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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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웹툰이 일본에서 시민권을 얻는 날: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의 애니메이션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

<지금, 만화> 15호 '만화 vs 애니메이션' 에 실린 글입니다.

2023-05-29 이현석


0. 몇 년 전까지 일본 출판업계에서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한때 주간 650만 부를 발행하며 기네스북 기록을 찍던 만화잡지 주간 소년 점프의 최근 발행부수는 135만 부다. 다른 유명 잡지들은 그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소년점프, 소년 매거진, 소년 선데이3개의 잡지 발행부수만 합쳐도 거의 1,000만 부에 육박했던 점을 생각하면 거의 극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조락이다. 일본에서 만화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주간 만화잡지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이 등장할 정도로 이 조락이 주는 충격파는 컸다. 일본 만화업계도 여러모로 대안을 찾기 시작하였다. 잡지 편집 노선의 다각화나 매출 모델의 다각화, 휴대폰(스마트폰이 아닌 폴더폰)을 이용한 새 시장 개척 등의 대책이 강구되었고 일정한 성과가 나오기도 하였다. (폴더폰 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한 TL등 신 장르 등장) 일본 출판사들은 한국의 웹툰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일본 만화업계에서는 웹툰과 같이 파격적인 개혁보다는 기존의 우리가 하던 만화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유는, 15,000만 부를 판매하는 대기록을 세운 귀멸의 칼날, 7,000만 부를 판매하는 중인 주술회전과 같은 대히트 작품들이 등장하여, 일본 출판만화 시장에 대규모의 유소년층을 독자를 신규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일본 만화업계의 큰 고민은 게임과 인터넷에 젊은 잠재 독자층을 뺏긴 것에서 오는 독자 평균 연령의 상승이었다.

최근 일본 만화잡지의 발행부수. 《소년점프》를 제외하고는 100만 부를 넘기는 잡지조차 없다.


그런데 귀멸의 칼날의 대히트는 왜 가능했을까? 모든 이들이 이 작 품이 등장했을 때 취향을 타는 그림체 등의 이유로 이와 같은 히트를 기록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답도 의외로 간단했다. 제작사 UFOTABLE, 이 작품을 원작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대 히트를 기록하면서 출판만화도 같이 크게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보통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면 원작 작품의 매출은 300% 이상 크게 튀어 오른다. 보통 한 잡지 안에서 이 정도 메가 히트작이 나오면 잡지의 다른 작품 매상도 크게 오른다. 주술회전귀멸의 칼날과 같은 잡지에 연재 중이며 귀멸의 칼날을 보려고 들어온 독자들이 주술회전도 주목한 것이다.

일본에서 만화 작품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인지도를 가지게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은, 2차 저작물로 전개시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화, 실사 영화화, 연극무 대화 등등으로 대단히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물론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애니메이션화다. 마치 한국에서 웹소설을 웹툰화하여 쌍방의 매출을 극대화 시키는 것 처럼, 일본 만화에 있어서 애니메이션 전개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1. 이런 와중에 한국 웹툰은 현재 일본 만화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다. 한국 웹툰을 중심 콘텐츠로 다루는 매체 픽코마와 라인망가의 상승세는 매우 가파르다. 픽코마의 경우, 2021년까지의 누적 거래액이 13,000억 원에 달한다. 일본 내의 또 다른 웹툰 메이저인 LINE 망가의 경우는, 202112월 기결산의 경우 매상이 97억엔에 달했다. 이런 커다란 실적에 주목한 (만화잡지 불황에 고심하던) 일본 만화업계/(새로운 사업 분야 개척에 고심하는) IT업계는 웹툰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고, 속속 이 산업에 뛰어드는 중이다. 20228월 현재, 거의 100여 개에 달하는 웹툰 관련 부서, 제작 회사, 플랫폼이 난립하게 되었다. 이로 인한 과열양상과 부작용이 이미 심각하게 거론될 정도다. 부조리한 작가와의 계약 문제나 호기롭게 웹툰에 도전한 것은 좋았으나 전문적인 지식 부족으로 크게 퀄리티가 부족한 작품이 양상되거나자뭇 촌극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상황이다. 이에 따라서 웹툰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새삼 나오고 있다. “일본은 만화산업 자체가 잘 운영되고 있어서(실제로 일본의 출판만화 시장은 6조 원 규모다), 웹툰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거나 웹툰 자체는 깊이 있는 내러티브를 다루거나 하는 점에서 한계가 있어서 이 이상 발전이 어렵다는 등의 의견이 그것이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기성 업체/관계자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일본 내에서 웹툰이 이 이상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이 끊이지 않는다. 몇번 웹툰을 내보고 실패한 출판업체의 관계자들이 이런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일본에 웹툰은 맞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다. “웹툰에 미래는 있는가?”라고.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 미래는 있으며, 2023년을 기점으로 웹툰은 일본에서 큰 발전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답변을 하고 있다.

