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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토끼와 joana의 〈킬더킹〉: 가장 하찮은 것이 때로는 가장 강하다

<지금, 만화> 15호 '만화 속 인생 명대사 명장면' 에 실린 글입니다. <킬더킹>/글 마사토끼, 그림 joana

2023-05-25 윤지혜


̒군주, 이라는 것은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꽤나 낡은 개념으로 느껴진다. 이전에는 많은 국가들이 왕의 이름 아래 통치되었다지만, 지금은 군주제의 명맥을 잇고 있는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국민들에게 주권이 있어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체제가 대부분이다. 왕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과거의 유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림1>〈킬더킹〉 Ⓒ 마사토끼, joana


마사토끼, joana 작가의 웹툰 킬더킹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이라는 존재가 정말 사라졌는지가 불명확하다. 정확히는, 왕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몸을 숨겼을 뿐, 대중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세계이다. 그리고그왕이 수명 을다하게 되면서 다음 세대의 왕을 뽑기 위한 게임이 시작되었다. 게임에 초대된 것은 왕이 될지도 모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킬더킹의 주인공인 민아리는 이 운영하는 보육원에 속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왕을 뽑는 게임에 초대하는 킹 카드를 받기 전까지는 지극히 선량하고 평범하게 살아왔다. 아리의 재능은 미움 받지 않는 선한 성격으로, 첫 게임의 초반부터 친구인 미선에게 배신당해 궁지에 몰렸음에도 항변하지 못하고 홀로 괴로워한다. 그런 아리에게 이지훈이 접근한다. 지훈의 재능은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지훈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권력을 행사하는 의 정체를 밝히고 그를 쓰러트리고자 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리를 게임의 승자로 만들어 에 게 접근하고자 하며, 아리의 뒤에 숨어 승리를 위한 계책을 내놓는다.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재미는 왕 후보자가 되기 위한 다채로운 게임들(결함 게임, 나이트 게임, 3인 로또, 러시안 젤리, 가위바위보, 킬러 밤, 매치쓰리카드 등)을 이해하고, 그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인물들의 두뇌싸움을 지켜보는 것이다. 때로는 게임마다 좀 더 유리한 재능을 타고나는 경우들이 있다. 혹은, 오랫동안 한 게임을 연구하여 게임에서 사용될 수 있는 갖은 편법이나 노하우를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눈에 띄는 재능이 있든 없든 이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 모두에게 나름의 전략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출난 두뇌도, 왕이 되고자 하는 열망도 없는 아리는 대부분 한없이 불리한 처지이다. 선량하다는 장점은 오히려 아리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악조건을 딛고 지훈이 아리의 불리함을 뒤엎고 여러 밑작업과 전략으로 압도적인 승리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자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이다. 매 게임이 결말에 치달을 때마다 이 작품의 명장면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지훈이 아니라 아리가 만들어 낸다. 아리가 보육원 대표로 결정된 이후 학교에서 벌어지는 가위바위보게임은 학교 구성원 대부분이 참여하는 인기 투표에 가까운 양상으로 흘러가며 을 뽑는다는 게임의 목적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실질적으로 보육원 대표인 아리와 학교의 학생회장인 오미현이 겨루게 되는데, 미현은 카리스마가 뛰어난 타입으로 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탓에 지훈의 계책으로도 아리의 불리함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림2>〈킬더킹〉 Ⓒ 마사토끼, joana


결국 아리와 미현의 단판승부만 남은 상황에서, 미현은 남을 쉽게 믿는 아리의 선량함을 이용한 심리전을 펼친다. 미현의 심리전을 액면 그대로 믿어버린 아리가 진심을 담은 해맑은 미소와 함께 고마워! 이기게 해주는 거야?” 라고 말하는 순간, 그 무구(無垢)함에 정신이 팔린 미현이 얼결에 패배하게 된다. 가장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던 선량함이라는 재능이 가장 불리하고 위험한 순간에서 가장 결정적인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이 장면에서의 아리의 승리는 아직 선명하지 않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하면서,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아리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낸 순간이었다. 조바심내고 주저하면서도 자신만의 재능으로 조금씩 에 다가가는 아리와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조력자들의 앞날을 응원하게 하는 결정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