은 반응을 주셔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씁쓸했습니다.


나는 100kg이다를 보고 난 독자들의 반응에 어떤 기분이 드셨고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들의 의견은 무엇인가요?

굉장히 씁쓸했습니다. 어째서 고도 비만, 심지어 비만도 아닌 분들까지 이렇게나 공감하시는 거지 싶었어요. 저는 남의 잣대에 맞춰 다이어트 하는 것이 정말 아무 소용이 없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만화와 이야기가 관심과 반응이 있어 기쁘기도 했지만 역시 씁쓸함 이 가장 컸습니다. 만화의 마지막에도 그려 넣었듯, 이 이야기가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기를 바래요. 기억에 남는 의견은……, “, 이 사람 남자구나.” 싶은 악플들은 오히려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나타나면 SNS의 많은 분들이 말벌 퇴치하는 아주머니마냥 호다닥 나타나서 쫒아내 주셨거든요. “이 사람 여자분이시구나…….” 할 때가 슬펐습니다. “나는 그래도 날씬할 거야.” 라거나 남의 몸에 참견하지 말라고 하는 만화에 다이어트 법을 빼곡히 적어두고 가시는 분도 계셨어요. 허허.

 

솔직한 책 제목인 만큼 작가님의 삶과 일상을 본 독자들의 극단적인 반응이 있었을 듯합니다. 그 가운데서 이 책이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시고, 작가님이 말씀하신 씁쓸함의 정체도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또 그 씁쓸함이 작가님의 일상과 창작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됐나요?

제가 받은 피드백과 서치한 것으로 따지자면 긍정적인 영향이 좀 더 컸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몸을 아끼며 운동을 시작하신 분, 자신의 몸을 미워하지 말자고 결심하신 분들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부정적인 피드백이라면 개말라’(SNS에서 거식증을 지지하는 프로아나’(pro- ana)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편집자 주)로 살아가는 이유 100가지라는 이와 비슷한 내용을 보면서 참 속상했어요. 전 거식증을 선망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니까요.

저는 독자님들께서 제 이야기들을 보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이럴 때 이 작가는 이 렇게 하는구나.’ 같은 소소한 안심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씁쓸함은 저에게 어떤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게 만드는 동기를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가다듬고 풀어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나는 100kg이다를 보면 가족 사이의 끈끈한 정이 느껴지는데 가족을 그리실 당시 책 속에 어 떤 의미나 역할로 생각해 두고 작업하셨나요?

저는 작업을 할 때에 큰 계획 하나만 잡아 두고 세세한 것들은 손이 가는 대로 그리는 편입니다. 가족에게 어떠한 역할 같은 것을 줄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그저 , 이 말을 들었을 때 슬펐지.”하고 그렸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반응이와서 부모님께 사과를 드릴 정도였지요. 추후 편집자님께서 작가님과 대화를 나눠 보면 작가님의 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들이신데 많은 독자들이 오해한 것 같으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더 그려보자고 말씀을 해주셔서 긍정적인 에피소드들을 추가했습니다. 추가로 부모님께서는 저의 사과와 상황 설명 들을 들으시고 독자분들은 나의 아주 작은 단편 이미지를 보고 욕하는 것이니 나에게는 아무 타격이 없다. 오히려 네가 그 때 상처받았던 것 같아 미안하다.”라고 해주셨습니다.

 

나는 100kg이다를 읽으면 외부의 시선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게 느껴 지는데 가장 중점적으로 그리고 싶으신 주제라면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큰 주제라는 것 자체가 없었어요. 계속 머릿속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을 잡아다가

하나씩 정리해서 내보냈습니다. 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면……, ‘내 몸을 남의 시선에 맞춰 부끄러워하며 가리거나 미워하지 말고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편안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인 것 같아요.

 

여성의 외모에 대한 만화로서 나는 100kg이다는 편견과 불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현실적인 접근으로 감내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으신 건가요?