 

2. 2022년 여름, 작품 나 혼자만 레벨업의 장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기획이 발표되었다. 배급은 거대 유통회사 애니플렉스. 애니 제작사는 소드 아트 온라인으로 유명한 A1픽처스. 감독은 소드 아트 온라인의 나카시게 슌스케, 캐릭터 디자 인에 Fate/Apocrypha의 스도 토모코, 음악을 사와노 히로유키가 맡는다.

실력 있는 스탭들이 집결한 느낌이다. 특히 음악을 담당한 사와노 히로유키의 경우, 진격의 거인, 기동전사 건담 : 섬광의 하사웨이등의 대작에서 큰 활약을 보인 초유명인이다.

앞서 소개한 픽코마의 거대한 성적의 단초 중 하나를 제공한 것이 나 혼자만 레벨업웹툰이었다. 이 작품의 초월적 흥행으로, 일본 내에서 로맨스 판타지 중심으로 만들어진 한정된 여성향 웹툰 시장이 남성들도 참가하는 거대한 시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작품이 가진 잠재력이 애니메이션화를 통해서 더욱 크게 발현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한국 웹툰이 애니메이션 대국 일본에서 애니화 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몇몇 사례가 있기는 하였지만, 본격적인 흥행을 한 작품들도 아니었으며, 만듦새에 있어서도 여러 지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경우는 일류급 스텝들과 유통사가 참가하는 일급 프로젝트로 보기에도 손색이 없어, 크게 기대를 받고 있다.

만일, 예상대로 이 작품의 애니메이션이 흥행하게 된다면 많은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많은 일본의 애니 제작사들이 여타 다른 웹툰들을 애니화하기 위해서 속속 달려들 것이며, 한국 웹툰이 애니화되고 이를 통해서 그 작품의 흥행이 더욱 가속화/거대화되는 일은 일상적인 풍경이 될지 모른다.

이것은 일본 내의 만화를 둘러싼 큰 암묵적인 룰에도 큰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다. 현재 일본 만화업계의 중심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하여도 슈에이사(集英社). 드래곤볼원피스를 위시하여 가히 일본 만화업계의 전설을 만든 이 회사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바로 유력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라인을 거의 독점하듯이 쓸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도 대중이 환호할 정도로 고도의 완성도를 갖춘 작품을 제작할 회사는 손꼽힌다. 그 회사 안에서도 유력한 애니메이터, 감독은 또 손에 꼽히고. 슈에이샤는 이 낭비할 수 없는 제작 라인에 있어서 가장 저 리스크인 흥행작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 혼자만 레벨업이 하나의 큰 선례를 제공한다면 이 구조 자체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 콘텐츠 업계 안에서도 (좋은 의미로서의) 변혁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시작된 웹툰의 일본 안에서의 완전한 시민권을 얻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할지도 모른다. 그 날을 꿈꾼다.


필진이미지

이현석

레드세븐 대표
前 엘세븐 대표
前 스퀘어에닉스 만화 기획·편집자
만화스토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