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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멍멍이의 〈등교하는 근식이〉: 평범하게 특별한

<지금, 만화> 15호 '이럴 땐 이런 만화/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을 때 읽는 만화' 에 실린 글입니다. <등교하는 근식이> 글,그림 무지개 멍멍이

2023-05-21 김민서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엑시트를 기억하시는지? 청년 백수 용남은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짝사랑했던 동아리 후배 의주를 만난다. 잔치 도중 도심 전체에 유독가스가 퍼지는 재난이 발생하고 용남과 의주는 산악 동아리 시절의 경험을 총동원해 유독가스 속을 탈출하려 한다. 그렇게 평범하게 변변치 못했던 인물이 약자에게 기회를 양보하고 타인을 구하는 히어로가 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장르가 코미디라고 할 만큼 웃음 나는 장면이 많은 영화이지만 필자는 슈퍼히어로하면 엑시트속 용남과 의주가 떠 오른다.

<그림1>〈등교하는 근식이〉 Ⓒ 무지개 멍멍이


슈퍼히어로란 무엇일까?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슈퍼히어로는 소설이나 만화, 영화, 드라마 따위에 등장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니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인물이라고 나와 있다. 초인적인 능력이타성의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슈퍼히어로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불길에서 사람을 구한 시민은 히어로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전기 초능력으로 불을 낸 사람이나 방어막 초능력으로 본인만 보호하며 불 속을 빠져나온 사람을 두고 히어로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 두 요건 중에서도 중요한 포인트는 이타성인 셈이다. 용남과 의주 또한 이 때문에 필자의 머릿속에서 히어로로 분류된 것이리라.

슈퍼히어로의 중요한 속성이 이타성이기 때문에, 본인의 이익과 명성을 위해 슈퍼히어로가 되고자 하는 자는 오히려 슈퍼히어로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슈퍼히 어로가 될 준비가 된 것일 수 있다.

웹툰 등교하는 근식이의 근식이가 여기 해당한다. 근식이는 가족 과 함께 당한 자동차 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은 후 이상한 일을 겪기 시작한다. 주변인이 꾸준히 사고로 죽어 나가고, 대신 자신은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 몇 년에 걸쳐 근식이는 자기 주변에서 한 주에 5명에게 죽을 수 있는 사고가 일어나며, 자신이 움직이면 죽음을 막을 수 있다는 법칙을 알아낸다. 사고 방지와 응급처치의 달인이 된 근식이가 구급약, 자동심장충격기, 로프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춘 가방을 메고 고등학교에 첫 등교를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근식이는 죽지 않는 초능력과 주변의 사망사고를 필사적으로 막는 이타성으로 슈퍼히어로의 요건을 충족한다. 언뜻 보면 근식이가 슈퍼히어로가 된 것이 필연적인 일처럼 느껴지지만, 근식이와 유사한 능력을 가진 태하가 등장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태하는 일상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이 이루어지는 대신 주변인이 넘어지거나 다치는 식의 사소한 피해를 입게 되는 능력이 있다. 태하는 자기 능력을 불쾌해하지만, 피해자들에게 미안해하거나 그들에게 가는 피해를 막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근식이가 자기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데도 다른 사람을 살리려 온갖 응급처치를 공부하고 신체 능력을 기르는 일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니라 근식이가 선택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림2>〈등교하는 근식이〉 Ⓒ 무지개 멍멍이


원치 않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슈퍼히어로가 되기로 결정한 근식이처럼, 사실 히어로가 되는 것은 나의 선택에 달린 일일지 모른다.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을 때, 내가 어떤 요건을 갖출 수 있는지 떠 올려본다. 초능력자가 될 순 없으니 이타성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 위기에 처한 사람이 있을 때 내 목숨을 버려가면서 그를 살리는 대단한 존재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슈퍼히어로의 길에 성큼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

모두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강도를 때려잡거나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는 본새 나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은가. 히어로물은 내 안에 있지만 멋들어지게 실천하지는 못하고 사는 이타성을 일깨워준다. 히어로물 중에서도 통쾌하게 권선징악을 행하는 선택된 자들을 보여주는 작품 보다, 자기 안의 선함으로 잠재된 능력을 꺼내 고군분투하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친구를 보여주는 작품에 애정이 가는 이유다. 실천할 수 있는 이타성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작품, 등교하는 근식이를 보며 히어로가 되는 나를 꿈꾸어보자.


필진이미지

김민서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