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과 밀레니엄의 길목에서, 로맨스와 SF의 경계에서: 이시영 작가론
순정, 만화의 곤란
‘여성들의 정서적 문화동맹’. 순정만화 장르 연구는 여성학자 권김현영의 2001년 칼럼 이래 그보다 근사한 정의를 발견하지 못한 듯하다. 예술의 갈래를 규명하는 언어치고는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효력은 그 느슨한 의미의 그물망에서 나온다. 순정은 만화를 분류하는 색인으로 기능하면서도 장르적 실체가 모호한 용어였던 까닭이다. 소위 말하는 ‘소녀 취향 멜로 드라마’는 해당 ‘문화동맹’의 주체들이 경험한 순정만화의 전부가 아니었다. 순정만화의 외피 안에는 SF, 판타지, 무협, 스릴러, 호러가 엉겨 있었고, 이 가변적인 합성물들을 한데 묶어 진열하는 코너 이름이 순정이었을 따름이다.
▲<그림1>〈지구에서 영업중〉Ⓒ 이시영
여자 취향이라는 멸시와 아동(청소년) 취향이라는 편견이 교차하는 공간으로서 순정만화는 그 오명을 타개하려는 각종 움직임을 수반했다. 1985년 무크지 《아홉 개의 신화》의 창간에서 발아하고 1997년 《NINE》 창간에 이르러 농익은 여성-만화독자-네트워크 허브로서의 만화잡지 문화는 그 발판이 되었다. 특히 《NINE》 편집부는 한국 상업만화지 최초로 ‘여자만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하여 여성만화 담론을 본격화하는데, ‘영 페미니스트’ 세대의 여성들이 순정만화 생산과 소비의 주축이었던 1990년대의 사회상을 생각하면 필연적인 사건이다.
▲<그림2>〈필소굿 Feel so good〉Ⓒ 이시영
이후 순정만화를 재조명하려는 기획과 연구들은 꾸준히 축적됐으나, 반대로 순정만화라는 레이블이 여성향 만화의 대분류로 사용되는 빈도는 급감한다. IMF·청소년보호법·미디어 환경의 격변을 도화선으로 만화잡지 시장이 쇠퇴하면서 여성향 만화를 묶을 물적 구심점도 약화 된 탓이다. 순정의 의미는 다시 좁아져 학원·캠퍼스 로맨스와 병기되는 정도지만, 웹툰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업계 한 켠에서 전성기 순정만화의 풍미를 이어온 작가들도 있다.
〈Feel so good〉(1999~2009), 〈지구에서 영업중〉(2002~2005), 〈한눈에 반하다!〉 (2006~2012), 〈네가 있던 미래에선〉(2012~2017), 〈러블리 어글리〉(2017~) 등을 그린 이시영이 그중 하나다.
X세대와 취향의 큐레이션
한국 순정만화 여성작가 계보에서 이시영의 위치는 딱 나눠떨어지지 않는 구석이 있다. 90년대 여성 만화가의 일반적인 등단 루트였던 잡지 공모전이 아닌 단행본 〈환상의 게임〉(1995)으로 데뷔, 3세대 작가인 권교정, 나예리, 유시진, 이 빈, 천계영, 하시현 등과 나란히 놓이지만, 전성기는 동 세대 순정만화가 누린 완숙기 다음에 올 십 년이다. 밀레니엄이 개장하면서 순식간에 빛바래 버린 90년대 감성은 이시영의 만화에서 표백되지 않은 채 건재하다. 단적으로 이시영이 만든 여성 캐릭터들은 ‘4차원’과 ‘알파걸’을 넘나드는데, 터프하면서도 감수성이 예민한 이 여자들에게는 X세대의 후광이 드리워 있다.
90년대 순정만화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의 등장이라고 한다. 20세기의 끝물에 청년기를 맞은 여성들은 나름대로 진일보했던 80년대의 신여성과도 확연히 다른 자의식을 구축했다. 줄곧 민주화에의 열망이 거대 담론으로 작용했던 한국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념적 진공상태에 빠지는데, 이 공백을 메우며 도래한 소비사회가 새로운 시대정신의 터전이 되었던 것이다.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X세대의 가치관은 대중문화, 개인주의, 여성주의의 세례를 받았으며, 이시영의 작품에서는 이 모두의 영향력이 확인된다. 작중 패션, 소품과 이벤트로 어필하는 시네필 혹은 록 음악 애호가로서의 정체성은 대표적이다. 대중문화를 자기표현의 통로로 갓 발견한 당대 청년-여성 만화가들에게 작품은 취향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그 기호는 영화와 록 컬처에 뿌리내리곤 했다.
