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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진의 〈가르시아의 머리〉: 우리는 왜 가르시아의 머리를 찾아야 할까?

<지금, 만화> 15호 Essay 에 실린 글입니다. 〈가르시아의 머리〉/글, 그림 강태진/네이버웹툰

2023-05-09 정명섭


강태진 작가의 대표작으로 조국과 민족을 꼽는 독자들이 많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아픈 현대사를 관통하는 묵직한 이야기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회색의 인간들이 너무나 현실적이 어서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 여운을 남기는 결말까지 말이다. 하지만 강태진 작가의 작품들 중 가장 재미있는 게 무언지 묻는다면 단언컨대 가르시아의 머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오컬트 코믹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온갖 요소들이 들어간 잡탕밥 혹은 잡 탕찌개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자고로, 사람이 입맛이 없을 때는 이것저것 섞인 것을 먹는 게 정답이다. 우리 같은 창작자들은 편집자들과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온갖 장치적인 요소들을 집어넣는다. 그것으로 하여금 독자들이 내 작품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르시아의 머리는 약간 다르다. 독자들을 일종의 시험대에 올리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머리로부터 시작된 부조리극이며, 삶과 죽음, 배신과 그것을 다시 배신하는 과정, 등장인물이 초자연적인 이유로 죽었다가 살아나는 말도 안 되는 전개를 보여주며 독자들의 엔돌핀을 돌게 만드는 것이다. 기존의 이야기가 보여주고자 하는 법칙들에 대한 불온한 반전을 시도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1>〈가르시아의 머리〉 Ⓒ 강태진


사실 제목인 가르시아의 머리는 샘 페킨파 감독이 1974년에 감독한 영화 가르시아에서 따왔다. 실제 제목이 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인데 직역을 하자면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머리를 가져와라이다. 그러니까 강태진 작가가 작품 제목이 오히려 원작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만화와 영화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바로 머리였다. 영화에서나 만화에서나 모두 가르시아가 사고를 치면서 시작된다. 분노한 악당 두목은 가르시아의 머리를 가져오라는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만화나 영화 모두 가르시아의 머리는 본의 아니게 산 사람을 여럿 고통에 몰아넣는다. 특히, 만화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엮인 피해자들의 엉뚱한 행동 덕분에 일이 더 꼬여간다. 가장 고생하는 건 가르시아의 머리를 의뢰인에게 가져가야 하는 킬러였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이 가짜 머리를 만드는 사랑 공작소의 소품과 헷갈려버린 것이다. 졸지에 사기꾼이 된 킬러는 궁지에 몰리고, 일은 조금씩, 때로는 끔찍하게 꼬이면서 여러 등장인물들을 난장판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 중에는 만화를 읽은 독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 이 작품이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이다. 장르적인 규칙을 벗어나서 마구 질주하기 때문이다. 반전에 반전이 쉴 새 없이 터지는데 그 중에는 현실적인 트릭이나 장치뿐만 아니라 오컬트라고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나온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조심스럽지만 이 작품에서는 죽음은 아주 쉽게 극복된다. 그것 외에도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이 난무한다. 총알 따위는 쉽게 이겨내는 무술이라든지, 죽은 영혼이 배회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또 어설프게 넘어가면 모르겠지만 정교하게 짜 맞춰진다. 그러면서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지 난감해하곤 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설정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실 작가의 상상력은 한계가 없어야 한다. 그래야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장르적인 규칙 혹은 독자가 원한다는 이유로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어놓곤 한다. 미스터리와 스릴러에서 초자연적인 존재는 등장해서는 안 되고, 모든 등장인물은 선과 악이 명확해야 한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가르시아의 머리는 오컬트라는 요소를 통해 그런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특히, 후반부의 등장인물들은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라는 평이 있을 정도다. 하나하나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평범함과는 지극히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림2>〈가르시아의 머리〉 Ⓒ 강태진


이야기의 초반이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지만 뒤처리를 어설프게 한 킬러와 너무나 완벽하게 머리를 재현해 낸 세트 제작자 사이에서 핑퐁처럼 오고가는 해프닝의 연속이었다하지만 후반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가르시아의 머리를 원한 회장의 개인사로 넘어가는데 늘 그렇듯 말썽꾸러기 딸과 그 딸 과 원수지간인 후처그리고 그 후처와의 관계가 의심스러운 누군가그리고 그 모든 걸 지켜보는 비서그리고 또 그걸 지켜보는 혼령들이 차례차례 가세한다막바지로 갈수록 가면을 벗어던진 등장인물들의 진짜 모습을 보면 웃기기도 하고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한다그야말로 작가가 차곡차곡 쌓았다가 터트리기 때문이다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말이다이 부분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부분이다누구에게는 사람과 소통하는 귀신의 존재나 죽 다 살아난 등장인물은 반칙처럼 보일 것이다하지만 나는 그것이 바로 가르시아의 머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완벽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우리는 늘 규칙에 얽매여서 지낸다그래야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내가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되고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는다반면이야기는 그럴 필요가 없다당장 추리소설부터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물론탐정이나 형사가 범인을 잡아서 처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다고 죽은 피해자들이 돌아오지는 않는다이렇듯 이야기는 불쾌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선보임으로서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한다현실에서 감히 저지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것이다마치롤러코스터가 안전하게 낙하함으로써 위험한 무중력을 안전하게 체험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가르시아의 머리는 그 부분을 정확하게 꿰뚫은 작품이다규칙을 마구잡이로 휘저어 버림으로써 한계를 뛰어넘어버린 것이다작가들은 이야기를 쓰다 보면 갈림길에 서게 된다여기서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애초의 의도는 물론이고 독자들의 반응 역시 나눠지면서 작 품에 대한 평가가 결정된다강태진 작가는 한계와 재미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선택했다그래서 귀신이 나오고죽다가 살아나는 일이 벌어진다등장인물들은 극단적인 사악함을 드러내거나 혹은 감춰진 성격을 드러냄으로써 쉴 새 없는 반전을 선사한다현실적인 듯하면서 현실적이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수다스러움과 삽질을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특히마지막에 갈수록 그런 지점들이 명확해지는데 끝에 가서는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빵빵 터지는 반전에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미학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는 작가나 편집자, 독자의 생각이 다를 것이다. 장르의 규칙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 역시 판단의 기준점이 틀리다. 그래서 작품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고, 선호하는 작가가 생기게 마련 이다. 가르시아의 머리는 그 기준점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이 작품이 재미있고, 흥미롭다면 강태진이라는 만화가에 대해서 관심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단언하건데 어떤 콘텐츠건 전성기를 맞이하고 성장하려면 이렇게 삐딱하게 나가고, 엉뚱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의 작품이 있어야만 한다. 다양성은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당사자에게 는 굉장히 위험하다. 성공 가능성도 희박하고 칭찬보다는 비난과 조롱을 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르시아의 머리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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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SF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