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만화(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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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 박순찬의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고양이 소크라테스

<지금, 만화> 15호 '지금만화 pick평' 에 실린 글입니다.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글 박홍순, 그림 박순찬

2023-05-31 위원석


우주가 무한하다면, 무한한 우주가 우리가 사는 우주 아니고도 무수하게 존재한다면, 서로 다른 우주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수없이 존재한다면, 다른 우주 어딘가에 우리 우주에 살고 있던 소크라테스가 살고 있을 리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 우주가 찰나에 경험하 고 있는 인간의 역사를 거울 속 모습처럼 함께 지나고 있는 우주가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우주에서 인간의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고양이일 지도 모른다. 그러니 고양이 소크라테스 같은 건 있을 리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의 이름이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냥크라테스소크라테냥일 리 절대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행히 대혼돈의 멀티버스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안내자, ‘냥도리가 있다. 냥도리는 고양이들에게 인간의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인간들이 고양이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사용할 것이다. 그 들의 우주와 우리의 우주, 도플갱어처럼 닮은 우주이니, 서로를 이해한다는 건 각자의 우주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냥도리가 이끄는 대로 발길을 옮긴다면 길을 잃지 않고, 다른 우주를 여행하며, 고양이 우주의 현자들을 모두 만나고 올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 역사를 바꾼 열다섯 마리의 지성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복잡다단한 고양이의 역사를 간단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건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할 수도 없고, 그 사건의 인과를 모두 밝힐 수도 없다. 고양이의 장구한 역사를 이해하자면 오히려 뒤로 멀리 물러나 지금까지 흘러온 역사의 방향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개별 사건들이 부정형으로 들러 붙어 있는 것 같던 역사가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흐름의 방향은 시대정신에 의해 방향을 잡는다. 우연히 출발한 아이디어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고, 그러한 고양이들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세상을 바꾸어가기도 하는데, 이런 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에서는 고양이 우주에서 큰 흐름을 만든 시대정신의 실마리를 마련한 지성계의 거묘(巨猫) 열다섯 마리를 소개하고 있다. 인간의 우주에서 만난 거인들과 닮아있는 그들을 만나 보자면 고대1길부터 찾아가야 한다. 그곳엔 소크라테스가 기다리고 있다. 그를 지나면 고대2길의 공자가 살고 있으며 중세길에 들어서면 토마스 아퀴나스, 알리기에리 단테,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살고 있다. 근대6길에서 근대10길 에 이르기까지 장 자크 루소, 아이작 뉴턴, 애덤 스미스,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거주하고, 현대길에 이르면 존 매이너드 케인스, 시몬 드 보부아르, 체 게바라, 베르너 하이 젠베르크, 다크 데리다의 마을에 이른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열거할 때마다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뚝뚝 떨어지는 독자도 없지 않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우리는 지금 지루한 인간의 우주가 아니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우주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니!

 

골치 아픈 얘긴 별로냥~? 고양이 구경은 즐겁지 않냐옹~?”

말랑한 이름의 인문학 책이 수도 없이 쏟아지는 출판시장에서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만이 갖는 매력은 고양이에 있다. 표지 속 고양이들은 매혹적인 모습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확실히 이 책의 고양이 구경은 즐겁다. 인간 지성들의 개성을 고양이들에 입혀 창조된 캐릭터들은 하나하나 귀여울 뿐 아니라 작가의 아이디어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소크라테스 고양이는 덥수룩한 수염에 토가를 걸쳐 입었고, 공자 고양이는 전국시대의 복장에 건 책을 쓰고 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 고양이는 톤슈라 머리를 한 채 사제복을 입고 있다. 고 대와 중세의 고양이 캐릭터들이 복식과 헤어스타일로 인물을 표현한다면, 근현대의 고양이 지성들에서는 개성 넘치는 소품들 이 눈에 띈다. 구레나룻에 시가를 들고 있는 프로이트, 총을 든 체 게바라, 도끼를 든 데리다.