이시영의 전작 곳곳에 삽입된 ‘동인녀(후조시)’ 렌즈도 마찬가지다. 90년대는 해외여행 자유화와 PC통신 보급이 일본 서브컬처 유입을 촉진시키고, 같은 경로로 1차 창작 중심이었던 국내 동인계에 ‘야오이’가 침투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시영은 작품에 보이즈 러브를 망상하는 여자들을 등장시키거나 남성 동성 커플링의 가능성을 흘리는 방식으로 동인문화에 친밀감을 표하는데, 야오이 공수 문법을 게이컬처에 대입하며 대상화와 연대를 혼동하는 부적절함 역시 1세대 동인녀들의 의식 평균이다. 그러나 이같은 한계와 별개로 작가는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담론을 그럭저럭 진지하게 받아들인 듯하다. 여아낙태 모티프의 SF 단편 〈정말 불가능한 일입니까?〉을 비롯해 〈지구에서 영업중〉의 엘리트 여성으로 구성된 비밀조직 ‘아마존’ 및 성전환이 가능한 외계 종족의 행성 ‘페몬성’ 설정, 성별을 이분법이 아닌 퍼센티지로 측정하는 〈네가 있던 미래에선〉의 미래기술 등 젠더의 현주소를 뛰어넘는 장치들은 개방감을 느끼게 한다.
▲<그림3>〈네가 있는 미래에선〉Ⓒ 이시영
외계인이 날 납치할 거야
슈퍼스타 아이돌과 전교 ‘은따’의 학원 로맨스(〈Feel so good〉),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20대 회장님의 수상한 흥신소(〈지구에서 영업중〉), 친구라는 이름으로 빙빙 돌기만 하는 소꿉친구 남녀(〈한눈에 반하다!〉). 기시감 있는 설정에 키치한 감성을 입은 도입부가 주는 기대치는 규범적인 소녀 취향 로맨스라는 정도다. 80년대에는 신화, 국가, 우주를 아우르며 비장미를 자랑하던 순정만화가 탈 이데올로기와 함께 동시대의 일상에 발을 내린 뒤, 학원물과 연예계물이 아기자기한 환상을 제공하는 무대로 굳어진 탓도 있다. 그러나 ‘이시영 유니버스’의 월드들은 늘 일별한 것보다 광활하다. 〈지구에서 영업중〉이나 〈네가 있던 미래에선〉처럼 순도 높은 SF는 물론, 꽃미남 하렘 하이틴 로맨스를 표방하는 〈한눈에 반하다!〉까지도 우주라는 심해에 육중한 닻을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장황하게 들리지만 대전제는 단순하다. ‘외계인은 있다’. 이시영의 현대물에는 본인이 외계인이라거나, 친밀한 누군가가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등장인물이 왕왕 등장한다. 컬트 추종자나 편집증자라는 오해를 사기 딱 좋지만, 이 외계-호소인들이 하필이면 ‘천연계’인 덕분에 그런 것쯤 애교로 넘어가 주는 분위기다. 묘하게 사회화가 덜 된 백치미 캐릭터들이 스멀스멀 배양한 위화감은 로맨틱 코미디 스타일의 지표면에 기어코 외계 우주를 상륙시킬 것이다. 썰렁한 농담, 뜬구름 잡는 허풍, 백일몽 같은 삽화 모두 가랑비처럼 현실을 적셔 온 이면의 증상이었음을 이해한 순간, 주인공이 딛고 있던 세계의 수평선은 우주 끝으로 오싹하게 멀어진다(〈지구에서 영업중〉, 〈한눈에 반하다!〉). 고민거리라곤 사랑이 전부였던 가볍고 달뜬 청춘은 으스스한 빈집에서 혼자된 스스로를 발견 한다(〈Feel so good〉).
그래서 이시영의 만화들은 결말에 가까울수록 조도가 낮다. 이시영 유니버스에서 외계인은 인간보다 신과 가깝고, 존재에도 무게가 있다면 이 두 존재의 무게 차이는 비극이다. 미래는 몇 번이고 고지되었으나 예언을 해독할 능력이 없는 인간은 운명에 두들겨 맞고, 광활한 우주에서 오로지 한 개체와 차별적인 사랑에 빠진 외계인은 신격을 저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초월자와 미물의 ‘본성을 거스르는 사랑’. 거창한 나머지 장황해지기 쉬운 테마를 작가는 여러 작품에 걸쳐 변주하며 한층 완숙한 경지에 녹여낸다. 〈한눈에 반하다!〉의 초현실이 주인공 ‘반하다’를 두고 점점 밀착되는 현실감 위에서 균형을 잡는다면, 전 우주를 누비는 옴니버스 휴먼 드라마 〈네가 있는 미래에선〉에서는 인식을 초과하는 경외를 숭고미로 빨아들인다. 감정들은 양 페이지를 대담하게 활용하는 연출 속에서 압도적인 크기로 표현된다.
