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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드 사투프의 〈에스더가 사는 세상〉: 프랑스가 궁금하면 에스더를 보게 하라!

<지금, 만화> 15호 '방구석 그래픽노블' 에 실린 글입니다. 〈에스더가 사는 세상〉/글, 그림 리아드 사투프

2023-05-30 강미란


리아드 사투프(Riad Sattouf). 그 의 그래픽 노블은 신간만 나왔 다 하면 프랑스 베스트셀러 10 위권 안에 든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중들이 공감하고 웃음 지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만의 색깔이 뚜렷하면서도 어디 하나 모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림을 선사한다. 리사드 사투 프의 작품에 손이 가는 이유다.

리아드 사투프의 작품은 예리하지만 부드럽다. 너무나 현실적이라 불편한 이야기도 웃음으로 넘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오늘 소개할 Les cahiers d’Esther시리즈1도 그러하다. ‘에스더 의 일기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이 시리즈의 역사는 2015년으로 거 슬러 올라간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에스더(가명)가 들려주는 삶, 가족, 친구, 학교, 더 넓게는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리아드 사투프 의 글과 그림으로 엮어 누벨 옵세르바퇴르(Nouvel observateur)라는 시사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당시 만 10세였던 에스더가 18세 성인이 되는 해까지, 장장 9년에 걸쳐 진행하기로 한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벌써 7년이 흘러 꼬마였던 에스더가 2022년 현 재 만 17세 고딩이 되었다. 한 주에 하나씩, 일 년이면 52개의 이야 기. 에스더는 지난 8년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당차고 웃기고 명랑하고 진지하고 심오하다.

인기가 있는 애들의 미의 조건은 무엇인가, 왜 나보다 부자인 친구들이 존재할까, 어떻게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테러리스트 사건 같은 일이 벌어지나, 가슴이 커지는 건 싫은데 어떡하나, 세상에 눈 뜨는 10세 시대.

갑분 생겨버린 동생, 프랑스 전역을 숨죽이게 하는 테러리스트 사건, 신에 대한 고민, 소인증인 선생님에 대한 세상의 시선과 자신의 고 찰을 담은 11세 시대.

중딩이 된 녹록치 않은 삶, 대통령 선거, 처음 갖게 된 핸드폰, 여드름 전성기, 음모론에 빠진 한심한 오빠와 그를 지켜보는 에스더, 초특급 보수를 가장한 인종차별에 빠져버린 할머니에 대한 단상, 마크롱 대 통령과 일루미나티의 관계를 고민하는 12세 시대.

<그림1>〈에스더가 사는 세상〉 Ⓒ 리아드 사투프


세상 창피한 치아교정기, #MeToo 이야기, 이루지 못할 꿈에 대한 아쉬움, 비밀 남친, 친구 및 가족과의 관계 변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13세 시대.

정치에 대한 관심, 노숙자를 생각하면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자신의 삶의 조건, 사회 문제에 대한 많은 생각들, 펜팔 친구 덕분에 스페인어로 쌍욕까지 하게 되는 세상 글로벌하고 힙한 삶,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열쩡열쩡열쩡이 앞서는 일상, 그리고 롱디 연애가 시작되는 14세 시대.

섹시한 옷과 화려한 메이크업에 눈뜨는 중딩으로서의 마지막 해, 술이 넘쳐 흐르는 생일 파티, 첫 담배의 경험, 인스타그램 계정, 그리고활짝 열려버린 코로나 대환장의 시대. 락다운에 이은 비대면 수업, 스트레스에 찌든 아빠의 모습, 마스크 및 손 소독제 대란, 재택 근무하는 엄마의 고민, 세상 알 수 없는 음모론에 여전히 빠져버린 오빠까지, 엉망진창 15세 시대.

<그림2>〈에스더가 사는 세상〉 Ⓒ 리아드 사투프


그리고 방년 16, 고등학생이 되는 에스더. 부모님 몰래 나가는 심야 파티, 코로나 사태로 인한 그룹 수업, 그 덕분에 파리 거리를 백주 대낮에 활보할 수 있는 자유 아닌 자유, 점점 이해가 안 되는 남자애들, 대마초까지 피우는정말 언제 클까 싶은 바보 똥멍충이들, 그리고 드디어 나타난 코로나 백신과 그 효과에 대해 의심하는 친구들, 진로 결정 문제, 미래에 대한 고민고민과 고민과 고민으로 점철된 16세 시대.

나는 에스더가 10살이 되던 해부터 알고 지냈다. 벌써 8년이 된 일방적 우정이다. 해마다 새 앨범(한국으로 치면 만화 단행본 같은 책을 말한다-편 집자 주)이 나오면 그를 기쁘게 만났다. 같은 프랑스 사회에 살고 있으니 에스더가 경험한 꽤 많은 일들을 나도 겪었다. 그래픽노블 속의 주인공이지만 실제 인물의 이야기라 그런가, 에스더가 진짜 살아 있는 듯하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 하나일 것 같다. 앞서도 말했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공감이 가기 때문에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지 싶다. 그리고 나도 그 대중 중 하나다.

아마 한국 독자가 에스더를 만난다면 프랑스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거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며 비슷비슷한 사람들의 삶에 깔깔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오는 문화 차이에 기염을 토하며 현타 강하게 받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에스더시리즈는 첫 장부 터 마지막 장까지 즐겁게, 그러나 농밀하게 읽을 수 있는 그래픽노블임은 확실하다. 프랑스 문화와 사회에 대한 공부도 되고 인간의 삶에 대한 고찰도 같이 할 수 있다. 웃자고 보면 가볍게 읽을 수 있고, 각 잡고 보면 끝이 없이 분석과 연구가 가능한 책이다. 다양한 독서가 가능해서 더 좋은 작품이다.

<그림3>〈에스더가 사는 세상〉 Ⓒ 리아드 사투프


대학 때 프랑스 문화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너무나 매력적인 제목과는 달리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는 수업이었다. ‘에스더시리즈로 공부했다면 정말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프랑스는 물론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교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좋은 교재가 될 수 있을 책이다. ‘에스더시리즈가 없던 시절 교양과목 프랑스 문화의 이해를 들은 나와 학우들이 안쓰럽다.


필진이미지

강미란

만화번역가
『기후에 관한 새로운 시선』,『무엇이 여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가!』, 『내 아버지의 집』,  『주름(Arrugas) - 지워진 기억』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