특별한 의도라기보다는 저 자체가 굉장히 겁쟁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온갖 일들을 다양하게 벌이지만 걱정이 많아서 항상 뭔가를 시작할 때에는 불안을 못 이겨 울곤 합니다. 또 뭔가 일이 시작되어 버렸거나 잘못되었을 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 무엇인가, 짚어 나가는 버릇이 있어서 그런 면이 만화에 녹아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근 다양한 신체 사이즈로 사회적 다양성을 주장하는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고 나는 100kg이다가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시나요?

가장 구체적인 바람은 여름에 긴 팔, 후드티를 입어 몸을 꽁꽁 감싸고 다니는 비만 여자아이들, 과체중 여자아이들이 시원한 반팔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늘 옷을 사지 못해 부모님에 게 미안해하고 속상해하던 아이들이 본인의 사이즈가 맞는 새로운 옷가게를 알게 되길 바라구요. 살이 찌는 것이 생각보다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100kg이다를 그리시면 재미있었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고 단행본 작업을 하자마자 저는 이 작품으로 많은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불안감에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담당 편집자님께서 원래 목표치였던 80꼭지를 60꼭지로 낮춰주시고, 멈춰 버린 저에게 학습지처럼 만화에 대한 질문을 빼곡히 적어 보내주셨던 게 기억나요. 하나하나 질문에 대답하고 나니 이야깃거리가 잡혀서 총 116꼭지를 작업했었습니다. ‘편집자라는 직업이 왜 있는지 알겠다.’하는 기분이었고 원고 작업이 참 재미있었어요.

 

나는 100kg이다를 그리시고 난 뒤 실제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가 좋았어, 공감이 많이 되었어. 그때 그 이야기 있잖아.” 하면서 연락을 주셨어요. 제 일기장을 모두가 보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느낌이었답니다. 꽤 즐거웠어요. 그리고 신기했던 점은 외주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이래서 다들 책을 내 는 걸까?”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100kg이다를 그리실 때 심플하면서도 간결한 화풍이 인상적인데 어떤 의도가 있나요?

부끄럽네요. 회사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그렸어야 해서 굉장히 간결했습니다. 단행본 원고도 회사를 다니며 작업해야 했는데 간결한 그림체 덕을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만화는 자기 실력의 10분의 1로 그리라는 말이 뼈에 새겨졌어요.



가장 감명 받은 만화가는 누구이며, 친하게 지내는 동료 만화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아직 제 인생에 가장은 없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만화를 이야기하자면 달고나 작가님의 달고나 일기, 56 작가님의 여중생A, 천계영 작가님의 오디션, 사토루 마키무라작가님의 맛있는 관계, 임주연 작가님의 씨엘및 모든 만화들입니다. 친하게 지내는 동료 만화가는 우리집 아재의 꼬까솜 작가님, 프릭인사이드의 우사 작가님이에요. 다른 작가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친한 것인지에 대한 정의를 쉽게 내리지 못해 일단 두 분만 이야기해봅니다.

 

작가님에게 나는 100kg이다는 어떤 의미이며 만화란 무엇인가요?

나는 100kg이다나도 만화를 그릴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준 작품이에요. 만화는 좀 더 잘하는 사람이 그려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늘 하곤 했었는데 어떻게든 하면 되는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만화란 저에게 이야기하는 수단의 하나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남도록 가공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수단이지요.

 

앞으로의 계획과 덧붙이고 말씀이 있으신가요?

앞서 말씀드린 빵요정 동화를 50권 전집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50권의 초안만 있는 상태지만요.) 그리고 커밍아웃이 시작인 줄은 몰랐지, 나는 당뇨다, 나는 100kg이다 2등 만화를 좀 더 그리고 싶습니다. 어머니께서 주신 조언대로 나의 메시지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잘 포장하는 법도 익히고 싶어요. 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편안한 하루하루가 찾아오시기를 바랍니다.

필진이미지

지금, 만화

만화 전문 비평지 <지금, 만화> 의 편집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