사소한 설정만으로도 독자가 눈앞의 고양이 캐릭터가 어떤 인물을 표현한 것인지 단박 에 알아차릴 수 있게 하는 작가의 솜씨는 시사만화로 다져진 오랜 내공에서 비롯된 것 같다. 작년까지 27년 동안 연재를 이어온 장도리의 박순찬 작가가 아니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만평을 신문 지면에서 만날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 이렇게 단정한 책 한 권을 통해 만나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다.

그림 작가의 내공은 캐릭터에서만 빛나지 않는다. 밀도 높은 개념어들로 꽉 찬 텍스트들이 답답하게 읽히지 않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것은 압축과 풍자로 완성된 화면들 덕분이다. 이 또한 백전노장의 시사만화가가 아니라면 이루기 어려운 경지다. 화면 구석구석 풍부한 레퍼런스와 촌철살인 표현들이 숨어 있어 보는 즐거움을 더할 뿐 아니라, 여러 번 다시 보아도 새롭게 읽히는 재미가 있다.

<그림1>〈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 Ⓒ 박홍순, 박순찬



만국의 고양이들이여 단결하라!

글 작가는 내용의 전문성에 기여하고 그림 작가는 소통의 전문성에 기여하며 두 작가가 만 들어낸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는 쉽지 않고 가볍지 않은 내용을 재미있고 속도감 있 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처럼 철학이 읽히지 않는 시대, 독자들에게 만만하고 유쾌한 방식으로 철학과 사상의 핵심 명제들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집사, 너 자신을 알라.” -냥크라테스

고양이는 고양이답고 집사는 집사다워야 한다.” -공냥

야옹신을 증명하노라.” -토마스 아퀴냥스

고양이를 버린 자들이여, 지옥의 입구에서 모든 희망을 버려라.” -냥테

집사는 고양이를 중심으로 돈다.” -캣페루니쿠스

모든 생명체는 평등하다.” -냥 자크 루소

모든 고양이는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다.” -아이작 냥턴

애완동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부아르냥


<그림2>〈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 Ⓒ 박홍순, 박순찬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인간의 지성사나 고양이의 지성사를 정리할 수는 없다. 하지 만 철학 혹은 사상에 관심이 있었으나 진입이 어려웠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좋은 출발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쯤 되면 고양이의 매력과 작가들의 재담에 홀려 책을 끝까지

읽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덕분에 그들이 사회사상사에 관심을 갖는다면 작가들의 기획 의도는 200퍼센트 달성된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오래 전에 보았던 책들을 꺼내 밑줄 쳐 두었던 문장들을 다시 읽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한때 철학책이나 사회사상책을 사랑했지만 사는 동안 멀어진 이들이 책장을 열어본다면 오랜만의 재회가 즐거워질 책이다.

 

사유가 필요한 사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사상가들의 시대정신은 언제나 소수의 생각에서부터 자라났다. 지 배적 사고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불온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냈고, 그 소수의 불온한 생각이 다수가 되는 과정이 시대정신의 발현이었다.

손에 쥔 핸드폰에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어느 정보에나 접근할 수 있는 초연결시대, 넘 쳐나는 지식과 주장들 한가운데서 사람들은 팩트의 확인에만 몰두할 뿐, 더 이상 사유하지 않으려 한다. ‘사유가 절실한 시절,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는 사유 과잉을 살았던 이들을 기억하게 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생각이 수천 년 동안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새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으로 생긴 독자의 관심이 더 많은 사유와 그에 관한 책들로 이어진다면 좋겠다.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의 제목 앞에는 산책길에서 만난 냥도리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부제 그대로 시리즈가 만들어져, 박순찬 작가가 더 다양한 인문학 분야들에 대해 더 자주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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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석

딸기책방 대표, 동화작가
前 휴머니스트 교양만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