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엔도 타츠야의 〈스파이 패밀리〉: 따뜻하고 소중한 쇼윈도 가족

<지금, 만화> 15호 '이럴 땐 이런 만화/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을 때 읽는 만화' 에 실린 글입니다. <스파이 패밀리> 글,그림 엔도 타츠야

2023-05-16 이아름


불가능한 대화라는 책에는 인상적인 구절이 나온다. 저자 김장언은 그 책을 통하여 자신은 대화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다소 충격적인 이 문장을 읽어보다 보면 점점 납득 가능한 이유가 나온다. 저자는 대화보다는 인터뷰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대화의 소통불가능성에 대한 것을 콕 짚은 글인데,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과연 우리는 대화를 통해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 것일까, 대화는 정말 소통의 수단일까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서로 소통을 원한다는 인사성 말이 넘쳐난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현대인들은 소통을 하 고 있을까. 혹은 삶을 전시하는 것일까.


<그림1>〈스파이 패밀리〉 Ⓒ 앤도 타츠야


가족이란 단위는 관계에서 거리가 가까운 단위이다. 그러나 동시에 서로에게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순간, 서로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만화 <스파이 패밀리>는 이런 허점을 찌른 만화다.

주인공 스파이 로이드는 목적에 의해서 가족을 구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만화의 설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 기묘한 설정을 엮기 위해서 다소 허술한 이유들을 보게 된다. 독자들도 알고 있고 작가도 유심히 신경 쓴 것 같지 않다. 즉 이 만화는 액션과 스릴러 등을 표방한 듯 보이는 가족 만화다. 고위직에 접근하기 위해 스파이 로이드는 임무 수행을 위해서 가짜 가족을 만든다. 허술한 설정을 통해 만들어진 가족은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 아이 아냐와, 암살자 부인. 스파이 로이드에겐 아냐가 명문 학교에 들어가 적 데스몬드에게 접근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각자의 목적을 위해 이 셋은 위장된 평온한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

이 재미있는 설정만으로도 이 만화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관계에서의 허점을 아냐의 초능력으로 해결하게 한다. 마음을 읽어버리는 아이 아냐는, 말을 하지 않고도 가족 관계의 비밀을 유일하게 아는 이이며, 서로 오해가 쌓이거나, 비밀이 탄로 날 것 같으면 귀여운 윤활유 의 역할을 한다. 마치 부부 관계의 중심에 아이가 있듯 이, 흥미롭게 아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읽어내서 비밀을 지켜낸다.

전쟁 같은 세상에서 지친 그들이, 결국 이 계약관계를 통해 얻는 것은 서로의 온기이고, 이 과정에서 가족들끼리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그래서 매 에피소드들은 평온한 가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허울 좋은 핑계를 위해 이런 저런 이벤트와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그걸 봉합하는 과정은 놀랍게도 이 기묘한 설정으로 다소 동떨어져 보이던 따뜻한 장르적 감성을 선사한다. 우리는 그 것을 가족이 주는 것이라고 부른다.


<그림2>〈스파이 패밀리〉 Ⓒ 앤도 타츠야


모에한 장르적 요소가 만화의 감칠맛과 액션을 풍성하게 부여하면서 만화는 재미를 더한다. 그 중 가장 큰 스릴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지탱하고 있는 관계 사이의 비밀을 엿보는 것이다. 독자는 이 비밀의 스릴을 즐기면서도 공감한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사회적 인격이 다르다. 소통을 한다고 말하지만, 깊은 이야기를 하는 관계만을 우리는 소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혹은 가장 가까운 가족일수록 각자의 사정과 비밀을 관계를 위해 지키기도 한다. 그래서 이 만화는 스릴러이면서 동시에 정상 가족의 은유이다. 스테레오 타입의 정숙 하지만 요리를 못하는 부인은 사실 암살자이고, 역시 스테레오 타입의 철없는 아이는 부모 사이를 연결시키는 구심점의 역할을 한다. 이 관계에서는 설정상 극단적인 부분들을 제하고 유지하고 있는 누구보다 따뜻한 쇼윈도 가족은 그래서 독자가 공감하기에 무리가 없어진다.


필진이미지

이아름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