▲<그림4>〈한눈에 반하다〉Ⓒ 이시영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확실히 이시영은 친절한 이야기꾼은 아니다. 단일 작품만 읽으면 외계인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서사를 매듭짓기 위해 강림하는 장치로 느껴질 위험도 있다. 하지만 이시영은 후속작에서 전작 등장인물의 전사나 후일담을 연장하고, 키워드가 될 만한 설정을 반복함으로써 개별 작품을 하나의 세계관에 꿰어 넣는다. 조감하면 제법 유기성을 자랑하는 이시영 유니버스에서는 내일 당장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 해도 놀랄 게 없다. 일상에 초자연이 광증처럼 끼어들고, 하이틴 로맨스가 종교 철학적 SF로 화하는 간섭과 화학작용이야말로 이시영 만화의 색깔이다. 다양한 장르의 구성요소들이 결합 된 ‘장르 구성체’라는 난제가 곧 순정만화의 정체성이듯 말이다.
그러나 순정만화 담론에서 혼종성을 강조하다 보면 로맨스의 기여도가 간과되기 쉽다. 3세대 순정만화가 최경아는 로맨스가 없는 판타지를 연재했다가 ‘폭망’했던 신인 시절을 회고하고, 웹툰 작가 단지는 “모든 대중적인 만화에는 로맨스가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흥행 안정성을 보장하는 완충재로서 로맨스가 타 장르와 부지런하게 접목하고 재빨리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은 무척이나 합리적인 현상이다. 웹툰 플랫폼의 정착 후, 2010년대 로맨스 웹툰은 여성의 삶에서 추출한 ‘공동경험’이라는 광맥을 발견했다. 그 어느 때보다 고도화된 배율로 포착한 일상적 사건, 관계, 감정들의 패턴은 폭발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켰고, 이 시기의 대표적인 인기 로맨스 웹툰들은 자기충족적인 단일 장르에 가깝다(〈치즈인더트랩〉, 〈연애혁명〉, 〈유미의 세포들〉).
반면 근 몇 년 로맨스 웹툰은 일상에서 다소 멀어지는 단계에 있는 듯 싶다. 웹소설 원작 로맨스 판타지의 물량공세로 근세풍이 넘실거리는 가운데, 웹툰 오리지널 콘텐츠에서는 로맨스를 코드삼아 호러, 범죄, 스릴러 등 외부 장르의 함량을 높인 작품들이 눈에 띈다(〈록산〉, 〈그렇고 그런 바람에〉, 〈남편을 죽여줘요〉, 〈비즈니스 여친〉). 하이퍼 리얼리스틱한 일상 묘사가 고점에 도달한 로맨스 웹툰은 다시 80~90년대의 혼종적 순정만화들과 친연성을 회복하려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길목, 출판만화의 황혼기이자 순정만화사의 공백처럼 느껴지는 2000년대에 이시영은 확고한 취향과 작가주의적 세계관으로 세대 간 명맥을 연결해 온 만화가다. 여성향 만화 트렌드의 라이프 사이클이 형성되려는 기미가 보이는 지금, 이시영의 만화를 읽어보는 것은 꽤 새삼스러운 재미가 있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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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권김현영(2001), 〈순정만화, 여성들의 정서적 문화동맹〉, 《여성과 사회》 Vol. 12, pp. 191-131.
김재형(2021), 〈1990년대 여성만화 연구: 잡지 『NINE』을 중심으로〉, 성균관대 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학위논문, p. 49.
원윤미(2002), 〈순정만화 장르에 나타난 섹슈얼리티와 수용양상에 관한 연 구〉, 서강대학교 출판전공 석사학위논문, p. 29.
김은정(2015), 〈순정(純情)의 신화(神話) : 순정만화를 통해본 1980년대 순정
서사 분석 - 〈별빛 속에〉, 〈아르미안의 네 딸들〉, 〈인어공주를 위하여〉를 중심 으로〉,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과 석사학위논문, pp. 18-19.
김효진(2013), 〈한국동인문화와 야오이; 1990년대를 중심으로〉, 《만화애니메 이션연구》 No. 30, pp. 275-276.
김은미(2005), 〈세대별로 살펴본 순정만화의 페미니즘적 성취〉, 《대중서사연 구》 No. 13, pp. 45-55.
이선영·이승진(2015), 〈순정만화의 장르 세분화 필요성에 관한 연구〉, 《애니 메이션연구》 Vol. 11 No. 5, pp. 254-255.
바이라인 네트워크, 〈[웹툰작가를 만나다] ‘최경아-이빈-단지’, 여작가들 수다 인터뷰〉, 2019. 11. 12(https://byline.network/2019/11/11-82/).